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바르샤바
엄마는 추운 겨울에 떠났다. 추석과 설날 사이의 중간쯤 되는 날, 엄마의 모든 것들이 멈췄다.
추운 겨울이 지나 따뜻한 봄이 되고, 뜨거운 여름이 지나 서늘한 가을이 왔다. 그리고 다시 겨울이 돌아왔고 어느덧 엄마를 잃어버린 그날이 되었다.
전을 부치고 나물을 무치고 있자니 서글퍼졌다. 제사상을 차리는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세상 덧없음을 느꼈다. 엄마를 보낸 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그 계절이 되면 나는 우울해졌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바르샤바는 스산했다. 폴란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는 문화과학궁전의 꼭대기가 보이지 않을 만큼 낀 자욱한 안개는, 바르샤바의 스산함을 더욱 고조시켰고 우리 삼 남매의 기분도 날씨만큼이나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런 날은 배부르게 밥이나 먹고 숙소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란 걸, 그동안의 여행을 통해 배웠다. 우울한 기분이 태도가 되어 별것도 아닌 일에 개싸움을 할 확률이 100%이기에.
김치찌개로 쓸쓸한 마음을 달래고자 찾은 바르샤바 [MISS KIMCHI]의 분위기는 색달랐다.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아이돌 음악을 들으며 김치찌개를 먹어본 적이 있었던가. 마치 스타벅스에서 노래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는 게 자연스러운 것처럼, 신나는 K-pop음악을 들으며 젓가락질을 하는 현지인들에게선 어색함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제법 익숙하게 젓가락질을 하는 폴란드인 사이에서 한국인이라곤 우리 삼 남매와 근처 테이블의 손님들뿐이었다. 오고 가는 낯 선 언어 속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한국어는 마치 같은 테이블에 있는 것처럼 잘 들렸다.
"폴란드 독립 100주년"
내일이 폴란드 독립 100주년이란다. 어쩐지 숙소를 예약할 때 내일만 방값이 2배로 비싸서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독립 100주년 아침, 잠코비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평범하게 가족과 나들이 온 사람부터 노래를 부르며 국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마주했다. 그중 아주 오래된 군복을 입은 무리들과는 눈이라도 마주칠까 조심스러웠다. 이런 날엔 인종차별을 당할 확률이 높은데 젊은 친구들이 오래된 군복이라니 괜스레 불길했다.
나의 불길한 기분 따윈 비웃기라도 한 듯, 그들은 환화게 웃으며 여행자들과 사진을 찍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간사하게도 인증샷 하나쯤은 남겨도 될 것 같은 욕심이 생겼고, 의심했던 마음이 미안해질 만큼 그들은 기분 좋게 우리와도 사진을 찍었다.
사진이란 게 셔터를 누르는 순간을 찍는 건데도, 묘하게 그날의 모든 것들이 담길 때가 있다. 20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강화도 어느 바닷가에서 찍었던 가족사진을 보면, 방바닥이 뜨거웠던 숙소가, 그날 먹었던 하얀 순두부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열심히 공부하라는 엄마 아빠의 잔소리가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사진에 남겨진 그날의 이야기가 불쑥 떠오를 까 봐, 엄마를 떠나보낸 후 사진을 꺼내본 적이 없었다. 5년이라는 시간이 다되어가지만 사진 속 남겨진 엄마의 모습도, 좋았던 기억도, 혼났던 일도, 지금은 추억이라 말하는 모든 것들을 마주할 자신이 아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