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무대에 섰고 가족이 응원했고 내가 용기를 얻었다
| 아들이 무대에 섰다.
| 굳은 표정으로 진짜 서있기만 했다.
정말로 무대에 "섰다"
| 첫 무대와 불안
종종걸음으로 무대로 걸어 나오는 무리에 아들이 있었다. 벌써부터 몸을 흔들어대는 아이들과 목석처럼 굳은 아이들이 뒤섞여 있는 그곳에 목석 1로 있었다. 딱딱하게 굳은 자세와 상기된 얼굴. 긴장한 것이 확연히 보였다. 힘을 보태주고 싶어 온 가족이 힘껏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객석이 잘 보이지 않는지 끝내 우리를 발견하지 못했고 음악과 함께 공연이 시작됐다. 박자를 놓친 것인지 동작을 잊은 것인지 아이는 꿈쩍하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눈과 목만 미세하게 움직여 계속해서 객석을 더듬었다. 엄마를 찾는 눈빛. 아이는 불안해하고 있었다.
애타는 마음에 엄마의 소심한 외침이 시작됐다. 여기 있다고. 여기 좀 보라고. 본인의 옷 색깔이 어두워 보이지 않는 것 같다며 급기야 밝은 색 점퍼를 입은 넷째를 들어 올려 흔들어 댔다. 멀뚱히 흔들리는 넷째의 모습 너머론 정신없이 반짝이는 야광봉이 춤을 췄다. 환갑과 칠순의 중간 어딘가를 거닐고 계신 할머니였다. 아... 어머니. 앞 좌석의 부모에게 빌린 야광봉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현란한 손놀림으로 휘두르고 계셨다. 어느 소녀 팬 못지않게 열렬하게. 제발 이쪽 한 번만 봐달라고 간절히 바라는 모습으로 손주를 향해 힘껏 흔들었다.
모두의 열성적인 흔듦에도 아이는 무대에서 가까운 밝은 객석만을 바라봤다. 할머니와 엄마와 누나의 외침도 웅성대는 소리에 들리지 않는지 아이의 표정은 끝내 풀리지 않았다. 그렇게 한 무대, 한 무대. 아들은 그대로의 굳은 얼굴로 무대에 올랐다. 매 무대마다 달라지는 귀여운 복장과는 다르게 아이의 표정은 한결같았다.
마지막 무대.
여전히 객석만 둘러보며 움직이지 않던 아들이 팔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뒷줄에서 앞줄로 옮겨야 하는 타이밍에, 동선을 막고 있던 아들을 선생님이 앞쪽으로 옮겨준 이후였다. 거의 다 풀린 태엽 장난감을 손으로 살짝 건드린 것처럼 아이가 잠시 반응하더니 간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그게 뭐라고 감격했다. 격하게 손뼉 쳤고 좋아했다. 낯섦을 이겨낸 아들의 용기에 자뭇 흥분했다.
| 떠밀려 오른 무대와 낯선 용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감격적인 까딱거림은 할머니를 발견하고 용기를 낸 아이의 몸짓이었다. 야광봉을 흔드는데 만족하지 못하고 무대 가까이로 내려간 열혈팬 덕분에 우주 공간을 떠돌던 아이의 불안한 마음이 그제야 무대에 내려앉았던 거다. 끝내 가 닿았던 할머니의 필사적인 응원이 아이에게 큰 힘이 되었으리라.
따지고 보면 재롱잔치는 아이의 선택이 아니었다. 어린이집에서 참여의사를 부모에게 물었고 무대가 무엇인지, 재롱잔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간단한 설명만으로 "응"이라는 대답을 이끌어 낸 부모의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주변의 칭찬과 격려에 노력했고 용기 내 무대에 올랐다. 분명 울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임에도 끝내 울지 않고 최선을 다해 자리를 지켰다. 어딘가에 나를 바라보고 있을 누군가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그 낯섦을 이겨냈다.
떠밀려 올라간 무대에서의 낯선 용기를 생각해본다. 더불어, 살아가면서 내야 할 무수히 많은 수동적인 용기도 생각해본다. 이게 뭔가 싶겠지. 막막하겠지. 쉽지 않겠지. 그럼에도 그럴 때면. 언젠가 안심하라는 엄마의 동생 흔들기와 그 어떤 소녀팬보다도 열렬했던 할머니의 야광봉과 환호가 있었음을 기억해 주면 좋겠다. 간절히 보내는 위안과 격려가 그 막막함 속에 언제나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 삶이 떠밀려 오른 무대라면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낯선 무대를 반복해서 오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의지든 어쩔 수 없는 환경 때문이든, 살아가면서 낯선 용기를 만들어 버틴다. 어떤 때는 흥에 겨워 주체할 수 없다가도 또 어떤 때는 여기가 어딘지 나는 누구인지를 묻게 된다. 보이는 건 눈앞의 상황뿐이고 그동안 해왔던 노력이 무색하게 꼼짝 못 하기도 한다. 새로 올라 선 무대에서 혼자 남겨진 듯한 불안에 자신을 향한 응원이 간절해지고 간신히 되찾은 용기로 또 한 번 무대를 버텨낸다.
그날 나는 알았다. 저 보이지 않는 열렬한 흔들기와 들리지 않는 환호가 내 삶에도 언제나 있었고 언제고 쏟아질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사랑하는 이들의 격려와 응원이 항상 곁에 있을 거라는 참으로 든든한 사실을 목도하고 말았다. 아들이 안타까운 가운데서도 뭔가 충만한 느낌이었고 든든했다. 그리고 이런 열혈팬들과 든든한 응원을 보면서, 공연장에 들어서며 아들이 반복했던 말처럼 살아도 괜찮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주인공이야. 내가 주인공이야.
비록 대단치 않은 무대와 까딱거림 일지라도, 언제나 우리들 인생에선 스스로가 주인공이었으면 좋겠다. 열혈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작은 용기와 미소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런 주인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