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온 하늘이 잿빛으로 둘러싸여 어두컴컴했던 그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내가 볼 수 있는 시야 범위가 코앞일 정도로 뿌연 날이었다. 감기에 걸리지 않았는데도 기침이 쉴 새 없이 나왔고, 눈은 계속 뜨고 있기 힘들 정도로 따가웠으며 피부는 그날따라 왜 그리 푸석푸석하던지. 영화에서나 보던 재난 상황이 실제로 재현된다면 이런 모습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은 미세먼지 등급이 최악 이상을 찍은 날이었다. 최악 이상, 그러니까 미세먼지 제일 끝 단계인 최악보다도 더 안 좋은 날이었다는 거다. 내 기억이 맞다면 최소 2배 이상이었다. 내가 오래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이날처럼 대기 상태가 더러웠던 적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 대기질 상태가 안 좋다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난 이전부터 공기질에 관심이 많았으며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같은 용어는 내가 제일 많이 검색하는 단어 중 하나였을 정도니까.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던 나는 기관지 역시 남들보다 약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몸에 안 좋은 성분이 내 몸으로 들어오지 않게끔 막는 것. 미세먼지 상태를 체크하는 것도 그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우리나라 대기질 상태의 현황을 알게 된 것이다.
평소의 미세먼지 양을 감안해도 그날은 심해도 너무 심했다. 평소라면 붉은색으로 표시되어 있었을 미세먼지 지도는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고 곧 그것이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이라는 사실도 파악할 수 있었다. 어두컴컴한 지도와 하늘 상태에 내 마음도 덩달아 어두워졌다. 뭘 해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고 기운이 나질 않았다. 벚꽃이 만발한 시기답지 않게 밝은 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날씨에 애꿎은 한숨만 푹푹 나올 뿐이었다. 창문을 열지 않으니 답답한 마음이 오랜 기간 지속됐고 그에 따라 우울감도 심해졌다.
시커먼 하늘은 쉽게 갤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루가 지나도, 이틀이 지나고 미세먼지 수치는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운이 좋아 바람이 잘 불어 미세먼지가 보통을 찍어도 며칠 뒤면 다시 올라갔다. 한 달에 80% 이상이 그런 날이었으니 내 상태가 나아질 리 만무했다. 계절이 바뀔 때까지 난 우울에 빠져든 채로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난 내가 너무 예민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세상엔 나 같은 사람들이 많나 보다. 홍윤철 서울대 교수 연구진이 서울시민 500명을 3년 동안 관찰한 결과, 대기 오염이 심해지면 사람들의 행복감과 의욕이 줄고, 걱정과 절망이 늘어났다고 하니 말이다. 또한 연세대 연구팀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05~2009년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서울의 공기가 나빴던 날 우울증이 악화돼 응급실에 오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대기 오염과 정신 건강은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었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느끼는 사실이었고.
봄 하면 따스함, 꽃의 만개, 밝은 색의 향연, 새로운 시작 등을 떠올리던 나는 이제 미세먼지부터 떠올린다. 당장 닥쳐올 미세먼지와 황사가 어떤 불쾌함을 줄지 먼저 떠올리고 편하게 창문을 열어놓고 있을 날이 얼마나 될지 계산해본다. 그리고 미세먼지 지도를 매일매일 켜는 내 모습을 그려본다. 미세먼지를 떠올리면서 쓸데없는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지만, 이미 습관처럼 굳어진 나의 생활 패턴 중 하나이기에 지금은 그러려니, 하고 있다. 이런 걸 보고 무뎌진다,라고 표현하는 걸까.
미세먼지를 걱정하지 않고 살기란 이제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마스크가 일상이 되기 전엔 어색했던 지금의 풍경이 이젠 자연스러워진 것처럼, 미세먼지 가득한 세상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있다. 보통 수준이면 괜찮구나, 싶고 나쁨을 넘어가면 오늘도 역시,라며 주섬주섬 KF94 마스크를 챙기는 내 모습이 더는 낯설지가 않다.
미세먼지 없는 세상이 그립고, 사시사철 푸른 하늘이 보고 싶다. 언젠가는 이런 세상이 올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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