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질문

변화하는 세상에서 좌초하지 않기 위해

by 아웃클래스

“만약 내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 1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문제를 이해하고 생각하는 데 55분을 쓰고, 해결책을 생각하는 데 5분만 쓰겠다."- 아인슈타인


AI 발전의 속도가 정말 빠르다.

어느 정도까지 이 기술이 발전해서 얼마나 사람이 하던 일들을 대체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사람이 하는 모든 일들을 AI가 대체하기까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이 일이 진행될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이것에 준비하고 대응할 수 있을까?

아니면, 미처 준비하기도 전에 이 거대한 변화의 파도에 속절없이 휩쓸려 떠내려갈까


얼마 전 팟캐스트에서 데미스 허사비스(구들 딥마인드 CEO)와 다리오 아모데이(앤트로픽 CEO)가 함께 대화한 내용을 접했다. 둘 모두 AI와 관련한 낙관주의자에 가까움에도, 속도가 너무 빠르며, AGI 등장까지 5~10년의 시간이 걸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변화의 시대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한편으로, "우리는 일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라고 빌게이츠가 말한 바가 있다.

듣기엔 좋은 말이지만, 뒤집어 보면 굉장히 두려운 말이기도 하다.

일론 머스크가 최근 인터뷰한 내용도 이와 맥락을 같이하는데, AI의 발전으로 결국은 사람이 할 일이 없어질 세상이 온다는 것이다. 두려움이 뒤따르는 것은 인간은 미지의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말이 현실화될 것이 점점 더 분명해 보여서이기도 하다.


그렇게 되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노동을 통해 소득을 벌어들이고 그 소득을 바탕으로 소비를 하는 재래의 경제 시스템이 종말을 맞이한다고 하자.

이 변화는 얼마나 파괴적일까?

우리는 과연 그 변화에 적응할 수 있을까?

붕괴되는 시스템 속에서 우리의 삶은 누가 보장해 줄 것인가? AI의 장밋빛 미래를 이야기하는 테크 기업 리더들이 보편적 인류의 삶을 보장하는데 실제 관심이 있을 것인가? 우리는 그들의 수혜를 기대해야 하는 가여운 처지에 놓일 것인가?


누군가는 이 변화에서 살아남으려면 일단 돈을 많이 모아놔야 한다고 한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말이다. 그러나 머스크는 노후를 위해 돈을 모을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고 한다. 보편적 고소득이 온다고 한다. 이것을 믿을 수 있을까?


더 본질적으로 들어가서 질문해 보자

할 일이 없어지는 세상은 과연 풍요로울까? 우리는 행복할까?

일을 안 한다면, 그게 정말 괜찮은 삶일까?

우리는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

아니,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공상을 좋아한다. SF영화 같은 것들을 매우 좋아하는데, 이유는 나의 공상을 자극하고 공상의 영역을 넓혀주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종종 이런 공상들을 하곤 한다.

내가 무한히 살 수 있다면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한 때는 모든 악기를 다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해보기도 했다.

어떤 한 때는 온갖 스포츠를 다 경험해 보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아니야 세계일주를 떠나서 세상 모든 나라를 속속들이 다 경험해야지.

내가 알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모든 진리를 다 깨달아 볼까?

...


이런 공상들이 어쩌다 보니 지금 우리가 마주한 이 시대에 나름 의미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AI 낙관주의자들의 예견대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유토피아가 이 땅에 도래한다면 결국 남는 것은 순수하게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즐기는 것에서 오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 아닐까?

혹은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정말 깊은 경지로의 여정이 우리에게 남게 되지 않을까?


수 없이 많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에 덮쳐온다.

지금 시점에서 확실한 것은, 우리에게는 지금 더 깊고 본질적인 질문이 필요하고 질문에 답하고자 분투하는 과정 속에 우리가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AI 유토피아의 낙관은 절로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것에서 올 것이다.


요즘은 그래서 더 깊은 질문을 하게 하는 고전이나 종교 경전들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있다.

그것이 나에게 '정답'을 '계시'하기 때문이 아니라, 더 '질문'하게 하고 더 깊이 있게 사유하게 하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나와 생각이 다를 수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생각의 지평을 넓히고자 한다.

할 수 있으면 내가 가진 조금의 지식이나 지혜라도 나누고 싶다.


이 질문과 사유의 치열한 여정 속에 어쩌면 이 거대하고 충격적인 변화를 헤쳐나갈 무언가의 실마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기억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