작년부터 퍼져나간 한 인터넷 발 용어가 있다. 밝은 얼굴로 파이팅 넘치게 외치기엔 센치하고, 풀 죽은 얼굴로 읊조리기엔 긍정적인 – 그 둘 사이에 머무를 법한 표현, ‘오히려 좋아’.
'오히려'라는 단어로 답답한 현실을 한 번 반전시킨다. 그 와중의 발전적 다짐 같은 ‘좋아’가 웃음을 새어 나오게 한다. 이 말이 머릿속에 한 번 자리 잡고 나니, 은근히 써먹는 경우가 많았다. 작은 일부터 큰일까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때마다 ‘오히려 좋아’라는 말을 붙이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면이 하나 정도는 생기는 것이 신기했다.
여러 철학자를 알기 쉽게 이야기하는 에릭 와이너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를 읽어나가다 별안간 이 밈이 떠올랐다. 에피쿠로스를 다루는 장이었다. 그중 욕망을 ‘가려운 곳을 긁기’에 비유한 부분이 있다. 등에 손을 갖다 대고 스윽- 한 번 긁어보면 시원함이 순식간에 올라온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갑자기, 다른 곳도 긁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참기 힘든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다들 이런 경험이 한 번씩 있을 거다.
에피쿠로스는 이런 상황에 유의했다. 한 번 올라온 욕망을 해소시키고 나면, 오히려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결국 인생은 욕망을 쫓고, 해결하고 또다시 욕망을 쫓고 해결하는 틀의 연속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각종 SNS를 통한 소비의 준거점이 올라가면서 소비에 대한 욕망은 커졌다.
책, 트렌드 2022
현대 시대에서는 욕망이라는 단어에 사실상 소비를 대입해도 어색하지 않다. 소비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진행된 지나친 연결은,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포모 증후군 (흐름을 놓치거나 소외되는 것에 대한 불안 증상 : 지식백과)을 부추긴다. 나조차 무언갈 사고 난 뒤, 뒤돌아서서 소비의 쾌감을 잊는 시간은 갈수록 짧아지고 있는 것 같다. 굳이 살 필요가 없었던 것들이 마음속에 찝찝하게 남아 쓰레기 산처럼 쌓여간다.
끊임없이 욕망을 주입받는 사람들이 쳇바퀴 속에서 이를 눈치라도 챈 걸까? ‘에라, 모르겠다’는 듯 울려 퍼지는 ‘오히려 좋아’가 현대인의 재치 같다.
책에서 제시하는 대안은, ‘충분히 좋아’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 누리고 있는 것을 충분히 좋다고 생각해 보는 것. 혹자는 이에 대해, 현실에 안주하는 발전 없는 사고방식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가끔씩, 현시대 사람들의 곪은 마음속을 살펴보다 보면, 그리고 인간의 욕망 해소의 소비로 탄생한 더 곪아가는 수많은 쓰레기들을 생각하다 보면, 차라리 ‘충분히 좋아’가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좋아'와 '충분히 좋아'는 모두 현실을 긍정한다는 점에서 같지만, 현실을 만족하는 정도의 차이에서 구별된다. '오히려 좋아'에서 시작한 얼떨결의 긍정에서, 올해는 '충분히 좋아'로 나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마음의 낭비도 막고, 소비 감소로 인해 자원 낭비까지 막는, 일석이조의 신조가 될지도 모른다.
참고 도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트렌드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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