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어떤 열등감
한 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강의를 집중해서 진행하다 보면, 기력도 없고 다른 일에 집중할 여력이 잘 나지 않는다.
어떻게든 틈틈이 짬을 내보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다행히 어느 정도 강의에 집중하는 기간이 마무리되어서, 여력이 조금 생기니 글을 다시 쓸 수 있게 되었다. 여러 가지를 동시에 꾸준히 한다는 것이 참 쉽지 않음을 느낀다.
최근에 문득 어떤 불편한 기분을 느꼈다.
언젠가 어디선가 느껴봤던 기분이었다. 불편한 기시감이었다.
곰곰이 기억을 더듬다 보니 알게 되었다.
어떤 열등감 같은 것이 불쑥 튀어나온 것이었다.
나는 어릴 때 늘 '대장질'이 하고 싶던 아이였다.
아주 어릴 때, 친구들과 노는데 나를 '대장'을 시켜주지 않아서 친구들과 같이 놀지 않았다는 가족의 증언도 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 성향을 미루어 봤을 때 아마도 높은 확률로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대장노릇을 하고 싶다고 해서 항상 대장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생 때의 일이다. 초등학교 5~6학년 때였던 것 같다.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했던 적이 있었다.
문제는 아무런 준비 없이 선거에 나갔다는 점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왜 그랬는지 알 길이 없다. '나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라는 이상한 욕망이 있었던 게 아닐까? 흐릿해진 기억 속에서 그때의 생각의 실마리를 찾기가 쉽진 않다.
선거에 들어가니 꽤나 치열하게 선거 운동이 진행되었는데, 홍보 구호, 홍보물 등등 나는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었다. 심지어 나를 도울 사람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뜻밖에 반 친구들이 도와줘서 어찌어찌 선거를 치를 수 있었지만 꽤 마음고생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고 있었고 집에 그렇게 오래 계시지 않았다. 내 선거에도 그렇게 큰 관심은 없으셨던 것 같다. 반면 다른 후보들은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전문 컨설팅 업체의 손을 빌리기라도 한 것처럼 잘 준비된 모습이었다.
결과는 처절한 패배였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어떤 기시감'의 출발점이다.
이 불편한 감각은 조용히 잠들어 있다 어느 순간 불쑥불쑥 깨어났다.
내가 원하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을 때, 그런데 내 주변의 누군가가 나보다 더 나은 성취를 이루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런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불편함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나이가 들며, 나름의 신념과 가치관이 생겼고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과 길을 만들어 갈 수 있었다.
다만 내가 선택한 신념의 방향이 늘 세속적 기준에서의 '성공'을 담보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누군가가 보기엔 지나치게 이상적이거나, 비현실적으로 비치는 부분도 있었다.
쉽게 말하면 당장 돈이 되는 신념이 아니었다.
사람을 대상화하고 괴롭혀서라도 성과를 만드는 사람들이 나보다 소위 '잘 나가는' 모습을 많이 목도했다. 그렇게 잘 된 사람들이 늘어놓는 자기 자랑을 한참 들어보기도, 때로는 그런 이들에게 무시를 당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잠자고 있던 그 불편함이 되살아 났다. 나의 현실과 처지가 그렇게 녹록지 않았기에 나도 모르게 어떤 열등감이 불쑥불쑥 깨어났다.
오기가 생겼다. 내가 믿고 추구하는 방향이 실패의 길이 아님을,
그리고 이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에도 눈부신 성취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보이고 싶었다.
내 안의 열등감과 오기가 나를 채찍질했다. 그 과정에서 수 없이 실패하고 좌절하기도 했지만,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나를 단련하고 더 깊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음을 안다.
그렇게 나를 증명하기 위한 시간을 살아왔다.
여전히 갈 길이 멀고, 아직 나의 입장과 처지는 누군가의 시각에서는 볼품없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랜만에 느낀 이 기시감이 다시 나를 채찍질한다. 나는 더 나아져야 한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포기하기엔 아직 이르다.
아마도 이 불편함은 앞으로도 오랜 시간 내 안에 잠자고 있기도, 불쑥불쑥 튀어나오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불편함으로 마주했던 이 감각을 조금은 여유 있는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내 안의 어떤 불편함을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나는 많이 실패했다.
하지만 '내 삶'이 실패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겪었던 나를 괴롭게 했던 경험들이 내가 원하는 이상을 향한 발판이 되고 있음을 믿는다.
하루라도 더 나은 나로,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