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라면 앞에 있어야지 뒤에 서있으면 어째
리더는 누군가를 이끄는 사람이다. 그런데 적지 않은 경우, 리더는 뒤에서 이리 가보자, 저리 가보자 하기도 한다.
"이게 생각처럼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다른 방법으로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냥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되지 않나? 그러면 될 것 같은데? 우선 조금만 더 해보고 다시 얘기합시다."
"이런저런 문제가 접수됐는데, 아무래도 지금이라도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흠... 그냥 하면 될 것 같은데. 지금까지 한 것도 있고, 많이 진행한 사람도 있으니까, 우선 그대로 진행합시다. 아깝잖아."
"그래도 지금이라도 바꾸는 게..."
"우선 진행하고 나중에 얘기합시다. 나중에."
그리고 며칠 후.
"아무래도 다시 해야겠는데? 이거 해보니까 잘 안되네. 이런 줄 몰랐네..."
"제가 이전에 분명 말씀을...(휴)"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속된말로 "삽질했다"고 한다.
누구도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몇 번의 삽질은 줄일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것이 이만저만 아쉬운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리더는 어느 정도의 연차를 쌓은 사람들이다. 상대적으로 경험이 많은 탓에 기본적으로 업무에 대한 감이 좋다. 해야 할 일이 주어지면 내비게이션이 최적의 길을 찾듯 최적의 업무 프로세스를 떠올린다. 그야말로 안전하고 빠른 길로 이끄는 경험치 '만렙'의 리더인 거다.
덕분에 많은 인원들이 큰 고민 없이 리더가 알려준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자신이 붙들고 있는 일에 몰두한다. 리더가 어떤 고민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경험 많은 리더의 길안내를 전반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안전한데다 책임에 대한 부담도 적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이 그들의 역할이다.
대부분의 경우, 리더의 통찰은 잘 들어맞는다. 그간 쌓인 경험치를 무시할 수가 없다. 다른 길로 가보지 않아 이 길이 최적인지는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어쨌든 정해진 시간 안에 잘 도착했으니 문제가 없다. 그리고 이런 반복적인 성과는 리더의 안목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계기가 된다.
문제는 리더가 모든 것을 경험해 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도 사람이다.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고 실수도 하는 사람. 그래서 우리는 한 번씩, 혹은 종종 다 같이 길을 헤맨다. 이 길로 쭉 가면 된다고 했던 방향에 길이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그 혼란의 현장에 리더가 없을 때 일어난다. 길이 없다는 보고를 듣게 된 리더는 어떻게든 조금만 더 가보라고 말하게 되는데, 이때 사람들의 삽질이 시작된다. 조금 더 가보려면 길을 내든 터널을 뚫든 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는 문제기 생겼을 때, 리더가 즉각적으로 문제에 동참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게 된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가 있기 마련이고 이럴 때 문제의 크기가 커지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삽질은 어느덧 매몰비용이 돼 쉽게 그만두지 못하는 상황이 되곤 한다. 힘들인 만큼 보람도 있고 성과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시원찮은 결과에 아픈 팔과 허리가 더 아프기만 하다.
어느 정도 지위에 이르면 새로운 경험이 줄어들면서 해보지 않아 실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해진다. 따르는 무리들의 볼멘소리에도 굳건하게 밀어 붙이던 리더가 뒤늦게 겪어보고서야 '이 길이 아닌가벼...' 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경험으로 깨닫는 인간의 한계다.
몇 개월 동안 작은 그룹의 리더를 맡고 있으면서 실감하는 부분이다. 새로운 것을 맡았고 모두가 좌충우돌했고 많은 삽질을 했다. 조금 더 앞서 걸었어야 했는데 돌이켜보니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래도 덕분에 다른 리더들의 고충과 한계를 어느 정도 알게 됐고, 그래서 그만큼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이 뚜렷해졌다. 그러니까 이 글은 나의 반성문이자 다짐이기도 한 셈이다.
어차피 가야하는 길이라면 리더가 먼저 가보는 게 낫다.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라면 리더는 언제나 앞에 있어야 한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경로를 점검하고 자신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그때 지도를 건네고 앞을 맡기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조금 피곤할 수 있지만 수십 명이 겪을 일을 혼자 감수했다는 것은 누가 몰라줘도 스스로 높이 살만한 성과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경쟁력이 되고 분명 효율성과 만족도를 올려 준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선발대를 구성해 진행시켜보거나 적어도 초반에 접수되는 애로사항엔 귀를 기울이고 있어야 한다. 언제든지 대응할 수 있도록.
일을 하다보면 우선 해보자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알 수 없고 너도 알 수 없으면 해보는 수밖에. 그런데 이 경우, 해본 사람의 말을 결코 가벼이 들어서는 안 된다. 흔히들 직장을 전쟁터로 비유하는데, 전쟁터에서 척후병의 보고를 듣고도 그럴 리 없다며 결정을 미루거나 독단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믿고 맡겼다면 귀 기울여 듣는 것은 최소한의 의무다.
리더가 내비게이션이라면 수시로 경로를 업데이트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가보지 않은 길이라면 되도록 먼저 짚어보고, 그럴 여유가 없다면 조금 돌아가게 되더라도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길을 보여 주거나 앞세운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뒤에 서서 귀를 닫고 방향만 지시해서는 나의 사람들을 온전히 원하는 곳에 안착시킬 수 없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지만 아무래도 비행기가 빠르고 KTX가 편하며 아무리 못해도 자전거보다는 버스가 낫다는 걸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앞서 말한 리더에게 원하는 것들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무작정 하는 것만으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걷기만 해선 원하는 곳에 도달할 수 없다.
결정 뒤에 행동이 뒤따를 수 있다.
의사결정의 부재는 방향 잃은 내비게이션에 지나지 않는다.
귀담아 들어주지 않는 사람에게 신뢰는 쌓이지 않는다.
경청과 활발한 의사소통 없이는 안전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리더를 이끄는 사람으로 쓰이기에 '앞서야' 한다고 했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적시적소'다. 산행 시, 리더는 산을 오를 땐 뒤에 서고 내려 올 땐 앞서 걷는다고 한다. 뒤처지는 동료를 챙기고, 가파른 비탈길에 자칫 서두르다 다칠 수 있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리더는 있고 싶은 곳이 아닌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하는 사람인 셈이다.
조금 일찍 경험하고, 조금 멀리 내다보고, 조금 더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리더는 앞서거나 뒤서면서 무리를 이끌 수 있다. 리더라면 꼭 있어야 할 자리에 있으면서 자신만 믿고 있을 여러 사람을 굽어 살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그럴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