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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 Sep 02. 2020

나는 친절한 여성이고 싶지 않다

첫 번째 소란 

내가 받은 대우가 '친절'이라면, 나는 친절한 사람이고 싶지 않다

글쓴이. 아몬드 




 올해 초, 그러니까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각종 행사들이 취소되기 전, B페어 행사장에서 한 참여 기업의 부스 홍보 단기 아르바이트를 했다. 돈이 궁해서 지원할 수 있는 알바는 다 지원했고, 같은 행사라도 참여하는 여러 기업에 모두 지원했는데, 그중 가장 돈을 적게 주는 회사 한 곳에서만 연락이 왔다. 하지만 가릴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출근을 했다. 그리고 곧 후회했다. 돈도 돈인데(이것도 큰 이유다. 후술 하겠다.), 다른 이유가 더 있었다. 회사 직원들과 함께 부스에 상주하며 홍보 업무를 한다는 것도, 지원자 중에서 여성만 채용한다는 것도 지원 공고에 나와 있어서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근무하면서 더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영업직 남성 직원들 사이에서 웃으며 홍보하는 ‘사근사근한 아가씨’ 알바생으로서 내가 뽑혔다는 것을.


 

 회사의 영업직 남성 직원 서너 명과 함께 부스를 지키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출근 첫날, 그들은 분위기를 풀고자 했는지 처음 보는 내게 말을 많이 걸어줬다. 대화의 대부분은 내 개인정보를 묻는 것이었다. 숨길 거 없다고 생각해서 대답했는데 곧 후회했다. 질문과 대답에 대한 반응이 상당히 여성혐오적이었기 때문이다. 대학생인지, 어느 대학을 다니는지 묻는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하였더니 “오~ 여대~! 여대 재밌어요?”, “크~ 내가 여대에 대한 로망이 있지. 미팅해봤어요? 남자 친구는 어떻게 만나요?”와 같은 말을 들어야 했다.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 질문에는 솔직하게 말하고 싶지 않아 대구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아~대구 여자~~? 대구 여자가 또 기가 세지.”, “대구 사투리가 아주 그냥…”, “대구 출장 갔을 때 보니까 여자들이 다 예쁘더라.”와 같은 말을 들어야 했다. 짬 날 때 나눈 대화의 대부분이 저랬다. 뭐라고 대답하든 “00 여자! 크~.”와 같은 반응이었다. 


 나는 불쾌했지만 그들은 긴장한 알바생에게 먼저 다가가서 말 걸어주는, 유쾌하고 친화력 좋고 친절한 직원들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는 듯했다. “저희 웃기죠?” “같이 일하는 것 편하지 않으세요?”라고 묻기에 그렇다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남자친구 있어요?”라는 뻔하고 불쾌한 질문 역시 계속 받았다. 대답하고 싶지 않아 어색하게 웃으며 회피하니 “혹시 여중, 여고, 여대? 아니 딱 처음에 봤을 때는 세 보이던데 실제 성격은 약간 낯가리고 좀 숫기 없고 그런 것 같아서.”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세 보이게” 화장을 한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여러 사람을 마주해야만 하는 홍보 아르바이트에 ‘알맞게’, 또 ‘어린 여자애’로 보이며 무시당하기 싫어서 공고상에는 화장해야 한다는 조건이 없음에도 화장을 하고 출근했다. 그 후 근무기간 내내 화장을 했다. 직원 중 누구도 나에게 화장하고 오라고 직접 말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나한테 어떤 모습을 기대하는지 알 것 같았고, 스스로도 나는 돈을 받으니까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집에서 행사장까지 상당한 이동시간이 소요됨에도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화장을 했다. 여기서 나를 어떻게 보는지, 그러니까 왜 고용했는지, 사회적으로 젊은 여성들에게 어떤 역할을 기대하는지를 생각하면 정말 답답하고 스트레스 받아서 출근하기 싫었다. 하지만 나는 이에 순응하고 출근했다. 당장 돈이 필요하니까.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이 알바 직전에 한 일은 물류센터 알바였다. 하루 종일 몸을 갈아서 일하면 최저임금을 받았고 힘들어서 연속 근무도 못했다. 하지만 이 일은 이런 스트레스 빼면 사실 몸은 정말 편했다. 그리고 며칠만 참으면 되니까 참고 일했다.


 내가 맡은 홍보 업무는 간단했다. 추첨함을 들고 있다가 나를 고용한 회사의 부스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경품을 뽑아보고 가라고 ‘호객행위’를 하는 것이었다. 나를 피해 지나가려는 사람들을 향해 밝고 친절하게 웃으며, 그러나 부담스럽지는 않게 “뽑기 하시고 가세요~~^^.”라고 하루 8시간씩 4일 동안 크게 외치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그리고 뽑기에 응한 사람들을 부스 앞으로 데리고 오면 부스에 상주하고 있던 회사 직원들이 회사의 제품/서비스를 설명했다. 자세한 설명은 회사가 드러날 수 있으니 생략하겠다. 


 나는 내가 낯을 가리지 않는, 꽤나 뻔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일을 하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박람회의 성격상 주 방문객은 부유한 신혼부부였고, 함께 일한 직원이 알려준 바에 따르면 그들이 끌고 다닌 유모차의 가격은 내 4일 치 임금의 20배에 달했다. 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를 거쳐오며 축제 때마다 부스에서 크고 우렁찬 목소리로 호객행위를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일이 별로 힘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나는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속에 있을 때만 당당했다. 나보다 나이가 약간 더 많고, 돈은 엄청 더 많은 사람들이 억지로 밝게 웃으며 말을 거는 나를 무심한 눈길로 응시할 때, 나는 쉽게 작아졌다. 그럼에도 큰 목소리로 “뽑기 한 번 해보세요~!”라고 외쳤지만 속으로는 차라리 무시하고 어서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8시간 내내 그런 감정을 느끼며 목 아프게 외친 것은 아니다. 추첨함 들고 있기 무겁지 않냐며 회사의 직원들이 역할을 교체해줬기 때문이다. 서너 명의 회사 직원들과 나는 돌아가며 한 명이 호객행위를 하면, 다른 사람들이 제품/서비스를 설명하기로 했다. 그래서 실제론 부스에 상주하며 고객응대 했던 시간이 더 많다. 부스에 있으면 사람 없을 때는 앉아서 쉴 수 있어서 편했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안지 일주일도 안 된 회사의 서비스를 상세히 설명하며 함께 실적에 대한 부담을 짊어져야 했다. 직접적으로 내게 할당량을 준 것은 아니었다. 첫날에는 장난처럼 “많이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2,3일째 되는 날에는 “몇 개는 꼭 해내자.”와 같은 말을 들었고, 마지막 날에는 “부스비 내고 들어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실적을 내야 하는데 지난 3일 동안 많이 못 했다. 다른 팀은 많이 해서 비교되는 상황이다. 좀 더 열심히 해달라.”라는 말을 직접 들어야 했다. 하필이면 같은 기간 다른 지역에서 C페어가 열렸고, 거기에 파견된 이 회사의 다른 직원들은 높은 실적을 내고 있는 듯했다. 이 회사의 영업직 정규사원도 아니고, 최저시급 받으며 단기 알바하는 내가 왜 실적 부담을 함께 느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갔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4일이 지나가고 단기 알바가 끝났다. 지원 공고 상의 임금도 다 받았다. 하지만 이 임금은 주휴수당이 포함된 액수가 아니었다. 법에 따르면 주 40시간 미만 근로의 경우 15시간 이상 일했다면, (1주일 총 근로시간/40시간)*8*(시급)에 달하는 금액을 주휴수당으로 받아야 한다. 알아보니 단기 알바도 포함된다고 했다. 나는 하루 총 8시간에서 식사 및 휴게시간 1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7시간씩 연속 4일을 일해서 총 28시간 일을 했다. 따라서 나는 최소 28*8590+(28/40)*8*8590=288624원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에 못 미치는 금액인 일급 6만 9천 원, 총 27만 6천 원을 받았다. 식사시간, 주휴수당 등을 고려하지 않고 최저임금*8(시간)*4(일) 에다가 백 원 단위는 올림 해서 계산한 듯했다. 일도 끝나고 돈도 벌었지만 1만 2천 원 정도의 돈을 덜 받은 사실이 너무 억울했다. 하지만 다시 연락해서 돈을 더 달라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1만 2천 원밖에 안되니까, 또 회사에서 점심 도시락을 제공해줬으니까, 모집 공고에서 임금 확인하고 지원한 것은 나니까. 그래서 참으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억울했다. 모집 공고가 어떻게 올라왔든지 간에 주휴수당은 당연히 줘야 하는 노동의 대가이다. 이는 내가 ‘일급 6만 9천 원, 총 4일’의 공고를 확인하고 지원했다고 해서 변하는 사실이 아니다. 알든 모르든, 나 아니라 그 누가 일했어도 받아야 하는 돈이다. 식사/식대 제공은 고용주의 재량이다. 나와의 합의 없이 주휴 대신 식사를 제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당연히 내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근로계약서도 안 쓰고 일했기 때문이다. 단기 알바라고 해도 고용주에게는 근로계약서 작성 및 교부 의무가 있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500만 원 미만의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생각할수록 억울하고 화나고 이상하게 용기도 났다. 연락 안 하고 참고 살 자신이 더 없어졌다.


 그래서 연락했다. 돈 달라고. 나는 최저시급 기준으로 계산한 금액보다 덜 받았는데 미지급분은 언제 받을 수 있냐고 문자를 보냈더니 곧 전화가 왔다. 자기소개도 없이 대뜸 나보고 예의 없다고 했다. 왜 미리 말 안 했냐고, 역시나 조건 확인하고 지원한 것 아니냐고,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면 지원하지 않거나 진작에 말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나는 내가 받아야 하는 최소한의 금액을 요구했을 뿐인데 왜 예의 없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그래서 이번에는 참지 않고 물었다. 법이 정한 최소한의 금액을 달라고 하는 것이 예의 없는 것인지, 이제 와서 말하는 것이 예의 없는 것인지 물었다. 


 “법” 얘기를 하니 이제 와서 말하는 것이 예의 없는 부분이라고 했다. 미리 말했으면 자르고 다른 사람을 고용했을 것이 뻔하다. 하지만 이는 내가 아닌 그 누가 일 했어도 받아야 하는 금액이다. 미리 말 안 한 나는 예의 없는 사람이고, 이에 대해 섭섭하게 생각한다고 하길래 나도 근로계약서 작성 안 한 것 섭섭하게 생각한다고 받아쳤다. 섭섭한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노동청에 신고하면 500만 원 미만의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돈은 줄 거지만 나의 행동은 예의 없는 행동이라고 하며 상대방이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1만 2천 원 정도의 미지급분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돈을 다 받고도 며칠 동안 생각이 나고 억울했다. 정말 내가 잘못한 걸까? 나는 당연한 걸 요구했을 뿐인데. 이런 불의를 참는 것이 예의라면 나는 예의 있는 사람이고 싶지 않다. 4일 동안 회사의 직원들은 그들 나름대로 나를 ‘친절하게’ 대해줬다. 하지만 친절한 것과는 별개로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 나는 그 최소한의 권리를 요구했을 뿐이다. 또한 내가 받은 대우가 ‘친절’이라면, 나는 친절한 사람이고 싶지 않다.


 사회가 20대 여성에게 바라는 이미지가 있다. 그래서 20대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노동은 한정적이며, 20대 여성만 선택할 수 있는 노동이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만큼의 노동을 요구받는다. 하지만 정규직만큼의 임금과 대우를 받지 못한다. 때로는 이에 저항하고, 때로는 이에 순응하며, 나는 20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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