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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햔햔 Jul 10. 2020

무식해서 용감한 게 아닙니다.

모름의 두려움을 이겨냈다 봐야지요.




2004년. 24살.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당연하게도, 설레는 마음에 잠 못 들었다.

혹시나 늦을까 불안한 마음에 새벽같이 올라탄 그날의 공항버스는 나 때문에 울렁거렸는지도 모르겠다.




그 떨리는 첫 해외 여행지는 중국이었다. 실크로드 탐방대. 학교에서 주최했던 대학생 탐방단으로 중국 역사를 배우는 여행이었다. 운이 좋았다. 복학하고 적적하게 학교 게시글을 기웃거리다 신청한 것이 뽑혔던 것. 거기다, 설레게도 일면식도 없는 다른 과 학생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라니. 교양 수업이 아니면 익숙한 공대 남자들에게 둘러싸였던 운명 속에서 그것은 아주 신선한 선물이었다.


사전 미팅에서 나는 깨달았다. 이것은 선물을 넘어선 축복이라고. 불이 꺼져 있던 강의실에선 밝은 빛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흔히 볼 수 없었던 성(姓) 비로 모여 있는 사람들. 내 생전 여학우가 더 많은 광경을 본 적이 있었던가? 눈이 부셨고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익히 경험해보지 못한 눈 부심으로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고, 그렇게 나는 나의 눈을 불필요하게 지켰다.


강의실에 들어서는 선배들을 보며 고민도 했다. 나를 보고 손 흔드는 저 뭇 남성들을 모른 체할 것인가 마주 보고 밝게 웃을 것인가. 혼자라 어색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저들과 함께 하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만면에 웃음을 띤, 역시나 축복을 직감한 선배들이 자신들의 눈도 지키겠다고 내게로 다가왔다. 아뿔싸. 냉정했었야 했는데... 늦어버렸다.


인문학부와 화공과 여대생들과 가까워지기 바랐는데, 나의 바람과는 무관하게 선배들은 내 주위를 감싸며 나를 보호하고 나섰다. 우리끼리 이러지 말자고, 저기에도 자리가 많다고 눈빛으로 애타게 얘기해도, 결국 나는 지켜졌고 우리는 하나의 섬이 됐다. 어색하게 빙그레 웃고만 있는 섬. 그렇게 숫기 없는 섬에 갇힌 우리였지만 행복했다. 그만큼 여행의 설렘과 여학우들의 따스한 아우라는 강력한 것이었다.



| 첫 비행의 기억


설렘 반 기대 반으로 여행을 준비했다. 생전 안 쓰던 선글라스도 준비하고 당시론 획기적이었던 디카도 친구로부터 공수했다. 왜였는진 모르지만 화려한 꽃무늬 남방과 하늘거리는 바지도 준비했다. 아무래도 나풀거리는 당시의 내 마음을 대변하는 준비가 아니었을까 의심해볼 만하다. 그리고 대망의 첫 여권 발급. 두근. 준비가 끝났다. 가자. 세계로.


그로부터 며칠 후, 인생 첫 비행기에 탑승했다. 두근두근두근. 한 없이 흥분된 나를 진정시키려는 의도였을까. 옆 자리엔 다년간 중국에서 생활했다는 '차분한' 고학생이 앉았다. 말 그대로 고 학생. 오래된 학생이었다. 30대 중반이었으니 당시 대부분이 20대 초반이었던 학생들에겐 동행한 학생 처장님과 다를 바 없었다. 그 많던 여학생은 어디 가고 나만 여기 떨어져 앉게 된 것인지... 운도 없다.


그나저나 사전 미팅에서 뵙지 못한 이 어르신. 불편하다. 첫 비행의 긴장과 어르신과의 불편한 동석에 마음은 서너 배로 요동쳤다. 아. 이게 설렘인지 불안인지. 나를 진정시키려는 누군가의 의도가 맞다면 이건 실패다. 


설렘은 두고 불안은 없애고자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한 어설픈 말을 건넸다.

"와우, 비행기는 처음이에요. 괜히 긴장되네요."

"......" (침묵)

"하하. 가다가 떨어지거나 하진 않겠죠?"

"....." (침묵)

"하.. 하하..."


대답도 없이 무덤덤하게 나를 바라보던 어르신의 얼굴에 보일 듯 말 듯 옅은 미소가 비치더니 열리지 않을 것 같던 입에서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괜찮을 거예요. 중국 비행기는 한 달에 한두 번 밖에 안 떨어지니까." (씨익)

대답도 없던 사람이 그 한마디를 시작으로 각종 사건 사고를 읊기 시작했다. 아주 자세히. 아주 장황하게. 가장 최근의 사고가 얼마나 처참했는지 까지.


할 말을 잃었다. 아니 그리 쉽게 떨어질지도 모를 비행기를 왜 탄단 말인가. 우리가 목숨 걸고 어디로 탈출하고 있는 건가? 이 형님은 살만큼 살아서 이리도 태평하게 얘기하는 건가? 불안한 마음에 저 멀리 앉아 있는 같은 과 형님들을 구원의 눈빛으로 바라봤지만, 이미 그들의 안중엔 내가 없었다. 내 옆을 채워 화공과 여학생들을 막더니, 지금은 나만 빠진 곳에서 여학우들과 환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짐도 올려주고 먹을 것도 나눠주고, 그 어둡던 얼굴들이 만개하다 못해 탈피를 시도하는 것 같았다. 남자에게 질투심과 배신감을 느낀, 아주 기묘한 경험을 한 최초의 순간이다.


이륙의 순간,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내가 짓누르는 힘을 비웃기라도 하듯 비행기는 가볍게 떴고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내 마음은 아래로 꺼졌다. 그리고 지상에 붙어 있던 마음이 심장을 잡아당기기라도 하듯 이상한 느낌을 선사했다. 오오오. 그것은 바이킹의 스릴과 닮았지만 신나게 소리 지를 것은 못되었다. 떨어질 수도 있다고 하지 않나. 한 달에 한두 번은.


다행히 비행기는 4시간의 비행 끝에 착륙했다. 내 인생 첫 비행이 무사히 끝났고 내게 겁을 잔뜩 주입했던 그 형님은 축하한다는 말을 남기고 유유히 비행기에서 내렸다. 얼마나 힘을 썼는지 다리가 저렸다. 전날 자지 못한 탓에 잠깐 조는 사이에도 온몸의 감각은 잠들지 못하고 피곤을 쌓았다. 덕분에 나는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환영식인지 신고식인지 모를 판다 코스프레를 했다.



| 몰라서 무서웠고 그래도 용감했다


우연찮게 항공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지금, 당시를 떠올리면 헛웃음이 절로 난다. 현존하는 운송 수단 중 사고율이 가장 낮다는 항공기. 그리고 어떤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통해 거대한 기계 덩어리가 날고 있는 지를 아는 지금, 당시의 내가 그저 귀여울 따름이다. 몰라서 걱정이 없었던, 어떻게 보면 용감하기도 했던 사람이 제대로 몰라서 무서웠던 일화다.


반복된 경험으로 무뎌지고 조각 지식에 힘입어 이성의 끈을 잡을 수 있게 됐지만, 어쩌면 지금도 두려운 마음을 경험과 얕은 지식으로 억누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올라오는 두려움과 걱정을 통계와 경험으로 경감시키며 어느 정돈 안전이 담보된 아찔함을 즐기는 것일지도. 아는 것이 힘일 때 보다 병일 때가 많았는데, 이런 데서라도 힘을 내주니 다행이긴 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한다. 맞는 말이지만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으레 모르면 두렵기 마련이다. 용감하게 뛰어들었지만 무섭지 않아서가 아니란 말이다. 무식하기 이전에 해보겠다는 의지가 먼저 튀어나와 두려움을 밟고 올라섰다고 보는 게 맞다. 두려움을 이겨낸 것은 무식함이 아닌 뭔갈 해보려는 용기 그 자체라는 말이다. 결국 우리는 무식했던 것이 아니라 그 무지함의 두려움에도 도전을 감행할 만큼 용기 있었다는 게 된다. 지금의 당연한 모든 것들은 무식하지만 용기 있었던 삶의 일련의 성취이자 성과인 거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우리는 당장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내일을 위해 또 용기 내어 뛰어들고 있다. 그러니 그대여. 그대의 위대함을 알라!


가끔 어머니와 비행기를 탈 때면 그 옛날 어린 나와 같이, 두 발로 바닥을 온 힘으로 누르고 두 손을 힘껏 맞잡고 있는 어머님을 보게 된다.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비행기에서 괜찮아지려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 굳은 모습은 두려움에 떠는 것이 아닌 두려움에도 아들과 함께 하려 용기를 낸 결연한 모습이다. 아무리 설명을 드려도 사그라지지 않는 두려움 속에서도 용기 내어 함께 하시는 어머니. 한껏 힘이 들어간 어머니의 손을 감싸며 위대한 어머니에게 위대한 내가 힘을 보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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