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

끌어내려질 것인가, 날아오를 것인가?

by 당신의우주

매일 나를 향해 작용하는 중력의 힘들을 견뎌내고 일어나 보려고 노력 중이다.

육아와 반복되는 집안일로 매일 기운이 다 빠진다. 가족관의 관계나 소통문제로 주기적으로 머리가 아픈데 어떻게 풀어야 할지, 스트레스를 덜 받게 할지 모르겠다. 끊임없이 주어지는 크고 작은 결정들을 앞에서 내가 판단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고 점점 예민해진다. 마이너스 통장과 대출이자의 숫자를 바라보며 하고 싶은 것들을 언제 어디까지 할 것인지 계산기를 두드려본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체력이 모자라서 속상하다. 계획을 세워놨는데 일정이 여러 번 틀어진다. 하나 둘 지켜야 할 것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도 신경이 쓰인다. 말과 행동을 계속 검열하고 조심하게 되면서 나답지 못하고 자유롭지 않은 느낌이다.

John Mayer의 노래 'Gravity'의 가사처럼, 일상 속의 중력은 나와 반대로 작용하고 나를 끌어내리길 원하는 것 같다. 당기는 대로 현실에 안주하거나 주저앉아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일까?




사실 중력은 나쁜 의도로 그렇게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를 안전하게 지키려고 나를 끌어당길 때도 있다. 삶의 중력은 보수적이고 현상을 유지하려 하며 안전을 중요시한다.

어떤 도전을 하려고 마음을 먹거나 시도하려 할 때, 중력은 그럴듯한 논리를 강조하며 나를 붙잡으려 한다. 온갖 험담이나 부정적인 말과 미래에 대한 암울한 전망을 제시하며 에너지를 빼앗는다. 긍정적인 힘과 의지는 쉽게 잠식당하고 혹여라도 변화를 주는 것이 정말로 위험한가 싶어 몸과 마음을 움츠리게 만든다.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게 제일 중요해. 자식농사가 최고야. 아이를 낳는 순간 나는 사라지는 거야.'

'위험한 투자는 하지 마, 아끼고 저축하는 게 현명해.'

'말을 안 하면 중간이라도 가지. 실수 좀 그만해. 내가 조언한 대로 했어야지.'


자녀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그 무게감이 커진다. 동시에 나 자신이 사라지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아이도 잘 키우면서, 나도 원하는 일을 하며 목표와 꿈을 이루고 싶다. 물론 일에만 100% 올인하는 삶과 비교하여 60-70% 정도만 달성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 또한 기쁜 일이다. 두 가지 일을 다 욕심 내는 것이니까, 둘 다 해낸다는 점에서 그 정도만 이뤄도 만족스러울 것 같다.

이 길을 걸으셨던 연륜과 지혜에서 나오는 조언이기에 일부는 진심으로 참고하고 나머지는 시대에 맞게 수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 세대는 더 많은 시간과 기회가 있고, 그걸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도 조성되어 있다.


투자를 하는 것이 위험한 걸까, 투자를 하지 않는 미래가 더 위험한 걸까?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겠지만, 적어도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는 계속되어야 한다. 과도한 투자는 금물이지만, 급변하는 사회에서 개인의 능력이 향상되지 않으면 빠른 속도로 도태될 것이다. 투자를 하지 않으면 현상을 유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는 붕괴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아끼고 저축하는 것이 초반에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배우고 성장하는 것에 투자를 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실제로 투자를 해보거나 직무를 추가하여 수입을 벌어들일 수도 있다.

돈이 생기면 이걸로 대출원금과 이자를 갚을 것인가, 아니면 재투자를 할 것인가, 아니면 노후대비 저축을 할 것인가, 마음속에 갈등이 생긴다. 상황에 따라 그 결정은 다르겠지만 매번 현실에 몰입된 결정만을 해서는 안된다. 책을 사고, 강의를 듣고, 좋은 음식을 먹고, 의미 있는 경험을 사서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볼 때는 더 큰 이득을 안겨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중력의 힘들 중 가장 강력한 것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다. 내 노력과 땀과 눈물은 나만 아는데, 다른 사람의 판단이나 말이 상처가 될 때가 있다. 내 삶에 대해서 얼마나 안다고, 나에 대해서 저렇게 말하는 걸까 속상할 때가 있었다. 그들의 말이 진실인가 싶어 자기비판을 하고 자신감을 잃을 때도 있었다. 그것 때문에 포기할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한 감정의 소용돌이 가운데에서 나를 깊이 위로해 준 글귀가 있다. 1910년 프랑스 파리에서 미국의 26대 대통령 시어도르 루스벨트가 '경기장에 서 있는 사람(The Man in the Arena)'이라는 제목으로 한 연설이었다.

"중요한 것은 비평가가 아닙니다. 강한 사람이 어떻게 실수를 하는지, 또는 행동하는 사람이 더 잘할 수 있었던 부분을 지적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공로는 실제로 경기장에 있는 사람, 얼굴에 먼지와 땀과 피가 묻은 사람, 용감하게 노력하는 사람, 실수를 하고, 실수와 부족함이 없는 노력은 없기에 계속해서 실패하는 사람에게 돌아갑니다. 그러나 실제로 행동을 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위대한 열정과 위대한 헌신을 아는 사람, 가치 있는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 기껏해야 높은 성취의 승리를 아는 사람, 최악의 경우 실패하더라도 최소한 큰 도전을 하다가 실패하는 사람, 그래서 승리도 패배도 모르는 차갑고 소심한 영혼들과는 결코 함께하지 않는 사람입니다.(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Citizenship_in_a_Republic)"

내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큰 용기를 주었다.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더 잘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해 주고, 주변 사람들에게 휘둘리며 중심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다독였다. 남들이 뭐라 해도 지금 현장에서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중력이 건네는 말에는 결코 나를 해치려는 목적이 없다. 대부분 나를 아끼고 위하는 마음에서 그런 말을 한다.

동시에 중력은 나를 이 세상에 굳건하게 발을 딛고 존재할 수 있게 만든다. 또한 나의 자아를 구체적이고 다양하게 만들어준다. 내가 누군지 알게 해 주고, 그들 덕분에 삶의 강력한 목적이 생겨나며, 힘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삶이 더 풍성해지고, 기나긴 인생의 시간들을 촘촘하게 채워준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듯이,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삶의 여정을 계속해나가기 힘들다. 중력이라는 안전한 힘이 있기에 날개를 펼치고 날다가도 내려와서 쉴 수 있다.

만약 날아오르려는 목적이 유해한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불행하거나 망가질 정도가 아니라면, 이기적으로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려는 것이 아니라면, 중력에 저항할 용기를 가져도 좋다. 일상을 유지하느라 어쩔 수 없이 무기력하게 지내며 소중한 꿈 위에 먼지가 쌓여 빛이 바래게 하지 않아야 한다. 일상을 지켜내면서도, 편견에 맞서면서, 할 수 없게 만드는 상황을 이겨내고, 우리는 삶에서 원하는 일들을 해내는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야 한다.




나를 아래로 당기는 중력은 상황이지 사람 그 자체가 아니다. 날아오르면, 그 비행기 안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소중한 사람들을 모두 탑승시키고 더 업그레이드된 새로운 세상으로 이동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도착한 파라다이스에서조차도 그들은 나를 위해서 또 다른 성격의 중력의 힘으로 내 일상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달라진 것은, 걱정 어린 시선으로 나의 팔을 잡아당기기만 했던 것에서 벗어나 이제는 나를 예전보다는 더 믿고 응원하며 협조해 줄 것이다. 환경이 더 나아졌고, 나의 변화와 성공, 성장을 목격했으며, 내가 꿈과 목표를 이뤄냈다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스로도 자신감이 생기기에 그런 일상의 저항들을 좀 더 쉽고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생길 것이다.

그러니 힘든 상황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나 자신부터 변화하고 스스로를 일으켜 세워 앞으로 걸어가야 한다. 다른 사람을 나에 입맛에 맞게 설득하고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누군가의 손을 뿌리치고 묵묵히 소신대로 나아가는 게 두려울 수 있다. 실패하고 되돌아와서 비웃음을 당할 것 같은 걱정도 된다. 하지만 누군가 반대하고 비난을 하더라도 시도하고, 양해를 구하고, 계속해서 전진해야 한다. 특히 상황을 내게 유리하게 바꾸는 것도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날아오르게 만드는 추진력은 그렇게 생기는 것이다. 모든 것을 제대로 해내는 일이 없는 것 같지만 어떻게든 하루를 살아냈고, 아슬아슬하게 외줄 타기를 하며 가까스로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하는 지금이 바로 활주로의 출발선에 서서 이륙하기 위해 달리기 시작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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