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가을, 가장 사랑했던 이들의 계절
인생이 찰나라 그런 걸까.
봄과 가을에는 유독 부고 소식이 많이 들려온다.
나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두 분이 세상을 떠났다.
한 분은 벚꽃이 만개한 봄에,
또 한 분은 단풍이 절정인 가을에.
찰나의 인생이라 찰나의 순간에 떠나신 걸까.
그분들이 머물던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아직도 마음 한켠이 저릿하게 아프다.
시간도 흘러가고, 계절도 흘러가지만
흘러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바로 남겨진 기억, 그리고 물건들이다.
아빠는 내가 대학원 논문을 준비하던 해에 갑자기 아프셨다.
폐와 심장에 물이 차서 숨쉬기 힘들다 하셨고,
한 번도 병원을 찾지 않던 분이 스스로 병원에 가셨다는 말을 듣고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추석을 며칠 앞두고 수술을 받으셨고, 끝내 깨어나지 못하셨다.
병실에서 짐을 정리하다 보니 두유 상자가 덩그러니 있었다.
수술 후 식사를 못 하실 걸 염려하셔서 챙겨오신 두유였다.
그 상자를 보는 순간, 아빠의 삶에 대한 애착이 느껴져 펑펑 울었다.
한동안 두유는 마시지도, 사지도 못했다.
어머님은 쌍둥이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던 봄,
새 학기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던 시기에 쓰러지셨다.
‘주말에 전화드려야지’ 생각만 하다 연락을 미뤘는데,
그 주말에 수영장에서 쓰러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아이들과 저녁을 먹다 말고 짐을 싸
인천에서 창원까지 한걸음에 달려갔지만
어머님은 이미 의식이 없으셨다.
지난 금요일에 통화했었는데 며칠만에 어머님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없었다.
“우리 이제 집에 가요, 어머니.”
그렇게 불러도 어머님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다음날 오후, 어머님은 호흡기를 떼고 5분도 채 되지 않아 눈을 감으셨다고 한다.
이별은 언제나 갑작스럽다.
하지만 준비할 틈조차 없이 두 분을 떠나보내고 나니
오늘 내가 숨 쉬고 있는 이 시간조차 기적처럼 느껴졌다.
어머님과의 마지막 카톡에는 짧은 문장이 남아 있었다.
“어우야 고마워~”
어느날 어머님이 새벽 5시에 등록시작하는 수영강좌를 부탁하셨다.
마음 한켠으로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 것이 번거롭고 귀찮은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수영을 등록해드렸는데,
그 수영장에서 운동을 시작하신 첫날,
하나님께서 어머님을 부르셨다.
그 일을 떠올릴 때마다 죄책감에 마음이 무너졌다.
어머님은 퇴직 후에도 어린이집에서 일하며
아이들 식사를 책임지셨다.
“쉬면 더 아파진다”며 일하던 어머님은
돌아가시는 날까지도 온통 가족 걱정에 눈을 편히 감지 못하셨을 것이다.
장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어머님이 쿠팡에서 주문하신 시원한 바지가 도착해 있었다.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대비해 일을 하시며 입으시려던 바지였던 것 같다.
그 바지를 보며 문득 아빠의 두유가 떠올랐다.
떠나간 자리에 덩그러니 남겨진 물건들.
그리고 그 물건에 묻어 있는 기억들.
나이든다는 건, 그렇게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그리움을 마음에 들이는 일인 것 같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흘러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오늘도 그리움은 그렇게
가슴 깊은 곳에 조용히 쌓인다.
떠나간 이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가장 조용한 자리에 머무르고 있었다.
계절이 돌고 돌아 다시 그때의 햇살이 스며올 때면,
나는 여전히 그분들의 온기를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