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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햔햔 Dec 07. 2020

걱정은 한 여름 모기와 같다.

걱정을 떨쳐 내는 한 가지 방법


지난여름, 장인어른의 49제가 있었다.

예년 같았음 가볍게 피서로 다녀왔을 단양을 무거운 마음을 안고 다녀왔다.


어찌 되었든 움직이는 사람들


장례를 치르며 한 없이 우셨던 장모님이 미소를 한껏 머금고 반갑게 맞아 주신다. 몸이라도 써야 마음이 편해진다는 어머니. 그새 그을린 얼굴이 마음의 어지러움이 어느 정돈지 알려줬다. 얼굴보다 더 고운 어머니 마음을 아는 나는, 그래서 문득문득 비치는 슬픔 속에서도 한결 편안해진 그을린 얼굴이 보기 좋다.


네 아이를 차에서 내리는데 땀에 흠뻑 젖은 작은 형님(형제가 자그마치 여섯이다)이 반갑게 인사한다. 병간호에, 아버님 일처리에, 몇 달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정신없이 지내 온 형님은 오늘도 바쁘다. 불교 종단의 재단 이사장. 타이틀과는 다르게 그리 우아하지 않은 아버님의 자리를 물려받고, 형님은 오늘도 일당백이다. 시장을 보고 짐을 나르고 공구리(콘크리트)까지. 일을 도와주시는 스님들이 있음에도 갖은 궂은일은 모두 '그나마 젊은' 형님의 몫이다. 솔선수범하는 오너. 탐나는 자리는 아니지만 사람은 참 탐난다.


짐을 내린 후, 아내는 제사 준비를 도우러 가고 나는 네 아이를 맡았다. 잠시의 정적에도 불안해지는 나는, 카니발이 좁게 느껴지는 식구들 사이사이로 아이들을 위한 물놀이 장비를 꾸역꾸역 채워왔다. 4~9세의 연령대를 아우르기 위한 맞춤형 물놀이 세트의 핵심은 튜브 풀장. 코로나도 그렇고 폭우로 거칠어진 계곡도 그렇고, 한 명이 감당할 수 있는 공간에 모두를 밀어 넣었다. 퐁당퐁당. 꺄르르르. 갇힌 줄도 모르고 신나 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마음을 안정시켰다.


놀기 바쁜 아이들과 달리, 아빠는 다른 일로 바빠야 한다. 한 여름의 불청객, 모기와의 공방전이 그것이다. 시골의 모기는 그 수도 어마하지만 기술과 세기도 만만찮다. 적당히 움직여선 도망가지도 않고 짧게 치고 빠지는 것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위해 촘촘한 망사를 장착한 돔형 거대 텐트를 좁은 마당에 설치했다. 거침없이 흘러내리는 땀방울. 같이 물놀이를 한 것도 아닌데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몰골이다.


분주함이 만든 가려움 처방


그렇게 어렵사리 안전망을 두르고 마루에 앉아 쉬는데, 다리 여기저기가 가렵다. 그새 다녀간 모기. 아주 기다렸다는 듯 잠시 멈춘 사이에 배를 채우고 갔다. 물린 줄도 모르고 나도 모르게 긁어 버린 나. 오~ 마이 미스테이크. 미친 듯이 가렵다. 어느새 불룩 솟은 붉은 동산을 바라보며 "찰싹". 따가움으로 잊어보려 시도하지만 가려움이 가시질 않는다. 마구 긁고 싶었고, 긁고 싶은 마음도 긁어내고 싶었다.


가려움과 인내심의 싸움이 격하다. 당연히 가려움의 우세다. 마지못해 주변이라도 긁어 볼 요량으로 손을 뻗는데, 막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후다닥. 급히 텐트 속으로 들어가니 방금 물속에서 꺼낸 듯한 곰 인형 한 마리가 울고 있었다. 벌리고 있는 입에선 아직도 물이 흐르고 있었고 놀다가 물을 먹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른이나 아이나 '물 먹는다'는 건 이렇게 슬프고 서럽다.


괜찮다며 건넨 위로 한 줌에 아빠 손에 코를 한 줌 풀어 주는 아들. 따뜻한 마음에 대한 따뜻한 물질적 보상이라니. 한 번 잘 키워봐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고마운 아이의 선물을 슬쩍 버리고 텐트 안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쭉~ 뻗은 길지 않은 다리에 모기 물린 자국이 보였다. 참을만한 가려움.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던 가려움이었는데, 신경을 돌린 새에 한결 편안해졌다.


걱정은 모기를 닮았다.


그러고 보면 걱정이란 것이 모기를 많이 닮았다. 가만히 있으면 내려앉아 나를 괴롭히는 모기처럼, 걱정도 멍하게 있는 내게 내려앉아 나를 괴롭힌다. 긁으면 긁을수록, 하면 할수록 커지는 것도 판박이다.


불현듯 다가오는 건강에 대한 걱정, 하루도 먼 돈 걱정, 아이 걱정, 부모님 걱정, 하다 하다 밑창이 달랑거리는 신발 걱정 까지. 멍하니 앉아 걱정하고 걱정을 걱정하다 보니, 걱정이 늘어나고 점점 더 커지기만 한다. 그렇게 긁으면 안 되는 것을 자꾸 긁어 결국 상처를 만들고 만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분주히 움직이면 쉽사리 내려앉지 못한다는 것도 닮았다는 사실이다. 다른 일에 몰두하면 주위를 맴돌면서도 나를 어쩌지 못한다. 회사일로 정신없이 바쁜 하루는 잠자리에 누워서야 무슨 걱정이 있는지 떠오른다. 잠시 걱정을 떠올리고 피곤에 잠들어 버리는 건, 어찌 보면 축복이다. 아마도 한 동안 느끼지 못했던 가려움이 이전만 못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참으면 참을만한 것. 무시하면 무시할 수 있는 것. 그게 또 닮았다.


평생을 함께 할 걱정이란 모기를 극복하기 위해


한 여름에 움직이는 것은 곤욕이다. 그 뜨거운 열기와 조금만 움직여도 줄줄 흐르는 땀의 찝찝함은 손가락 까딱하기 싫게 만든다. 걱정 속에서 걱정을 하지 않기 위한 노력도 마찬가지다. 기운이 빠지고 의욕도 없는 상태에서 애써 몸과 마음을 움직인다는 건 그만큼 어렵다.


움직여도 주변을 떠나지 않고 맴도는 모기처럼 걱정이 그냥 사라지는 일은 없다. 그리고 운 좋게 때려잡아도 언제든 새로운 걱정은 생겨난다. 쉽지 않더라도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그 괴롭힘에 무뎌지는 시행착오가 필요한 이유다.


이럴 때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많은 힘이 된다. 마치 촘촘한 망사 텐트와 어린 시절 어머니의 부채질처럼 무방비의 나를 지켜주곤 한다. 그들의 격려와 토닥임은 물린 자국에 발라지는 물파스이고 거기에 부는 시원한 입 바람이다.


장모님이 보내 주신 감자로 아내가 전을 부치며 아이들에게 얘기했다. "이거, 할머니가 집게로 벌레를 하나하나 잡아내면서 기르신 거야~ 완전 친환경이지~" 역시 장모님이다. 생활과 세월의 지혜. 내려앉는 걱정을 어머니는 본능적으로 떨쳐내고 있었다. 그 편안해진 그을린 얼굴도 속없이 건네는 농담도 아마 그런 지혜의 결과일 테다.


한 동안 정신없이 바빴던 가족들. 특히나 어머니와 작은 형님. 그 바쁨에 슬픔도 조금은 무뎌졌기를, 그리고 앞으로의 걱정도 함께 무뎌지길 바라본다.


나도 이젠, 아내가 부쳐준 맛난 감자전을 먹으며 어머님을 걱정하던 마음을 좀 누그러뜨려야겠다. 무공해 감자를 먹으며, 쓸쓸한 어머님이 아닌 밝고 강인한 어머님을 생각해 본다. 따뜻한 감자전이 참 맛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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