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남긴 온도
어릴 적 꼬맹이 학생 시절, 미술 조각시간.
선생님이 지나가는 말로
“새롬이가 감각이 있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솔직히 말해 내 멋대로 주무른 덩어리에 가까웠고 선생님도 분명 가볍게 했을 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이 듣기 좋아 그랬던지 마음에 깊게 남았었던 것 같다.
그 말 한마디가 내 속에 씨앗을 뿌렸고 어느새 내 안에서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정말로 그림이던 조각이던 잘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결국 나는 스스로가 그런 사람인 것 처럼 믿었고
내가 그림을 그리는 걸 본 적도 없는 친구들이 “새롬이는 그림 잘 그려.” 라고 말할 정도였다.
선생님의 작은 씨앗같던 말 한마디는 싹이 트고 뿌리가 되어 마음 속에서 부터 크게 자라났고 나를 그리 바꾸게 되었다.
20대 시절 길거리 사주집에서 내 사주를 봐주며 이렇게 말한 적도 있었다.
“너는 초년만 힘들지, 자수성가할 팔자야.”
사주집 아주머니의 말 한마디가 어둡고 힘겹던 내 인생 열차에 석탄 한 덩이를 실었다. 내 앞에 넘어야 할 산이 하나씩 생길 때마다 넘어갈 힘이 되고 그 너머에 희망을 상상하게 만든 말이었다.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믿고 싶었던 말이었고 나를 또 다시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되었다.
말이 진짜 힘을 가질 때는 용기를 줄 때, 애정 어린 격려를 할 때라고 생각된다. 그럴 때 말은 누군가를 살리는 연료가 된다.
우리가 주고받는 말들은 참 묘한 것 같다.
순간 스쳐 지나간 말이 오래도록 마음 한쪽에 남아 씨앗처럼 자라기도 한다. 그 씨앗은 어떤 날에는 위로가 되고, 또 어떤 날에는 용기가 되며 때로는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한다.
나는 독설은 아무런 힘이 없다고 믿는다.
조언을 가장한 냉소와 조롱은 그저 뱉는 이의 영혼만 썩게 만들 뿐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타인의 말로 인해 하나뿐인 목숨도 내던진다.
그러니 우리는 매일 누군가의 연료가 되어주는 말을 해야 한다. 칭찬 한마디, 응원한 줄. 때로는 아무 말 없이 들어주는 것조차 그 사람의 하루를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이렇듯 말의 힘은 상상 이상이다.
그래서 말 한마디를 뱉을 때에도 좀 더 고민을 해본다. 이 사람의 장점이 무엇인지 자세히 보곤 예쁘고 따뜻한 단어를 골라 말하려고 하고 이미 벌어진 실수도 조금은 감싸주려 노력해 본다. 물론 나도 인격이 부족한 탓에 실수도 많은 편이지만 늘 의식하려고 노력한다.
아, 그리고 이건 조금은 나만의 말을 구분하는 방법.
극단적이지만...
조언을 가장한 당신을 흔드는 말들.
그런 말들은 대체로 애정이 없는 본인의 기분전환에 가까운 화풀이에 가까운 말들이다.
구분하기 쉬운 방법이 한 가지가 있는데,
당신이 병들어 병원에 누워 아무런 힘이 없을 때. 병원비를 끝까지 대신 내어줄만한 사람의 독설 외에는 상처받고 기억에 남길 필요가 없다. 다만 이 사람이 그런 말을 했을 때엔 다 이유가 있을 테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고...
그 외의 사람들의 뾰족한 말들은 귀에 담을 필요가 없다.
그저 묵묵히 내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