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먹는 걸 참 좋아한다.
아침 먹기도 전에 점심, 저녁메뉴를 고민하고 밤엔 늘 하이트제로에 간식 먹는 게 낙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몸은 점점 살이 붙었고 보는 사람마다 왜 이리 살이 쪘냐며 놀랬다. 나는 거울을 볼 때마다 흐린 눈이 되고 셀카는 늘 삭제했다. 살이 많이 찐 것도 알고 있었고 옷맵시가 안 나는 것도 알았다.
몸을 가리는 펑퍼짐한 옷을 여러 개 사서 돌려 입게 되다 보니 옷을 좋아하던 난 쇼핑도 안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살 빼는 건 평생 못 할 일 같았다.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유일한 나의 낙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의지는 너무나 약했고 체력은 점점 떨어져 몸을 더 움직일 힘 마저 없어진 지 오래였다.
그러다 작년에 득이와 이별한 뒤 거의 폭식증에 가깝게 먹기 시작했다. 집에선 가만히 앉아 티비만 쳐다보며 입에다 무언가 쉴 새 없이 집어넣었다. 자기 전까지 계속 먹다가 잠드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득이가 없으니 만사가 귀찮아져 매일 하던 산책마저 멈췄다. 운동량은 완전히 줄고 몸은 점점 무거워졌다.
역시나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가 아프기 시작했다.
이건 단순한 피로나 노화가 아니었다. 병원을 찾는 일이 많아지며 먹는 약이 점차 늘어갔다.
그러다 지난 6월 19일, 몸이 많이 아파 다시 병원을 찾았고 그곳에서 나는 충격적인 진단을 받았다.
내 몸은 지금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상태였다.
오랫동안 내가 살아온 방식, 내가 선택해 온 습관들.
무심코 먹은 음식들과 무관심의 시간들로 인해 어느새 나는 병들어 있었다. 그 순간 아무리 예쁘고 날씬한 사람들을 봐도 바뀌지 않던 내 마음이 단 한 번에 리셋되었다.
누가 다그친 것도 아닌데 이렇게는 못 살겠다는 어떤 오기가 심장 밑에서부터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이후로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기로 다짐했다.
음식을 바꾸고, 생활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한 끼 한 끼를 조심히 골랐고, 처음으로 내 몸의 감각을 들여다보았다. 보조제나 영양제에는 기대지 않았고 정제 탄수와 정제 당을 모조리 끊어냈다. 그렇게 건강한 하루 세끼를 정해진 시간에 지키려 애썼다.
그렇게 스무 날 정도가 지났을 무렵 5kg 이상을 감량했다. 신기하게도 정제 탄수와 정제 당을 끊으니 아프던 곳들이 모두 좋아지기 시작했다. 거울 속 몸이 조금 달라졌고 가벼워진 발끝에서 변화되고 있다는 기분이 느껴졌다.
그리고 드디어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도전을 했다.
나는 인스타그램 릴스를 찍어보기로 했다.
나의 몸을, 얼굴을, 전신을 그대로 드러낸 영상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카메라에 비친 나는 여전히 뚱뚱했다.
허벅지는 여전히 두꺼웠고 배는 푸짐하고 팔은 아직도 출렁거렸다.
내가 느끼던 변화만큼 화면 속 변화는 크지 않았다.
영상을 처음 봤을 땐 아직도 멀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영상을 자꾸 다시 보게 되었다.
왠지 나 자신이 기특해 보였던 것 같다.
완벽하진 않지만 분명히 뭔가를 바꾸고 있는 사람.
게으름보다 용기를 택한 사람, 스스로를 돌보기로 마음먹은 사람. 그게 지금의 나였다.
지금 나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훨씬 더 나에게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었다. 남들이 나를 칭찬하는 것보다 내가 나를 드디어 인정하기 시작했을 때 그동안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진정한 자존감이 나를 단단히 휘감는 걸 느꼈다.
내 눈에 내가 멋져 보인 건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최근 들어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내 앞에 벌어진 이 많은 전개가 어쩌면 운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평생을 작심삼일에 심각한 의지박약으로 살던 내가 한순간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내 힘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무언가 더 큰 힘이 더해졌다는 느낌이었다.
득이와의 이별,
기어이 병들어버린 신체,
그리고 그로 인해 바뀌게 된 나의 삶까지.
어쩌면 득이는 떠나서도 나를 지키고 있는 건 아닐까.
문득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누군가는 미신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낭떠러지 끝에서 늦지 않게 되돌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득이에게 나는 정말 고맙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다짐만은 꼭 해내고 싶다.
오늘로 딱 31일차.
6.5kg
내 체중의 10% 이상을 감량했고 여전히 달리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