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직장생활이란?
챗GPT에 대한 찬양에 귀가 솔깃하여 대세라는 흐름에 편승해버렸다.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간단한 프로그램 코드를 요청하고 나면 내 입은 그냥 벌어져서 닫히질 않는다. 이거 좀 멋진 게 아니라 완전 멋지구나. 깔끔하게 쓰이는 프로그램 코드를 보며 반쯤 벌린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온다.
회사 보안 정책으로 인터넷 망을 이용해 업무를 하지 못하는 탓에 필요한 간단한 프로그램은 직접 개발해서 쓰곤 했는데, 내가 반나절 동안 만든 프로그램을 1분도 안되어서 만들어 버리는 모습을 보곤 챗GPT의 강력함을 체감할 수 있었다. 인정.
뭔가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허탈함도 적지 않았지만 월등한 편리함 앞에 그런 감정들은 이내 옅어졌다. 이제부터 아주 혹독하게 부려먹어 주겠어. 그런 다짐 후에 한시도 가만두질 않고 있다.
그러다 어느 날, 회사란 게 뭘까? 회사 생활이란 게 뭘까?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일까? 회사 생활이 힘에 부칠 때면 여지없이 떠오르는, 직장인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존재론적 문제에 대해 고민하다 챗GPT에게 물었다.
더 나은 직장인 되기 위한 방법이 뭐야?
별 기대는 없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친구에게 물어 보듯, 그저 답답한 마음에 고민거리를 하나 던졌다. 뭐든지 답해 준다는 이 친구는 역시나 금세 방법을 내놓았다.
요약하자면 이랬다. 목표를 세워라. 능력을 키워라. 진취적이 되어라. 긍정적인 태도를 견지해라. 능력 부분에서 전문 기술, 소통, 시간관리 능력 등을 제시했다.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일반적인 답변이었다. 뭔가 뻔해 보이지만 그만한 답도 없을 방법. 하지만 이는 마치 건강해지려면 담배 끊고 술 줄이고 좋은 음식 먹고 매일 운동하라는 뉘앙스와 다르지 않았다. 답은 간단한데 그 과정이 쉽지 않다. 그래서 더 나은 내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
그런데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물끄러미 대답을 바라보다 중요한 관점 하나를 발견했다. '나'의 커리어를 향상 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 챗GPT가 바라보는 더 나은 일꾼은 모두 자신을 위한 노력이란 점이었다.
'나를 위해 노력한다'는 사고의 전환은 직장 생활의 많은 부분을 다르게 바라 볼 수 있게 만들었다. 누군가를 위해 혹은 조직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생각은 사람을 쉽게 지치게 만든다. 반면에 모든 것이 나를 위한 것이라고 여기면 그 번거롭고 고된 일들이 그나마 견딜 만한 것이 되기도 한다.
회사 일이 모두 진취적이거나 능력을 향상 시키는 일이라고 볼 순 없지만, 그런 일을 해내며 늘어나는 잡무 처리 능력과 그것이 가능하게하기 위한 시간 관리 능력은 확실히 함께 늘어난다.
물론 시행착오와 잔업도 늘어나지만, 무언가 늘어나는 만큼 다른 무엇도 늘어난다는 것은 제법 큰 위안이다. 소모되고 있는 것이 아닌 더 단단해지고 있다는 느낌은 그래서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그 지난하고 보람을 찾기 힘든 과정에서 어떻게 자신을 잘 지키는가 일 테다. 아무리 외부를 단단히 하더라도 내부에서 무너지면 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회사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은 뭐야?
무슨 질문이든 별 수고로움 없이 척척 답하던 챗GPT가 커서만 깜빡였다. 1분이 지나서야 더듬더듬 답변을 시작한 챗GPT는 뭔가 주저하는 듯 답변을 이어가다 결국 말을 멈췄다. 네트워크 에러라며 답변을 멈추는 순간, 나는 우연에 깃댄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래 너 같은 훌륭한 일꾼에게도 시간이 걸리는 일이구나. 쉽지 않은 일이구나.'
분명 우연의 일치임을 알면서도 챗GPT의 머뭇거림과 눈앞의 붉은 글자에 편안함을 느꼈다. 척척 대답하고는 건승을 빈다고 했다면 건강에 대한 조언을 듣듯 스리슬쩍 흘려보냈을지도 모른다. 자세를 고쳐 앉아 자세히 읽어 보고 생각하게 된 것은 챗GPT의 머뭇거림 덕분이기도 하다.
첫 번째로 자신의 권리를 알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워한다. 연차 사용이 자신의 권리인 줄 알면서도 리더의 분위기를 관찰하고 적정한 시점을 잡아 연차 계획을 보고하고 나면 큰일을 치른 느낌이 드는 것은 이것을 권리 이전에 허락을 요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일 테다.
자신의 권리를 명확히 알아야 무엇이 부당한지를 알 수 있다는 챗GPT의 말이 설득력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권리를 주장하는 데 소극적이다. 그런 태도가 미덕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일상의 성실함이 바탕이 되어 있다면 조금은 더 당당해져도 괜찮다.
개인이 느끼는 불합리함을 기록하라는 챗GPT의 두 번째 조언은 나중에 불합리함의 증거 수집 목적 이외에 정말 그것이 불합리한 처사였는지를 스스로 되짚어 보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당장의 감정에 치우쳐 자신의 과오는 생각지 못하고 분개하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우선 적어두고 마음이 가라앉은 후 읽어 보면 알짜배기(?) 불합리함을 골라낼 수 있다.
냉정하게 생각해도 불합리함을 극심하게 느낀다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챗GPT는 자신의 감정은 자신만이 제대로 알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말한다. 자신이 느끼는 불편한 감정을 상대에게 알게 함으로써 정말 별 생각 없이 행동했을지도 모를 상대를 저지시킬 수 있다.
'저 인간은 왜 저러지?', '인간이 어쩜...' 속으로 끙끙 앓으며 분노를 키우다 한 순간 폭발하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선 '저 사람 아직도 날 잘 모르는군', '지금의 행동에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알려줘야겠군' 하고 자신의 감정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오해가 풀리면 이해가 되기에 이 과정이 무척 중요하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관련 부서나 시설에 부당함을 신고하기 전에 변화를 기대해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제대로' 하기 위해 자신을 소중히 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불합리함 속에서도 지나치게 타인을 배려하거나 양보가 미덕이라는 고정관념에 쌓여 자신을 자꾸 낮추다 보면 스스로도 그것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수렁에 빠지기 쉽다. 자신의 마음상태를 최우선으로 놓는 것. 자신을 지키는 시작이다.
나의 권리를 위해 성실히 임한다. 나를 위해 타인을 배려한다. 나의 발전을 위해 기술을 연마한다. 그리고 나의 성취를 위해 회사의 성취도 중요시 한다. 이런 태도라면 종종 찾아오는 회사 생활에 대한 고민이 조금은 가벼워지고 종종 치고 들어오는 불합리함에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뜻하지 않은 좋은 대화였다. 덕분에 생각이 많이 정리됐다. 하지만 당장에 달라지는 것은 없다. 해결책을 얻을 수는 있으나 해결을 바랄 수는 없는 것. 그래서 공생이 가능한 것. 그게 AI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답을 내놓는 AI시대라고 하더라도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이제 실천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