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햔햔 Jul 20. 2020

마이 미-스테이크로 인생을 살찌우는 방법

좀 퍽퍽하고 그다지 맛은 없지만...

살면서 큰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사실 셀 수 없이 많다. 그 많은 실수 중, 기억나는 최초의 실수는 여자를 때린 것이다. 아. 벌써부터 날아드는 손가락이 보이는 듯하다.

엄두가 안 나네..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친구들과 놀던 중 섬머스마 같았던 여자 친구를 무의식 중에 쳐버렸다. 지금 생각해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변명하자면 이렇다. 친구들과 놀다 태권도 학원에 가야 한다며 일어나는 내게 그 아이의 도발이 시작됐다. 태권도 배운다고 싸움 잘하겠냐고, 넌 해도 안될 것 같다고. 당시 막 노란띠를 따고 어깨가 하늘로 승천하고 있던 나는 욱 했고, 발차기와 사주 찌르기(사방을 한 번씩 찌르는 동작)를 보여 주며 위협할 요량으로 따라 나오라고 했다.


 "이 머스마 같은 기, 따라 나온나!"


그런데 기분이 나빠진 이 친구가 뒤에서 날 깠다. 당시 바가지를 대고 잘라 찰랑거렸던 내 머리카락을 뒤에서 낚아채이는 기습을 당한 거다. 자연스레 내 목은 볼품없이 뒤로 꺾였고 버티기 위해 다리까지 꺾였다. 한 마디로 꼴사나워졌다. 그 순간, 뒤쪽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에 자존심까지 꺾이며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끊어짐에 의한 반발력인지 주먹이 고무줄처럼 튀어 나갔다. 퍽! 둔탁한 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그 친구가 얼굴을 부여잡고 울고 있었다. 주변의 수많은 친구들이 내게는 비난을 그 친구에게는 걱정을 퍼부었다. 어떤 계산이나 악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그래. 살면서 처음으로 나도 모르게 그런 일을 저질렀던 거다. 남자는 여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익히 알고 있던 그 시절, 머리보다 섬세하지 못했던 손이 지나치게 빨랐다.


몸을 단련한다며 다니던 태권도 학원에서 정신수양이 덜 됐을 때였다. 분명 나의 잘못이었고 실수로 일어난 일이었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사과하지 못했다. 멋쩍었던 나는 더 격렬히 씩씩 거렸고 까불지 말라는 일갈을 날리곤 학원으로 달려갔다. 아이들의 눈총이 어찌나 멀리까지 배웅을 나오던지 학원에 도착할 때까지 마음이 편칠 않았다. 당시 등에 꽂혔던 따가운 시선이 강렬했던 건, 한 올도 남김없이 벗겨진 내 인간 됨됨이 때문일 테다. 거칠 것 없이 꽂혔던 그네들의 시선이 따가울만했던 이유다.


명히 이겼는데 기분이 나쁜 이상한 경험이었다. 구체적으로노란띠나 되는 멋진 내가, 약한 사람을 보호하는 주인공 역할만 하고 싶었던 내가, 폭력을 휘두르는 보잘것없는 악당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먼저 머리채를 잡혀서였다는 이유도, 그래도 한 대밖에 때리지 않았다는 위안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나빠진 내게 나쁜 기분이 그대로 배어들었다.


그날 저녁 길지 않았던 인생을 돌아봤다. 영웅이 되어 시민들을 지켜기로 했는데, 그 다짐을 지키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내 거대한 힘이 실린 일격에 쓰러진 친구의 생명도 걱정되기 시작했다. 유독 칠흑 같았던 그날 밤은 평소보다 더 길었던 것 같다.


다음 날, 나는 나의 핵주먹에도 살아서 등교한 친구를 보고 안도했다. 그리고 달려가 바로 사과했다. 때려서 미안하다고, 많이 아팠을 텐데 괜찮으냐고, 걱정 많이 했다고. 그랬더니 이 친구의 대답이 가관이다. 하나도 안 아팠단다. 솜 방망이 같았다며,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다. 아놔. 쿨(Cool)내를 잔뜩 풍기며 또 내 자존심을 긁어댔다. 욱 하면서도 마음이 편해졌던 그 날, 열 받침을 참아 삐짐으로 승화시켰고 그렇게 여장부와 졸장부가 탄생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여자와는 주먹다짐을 하지 않았다. 이겨도 좋을 것이 없지만 지면 이성을 잃을 만큼 남는 것이 없다는 걸 그때 알았기 때문이다. 전리품 하나 남지 않는 싸움에 진지해지고 싶지 않았다. 정말이지 인생에 하등 도움되는 것이 없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잘못의 불편한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데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만이 최선이란 것도 알았다. 비록 상대가 받아들이지 못하더라도 그것만이 잘못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그때 알게 됐다. 그렇게 나는 폭력으로 나를 세우고 사과로 나를 굽힘으로써 값진 배움 두 개를 얻었다.


살면서 실수는 불가결한 요소다. 실수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잘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거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실수를 방지할 수 있다. 친구를 사귀지 않으면 싸울 일도 없고 어떤 일도 하지 않으면 의도치 않은 실수 자체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안다. 이런 시도 자체가 더 큰 실수일 수 있음을.


미스테이크(mis+take). 잘못 가져왔다는 어원을 가진 이 말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보인다. 의도치 않게 잘못 가져와 만들어진 실수는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놓으면 된다. 본의 아니게 손떼가 묻거나 망가졌더라도 최대한 제자리에 돌려놓으려는 노력이면 최선인 거다. 시도하고 실수하고 잘못을 인정하고 최선을 다해 복구하려는 노력.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삶을 더 살찌울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뭐든 과식하면 안 되니까 줄이기는 해야겠지만, 이왕 눈앞에 놓인 미스테이크라면 체하지 않게 꼭꼭 씹어 먹는 거다. 어딘가에 배움이라는 영양 가득한 맛깔난 양념이 얹어져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무식해서 용감한 게 아닙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