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선택의 기로에서

문득 떠오른 기억들

by 아웃클라쓰

어느 겨울이었다.

추운 날씨 길가에서 어떤 할머니가 채소를 팔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별생각 없이 지나갔을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문득 어떤 묘한 느낌을 받았다.


같은 세상에서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

왜 누군가는 추운 날씨에 저런 고통을 받으며 삶을 힘들게 이어가야 하는 걸까

그 개인의 삶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었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짧은 순간의 경험이었지만,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고1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떻게 하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을까

구체적인 방법이 나에게 있지는 않았다. 그냥 삶의 태도가 바뀌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습관처럼 어디를 가든 누구에게든 삶의 목적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이 스쳐간다.


그래서 무엇을 실제로 노력했는지 물어보면

막상 엄청난 변화를 이룬 것들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나름의 신념을 바탕으로 여러 노력들을 해보았지만

생각보다 그 일들이 쉽지는 않았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으로 했던 첫 도전에 대한 기억이다.

대략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는데, 나에겐 꽤나 큰 도전이었다.


당시 고등학교에는 여전히 두발규제가 있었다.

학생회장과 학교와의 소통 과정에서 우리는 두발규제를 풀어줄 것을 주장하게 되었다.

나는 학생회장에게 두발규제를 풀어줄 것에 대해 강력하에 의견을 피력하고 논의를 했던 입장이었다.


사실 학생회장은 그렇게까지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나는 이 일에 진심이었다.

시간에 흐름에 따라 기억이 흐려진 부분이 있지만,

아마 학생들의 자기 신체에 대한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이 옳지 않은 일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 나는 온라인 청소년 매체에 관련 기사를 게시하며 나름대로의 공론화도 시도하는 등 여러 노력을 했었다.


현실의 장벽은 확고했다.

선생님 및 학부모님들과의 토론을 하게 되었고, 그들의 입장은 몹시 견고했다.

결국 두발규제를 풀어달라는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에겐 쓰라린 패배의 경험이었다.

나름대로 세상을 더 나은 곳을 만들고 싶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행동이었지만,

그 의지를 현실화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시도가 쉽지 않음을 느낀 강렬한 경험이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두발자유화는 현실이 되었다.

어떤 묘한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 사람을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면서 한 가지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 또는 '세상을 바꾼다'는 문장을 보면

마치 무언가 거대한 일을 해야 할 것만 같다.


그러나 사람을 가르치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변화하는 경험을 하며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 꼭 어떤 거대한 일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앞에 있는 사람 한 명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그것도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일이 될 것이라는 점을 느끼게 됐다.


지금은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고등학생 때로부터 시간이 꽤나 흐른 지금,

여전히 나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꾼다.


현실의 장벽과 나의 부족함으로 눈에 띄는 결과를 만들진 못하더라도

여전히 처음 품었던 마음의 결심이 흐려지진 않았다.


보통의 일상, 그냥 그런 하루를 살아가는 날도 많지만,

언제든 기회가 주어진다면 조금 더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싶다.


때로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는 나의 시도가 좌절로 그치는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방향이 옳다면 언젠간 그것이 현실이 되는 때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꽤 흘렀다.

다행히도 고등학생 시절의 마음과 지금의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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