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정 Apr 02. 2018

봄의 파편

1. 기다렸던 계절이 왔다. 혹은 그 계절로 내가 다가갔다. 토요일, 겨울 내도록 입고 다녔던 패딩이 흘러내리지 않게 튼튼한 옷걸이에 걸어 옷장에 넣어두었다. 어디에 있었는지 도통 찾지 못했던 원피스가 들어 있던 옷상자를 열어 원피스와 카디건을 세탁소에 맡겼다. 그리고 겨우내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은 종이가방에 차곡차곡 쌓았다. 종이가방을 들고 집 근처 의류 수거함으로 가 하나하나 옷을 넣기 시작했다. 한동안 매일같이 입고 다녔던 체크무늬 남방을 버리기 망설여지다가 최근 몇 년간 입지 않았던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수거함 깊숙이 들어가도록 쑥 손을 뻗어 넣었다. 옷을 하나 버렸을 뿐인데 내 추억마저 저 멀리 던져버리는 것 같아 마음이 시큰거렸다. 


2. 작년인가, 중학교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으로 향했다. 자주 연락하는 친한 친구냐는 회사 동료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중학교 친구와 마지막으로 연락한 지가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ktx 표를 샀다. 가장 선명한 그녀의 모습은 촌스러운 자주색 교복에 곱슬머리 단발머리를 한, 이연걸을 좋아해서 쉬는 시간에 그녀가 좋아하는 홍콩스타를 그려 달라고 나에게 부탁하던 소녀 시절의 모습이다. 그녀 또한 쉬는 시간에 조용히 책상에 앉아 말없이 그림을 그리곤 하던 사춘기 시절의 내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그 기억을 담보로 나는 선뜻 부산으로 달려가 그녀를 축복했다. 며칠 전, 언제 만났는지 기억나지 않은 친구를 다시 만났다. 친구는 여전히 맑았고 반듯했다. 


3.  내 인생의 영화는 '쇼생크 탈출'이다. 중학교인지 고등학교 때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이 영화를 처음 보고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이후로도 비디오 가계에서 대여를 몇 번 하면서 같은 장면에서 펑펑 울기를 반복했다. 내가 읽은 책 중 최고의 책을 '1984'로 꼽는 것을 보면 나는 아마 '개인의 자유'에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두고 있는 사람인 듯하다. 개인의 고유한 생각을, 사고를, 세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궁금해하는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조직에 쓰고 조직을 움직이는 중요한 부품으로써 살아가려는 것은 어쩌면 모순이고, 어쩌면 현실이다. 


내가 발견한 봄
매거진의 이전글 30대 후반에 아일랜드로 떠났던 그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