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에서 리셋
스물아홉. 배낭여행을 떠났다. 여름휴가를 이용해 9일 간 발틱 3국을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어느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지는 순전히 나의 몫이었다. 리투아니아 빌뉴스 숙소에서 여행자를 만났다. 여행자는 거실에서 노트북을 켜고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그러다 여행자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30대 후반에, 그러니까 37,38살이 되었을 때 아일랜드로 떠났다고 했다. 그리고 3년 정도의 시간이 흘러, 아일랜드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집에 홀로 계시는 연로한 어머님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여행을 하는 중이라 했다.
"제가 벌써 스물아홉인데, 대학원을 가도 괜찮을까요."
머뭇거리며 던졌던 내 질문에 그녀는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미루고 미뤘던 해외에서의 삶을 살아보기 위해 길을 떠났던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너무나 어른 같게만 느껴졌던 스물아홉 숫자의 짓눌림은 다시 0에서 시작되는 서른이 되어 리셋되었다.
사람은 30대 후반에도 꿈을 위해 떠날 수 있는 용기와 실행력을 가질 수 있구나를 깨달았던 그때 이후, 나는 그녀가 미루었던 꿈을 이루기 위해 아일랜드로 향했던 그녀의 나이에 다가서고 있다. 그리고 비단 30대 후반뿐만 아니라, 사람은 40대에도, 50대에도, 60대에도 꿈을 꾸고 때로는 시작하는 용기를 내며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꿈을 이루기 위한 도전의 용기보다, 일상을 포기하는 용기가 더 필요하다. 꿈을 이루기 위해 떠나 꿈을 이룬 후,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또다시 고민하는 지금까지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일상을 포기하는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