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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정 Feb 03. 2017

꽃을 선물해 보셨나요

꽃을 선물했다. 

가격을 보고 몇 번이나 망설이다 화면에 써진 계좌번호로 입금을 했다. 


엄마가 좋아하거나 싫어할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부드러운 파스텔 톤의 꽃을 보고 기뻐하거나 

금방 시들 생화를 왜 비싼 돈을 들여 샀냐고 나무랄 것이다. 


만약 후자의 핀잔을 듣더라도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에게 꽃을 선물하기로 했다. 

우리 엄마는 살면서 고운 색색깔의 꽃 한아름을 한 번쯤 받아본 여자였으면 했다. 

혹자가 여유 있는 사람의 사치라 하여도 

당신을 생각해서 누군가 정성 들여 만든 꽃다발을 받을 만한 사람이었으면 했다.


나는 엄마에게 그런 내 논리를 펼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부고를 받았다. 

내 기억 속의 그는 딸을 위해 기꺼이 기숙사로 와 짐을 빼주는 다정한 아버지였고 

가족들과 악기 연주를 하는 멋쟁이였고 

경제적으로 어려울지 몰라도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데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어떤 위로를 해야 할지 몰랐다. 

국화꽃을 올려놓고 가족들과 목례를 하면서도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엄마 때문에 잘 울지도 못하겠다며 씁쓸하게 웃는 그를 그저 아무 말 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나뿐인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처음으로 죽음을 가까이서 보았다. 

명절이면 씨름과 농구 중계를 무덤덤하게 앉아 보던 뒷모습과

외출할 때면 중절모를 즐겨 쓰는 엄마의 아빠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할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러 온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열심히 음식을 나르는 것이었다.

기계적으로 일을 하고 사람들이 떠난 그날 밤, 나는 방구석에서 아버지를 목 놓아 부르며 울던 엄마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이번에 똑같이 아버지를 잃은 그가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위로하고 떠난 텅 빈자리에 남아 느낄 공허함과 슬픔이 보였다. 




"엄마한테 꽃 전해 줬나? 뭐라 하시드노?"

"엄마가 엄청 좋아하던데. 살면서 꽃다발을 처음 받아봤다고."


내가 준비한 핑계는 엄마에게 쓸 필요가 없었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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