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정 Sep 11. 2016

에필로그. 김대리에서 김인턴으로

Comfort zone과 이별하기

2008년 10월 9일, 나는 첫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올해까지 그 회사를 다녔더라면 난 8년 차 직원이 되었을 거다. 대리라는 그럴듯한 직함까지 달고 학생 신분으로 돌아갔으니 지금쯤이면 아마 과장 직급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나와 입사했던 유일한 입사동기는 2년의 경력을 가지고 이직을 했기에 몇 년 전부터 과장 직함이 찍힌 명함을 가지고 다니는 것 같았다. 내 성향과 정 반대의 회사를 다니면서 우울증 비슷한 상태까지 갔었다. 오죽했으면 퇴사가 결정되었던 날, 타 팀 과장님은 날 불러놓고 다른 곳에서 일을 하게 되면 지금처럼 우울한 표정으로 다니지 말라는 이야기까지 했을까.


본인은 10년 가까이 회사를 다니면서 나에겐 이 곳이 아깝다며 어서 퇴사하라는 선배의 말을 듣기도 했고, 아무나 들어가는 회사인 줄 아냐면서 현실을 직시하라는 만류도 들었다. 전자의 말을 들었을 때는 그러는 당신은 왜 10년이나 이 회사를 다니나 싶었고, 후자를 들었을 때는 내가 그 정도밖에 안되나라는 모순된 생각을 반복하곤 했다. 내 생애 가장 힘든 시간들이었기에, 그만큼 단단해질 수 있었다. 그 시간들이 과거가 되어 버린 지금, 날 훈련시켜 준 시간들에 감사하고 어려움을 극복해 내고 너무 늦지 않은 타이밍에 선택을 내린 스스로에게 대견하다고 말해 주고 싶다. 나와 정반대인 성향의 사람들과 조직 문화를 경험하고 내 적성과 전혀 맞지 않은 업무를 해보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난 지금 보다 더 이기적이고 편협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입사를 하기 전,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회사가 있었다. 인턴의 신분이었고 첫 출근을 한날, 차장님은 나에게 표가 프린트된 종이 한 장을 던져 주며 파워포인트로 똑같이 그려내 보라고 했다. 그래도 정부 지원을 받고 경쟁을 통해 선발된 인턴인데 다짜고짜 그런 일을 시키니 황당했지만, 나름 내색하지 않고 열심히 만들어 보여드렸다. 차장님은 원체 꼼꼼하신 분이셨던지라, 선이 조금만 삐뚤어지거나 마음에 안 들면 하나하나 지적을 다하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하는 일이 data 분석이었고, 분석된 자료를 파워포인트 표로 정리하는 일이 주요 업무 중 하나였다. 이런 쓸데없는 일을 나에게 왜 시키나, 싶었는데 지나고 나서야 왜 나에게 그 일을 시켰고 필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그때 처음 배웠던 것 같다.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 해야 한다는 것과, 쓸데없는 일은 없다는 것을.




첫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첫 출근을 하고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실제로 회사 밖으로 나오기까지 4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회사를 그만두지 않아도 될 이유가 9가지라면,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 이유는 한 가지였다. 누가 보아도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았다. 4년 반 동안 9가지 이유를 되뇌며 1가지 이유를 애써 무시하려고 해도, 그러지 못했다. 해외를 오고 갔던 경험은 많지만, 반년이고 일 년이고 "돌아온다"는 전제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은, 기약 없이 고향을 떠난다는 것이었다. 맨땅에 떨어지면 푹신푹신한 침대가 아니더라도 얇은 매트리스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회사를 떠난다는 것은 그야말로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헤딩하는 겪이었다.


서른의 나이도 불안했다. 결혼은 언제 하고 공부를 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는 아닐까.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들었다. 백세 인생이라고들 하는데, 내가 80살까지 산다고 치면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서 보낼 시간은 고작 2. 80에서 2년의 시간을  빼면 78이다. 80살에 죽으나, 78살에 죽으나 별다른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것 같았다. 이 2년은 지금 당장은 내 인생에서 엄청난 시간처럼 느껴져도, "지금"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는다면 조용히 흘러가서 묻힐 시간일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회사를 나오며 같은 팀 부장님께 말씀드렸다. 대학원을 가서, 유엔 인턴을 한번 가보고 싶다고. 그 말을 들은 부장님은 유엔으로 인턴으로 한번 가보고 싶다고 회사를 그만두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반기문 사무총장이나 한비야 같은 삶을 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일을 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유엔은 내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에서 한 번쯤은 꼭 경험하고 싶은 곳이었다.




평범한 내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었다. 앞으로 공유될 이 기록들은, 지방 사립대를 나온 서른의 여자가 진로 전환을 위해 세상 밖으로 나온 이야기다. 첫 직장에서 배운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꼈던 시간들이, 사실은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단단한 자양분이 된 것과, 유엔 인턴을 가기 위해 좋은 조건의 회사를 그만두는 리스크가 내 삶의 어떤 기회를 주었는지의 기록을 지금부터 나누려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