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아직 ‘안쪽’에 있다고 믿는 동안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그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장애, 돌봄, 요양, 복지 같은 단어들은 언제나 뉴스 속 이야기로만 들린다.
그건 마치 투명한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밖의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 같다. 안쪽의 나는 따뜻하고 안전하지만, 그 문 밖의 사람들은 어딘가 다른 세상에 사는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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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유리문은 생각보다 얇다.
아주 작은 일에도 금이 가고, 사소한 바람에도 흔들린다.
주변 누군가의 사고, 질병, 노화, 혹은 한순간의 불운이 그 문을 스르르 열고 들어올 수도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밖’이라 여겼던 일이 불편하겠만 당장 오늘 아침에는 내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돌봄은 그렇게 작은 문턱 하나 차이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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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안쪽에 있는 우리는 종종 ‘연민’으로 문 밖을 바라본다. 하지만 연민은 벽을 쉽게 낮추지 않는다.
진짜 연결은
“나도 언제든 그 문을 건널 수 있다”는 이해에서 비롯된다.
누군가의 장애는,
누군가의 돌봄은,
누군가의 무너짐은,
결국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주하게 되는 시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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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 문을 닫지 않아야 한다.
닫힌 문은 경계를 만들고,
열린 문은 서로의 삶을 비춘다.
돌봄은 그렇게 서로의 삶이 비치는 일이다.
너의 시간이 나의 거울이 되고,
나의 하루가 너의 내일을 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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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문은 세상을 나누는 벽이 아니다. 그건 단지, 아직 내 차례가 오지 않은 시간의 막일 뿐이다.
돌봄과 장애는 나 아닌 다른 누군가의 일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나의 이야기’다.
나 역시 한때 그 두꺼운 줄 알았단 문 안쪽에 서 있었다. 하지만 건우의 장애를 통해, 나는 그 문 너머의 세상을 조금씩 보게 되었다. 그곳엔 다른 온도, 다른 리듬, 다른 언어가 있었다.
그 유리문 밖으로 나와보니, 처음엔 낯설고 외로웠다.
세상의 속도와 온도가 달라 한동안은 나만 다른 계절에 사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는 조금 더 느린 마음과, 조금 더 깊은 사랑을 알게 되었다.
서로의 다름을 견디는 일이 사랑이라는 것을, 그리고 진짜 사랑은 이해보다 오래 남는다는 것도.
이건 글로 차마 다 설명할 수 없는 세계이고, 어쩌면 누구에게나 자연스레 닿게 되는 길일지도 모른다.
그저 이 글이 누군가에게 조금의 경각심이 되거나, 조금만 더 공존을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복지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군가의 내일이 곧 우리의 내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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