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란 Sep 02. 2020

나는 만들어진 소비자다

두 번째 소란

이 일에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비자를 연기하는 노동자만이 존재할 뿐.

글쓴이. 모노




 대학에 진학하면서 자취를 하게 됐다. 부모님이 등록금에 월세에 용돈까지 지원해 주시는 행운을 얻게 되었지만, 최소한으로 살아도 언제나 생활비가 모자랐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어플을 한참 동안 뒤졌다. 사람 대하는 건 너무 어렵고, 경험이 없어서 카페나 식당 같은 데도 못 가고, 기분 나쁜 게 바로 티 나는 사람이라 감정노동이 요구되는 일에는 자신이 없고, 학교를 다녀야 하니까 사무보조도 못 하고...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그러던 중 내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재택 원고 작성 알바였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이렇게 바이럴 마케팅의 세계로 들어서게 됐다.


 ‘바이럴 마케팅’의 사전적 정의는 ‘블로그나 카페 등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정보를 제공하여 기업의 신뢰도 및 인지도를 상승시키고 구매욕구를 자극시키는 마케팅 방식’이다. 바이럴 마케팅은 이제 우리 일상 속에서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고, 실제로 효과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물건을 사거나, 식당을 찾거나 할 때 가장 먼저 찾는 게 ‘XXX 후기’ 아닌가. 하지만 그 후기들은 다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진정성 있는 후기들도 다수 존재한다) 기업은 소비자를 연기하는 역할을 할 노동자를 고용한다. 고용된 노동자들은 그 기업의 물건과 큰 연관이 없다. 단순히 제공받는 정보들을 기반으로 해서 상상해서 후기 글을 쓰게 되는 것이다. 


 바이럴 마케팅 아르바이트의 핵심은 소비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빈 블로그에 뜬금없이 올라오는 단순 홍보 글은 사람들이 안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인격’을 창조하는 게 중요하다. 아마 블로그를 조금이라도 열심히 굴려 본 분들이라면, 블로그 판매 문의를 받아 보신 적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서로이웃이나 방문자 수가 꽤 있는 블로그를 팔면, 즉 업체에 아이디를 넘겨주면 업체에서 그걸 자기 회사 홍보용으로 쓴다. 업체 입장에서는 이 방법을 제일 선호한다. 이미 인격이 형성되어 있는 블로그를 사용하는 것이니까. 포털 사이트에서도 나름 스팸 글을 거르는 알고리즘이 있기에, 업체에서는 일정 빈도로 일상 글과 홍보 글을 번갈아 올리는 형태로 블로그를 사용하게 된다. 


 바이럴 마케팅 글에는 나름의 작법이 있다. 다들 포털 사이트에서 뭔가를 검색하면 상위에 광고 글만 떠서 짜증 났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가령 예를 들자면... 


이웃님들 안녕하세요~ 


(라인 이모티콘)


요즘 A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무척 많이 계시더라구요~


A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하네요 ㅎㅎ 


(라인 이모티콘)


지금까지 A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런 류의 글 말이다. 다들 눈치챘겠지만 검색 결과에서 포털 사이트 상위권에 올라가려면 그 키워드를 n회 이상 사용해야 한다. 맥락 없이 똑같은 단어를 계속 사용하는 거다. 그리고 상위 노출을 위해서는 글자 수도 수천 자 넘게 맞춰야 한다. 그래서 키워드와 관련 없는 이상한 소리들을 막 늘어놓는다. 날씨가 어쩌구 요즘 제 취미가 어쩌구... 쓰면 안 되는 단어들, 써야 하는 단어들도 정해져 있다. 일단 길게 이어 쓰면 안 된다. 보통 사람들은 긴 글을 잘 안 읽으니까 무조건 문장을 짧게, 나눠서 써야 한다. 딱딱한 말투도 안 된다. 적당한 이모티콘 사용은 필수. 남발해서도 안 되고 너무 안 써도 안 된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자본론>에 대해 소개해 드릴 텐데요~


(라인 이모티콘)


먼저 <자본론>은 칼 맑스의 저작이랍니다!


정말 흥미롭네요 ㅎㅎ


이런 식이다. 


 다음으로는 장점. 일단 재택근무이기 때문에 시간 조절이 비교적 자유롭다. 새벽 3시에 하든 아침 7시에 하든 마감 시간만 맞추면 상관이 없다. 그리고 익숙해지면 손에 익어서 빠르게 끝낼 수 있다. 단점은 집에서 일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거다. 집에서는 집중이 안 되니까 일 하러 카페를 가면, 버는 만큼을 커피값으로 쓰게 된다. 그리고 같은 업체에서 오래 일하면 노하우가 생겨 일이 편해지긴 하지만 비슷한 내용의 글을 계속 쓰게 되므로 질리고 재미가 없다.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어도 표현이 중복되면 안 되기 때문에 문장을 세세하게 뜯어고쳐야 하는데 이게 은근히 정신력이 소모되는 작업이다. 나는 내가 단순 반복 작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니었다는 것을 이 일을 하면서 깨달았다. 


 아무튼 나는 이 일을 꽤 오래 했다. 나름 즐기기도 했다. 할 줄 아는 게 그나마 글 쓰는 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글 쓰는 거 좋아하고 단순 작업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경험해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상한 광고 글 볼 때마다 짜증이 나면서도 내가 저런 거 써서 돈 번다는 생각을 하면 현타가 온다. 찍어내듯 루머를 생산해내는 유사 언론이나, '우라까이' 하는 기자들이랑 뭐가 다른가 싶기도 하고. 인터넷 세상을 지저분하게 만드는 데 오늘도 일조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파워블로거들은 협찬이라도 받지 나는 협찬도 못 받는데… 내가 하는 일은 소비를 ‘상상’하는 일이다. 나는 진짜 그 제품들이 괜찮은 것들인지 모른다. 업체에서 좋다고 써 달라고 하니까 그렇게 쓰는 거다. 이 일에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비자를 연기하는 노동자만이 존재할 뿐. 하지만 '나'를 드러내지 않아도 된다는 건, 그나마 감정노동과 육체노동을 적게 해도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일은 흔치 않고, 그래서 그냥 나는 나를 지우기를 선택했다.




작가의 이전글 청년 여성들의 노동 기록 프로젝트, '소란'을 열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