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늘, 예고 없이 흐른다.>
첫 번째 학원을 그만두고,
나는 성실함의 미덕을 다시 배웠다.
학원 강사 채용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린 지 반나절도 되지 않아,
정말 많은 연락이 왔다.
이유는,
내 자기소개서가 특별해서도,
내가 일했던 학원이 유명해서도,
내 포트폴리오가 완벽해서도 아니었다.
모든 원장님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7년을 한 학원에서만 일한,
영어 선생님이라니,
너무 궁금합니다!”
내가 일하는 직업 세계는 문턱이 없다.
영어학원은 특히 그랬다.
20대에는 1~2년 일하고 훌쩍,
다시 유학으로,
다시 연수로,
다시 워홀로 떠나는 사람이 많았다.
나도 모든 선택지를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모든 선택지보다,
올해 입시를 치러야 할 학생들이
늘 더 먼저라,
나를 위한 선택지는 항상 뒤로 밀렸다.
그래서 나는 한자리에 7년을 있을 수 있었다.
누군가 표현했던 ‘바보 같은 우직함’이
이제는 내 이력서의 가장 매력적인
포인트가 되었다.
반나절 만에 면접을 잡은 학원이 다섯 군데였다.
대치동의 유명 학원들부터,
내가 중학교 때 다녔던 학원도 있었다.
면접 일정이 모두 잡힌 뒤,
이력서를 비공개로 전환했다.
문턱이 없기에,
들어오는 사람도 많지만,
나가는 사람도 많아,
문 안을 꾸준히 지킬 사람이
얼마나 귀한지,
그제야 깨달았다.
강사의 채용 과정은 보통 3단계로 이루어진다.
서류 심사 – 필기시험 – 시강 및 면접.
필기시험은 학원마다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지만
시강은 거의 필수적으로 거쳐야 한다.
그만둔 첫 직장의 시강 자리에는
총 세 분이 들어오셔서
내 수업을 들으셨다.
원장님, 부원장님, 그리고 미스터 고 선생님.
술 냄새를 가득 풍기며,
숙취로 고통받던 미스터 고 선생님이
시강 내내 꾸벅 꾸벅 졸다가
갑자기 그 자리에 있던 사람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영어 질문들을 퍼붓는 바람에,
내 시강은 웃음으로 묻혔고
결국 화기애애한 면접으로 이어졌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학원마다 미스터 고 선생님이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7년 동안,
교재, 수업, 학생 및 학부모 관리에서
조금씩 레벨업을 한 것 같긴 한데,
객관적 평가는 이번이 처음이라
자꾸 긴장이 되었다.
일단 대치동으로 향했다.
교육 1번지,
강사라면 누구나 꿈꾸는 그곳.
그래서일까,
항상 면접 및 시강이 있는 곳이라서인지,
한순간 나는,
그들에게 one of them이구나…
그런 느낌이 들었다.
아, 나는 그냥 채용팀에 의해 선택되어
일단 불러본,
오늘 면접 봐야 할 선생님 중 하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았다.
면접 내내
상투적인 질문 속,
부원장의 귀찮음이
너무 무례하게 느껴졌고,
나중에 연봉 협상을 하자는 전화가 왔을 때
내심 그 말투가 걸려
조심스럽게 거절을 하였다.
다음 일터에서는
무엇보다 일하는 직원을
귀하게 여기는 원장님을 만나고 싶었다.
그런 분이라면,
부원장님 같은 사람을
같이 두고 일하진 않겠지 싶었다.
정해진 5군데,
모든 학원의 면접을 보고 난 후,
나는 사실 더 자신이 없어졌다.
이해는 하지만, 나이 때문인지,
면접마다.. 결혼과 출산이 항상
질문으로 따라붙었다.
향후 5년 동안 계획이 어떻게 되세요?
결혼 계획이 있으신가요?
아이는 몇 명 낳으실 거예요?
비정규직. 프리랜서.
문턱도 없는, 영어학원 강사자리
그 자리를 두고,
사생활과 인권을 넘나드는
질문들이 넘실대었다.
수업, 상담, 업무 관련 질문에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는데,
개인 신상으로 가면
답이 막혀 뭔가 답답한 마음으로
면접을 마무리해야 했고,
면접 합격 전화가 와도
그다지 반가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7년의 성실한 이력보다 32살,
인생의 큰 전환점들이
언제 올지 모르는 나이라는 사실이,
구직하는 나도,
구인하는 학원도,
모두를 부담스럽게 하는 것 같았다.
고민이 계속되던 중,
남자친구가 된 과학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집 앞이야. 잠깐 내려와. 갈 데가 있어.”
그가 데려간 곳은
그의 학원에서 멀지 않은 건물 2층,
한 수학학원이었다.
“어때?”
“응… 깨끗하네. 여기로 학원 옮기려고?”
“아니, 그럼 괜찮은 거 맞지?”
“응, 근데 왜…?”
“오빠가 여기 계약했어.
남 밑에서 7년 일했으면 된 거야.
넌 이립도 지났잖아. 이제 네 걸 해봐.”
하...
이 오빠는, 진짜 여러모로 예측불가다.
후쿠시마 때문에 초밥도 안 먹는데
초밥뷔페에서 첫 만남을 갖더니,
이제는 상의도 없이
내 학원을 시작하라니.
뭐라고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나를 보며,
남자친구가 한마디 더 보탰다.
“기회는 아무 때나 오는 게 아니야.
너 충분히 잘할 수 있어.
내가 도와줄 거고, 내가 응원할 거야.”
사실 머리에 맴도는 생각은 하나였다.
이걸 받아도 될까…?
남자친구랑 결혼한 것도 아닌데…?
헤어지면 어쩌지…?
아니 그것보다 내가 어떻게 학원을 운영해…?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나를 보며
남자친구는 오늘은 일단 집에 가서
푹 쉬며 고민을 해보라고 했다.
나도 내 학원을 언젠가 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지 몰랐다.
고민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계속 생기는 질문들이
하룻밤을 꼬박 새우게 했다.
남자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오빠 그거 계약 취소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
“응 그냥 돈 날리는 거야.
괜찮아. 네가 제일 중요해.
부담스러우면 다음 기회에 해도 돼.”
다시 또 하...
계약금을 날리는 게, 더 부담스러웠다.
나는, 그렇게 너무나도 작은 나의 의지와
너무나도 큰 남자친구의 응원으로
나만의 학원을 열게 되었다.
살다 보면,
나만 모르는 내 인생의 변곡점이 생긴다.
전혀 모르고 있다가
곡선을 돌아야지만, 돌면서,
엇, 방향이 바뀌고 있네?
그렇게 알아차리는
인생의 변곡점들.
그때,
나는 그중 하나를 지나고 있었다.
흔들리는 커브길을 돌며
직업과 인생에 대한 불안감으로
그 길 끝에 내동댕이쳐질까 봐
눈을 질끈 감고,
누구의 손이라도 잡고 싶었던 그때.
다행히도, 누군가가 손을 내밀었고,
주저하는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굽이진 길들을 돌아
마주한 길이 아직 어둡고 컴컴할 때
내가 들여놓는 한 걸음이,
불확실에 휩싸여 쉽게 땅을 디딜 수 없을 때,
넘어지지 않도록,
나를 잡아준 나의 봄 덕분에
나는, 내 인생의 또 다른 막을
조용히 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