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됐다'는 것이 갖는 의미

보잉 737 MAX 사건을 곱씹으며

by 햔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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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안 보잉의 신기종 737 MAX8이 추락하는 사건이 큰 화재가 되었다. 두 번의 추락 사고는 안타깝게도 346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문제의 원인은 SW(소프트웨어). 항공기 SW를 개발하는 개발자의 입장에서 두려움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꼈다. 그간 국내에서 항공기 추락 사고가 발생할 때면 졸였었던 마음이 다시 되살아 났다. 혹시 내 손이 닿았던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한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며 한 동안 사고 뉴스에 민감했던 당시의 마음이.


기본적으로 SW 개발자는 자신이 만든 제품에 자신이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내가 아무리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빈틈없이 절차를 따랐다고 해도, 그건 할 만큼 했다는 안도감이지 자신감이 아니다. SW는 말 그대로 너무 부드럽고 유연해서 이게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가 없다. 그저 예상되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할 뿐, 수많은 개발자가 개발한 산출물을 합쳤을 때 어떤 또 다른 변수가 발생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래서 그 번거롭고 수도 없이 많은 시험과 검증 과정을 거치며 가능한 모든 상황에 대해 확인하는 것일 테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가정하고 문제의 방향을 예측해서 대안을 메꿔나간다. 결코 완벽이란 있을 수 없는 거다.


맥스 737의 문제는 SW 알고리즘이 사람의 직접적인 제어를 무시한 결과다. 비행기에는 조종사의 비행을 돕는 수많은 기능이 탑재되는데 그중 지나치게 기우는 동체(비행기의 몸체)를 바로잡아주는 기능이 문제가 됐다고 한다. 일정한 양력(비행기를 떠 받치고 있는 힘)을 유지하기 위해 항공기는 동체를 일정 기울기로 유지해서 바람을 받아야 하는데 이 기울기가 지나쳐 양력이 떨어지면 비행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제어 불능의 상태가 된다. 이를 실속이라고 하는데 이를 방지하는 기능이 오작동을 유발해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분석이다. 항공기는 정상적으로 비행 중인데 이 기능이 비행기가 많이 들렸다고 판단하여 동체를 아래로 숙이려고 동작했고 이를 조종사가 조종관을 당기며(당기면 비행기 코가 들린다) 필사적으로 바꿔보려 했지만 결국 고도가 낮아지면서 추락했다는 거다.


그간 큰 신뢰를 바탕으로 수년간의 수주 물량을 확보했던 보잉이었다. 그런데 수익성을 위해 MAX8을 급조하기 이르렀고 결국 문제를 일으켰다. 보잉의 신뢰는 무너졌고 많은 사람들의 억장도 무너졌다. 때마침 확산된 코로나는 보잉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고 갔고, 생산한 항공기의 납품도 지연되고 있는 차에 항공기 수요도 급감하면서 이래저래 치명타를 입고 있다. 사람의 목숨을 안일하게 여긴 하늘의 벌인가 보다.


결혼 전 지금의 와이프와 프로펠러가 달린 불안해 보이는 비행기를 탄 적이 있다. 뉴칼레도니아의 '누메아'에서 '일데팡'으로 가는 비행기. 사람들이 올린 블로그 여행기를 보니 지금도 동일한 비행기가 운영되고 있었다. 작은 동체와 그리 세련되지 않은 모습이지만 긴 기간 동안 사람을 나르고 있었다. 뉴칼레도니아의 비행기를 보며 세련되고 잘 빠진 MAX8을 생각하니, '오래되었다'는 것이 '안전하다'는 반증일 수도 있음을 알게 됐다.


오래됐다는 건,
그간 큰 문제가 없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금껏 새것, 신기종, 최신이라는 수식어에 안정감을 느껴왔다. 새 것이 아무래도 더 좋아 보이고 안정감 있어 보인다.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런데 말이다. 언제나 평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하기 마련이다. 새 것은 헌 것이 되고 또 다른 새것이 나올 때쯤 기존의 좋아 보이던 것은 식상해진다. 진정 신뢰가 가고 안정감이 있다는 건, 긴 시간 함께 하며 지금껏 큰 문제없이 곁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새집 증후군이라던지, 새 차도 뽑기를 잘해야 한다는 등의 증상과 얘기들은 새것이 마냥 좋거나 안전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일 테다.


새것이 넘쳐나는 요즘. 오랫동안 지속된 것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지은 지 20년이 되어 가는 아파트, 10년째 잘 굴러가고 있는 차, 함께 한지 10년이 넘은 회사. 10년째 곁에 있는 태어난 지 37년이 넘은 아내(?). 모두가 내게 안정감을 주는 존재들이다. 불쑥불쑥 올라오는 걱정에 이리저리 휘둘릴 때면 "걱정 마! 언제나처럼 내가 곁에 있잖아"라고 옆에서 말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오래된 만큼 속도 깊다. 아이들과의 관계도 같은 이치인지, 이상하게도 큰 딸(만 7세)과는 다르게 막내(만 2세)와 있으면 뭔가 분주하고 저도 나도 실수가 잦다. 저는 눈이 울고 나는 주먹이 운다.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한가 보다.


이렇게 된 거, 사람이 늙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싶다. 오래되었다는 것은 무사히 지내왔다는 얘기라고. 그리 대단하진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웃을 수 있는 하루하루가 있다는 건, 생각보다 복 받은 일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하. 오래됐다는 게 마냥 슬픈 일 만은 아니라고 강조하는 것 보니 또다시 늙음에 대한 자위가 필요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만 글을 줄일 타이밍이란 얘기이기도 하다. 이, 삼십 대 때 하염없이 약해 보이던 사십 대가 되어 보니 어째 멘탈만은 더 강해진 것 같다. 사람이 이렇게 자기중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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