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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햔햔 Sep 01. 2021

투자 성과를 높이려 상사 욕부터 줄였습니다.

[주식 투자 뒷담화 에세이] 인정하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투자



 직장에서 공공연히 하게 되고, 듣게 되고, 공감하게 되는 이야기 중에 윗사람들은 너무 모른다는 푸념이 있다. 어떻게 저 자리에 올랐는지 알 수 없다는 의구심과 함께 그 사람의 능력을 의심하고 자신이 아는 부족한 면을 들며 한껏 깎아 내린다. 대패가 따로 없다. 그리고 나는 제법 양질의 대패였다.


 그럴 때면 뒤이어 나오는 멘트가 ‘나 같으면’이다. 나 같으면 이렇게 할 텐데, 나 같으면 그러지 않을 텐데. 왜 뻔히 보이는 길을 가지 못하는 건지, 답답함이 밀려든다. 이로써 그와 나 사이엔 주기적으로 밀려드는 아쉬움의 밀물과 어느새 빠져나가는 체념의 썰물이 생겨나고, 그 밀물과 썰물의 끝없는 순환으로 마음의 갯벌엔 팔딱대는 감정이 넘쳐나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과연 (지금의 생각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저 자리에 갈 수나 있을까라는 현실적인 가능성을 생각해 보게 됐다. 어?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어느 틈엔가 답답함의 자리에 막막함이 들어섰다. 이런, 내 답답함의 근원이 생각지도 못한 막막함이었다니. 나는 그만 팔딱대는 감정의 갯벌에 발이 빠져버렸다.


 당장 내일 그 자리에 올라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면 뭐가 문제가 되겠나. 지금의 내 위치와 능력을 고려해 볼 때,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는 확률이 '까마득'이라는 결과로 나오기에 문제인 거다. 게다가 아무리 작은 조직이라도 한 조직의 정점에 이른 사람에겐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나라면 엄두도 못 냈을 일을 해내는 모습과 극한의 스트레스 속에서도 웃는 태도는 그간 애써 무시했던 다른 면의 출중함이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이제 상사를 깎아내리는 행위를 ‘자제’한다.(이게, 단번에 끊기가 무지 어렵다.) 생각해보니 깎아내린다고 깎아지는 것도 아니고 나의 이 마음이 가 닿을 리도 없다. 그래서 무턱대고 무시하기 보다는 결코 쉽지 않은 그 자리만이라도 인정하기로 했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뭐 그런 마음이다. 그리고 그 작은 인정이 아쉬움과 체념의 감정 간만의 차를 많이 줄어들게 했고 인정으로부터 진짜 관계가 시작됐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기로


 감정이 제 멋대로 날뛸 때면 가능성, 그러니까 확률을 생각한다. 그리고 인정할 것은 인정해버린다. 회사 생활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당장 어쩌지 못함을 인정하는 접근법은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된다. 장난감 하나 ‘더’ 못 가졌다고 세상 무너진 듯 우는 아이에게 “그거 다~ 무쓸모여, 좀 더 커 봐라. 어디 그게 눈에 들어오기나 하나. 다~ 한때다~ 한때~“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Ok. 서러운 거 인정. 그런데 여긴 노는 곳이지 우는 곳이 아니에요. 방에 가서 울고, 다 울면 나와요~“ 이게 내 최선이다.


 일장 연설을 하고 욕심 부리면 안 된다고 혼도 내 보았지만, 나의 노력과는 무관하게 아이는 커감으로써 장난감에 집착하지 않았다. 네 아이를 키우며 목도한 대단한 발견이었다. 한때라고 생각할 것은 그 모습을 보고 이해가 안 된다며 답답해하는 내 모습이었던 거다.


 부부 생활에서도 인정은 커지려는 불화를 잦아들게 한다. 존중의 마음이 감정에 무너지고 이해의 시도가 실패가 되었을 때,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버림으로써 더 이상 문제를 키우지 않는다. 같이 사는 데 문제 될 것이라곤 그리 많지 않다. 그래봐야 방귀 좀 자주 뀌는 것이고 그래봐야 정리가 좀 잘 안 되는 것이다. 어차피 인력으로 바꿀 수 없는, 그러니까 내가 어쩔 수 없는 것들을 인정해버리면 그런대로 못 봐줄 것도 없더란 말이다.


 돌고 돌아 본론을 얘기하면,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은 주식 투자에도 제법 유용하다. 나도 몰랐다. 그렇게 쌓이고 쌓인 인정하는 처세술이, 어떤 면에선 포기하는 듯한 이런 태도가 도움이 될 줄은. 이리저리 날뛰는 시세를 어찌할 수 없다는 것과 수익은 담보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기대와 욕심과 미련 같은 것들이 커질 틈이 많이 줄어들었다.


인정하는 투자 = 그릇을 아는 투자


 인정하는 것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을 산정하는 거라고도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그릇의 크기를 정하는 행위다. 그리고 그 그릇을 벗어나지 않는데서 큰 문제에도 속 편한 투자를 할 수 있었다.


 그릇의 크기는 오로지 경험이라는 가늠자만으로 측정할 수 있다. 1천만 원 투자에도 편안하다면 그게 자신의 전 재산이라도 상관없고, 1백만 원에도 마음이 불편하다면 그게 자산의 0.1%라도 문제가 된다. 같은 천만 원 규모의 투자라도 누군가에겐 ETF가 70%이상이어야 편안한가 하면 누군가는 종목에 대한 확신으로 ‘몰빵’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기도 한다.


 버핏 할아버지도 말하지 않았나. “능력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지만 능력의 범위를 아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2미터 높이의 장대는 자신에게 과분함을 인정하고 충분히 넘을 수 있는 30센티미터의 장대만 넘겠다는 그. 이 영악한 할아버지의 이런 투자 자세가 큰 흔들림 없이 투자를 이어오게 한 원천이 아닐까.


 복권을 사듯 행운을 바라며 주식을 사고, 당첨되지 않은 것에 아쉬워하지 않으려 한다. 날뛰는 시세와 예상 할 수 없이 터지는 이벤트를 우리는 어쩌지 못한다. 그러니 그냥 바라본다. 우왕좌왕하며 불안한 자세가 아니라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듯, 사뭇 무관심한 자세로 봐라본다. 그러면 마치 영화 관람객이 된 듯, 절체절명의 위기도 쫄깃해지는 마음을 즐기며 지나갈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우두머리는 계속 바뀔 것이고 나는 우두머리가 돼 보기도 전에 회사에서 짤릴 테지만, 또 살아갈 길을 찾을 거다. 마찬가지로 어차피 오를 주식은 오르고 내릴 주식은 내리며 시세는 변동할 것이고, 나는 대박은 모르겠지만 주식으로 투자금을 깡그리 말아 먹어도 어떻게든 살아 갈 테다. 어차피 내 맘대로 되지 않을 거, 어차피 어쩌지 못하는 거. 괜한 힘 뺄 필요가 없다. 그래서 오늘도 상사를 인정하고 시작한다. 그리고 그게 내 투자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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