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물 주는 시간

세쌍둥이 엄마의 하루, 그 안에 숨겨진 나의 숨구멍들

by OurSlowBlooms



요즘 아이들은 방학이 길다.

수업일수도 예전보다 훨씬 줄었다.

그만큼 엄마의 하루는 더 길어졌다.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만큼,

엄마는 쉴 수 없고,

오히려 더 바빠진다.


나는 세쌍둥이 엄마다.

그 중 한 아이인 건우는 발달장애가 있고

한 아이는 ADHD이다.

ABA 치료, 언어치료, 특수체육…

건우의 요일별 스케줄만 해도

성인 직장인 못지않다.


그리고 두 형제들 역시

각자의 학원, 치료, 숙제, 놀이, 감정조절까지

모든 일정이 매일 다 다르다.




이러니 나의 하루는

세 아이의 시간표로 가득하다.

아침부터 정신없이 움직이고,


하루가 끝날 무렵엔

무엇을 했는지도 모른 채

털썩, 소파에 기대게 된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아이들의 시간표 옆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적어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커피 한 잔 마시는 10분.

그 다음엔 꽃꽂이 문화센터 수업,

조금 익숙해지자

산책이나 책 읽기, 운동도 넣었다.


누가 보면 하찮은 조각 같지만

그 좋아하는 것들을 하는 시간들은

나를 무너지지 않게 해주는 숨을 공간이었다.




내 책상 위에는

빼곡한 글씨가 적힌 달력이 있다.

월요일: ABA(첫째, 막내)

화요일: 언어치료

수요일: ABA

목요일: 특수체육

금요일: ABA(막내), 특수체육


누가 봐도 아이들 스케줄이지만

그 한편에는

‘꽃’, ‘독서‘, 산책’, ‘네잎클로버’찾기 같은 단어도

조용히 적혀 있다.

그건 분명 아이들의 일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엄마인 나의 숨을 틈이었다.


그 숨을 틈을 기억해 보면

누구도 막은 적이 없었다.

다만, 내가 놓쳤을 뿐이었다.




5분쯤 창가에 서서

지는 노을을 바라보기,

아이들 숙제 채점하며

조용히 책 한 장 넘기기,

특별한 일이 있던 밤에 조용히

일기 한 줄 쓰기.


그 짧고 사소한 시간들이

내 마음을 천천히 덮고,

부드럽게 코팅해준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얼마전,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히키코모리에 대해 다룬 적이 있다.

요즘 아이들이 약한 게 아니라,

이미 굳어버린 사회의 틀,

보이지 않는 계급 구조 속에서

그 틀을 부수고 들어가려면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들어서

결국 무기력해진다는 내용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문득,

아이들만이 아니라

엄마인 나도 그렇다는 걸 깨달았다.


‘좋은 엄마’라는 기준,

희생과 인내를 미덕이라 부르는 문화,

늘 뭔가 부족한 듯한 자책감.

그 안에서 나도 조용히

무기력해져 가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지금도 내 삶 속에

작은 틈을 만들고 있다.


누군가에겐 음악이고,

누군가에겐 열정적인 춤이고,

또 누군가에겐 친구와의 재미난 수다이듯,

나에겐

이 조용한 한 칸의 루틴,

꽃을 배우는 그 시간이 물이 된다.




물을 먹고 자라는 꽃처럼

나도 물을 찾는다.


아이들이 학교에 간

짧은 시간 동안

꽃을 배우러 가는 길.

(물론 방학에는 어렵지만)

집에 가만히 있는 것보다

그 시간이 내 마음을

조용히 코팅해준다.


상처나지 않게,

너무 쉽게 마모되지 않게.




나는 엄마다.

세쌍둥이의 엄마 이름으로 살아가고,

수많은 치료와 교육의 스케줄을 소화하며

버티는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살아 있으려 애쓰는

한 사람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아이들의 시간표 옆에

나의 스케줄도 조심스레 적어 넣는다.


숨은 틈에서,

숨을 틈 하나라도 만들기 위해.


물을 먹고 자라는 건 꽃만이 아니었다.


#나에게물주는시간 #세쌍둥이엄마의하루 #숨을틈 #브런치에세이 #꽃처럼피어나기


매주 수요일 나를 위한 숨을틈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당신의 공감 한 번이, 저에게는 큰 숨이 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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