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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yoon Apr 23. 2018

퇴사예정자의 일기

퇴사 D-7, 퇴사 과정 기록하기

그동안 일을 끝내고, 시작하는 경험을 여러 번 해왔다. 그 때마다 아쉬웠던 것은 사람들과의 이별도 있었지만, 공적인 영역에서의 정리가 잘 안된 것이 컸다. 이 회사에서 이 일을 함으로써 배운 것들, 내가 부족했던 점들을 잘 정리하지 못했던 것이 미련으로 남아서, 이번엔 잘 정리해보려 한다.



1. 퇴사의 이유를 명확하게 알기

나는 2016년 8월부터 디지털 마케팅 관련 스타트업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2014년부터 UI를 시작했으나, 본격적으로 일을 한 것은 2016년부터이니 보통 이야기하는 '주니어'에 해당한다. 이 회사는 내가 네번째로 근무한 스타트업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스타트업의 문화를 사랑하고 잘 적응한다. 내가 내 일을 스스로 찾고, 주도적으로 결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 그래서 나는 그동안 스타트업에 계속 있어왔고, 프리랜서, 외주 등도 원활하게 꾸준히 해올 수 있었다.


스타트업의 장점은 여러가지인데 업무의 자율성, 성과가 작게라도 빨리 나오는 것, 그에 대한 나의 기여도가 크고 명확한 것 등이다. 내가 만든 서비스를 누군가가 긍정적으로 사용하고 있을 때, 하루하루 이 작은 회사의 결과물을 누군가 알아줄 때, 팀원들과 이 작은 성취들을 함께 나눌 때 - 그 때의 즐거움은 나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행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에서 혼자 성장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항상 배움과 성장에 대한 갈망이 큰 사람이라 내가 성장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 순간 굉장히 불안해진다. 빠르게 결과물을 내는 것이 스타트업의 미덕이다보니 최소한의 리소스로 동작하는 MVP, 알파버전, 베타 테스트 등에 익숙해져버린다. 디자인적 완성도를 생각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내가 디자인을 잘 하고 있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객관적인 답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많은 컨퍼런스와 세미나를 다니고, 선배 디자이너들에게 나의 디자인을 피드백 받아보고, 존경하는 디자이너들 - 유니콘 스타트업의 디자인팀은 어떤 방식으로 일하나 따라다니며 읽어보고 실천해보고, 디자인 커뮤니티를 기웃거려보고... 다양한 시도를 해봤지만 아직까지 답은 없는 것 같다.


만약 빠르게 피드백을 얻을 수 있는 스타트업이었다면 나의 방식이 맞는지를 바로 판단해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럴 수 없는 상황이 계속 됐고, 서비스에 대한 애착도 떨어지다보니 (흔히 말하는 현타랄까...) 디자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든 아웃풋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해주고, 더 나은 방향을 함께 생각해보고, 영감을 얻는 경험을 함께하고. 나같은 주니어에게 필요했던 건 '팀'이었다. 사수나 선임까지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


그냥 힘들다고, 어렵다고, 자신이 없다고 퇴사한 적은 없었다. 그동안 이제 더 이상 성장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위기감이 들 때, 그 때마다 나는 새로운 여행을 시작했다. 떠나는 이유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회사에도, 나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믿는다. 그게 우리 모두의 성장을 가능하게 하니까.



2. 나의 상황을 팀원들에게 알리기

돌이켜보면 나는 중간 중간 많이 지쳤다. 나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 솔직함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내가 지칠 때마다 팀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정말 감사하게도 그 때마다 나에게 공백을 만들어주었다. 갑자기 퇴사를 알리는 게 안 좋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대부분 회사에서 최소한 한 달 전에 퇴사 의사를 말해달라고 하는 건 이후 대체할 인력을 찾거나 진행 중인 일을 정리할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건 '최소'이고 나는 적어도 회사가 나를 위해 노력할 여지를 주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난 A가 필요한 사람인데 이 회사는 A를 줄 수 없는 상황이고, 이 상황이 회사에도 나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다. 물론 이게 너무 반복적이거나 노골적이어도 서로 힘들겠지만 내가 이 사실을 알려서 회사가 A를 줄 수 있다면? 그럼 그게 최선 아닐까.


긴 여행은 다시 달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지만, 1년 8개월 간 뚜렷한 성과물 없이 일을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꽤나 참기 힘든 일이었다. 여행뽕 맞고 열심히 달리곤 했지만 이 임시방편이 유지되는 기간이 점점 짧아지는 것이다. 나는 명백하게 보이는 성과와 성장이 필요한 주니어였으니까. 퇴사하면서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 인생의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내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방법을 배우는 느낌이랄까.


나의 선택을 전했을 때 팀원들은 오히려 나를 더 응원해주었다. 서로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했고, 나는 퇴사할 때 나의 상황과 생각을 솔직하게 전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또한 스타트업이어서 가능...)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사실과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내가 00때문에 힘들어서ㅠㅠㅠㅠㅠㅠㅠㅠ 이렇게 되버리면 우발적인 선택처럼 비칠 수도 있다. 회사에서 부족했던 점을 잘 설명하고 피드백 주는 것이 새로 들어올 멤버들을 위한 길이다. 내가 주니어라고 해서 '내가 감히 회사의 결함을 말하다니ㅠㅠ?' 하는 식의 수동적인 행동을 하고 싶진 않다.



3. 반성하고 칭찬하고 기록하기

모두에게 지금의 순간은 처음 맞닿는 시간이다. 이번 생에 직장인도 처음이고, 주니어도 처음이고, 곧 30대도 처음일 것이다. 실수는 실수였다고 반성하고 발전하는 것이 좋다. 이를테면 나는 회사의 설립부터 봐왔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보수적인 발언들을 많이 해왔다. 오히려 스타트업에서 자유롭게 시도해도 모자를 판에 '지금 방향을 바꾸면 그동안 해온 노력과 비용은? 새로 만들 아이템은 누가 개발하고 누가 디자인하지? 그동안 쓴 비용은? 새로운 멤버는 어디서 구하고? 마케팅은 어떻게하고?' 이런 밑도 끝도 없는 사장 마인드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건 주니어가 할 고민은 아닌 것 같다. 당연히 설립 멤버 격으로 나를 생각해준 팀원들이 있으니 그 상황을 다 알았던 거겠지만, 그 모든 상황을 아는 것이 디자인 자체에 집중하기 어렵게 했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줏대가 없는 건지, 예민한 건지, 오지랖이 넓은 건지... 아직은 모든 사람, 모든 일에 공감하고 영향을 쉽게 받는다. 그래서 위기가 왔을 때 감정적인 대응을 해왔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그래도 이곳에서 디자인 외적으로 기획과 개발, 마케팅, 비지니스를 잘 이해하려 노력해온 것이 뿌듯하다. 워낙 세일즈가 중요한 회사다보니 시장에 대한 이해가 중요했고, 경쟁사에서 어떤 식으로 사업소개서를 쓰는지, 우리는 어떤 IR을 만드는지, 투자는 어떻게 받아오는 건지 등 전반적인 흐름에 대해 귓동냥으로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디자인 업무를 내가 일방적으로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내 스스로 분기별 업무 계획을 세워보고, 데일리 스크럼으로 매일 매일의 업무를 기록한 것도 잘했다. ( **칭찬** )



4. 다음 도약을 계획하기

퇴사 후엔 나에게 좀 더 맞는 회사, 더 맞는 직무를 찾고 싶다. 나를 만족시킬 수 있는 조건을 세우고 그 기준에 부합하는 회사를 알아보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다. 그래서 세운 기준은,

1. 디자인 팀이 있는 곳 : 더이상 외롭게 디자인하고 싶지 않다ㅠㅠ.. 저를 가르쳐주실 선배님, 함께 고군분투할 팀원님들 어디에 계신가요....

2. 사용자가 많은 Public domain 서비스 : 이제는 새로운 아이템보다는 어느 정도 안정된, 노하우가 축적된 서비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경험해보고 싶다.

그 사이에 성장에 대한 나만의 방법론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지난 6년 간 내가 가장 성장했다고 느낀 때는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거나 수업을 들었을 때가 아니라 실제 필드에서 부딪히며 일할 때였기 때문이다. 개발자 분들과 찰떡같이 커뮤니케이션할 때, 클라이언트의 의도를 찰떡같이 알아들었을 때 큰 쾌감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성장이란 무엇인지, 어떤 방법으로 성장하고 싶은지를 정의해보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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