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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햔햔 May 02. 2019

다들 첫사랑은 아니지 않아요?

자신할 수 있나요? 정말요?

지나봐야... 알잖아...


그 모든 것은 너라는 종착역을 위한 정거장이었어.


 아주 입에 발린 말이다. 더 심한 말을 하고 싶지만 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아 묻어둔다.

 언젠간 지나가는 기차에 또 몸을 날리겠지. 여의치 않으면 새로운 역을 개통하는 수고도 아끼지 않을 테고. 그것도 아니면 바로 옆, 버스 정류장으로 갈지도 모른다.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끝 사랑. 멋진 말이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야 진짜 끝 사랑이다. 우리는 안다. 그 이전에도 얼마나 많은 종착역을 지나왔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손꼽아보자. 하나, 둘, 셋... 하지 말자. 같이 죽자고 덤비는 건 아닌 것 같다. 큼...


| 지나고 나야 분명해 지는 것들


 지나보지 않은 바에야 증명할 길이 없다. 그래서 지난 것들을 아쉬워하고 진작 알지 못함에 속상해한다. '바보 같이, 이제야 알다니...' 그런데 지금 알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생각해보면, 그간의 경험 덕분이다. 해봤기에 안다. 아니. 안다고 '이번에는' 확신할 수 있는 거다. 그 시행착오가 없었다면 몰랐을 거다. 세월이라는 기차를 타고 가다 멋진 광경이나 호기심이 생겨서 내린 거지 100% 확신을 가지고 내려선 사람은 없다. 인생은 너무 다채롭고 변화무쌍해 예전에 왔던 역도 달라지기 일쑤니까. 그래서 내려 본 거다. 비록 환승비가 더 들더라도 말이다.


 어찌 보면 뭔가 해본 이후의 후회와 아쉬움은 깨달음의 한 종류다. 후회한다면, 아쉬운 게 있다면 노력해 본 결과이고, 그간의 시행착오가 빛을 발하는 깨달음의 순간인 거다. 나쁜 X 덕분에 겪었던 아까운 순간들도 지나고 나야 아까울 수 있다. 아니 애초에 나쁜 X 이 되려면 그 순간들이 있어야 했다. 그래야 나쁜 X 도장을 쾅! 거침없이 찍고 다시 나아갈 수 있는 거다. 다음에 또 다른 나쁜 X을 겪게 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얻은 것은 있다. 이 X은 아니라는 거. 미리 알지 못했다고, 시간 낭비였다고 자책할 필요가 없다. 그게 없었음 아직도 모를 일이니까.


| 최선은 노력이 아니라 선택이다.


 "무조건 대책 없이 해볼 순 없잖아!", "저번에도 그랬어!", "그래도 이번은 다르지 않을까?", "이번만은 확실해!". 모르겠다. 그냥 최선이라 믿는 수밖에. 다시 생각해도 지나 봐야 알 것 같다. 그러니 지금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최선인지 고민하느라 아까운 정신을 소모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만해도 그렇다. 영향력만을 본다면, 나는 이 글을 쓸 필요가 없다. 잘 쓰지도 못할뿐더러 잘 읽히지도 않을 테니까. 그런데도 부족한 것 투성인 글을 써 놓고 보면 마음이 땃땃해진다. 지나 보니 좋더란 말이다. 배운 거다. 빈약한 글을 쓰지만 마음은 채워진다는 걸. 그래서 쓰는 거다.

 훗날 지금의 이 시간이 어떻게 다가 올진 모른다. 그냥 최선이라고 믿는 수밖에 별 수 없지 싶다.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나중에 "괜히 썼어" 하는 후회가 들더라도 시간 낭비가 아닌, 글쓰기는 나와 맞지 않음이 증명되는 순간이 되는 거다. 나름 뼈아픈 소중한 배움이 되겠지만.


 누군가가 "잘 생각하세요. 지금 이분과 연애하면 13년 후 아이가 넷 생겨요." 했더라면 지레 겁먹고 연애도 안 했을 거다. 멋모르고 그냥 열심히 사랑했더니 넷이 사방을 뛰어다니고 있고, 뭔가 자연스럽고 당연해 보이기도 하며, 이게 행복인가 하는 생각도 할 수 있는 거다. 당해보지, 아니. 겪어보지 않으면 몰랐을 것들인 거다. 하하. 애가 넷이라니. 하하하.


| 후회라는 잘 안 맞는 친구와 함께


 진작에 알지 못했다고 지나치게 속상해도 말고 미리 예측하려고 너무 힘 빼지도 말자. 굳이 안다고 해서 좋을 것도 없으니까. 아이 넷 생길까 봐 연애 안 할 건가? 어차피 깰 거 (술) 안 마실 건가? 그건 아니지 않나. 사랑을 하는 데 있어 이리저리 계산하는 것보단 미친 듯 빠지고 매달리고 걷어차이고 차는 게 임팩트 있다. 뭔가에 푹 빠져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봤을 때 확신할 수 있다. 그렇게 지나고 나야만 분명 해지는 거다.

 

 그럼에도 불안하다. 조금 더 괜찮은 결과면 좋겠다. 안다. 그게 사람 마음인 걸. 누가 후회를 원할까. 그런데도 후회는 어쩔 수 없이 찾아온다. 그렇다면 우리는 후회와 더불어 사는 데 익숙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어차피 매 순간 찾아오는 녀석이라면 좀 친해놓는 게 낫지 싶다. 어르고 달래고 겁도 주면서 같이 좀 잘 가보자. 그래도 다행인 건 우리에게 첫사랑이 있었듯, 최선을 다해 사랑하다 보면 언젠간 끝 사랑도 있을 거니까 말이다. 그게 자의든 타의든.(웃음)

 그러니 항상 최선이라고 믿고 보는 거다. 항상. 밑져야 본전인 자신 말고 뭘 믿겠나. 이제 천대만 했던, 몽매해 보이던 지난 자신에게 따뜻하게 웃어 줄 차례다. 그간 미안했다고. 대신해서 고생 많았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잘해보자고.


나 좋자고 쓰던 글이 여기까지 왔다. 여기까진 나의 최선이다.

그대들의 최선에는 부디 후회와 아쉬움보다 더 빛나는 환희와 깨달음이 있기를 기원한다.


쓰고 보니 벌써 밥시간이다. 나의 첫사랑이자  사랑인 아내에게 밥 얻어먹으러 가야겠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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