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나도리아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요 며칠간 매트 헤이그의 '휴먼'을 읽으며 몇 번이나 웃었는지 모르겠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 책은 리만 가설을 풀어낸 수학자 앤드루 마틴을 제거한 뒤 그의 모습으로 지구에 파견된 보나도리아 외계인의 이야기이다.
그는 인류의 발전을 막기 위해 앤드루 마틴의 업적을 지우고 그의 아내 이소벨과 아들 걸리버까지 제거해야 하는 임무를 맡게 되지만 그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차츰 인간의 삶과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비장한 임무를 안고 지구에 온 이 외계인은 첫 등장부터 어쩐지 코미디였다.
옷 입는 법을 몰라 알몸으로 돌아다니고, 대화에는 서툴며, 심지어 인사인 줄 알고 침을 뱉기도 한다.
그 낯선 시선 속에서 오히려 인간의 따뜻함이 드러났고 결국 그는 인간을 사랑하게 된다.
매트 헤이그가 전하고 싶었던 건 인간은 결함투성이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이었다.
책장을 덮은 며칠 뒤 나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떨어졌다.
'팔레스타인 시선집'이었다.
‘휴먼’이 꿈같은 이야기였다면 이 책은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었다.
그곳 가자지구에는 '휴먼'이 보여주던 인류의 아름다움도 희망도 없었다.
가자지구에 살고 있는 한 부모가 잠에 들기 전 아이를 껴안고 "내일 아침 다시 만날 수 없다면 다음 생에 꼭 만나자"라고 작별인사를 하는 절망이 있었다.
그 순간 기도라는 단어마저 잔인하고 무력하게 느껴진다.
팔레스타인의 고통 속에 한국인인 나도 연관이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내가 인간을 사랑한다는 말은 얼마나 무책임하고 가벼운 것처럼 들리던지.
매트 헤이그가 가자지구에 살고 있었다면 '휴먼'이라는 아름다운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매트 헤이그의 '휴먼'을 읽으며 인간의 불완전함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게 되었지만 '팔레스타인 시선집'을 읽으며 지구에서 가장 잔혹한 존재 또한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동시에 깨닫는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폭력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굶주리고, 집이 무너지고, 가족을 잃는 현실 속에서 저항하지 않는다는 건 곧 침묵 속에서 사라진다는 의미일 테니까. 나는 먼 나라에 살면서도 이렇게 화가 나는데 그 땅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어쩌면 레지스탕스가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가자지구가 폭격당할 때 언덕 위에서 맥주를 마시며 불꽃놀이 구경하듯 바라본다는 일부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은 그들의 고통을 '쇼'로 전락시켜 버린 세상의 잔혹함을 드러낸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들의 땅에서 쫓겨나야 했다.
유대인 민병대가 마을을 습격하고 불태우며 민간인을 학살했고 공포에 휩싸인 약 70만 명이 강제로 떠나야 했다. 이 사건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나크바(대재앙)”로 불린다.
그때 잃어버린 집과 땅은 지금도 돌아갈 수 없고 후손들은 여전히 난민으로 살아간다.
게다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칼로리 제한선을 두고 식재료 이동까지 통제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실제로 이스라엘 국방부 문건에는 주민 한 사람당 하루 2,279칼로리만 반입하도록 계산되어 있었다. 성인과 아동, 병자를 구분하지 않은 채 단지 “굶어 죽지는 않을 정도”라는 기준으로 인간의 삶을 수치로 제한했던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비극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그 시작에는 강대국들의 그림자가 있었다.
참 화가 나다 못해 증오스럽다.
전쟁은 왜 늘 무고한 사람들이 먼저 희생해야 하는 걸까?
[팔레스타인 시선집]
이 책은 판매 수익 전액이 팔레스타인 긴급 지원으로 이어진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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