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이 이야기에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물, 지명 등은 모두 허구적으로 창작된 것이며, 만약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첫 화를 읽고 오시면 더욱 몰입감있게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그곳에 이르렀을 때의 풍경은 가히 놀라웠다. 수십 명이 넘는 인파가 살고 있던 탄광촌의 숙소는 어두운 연기와 그에 상응하는 기침으로 가득했다. 대부분은 그 자리를 떠나거나 떠나고 있었고, 어떤 이는 짐을 싸는가 하면, 어떤 이는 서러움에 잠겨 앉아 있기도 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에 공감해줄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양옆으로 숙소들이 늘어선 거리에서 나는 아버지의 숙소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숙소에는 각 건물별로, 방별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고수철, 고수철, ...'
나는 아버지의 이름을 지긋이 반복하여 부르며 일치하는 이름을 찾고자 했다. 숙소는 길게 늘여져 있었지만, 방별로 이름이 적혀 있어 아버지의 숙소를 찾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오 분이 채 지나지 않아, 나는 아버지가 묵었던 숙소를 발견했다.
탄광이 폐광하고 그 숙소도 문을 닫은 후라 숙소 문은 잠겨 있지 않았고, 문을 열자 마자 보이는 낡은 신발이 아버지의 숙소임을 증명했다. 그 방에 들어서자 바깥의 연기가 조금은 정화된 듯하지만 아직도 탄광촌의 숨결이 있는 공기가 나를 반겼고, 아버지와 함께 동거한 것처럼 보이는 다른 두 사람의 물건들도 눈에 띄었다. 그 방은 성인 세 명이 살았다고 하기에는 다소 좁은 방이었고, 벽지부터 장판, 가구들까지 그리 변변치 못한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아버지가 이런 방 얘기 하나 없이 웃으면서 말씀하시던 전화가 생각나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방 안 옷장으로 보이는 서랍에는 아버지의 이름과 나머지 두 분의 이름이 각각 적혀 있었는데, 각자의 서랍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서럽장 문을 열었다. 서랍 안에는 옷가지와 양말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떠났는지 서랍 안이 텅텅 비어 있었다. 아버지만 옷들이 남아 있는게 이상하다고 느끼면서 주위를 둘러 보니 모두 아버지가 들고 오신 물건들뿐이었다. 분명 다른 두 분은 이곳을 떠난 것이었다.
참으로 이상할 일이었다. 탄광은 폐광했고,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이곳과 숙소를 떠났는데, 아버지의 물건들만 온전히 남아 있다. 심지어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지도 않으셨다는 어머니와의 통화를 마친 뒤라 더더욱 그랬다.
나는 혹시 모르는 마음에 숙소 주변을 샅샅이 살폈다. 주변 인부들에게도 물었다. 탄광 근처에도 가봤다. 어떤 것도 얻을 수 없었고, 아버지의 행방을 아는 이도 없었으며, 어떤 이가 아버지가 일을 열심히 하셨다고 말한 것 외에는 정보를 얻을 수도 없었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아버지의 방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옷과 물건들을 꼼꼼히 살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었다면 아버지의 성격상 기록으로 남겨 놓았을 것이 분명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아버지의 서랍 속 옷들 사이에서 꾸깃한 노트가 발견되었다. 그것은 일기장이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이곳이 폐광할 것이라는 얘기가 들려온다. 아니겠지 하는 심정으로 묵묵히 일을 하러 간다. 솔직히 남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이 그렇게 두렵지는 않다. 분명 나의 일자리를 잃는 것이고, 우리 가족의 살림 수단이 하나 주는 것은 맞지만, 나의 인생에 대한 자부심으로 남은 여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아니야.... 나는 책임져야 할 가족들이 있다. 모두 내가 정말 아끼는 사람들이다. 도저히 일자리를 포기할 수 없다. 내 덕에 산다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할 것이다. 생각해 보니, 엊그제 추가로 몇 만 원을 더 받았었다. 그때 정말 기뻤다. 내 가족들에게 이 돈을 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없었다.'
'슬픔과 아픔에 대해 일을 하며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둘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슬픔과 아픔은 잊혀질 수 있는 것일까? 하나 확실한 것은 슬픔은 아픔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나는 매우 슬프다.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것이 이리도 슬플 줄 몰랐다. 그래도 지금 내가 아프다고 할 수 있을까. 확실한 사실도 틀릴 때가 있을 것이다. 나는 아프지 않다. 오히려 가족들만을 생각할 수 있으니 기쁜 일이다.'
아버지가 쓰신 일기들을 천천히 읽어 보니,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게 사셨는지 느껴졌다. 물론 도저히 체감할 수 없는 깊이라 할 지라도, 그 이면을 조금이나마 옅볼 수 있었다.
일기들을 쭉 살펴도 아버지가 특별히 남긴 말이나 중요한 말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또다시 침울해 졌다. 이렇게 일과 가족에 열성적인 분이셨는데, 어떻게 하루 아침에 사라지시는가.
그런데 이상한 점은 일기장 맨 뒷 장에 평소 일기와는 다른 어투로 쓴 글이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 글을 또박또박 읽어 보았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