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플루언스와 지라 사용기
나는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했고 현재 비주얼 인터렉션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영어로 시각디자인 학과의 이름은 'Visual Communication design’.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이 영어로 진행되던 디자인 수업이었는데, 교수님께서 학생들이 Visual에만 몰두하고 Communication할 줄을 모른다고 탄식하던 모습이다. 애초에 소통을 못하는데 비주얼로 표현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 그 때 나는 Verbal communication도 정말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여러 외주 경험을 쌓으면서 정말 필요한 순간에 정말 필요한 일을, 정말 필요한 만큼 해내는지가 중요하다고 느꼈다. 적재적소의 결과물을 뽑아내려면 클라이언트가 처한 환경을 내가 온전히 이해하고 디자인해야한다. 그 이해과 공감을 표현하고 필요한 결과물을 조율할 때, 디자인하고 피드백 주고 받을 때, 완성해고 사용자와 만날 때 - 그 모든 순간에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
소통에는 여러 도구가 필요하다. 디자이너는 그래픽으로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가장 강력하고 정확한 도구가 문서라고 생각한다. 내 디자인을 언어화해서 설명하고, 내가 디자인한 것이 왜 좋은 솔루션인지를 설득할 때 문서가 제일 직관적이다. 여기엔 비주얼 뿐만 아니라 말과 글로 기록하고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문서 정리에 꽤나 큰 힘을 쏟는 편이다. 다니던 회사에서 작성했던 문서를 회고해보면, 대표님과 기획자님이 큰 비지니스 모델을 구상하고 설계하셨고 직후 나도 바로 합류해서 서비스 컨셉을 함께 만들어나갔다.
작성했던 문서들은,
시장 분석 + 경쟁사 분석
타겟 분석
네이밍
서비스 컨셉
키워드, 슬로건
무드보드
그래픽 모티프
로고, 컬러셋
컨셉 시안
UI 컨셉 리서치
UI 문서
VI 가이드 문서
그 외 아웃풋 문서들 (홍보영상, 브로셔, 랜딩페이지, 브랜드 굿즈 등)
이런 식으로 각 프로세스마다의 리서치 / 시안 / 최종 결과물을 나누어 문서를 작성했다. 나는 특히 타겟 분석과 네이밍, 키워드, 슬로건에 정말 많이 집착했는데, 초반에 컨셉을 언어화하는 것이 브랜딩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디자인 업무의 특성상 계속해서 시안을 생성하고, 더 좋은 게 나오면 갈아엎어야하다보니 문서를 최신화해서 유지하는 것도 중요했다. 당시엔 기획자님이 UX도 맡아주셔서 나는 브랜딩과 UI에 집중할 수 있었는데 그게 참 좋은 경험이었다. UX는 좀 더 문서화가 쉬운 반면 좀 더 그래픽적인 것들은 그 로직을 설명하는 연습이 덜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1 / 1.1 / 1.1.1 이런 식으로 숫자 표기하는 걸 좋아해서 구글 독스, 트렐로, 컨플루언스 등 마크다운할 수 있는 모든 문서툴을 좋아했다.
확실히 문서화를 하면 장점이 많다.
왜 이런 디자인이 나왔는지, 왜 이 수고를 들여서 예쁘게 해야하는지를 보다 쉽게 설득할 수 있다.
디자이너 스스로도, 굳이 장식적인 디자인을 피하게 되고 설득할 수 없는 디자인은 미리 자정하게 된다.
작성해놓은 문서들은 나만의 매니페스토가 되어 디자인 방향을 잃지 않게하는 중심이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브랜딩 키워드를 '따뜻하고 친근하지만 재치있는'으로 잡았다고 한다면 지금 만든 로고가, UI가, 웹사이트가 이에 부합하는지를 계속 상기해볼 수 있다.
비디자이너가 피드백을 주기에 훨씬 수월하다. 네이밍, 키워드, 슬로건 등의 중요성을 강조하기에도 좋다.
1년 8개월 간 회사를 다니면서 배운 것은 협업 방식이었다. 처음엔 많은 스타트업이 선택하는 조합인 슬랙 + 트렐로 + 구글 드라이브로 협업을 해왔다. 다른 점은 에버노트를 사용했다는 것인데, 문서작성에 드는 노력을 줄이기 위함이었다. 디지털 프로덕트를 만들 땐 있어서 기획자, 개발자, 마케터와의 긴밀한 소통이 이뤄져야한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시각으로 우리 회사의 비지니스와 프로덕트를 바라보기 때문에 문서화된 합의 내용이 언제나 존재해야 방향을 잃지 않는다. 사실 회사 다니면서도 이게 잘 지켜지지 않아 난항을 겪은 적도 있었지만 대체로 지난 회의록을 읽거나 가이드 문서를 보며 합의 내용을 되새기곤 했다.
8개월 남짓 쓰던 조합을 버리고, 작년 이맘 때쯤 아틀라시안으로 넘어오게 되었는데 가장 좋았던 점은 모든 툴이 아틀라시안 안에 있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트렐로에서 업무 트래킹을 하다가 문서는 구글 드라이브가서 보고, 개발은 깃헙에서 보고 있고, 회의록은 에버노트에 있고. 이게 일원화되지 않다보니 1) 여기저기 옮겨다니는 수고가 있었고, 2) 회사의 자산이 안정적으로 기록/보관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 회사에서 업무툴이 통일되면 편하고 효율적이라는 걸 처음 느꼈다. 특히 CTO님이 우리가 행하는 모든 시행착오가 결국엔 회사의 지식자산이 되고 이게 다음 도약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가르쳐주셨다. 문서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으면 다시 찾기도 힘들고 누군가 퇴사/입사할 때 공유하기에도 번거롭고... 아틀라시안 툴의 러닝커브도 고려해야하지만 이정돈 감수할 수 있잖아..?
기본적으로는 아틀라시안이 트렐로를 인수했기 때문에 지라와 트렐로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결정적인 차이점은 지라는 애초에 업무 순서와 체계를 디자인할 수 있고, 이에 대한 트래킹, 회고 등 모든 것이 가능하다. 트렐로는 지라의 지극히 일부 기능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세한 설명은 여기서 → https://ko.atlassian.com/software/jira/agile)
사실 지라는 개발자들에게 더 효과적인 툴이라 디자이너에게 어떤 식으로 적용해야될지 잘 몰랐다. 당시에 개발은 팀이 있었지만 디자인 팀은 나 혼자였으니 보고자도, 관리자도 담당자도 모두 나였다ㅋㅋㅋㅋ 그래도 디자이너가 하는 일을 가시화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해서 내가 하는 모든 디자인 업무를 아주 사소한 것까지도 테스크로 만들었고 칸반 보드에 나홀로 외롭게 기록하곤 했다.
아무리 스타트업이고 서로 친하다고해도 서로 하는 일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금 뭘하고 있고, 앞으로 뭘 할거다 - 하는 모든 현황을 투명하게 공유하는 것이 팀원들과의 신뢰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특히 디자인 업무는 자잘하게 명함 만들고, 스티커 만들고, 홍보 이미지 만드는 것까지 업무라고 인식되기 어려울 수 있는데 나같은 경우는 그런 것도 모두 가시화해서 이게 중요한 '업무'라는 걸 아주 크게 말하고 다녔다ㅋㅋㅋㅋㅋㅋ 회사 동료 분들이 너무 착하셔서 모두 나의 업무를 존중해주셨고, 오히려 황송하게 정말 중요한 업무라고 생각해주셔서 감사했다.
디자이너로써 아틀라시안이 좋았던 다른 이유는 아틀라시안 디자인이 너무 예쁘다... 개발자 문화에서 시작된 업무툴답지 않게 2017년 대대적으로 브랜딩 개편되면서 요소 하나하나가 예뻐서 계속 문서를 쓰고싶게 만든다. (아틀라시안의 디자인 가이드는 여기서 → https://atlassian.design/)
그래서 매일매일 아틀라시안 디자인에 놀라며 즐겁게 위키 문서를 작성했다. 또 좋은 점은 지라와 컨플루언스가 너무 잘 연동된다는 것인데, 지라에 등록해놓은 업무를 내 홈에 Jira Issue filter로 등록해놓고 현황판처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협업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었을 때 재택근무, 탄력근무제, 자율출퇴근, 휴가 등이 껄끄럽지 않게 사용되니까. 신뢰의 기반은 투명한 공유에 있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UI가이드와 UI개선사항에 대한 업무는 가시화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작년에 프로덕트 개발이 끝나서 올해 진행한 것이 대부분 신규기능 추가 혹은 개선이었는데, 스케치/제플린에 자잘자잘하게 수정되는 거라 어떻게 기록하면 좋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특히 제플린은 그냥 최신화된 화면을 유지하는 장치였기 때문에 개발자님한테는 다른 방식으로 전달하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Jira 첨부문서인데, 동일한 내용으로 지라 테스크를 만들고 컨플루언스에 UX/UI 개선을 위한 리서치와 기획, 회의내용, 최종 디자인 변경사항을 기록해두는 것이다. 과정까지 기록해두었을 때 진짜 설득하기가 편하다. 내가 이런 리서치와 시행착오를 겪었고 그래서 최종 결과물이 이렇다, 말해버리면 사실 뭐라 할 말이 없기도 하다. 과정을 보여줬을 때 다른 팀원들이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를 주기도 하고.
이건 진짜 지라 + 컨플루언스 조합이어서 가능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왜 이렇게 번호매기는 게 좋지.. 제목과 번호가 일치할 때 쾌감이...
정리충의 또다른 면모는 바로 업무일지. 혼자 데일리 스크럼을 했다. 언제 무슨 회의를 했고 어떤 업무 했는지 지라 이슈 다 걸어놓고, 해당 문서도 걸어놓고ㅋㅋㅋㅋ 워낙 회의가 많다보니 이 사항이 언제 왜 결정됐는지 추적하기 어려울 때가 있어 고안한 방법이다.
지금은 퇴사했지만, 이전 회사에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문서화 기술, 협업툴에 대한 이해다. 너무 유익하고 너무나도 감사한 부분. 그 때 생긴 습관으로 지금까지도 기록과 정리, 디자인의 가시화에 대해 굉장히 집착하고 있다. 나는 이게 참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다른 디자이너 분들은 어떤 식으로 문서화하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