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농사를 선택한 20대 농부 견습생의 삶
에코는 청년마을을 운영하며 알게 된 친구에요. 22년도 청년마을 워크숍에서 저는 의성 청년마을의 운영진으로, 에코는 영월 청년마을의 운영진으로 만났죠. 동갑내기라 그런지 괜히 더 친근감이 들어서 이후로도 계속 응원하며 지냈어요. 그 뒤로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에코는 밭멍에서 활동하다가, 호주로 훌쩍 워킹홀리데이를 떠나 농장에서 근무하고 돈을 벌며 지내다 다시 영월에 돌아와 이제는 자기 밭을 운영하기 위해 땅을 알아보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기르고파수확학원'이라는 유튜브도 운영하며 본인의 경험을 나누고 있기도 했죠. 다양한 경험을 하며 성장하고 변화했을 에코의 생각이 궁금해 인터뷰를 요청했어요.
이야기를 나누며 다양한 정보들을 알게 되었는데요. 특히 환경문제와 농업의 연관성을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어요. 지키고 싶은 가치를 기반으로 자신의 삶을 굉장히 능동적으로 꾸려나가는 에코의 모습이 많은 분들에게 영감을 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죠.
오늘의 인터뷰는 환경에 관심 있는 분들, 농업 및 농사에 관심 있는 분들, 청년농부가 된 과정이 궁금하신 분들께 추천드릴게요!
많은 분들이 저를 에코라고 불러주시는데요. 본명은 손태원이고, 대구에서 태어나 자랐고 지금은 강원도 영월에 살고 있어요. 영월에서 시골과 농사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것을 목표로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어요.
두 가지 목적을 두고 활동을 했어요. 첫 번째는 저의 목표인 귀농을 실현하기 위한 자금을 모으는 것, 두 번째는 귀농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보고 첫 발을 내딛어보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었는데요. 호주에 가서 일도 많이 하고, 여러 가지 콘텐츠에 대한 고민도 계속 하고, 저만이 할 수 있는 강점을 가진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 연구도 많이 해본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저는 그냥 딱 요약하자면 되게 운이 좋은 사회초년생이었던 것 같아요. 대구에서 태어나 살았고 직장생활도 대구에서 했는데, 특성화 고등학교를 나와서 국민연금공단에 취업을 했어요. 사실 제가농사라는 다른 꿈을 품지 않았다면 평생 그 직장에 있어도 나쁘지 않았겠다 싶을 만큼 좋은 직장이었어서, 되게 즐겁게 일을 했었어요. 돈을 많이 벌었던 건 아니지만 사람들이 정말 좋았거든요. 저를 챙겨주신 분들도 많았고요.
제가 되게 자주 하는 말이 하나가 있는데요. '세상 만사가 다 그렇듯 모든 것은 복합적이다.' 제가 퇴사를 하고 농촌에 온 이유도 처음에는 단순명료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훨씬 복합적으로 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큰 것만 이야기를 해보자면, 퇴사를 결심했던 첫 번째 이유는 멋진 어른이 되고 싶어서였어요. 멋진 어른에 대한 저만의 정의가 있는데, 그 기준을 만들어주신 분은 저희 친할아버지에요. 제가 고등학생 때 돌아가셨는데, 성인이 되고 돌이켜보니 할아버지가 너무 멋진 어른이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희 할아버지는 혼자 해결 못하는 게 없으셨어요. 손재주도 진짜 많으시고, 집에 전기나 배관 등의 문제가 생겼다 하면 혼자 어디서 뭘 구해와서 공구로 뚝딱뚝딱 다 고치시고, 노인의 지혜를 제대로 갖고 계신 분이셨고요. 그러면서도 자기 사람에게는 굉장히 따뜻한 분이셔서 저는 아직도 할머니랑 같이 거실에서 라디오 틀어놓고 춤을 추시던 모습이 기억나요. 정말 로맨틱하셨죠. 게다가 사람들과 나누는 기쁨을 아는 분이기도 하셨어요. 할아버지 집 앞에 팔거천이라는 강이 흐르는데, 지금은 깨끗하게 개발이 됐지만 옛날에는 그냥 강이랑 들판이었거든요. 근데 할아버지가 거기에 코스모스를 매년 엄청 심으셨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그 풍경을 보러 찾아오고 사진찍고 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셨죠. 그런 모든 모습들이 여러모로 제가 나중에 어른이 된다면저런 모습이고 싶다 하는 모델이 됐어요.
근데 그런 기준에서 봤을 때 제가 직장에서 만났던 어른들은 다 마음이 따뜻하고 너무 좋은 분들이긴 했지만, 과연 그분들이 이 직장에서 벗어나서 어떤 사회 시스템이 없는 곳에 갔을 때 스스로 뭔가 다 해결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해봤을 때는 거의 다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조금 다른 길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저도 어쨌든 그 직장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당연히 그분들이랑 비슷한 수순을 밟아 나갈 거니까 비슷한 모습의 어른이 될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농업을 선택한 이유는, 농업은 저에게 있어 저의 가치관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목적이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꿈이기도 하거든요. 우선 이게 수단인 이유는, 제가 전략적인 이유로 농업을 선택했기 때문이에요. 농부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낭만을 자극하고, 경작을 하는 본능을 자극하고, 도시 사람들에게 미지의 영역 같이 느껴지기 때문에 콘텐츠로서의 매력이 있어요. 그래서 농업을 하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영향력이나 그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콘텐츠들이 확실히 있는 거죠. 국내외에 제가 굉장히 동경하는 농부분들이 있는데 그분들이 농업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와 영향력이 너무 멋지더라고요. 그래서 저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농업을 선택한 것도 있어요. 제가 농업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아졌기 때문이었거든요.
환경 문제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어서 농업에 관심을 가지게 됐었고, 농업이 사람들한테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대해 알릴 수 있는 좋은 수단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농업을 선택한 거죠. 만약 농업보다 더 멋진 일이 있었다면 거기로 갔었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동시에 꿈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게 정말 내가 생각하는 대로 그런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에, 꿈이라는 여지도 좀 남겨놓고 있어요. 그리고 저는 아직 제 땅이 없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농부라기보다는 농부 지망생, 견습생 정도라고 생각해요.
일단 농업은 환경 문제가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 역할을 해요. '지구의 평균 기온이 몇 도가 올라가면 어떤 지역에서 옥수수 수용량이 몇십퍼센트 감소한다' 이런 건데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점점 아열대성 기후로 바뀌면서 기존에는 재배가 불가능했던 바나나나 망고 등이 재배되기 시작했고, 사과 재배에 적합한 지역이 점점 강원도쪽으로 올라오는 것 등이 있죠.
저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줬던 거는, 경운에서 발생하는 탄소였어요. 다들 이 부분을 잘 모르시고, 저도 넷플릭스에서 대지에 입맞춤을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처음 알게 된건데요. 우리가 농사를 지을 때 땅을 갈잖아요. 보통 한 해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땅을 갈아놓는데, 그렇게 풀이 원래 가득 자라고 있던 땅을 갈아내게 되면 그 풀들이 땅 속에 가둬두고 있던 탄소들이 다시 공기 중으로 배출이 돼요.
단순하게 얘기하자면, 식물들이 광합성을 하잖아요.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서 탄소는 흡수하고 산소는 공기 중으로 배출하는데, 흡수한 탄소의 일부는 본인이 생장하는 데 사용하고, 나머지는 뿌리를 통해서 토양 속 미생물들에게 전달을 해줘요. 그럼 그 미생물들은 그 탄소를 받아 풀이 자라는 데에 이로운 물질을 전달해주는 식으로 상호작용을 하는데요. 풀이 미생물들에게 탄소를 전달해주기 위해서는 글로말린이라는 단백질 성분을 가지고 탄소를 토양 속에 잡아놓고 있어야 돼요. 그런데 우리가 경운기로 땅을 딱 갈고 지나가는 순간 그런 화학적 결합이 파괴되면서 탄소가 공기중으로 배출이 되는 거죠.
그 사실을 알고 나서 되게 충격 받았었어요. 농사는 자연과 가장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가장 가까이에서 자연을 파괴하고 있는 일이었구나라는 게 충격적이었고, 그래서 오기가 생기기도 했어요. 반대로 생각해보면, 땅을 안 갈고 풀을 키운다면 공기중에 있던 탄소를 다시 땅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요즘 나오는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정책들을 보면 대부분 현재 배출하고 있는 거를 감소시키거나 없애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기존에 경운을 하던 땅을 안 갈기 시작을 하면 오히려 공기 중에 있던 이산화탄소를 마이너스를 만들 수가 있는 거죠.
물론 이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는 건 알아요. 무경운 농사하시는 분들도 옆에서 많이 봤고 저 스스로도 실천을 해 봤지만 경운을 안 하면 불편한 점이 진짜 많은데 반해 땅을 갈면 다 편해요. 땅이 너무 부슬부슬해져서 비가 오면 다 쓸려나갈 수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도 있지만, 그 외에는 정말 편하거든요. 그래서 대규모로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긴 해요. 그래서 어떻게 이거를 조금씩이라도 바꿔 나갈 수 있을까가 저의 가장 큰 궁극적인 고민 중 하나에요. 무경운을 하는 게 어떻게 좋은지,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에 대해서 사람들이 조금 더 알게 하는 것들이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인 것 같아요.
그냥 한 사람이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하면, 지구에게, 사람에게 더 건강한 방식으로 생산된 채소와 과일을 사 먹는 거. 그 소비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게 쉽고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그게 뒷받침 돼야지 저같이 농업을 가지고 변화를 일으키고 싶은 사람들한테 더 도움도 많이 되고요. 예를 들어 지역에 있는 로컬 푸드 매장에서 사먹는 것만으로도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어요. 그 지역 농민들에게 더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고, 원래는 한 네다섯 군데를 거쳐야 되는 걸 한 번만 거쳐서 사먹는 거니까 탄소발자국도 훨씬 줄어들고요.
처음에는 도시농업으로 시작했어요. 저희 집 근처에 텃밭을 10평씩 분양해 준다고 현수막이 걸려 있는 거를 봤어요. 그때 당시에 제가 농업에 대한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환경 문제에는 조금 관심이 더 깊어지고 있는 중이었다보니, 농업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겨서 한번 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해봤어요. 직장 다니면서 퇴근하고 나서 갔다 오고 하는 식으로 계속 했는데, 걸어가기엔 거리가 꽤 멀었는데 차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고민하다 전기 자전거를 샀어요. 그 공간에 물 주는 시스템도 없어가지고, 물 두 통씩 싣고 다녔죠. 그래서 진짜 힘들었는데, 힘든 게 다 상쇄될 만큼 너무 재밌었고 배우는 점도 많았어요.
제일 재미있었던 거는 작물들을 잘 키워가지고 수확을 해서 집에 가져와서 요리해 먹고, 상추 같은 거 좀 뜯어서 회사 사람들한테 나눠주고 이런 게 진짜 너무 뿌듯하고 재밌더라고요. 아무래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하는 거다 보니까 체력이 부쳐서 몇 주씩 못 갈 때도 있었고 처음이다 보니까 요령도 없고 하나하나 다 유튜브 찾아보면서 공부를 하면서 해야 되니까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그래서 사실 제대로 가꾸진 못했지만, 그래도 정말 좋은 첫 연습이 되었어요. 나 농사 한번 좀 지어봐도 될지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됐었죠.
그 이후로는 직장을 그만두고 우프를 가게 됐어요. 도시농업을 하면서 알 수 없는 즐거움, 희열같은 걸 느껴서 더 알아보고 싶었는데, 그렇다고 대학교를 가서 농사를 전공하는 건 막연하더라고요. 이론적인 공부 말고 진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제 눈으로 직접 보고 경험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파밍 보이즈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봤는데, 그게 제 나이 또래 청년 3명이서 우프를 통해서 세계 여행을 하는 내용이었거든요. 거기에서 우프를 처음 알게 됐고, 저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퇴사를 했어요.
우프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드리자면, World Wide Opportunity on Organic Farms의 약자(WWOOF)에요. 유기농 농가가 농사를 짓는데 일손이 필요하면 우프에 호스트 등록을 하고, 저처럼 농사를 배워보고 싶거나 농사 일을 도와주며 여행하고 싶은 사람들이 호스트 리스트를 보고 선택을 해서 얼마 정도 일을 하겠다고 신청을 하는 방식이에요. 거기에 어떤 금전적인 거래도 없고, 저는 노동력을 제공하고 호스트는 저에게 숙식을 제공해주는 방식이죠. 저는 전국의 여러 지역들을 한 달씩 우핑을 하며 돌아다녔고, 그 경험들이 정말 큰 도움이 됐어서, 누가 농사를 지어보고 싶다고 하면 우프를 권하고 싶어요. 1년에 연회비 5만원만 내면 전국 어디든 다닐 수 있거든요. 호스트 그 리스트를 보면 어떤 철학을 갖고 계시는지도 다 나와서, 내가 정말 배워보고 싶은 곳에 가서 배워볼 수도 있어요.
밭멍도 우프를 통해서 알게 됐는데요. 밭멍이 우프 호스트 농장은 아니었는데, 우프에서 팜가드닝 프로젝트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했었어요. 거기에 참여하면서 영월에 있는 내 마음의 외갓집이라는 호스트 농장에서 교육을 받고, 실습 농장으로 밭멍이 지정돼서 저는 일주일 동안 실습을 하러 갔던 거죠. 그때 김지현 대표님을 만났고, 당시 밭멍이 나뭇잎밭의 틀을 딱 만들어놓고 새로운 걸 채워나가려는 시기였어요. 그래서 어디에 뭘 심으면 좋을지를 같이 고민해 보고 공부하면서 처음으로 그 퍼머컬처라는 걸 접하게 됐는데, 신기하고 재미있더라고요. 농사에 디자인적인 요소를 가져와 결합시킨다는 게 매력적이었고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밭멍에 합류하게 됐어요.
사실 저는 딱히 큰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아요. 밭멍이라는 비빌언덕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고요. 밭멍에 오기 전에도 영월의 다른 농장에 우프를 하러 갔었어서, 이미 아는 사람들이 좀 있었어요. 무릉도원면의 설구산방이라는 농장 숙소를 운영하시는 농장에 제일 처음 갔었고, 그 다음에 팜가드닝 교육을 받으러 내마음의 외갓집에 갔었고, 세 번째로 온 게 밭멍이었거든요. 그리고 밭멍을 통해 이것저것 활동들을 하다 보니까 계속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됐고요. 영월의 공무원 분들, 영월에서 재미있는 활동들을 하고 계시는 청년분들을 만나다 보니 정보를 많이 듣게 됐어요. 그리고 물리적 자원은 밭멍의 공간을 제가 거의 제 집처럼 썼다 보니 어려움이 없었죠.
만약 내가 어떤 지역에 매력을 느껴서 그 지역으로 귀농이나 귀촌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먼저 그 지역을 탐색하는 기간이 꼭 필요한 것 같아요. 다들 최소 한 달 정도는 살아봐야 된다고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 지역에서 하는 한달살기같은 것도 좋긴 하지만, 만약 귀농을 하고 싶다면 농장에 일자리를 구해 일해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웬만한 농장은 숙소를 자체적으로 해결해줄 수 있을 테니 많은 게 해결될 테고, 농장을 통해 이어진 사람들을 또 만나면서 지역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을 수 있으니까요.
워홀을 간 제일 큰 목적은 귀농을 준비하기 위한 자금을 모으는 것이었는데, 그러면서 여행도 좀 하고, 농사도 좀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었어요. 호주가 퍼머컬처의 발상지거든요. 그런데 워홀을 하면서는 주로 대규모 농장에서 일하다보니 가치관의 충돌이 자주 있었어요. 체리 농장, 목화를 가공하고 수출하는 회사, 블루베리를 포장해서 마트로 보내는 회사, 아몬드 회사 등에서 일을 했는데요. 호주의 대부분의 농업은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커다란 규모로 농장들이 일사불란하게 돌아가더라고요. 아무래도 그런 거는 제가 처음 결심했던 농업과는 완전히 반대에 있는 형태의 농업이다 보니,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어요. 저는 그저 한명의 노동자였지만, 어쨌든 그 시스템에 제가 기여를 하면서 돈을 벌고 있었으니까요.
그럼에도 배울 점은 정말 너무 많이 있었어요. 그 시간을 통해 왜 우리 세계는 이런 식의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는지 고민하고 공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고, 그러면서 생각의 변화도 겪게 됐어요. 그 전에는 대규모 농업에 대해서 마냥 부정적으로 봤었거든요. 대량으로 재배하면서 대량으로 농약 살포하고 대량으로 이제 수확해서 유통 시스템으로 다 보내고, 그 과정에서 탄소 배출도 엄청나고 토양도 많이 파괴되잖아요. 그랬는데 지금은 그 마음이 좀 더 관대해졌어요. 시스템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인간 사회가 발전해 온 흐름이 있잖아요. 늘어나는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발생한 하나의 시행착오 정도라고 지금은 받아들이게 됐어요.
우리나라의 농업도 사실 나아가고 있는 방향 자체가 점점 대규모 농업으로 가고 있거든요. 시골에는 점점 사람이 없어지는데 부양해야 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확 사라지지는 않다 보니, 농업의 대규모화가 필요하게 되는 거죠. 기술 집약적으로 대규모화해서 시스템화를 하면 사람이 많지 않아도 기계만 잘 갖춰 놓으면 한국 사람들을 다 먹여 살릴 수 있거든요. 그런 계획들을 듣다 보니까 저도 좀 납득이 되더라고요. 그런 부분에 대한 발전도 필요하고, 그렇게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분명히 필요하겠다는 인정이 됐죠. 그럼에도 어떻게 하면 환경 문제들을 조금이라도 줄여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을 하면서 문제가 있는 부분에 목소리를 내고, 변화할 수 있는 여지들을 만들어나가는 데에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농업적인 부분 외에도 가치관의 변화가 더 있었는데요. 저는 호주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이유가 물론 물리적인 차이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심리적 여유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늘 휴대폰에 적어두고 보는 문장이 있는데, '충분한 것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라는 거에요. 그리고 '가진 것 빼기 기대치는 행복이다'라는 공식으로 정리를 해둔 것도 있는데, 호주 다녀오고 나서 그 말에 대해 좀 더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예를 들어 내가 가진 것이 50인데 기대치가 100이라면, 마이너스 50이 되지만, 내가 가진게 10인데 기대치가 0이라면 나는 10만큼 행복한 사람이 되는 거잖아요. 호주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거에는 기대치가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더 적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굉장히 많은 노력이 필요하잖아요. 가장 쉽게 바꿀 수 있는 건 결국 제 마음가짐이거든요. 기대치를 줄이면 나는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저의 큰 가치관으로서 정립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대치가 높은 이유는 그게 본인의 기준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릴 때부터 너무나 당연하게 어른들로부터 들어온 이야기들, 주변 사람들이 사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거를 통해 내 기대치가 형성이 되기 때문에 높게 형성이 되는 것 같고요. 확실하게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자기 객관화를 충분히 한 후에 기대치를 다시 설정한다면 자연스럽게 그게 낮아질 거라고 생각을 해요.
제가 게임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유일하게 오래오래 하고 있는 게임이 포켓몬고예요. 처음 출시돼서 완전 핫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하고 있는데요. 저는 센 포켓몬 모으고, 배틀에서 이기고 이런 거 별로 관심 없어요. 오직 도감을 채우는 거. 내가 모든 포켓몬을 다 만나보고 그 포켓몬을 잡았다라는 걸 기록을 남긴 게 저한테는 너무 재밌거든요. 근데 저한테는 탐조도 이 포켓몬고랑 비슷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제가 원래도 야생의 자연을 관찰하는 거를 좋아하긴 했는데요. 새에 확 빠지게 됐던 계기는 유튜브의 새덕후라는 채널을 보고 나서 새에 대해 좀 더 알게 됐고, 그러면서 관찰을 해보다 보니 포켓몬고에서 느꼈던 즐거움이 점점 생기더라고요. 오늘은 이 새를 만났고, 다음날에는 또 다른 새를 만나고 하다 보니 제 머릿속에 도감이 생기게 됐어요. 호주에서 탐조의 즐거움을 알게 돼서 호주 새는 제가 사진으로 기록한 것만 해도 한 150종 되고, 한국 새는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 30종 정도 관찰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새는 요정굴뚝새(fairy wren)라는 새인데요, 호주에서는 비교적 흔한 새예요. 얼굴이 파랗고 거기에 까만색 주둥이가 있는데, 사실 자연에서 파란색이 되게 귀한 색깔이다 보니 눈에 띄기 쉬워서 생존에도 유리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저는 제가 엄청 희귀한 새를 발견한 줄 알았어요. 알고 보니 엄청 흔한 새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갈 때마다 마주치면 너무 귀여워서 한참 쳐다보게 되더라고요. 하는 짓도 너무 예뻐요. 구애를 할 때 꽃잎을 물고 와가지고 암컷에게 전달을 해주거든요. 그런 게 너무 낭만 있기도 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최애로 꼽고 싶어요.
농사하는 시기가 되면 한 새벽 5시쯤 일어나 나가서 밭일을 해요. 풀을 벨 수도 있고, 모종을 더 심을 수도 있고, 아주심기를 할 수도 있고... 그런 일들을 열심히 하다 보면 11시쯤에 돌아와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요. 자고 일어나서 필요하면 일을 조금 더 하고, 만약 오늘 뭐 밭에서 할 일은 다 끝났다면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일 작업 같은 걸 하죠. 그 사이사이에 식구들이랑 같이 밭의 채소를 수확해 공용 주방 공간에서 요리를 해먹기도 하고, 앞으로 농사를 어떻게 할 건지 이야기도 나누고, 책도 읽고 기타도 치고 뭐 그런 식으로 평화롭게 보내요.
내가 가꾼 작물로 직접 요리를 해서 먹는 것이 주는 기쁨이 정말 큰데요. 저도 아직 완벽히 자급자족을 하는 사람이 되기까진 갈 길이 멀지만, 그런 삶을 동경하고, 앞으로도 그렇게 평생 살고 싶어요. 어떤 사회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화폐 교환 없이 내가 씨앗부터 길러서 내 스스로 먹을 걸 조달해서 사는 의미도 크지만, 그런 행위가 나의 삶과 하나가 되었을 때 가지는 의미가 정말 크다고 느껴요. 내 밭에서 작물을 직접 키워서 가족들과 함께 배부르게 요리를 해 먹고, 내 이웃들한테도 좀 나눠주면 그들도 나에게 어떤 음식을 나눠주고. 그런 게 내 라이프 스타일이 됐을 때 정말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을 해요. 그렇게 됐을 때 내가 얼마나 행복할지 기대가 돼요.
제가 요즘 제일 많이 시간을 쏟고 있는 거는 제 땅 구하는 거에요. 땅 구하고 싶은 동네의 마을회관에 가서 음료수 드리면서 어디 괜찮은 땅 없는지, 동네 분위기는 어떤지 그런 것들 어르신들한테 여쭤보고 있어요. 어르신들이랑 얘기를 하다 보면 항상 똑같이 하는 말씀이 있는데, '땅을 구하는 거는 배우자를 찾는 거랑 똑같다'는 말이에요. 배우자를 찾는 건 굉장히 어렵고 엄청 심사숙고해야 되는 일인 거잖아요. 그런 것처럼 땅도 정말 많은 고민이 필요하고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농장은 어떻게 있었으면 좋겠고, 그 뒤로 집이 어떻게 있었으면 좋겠고 하는 제가 원하는 그림이 딱 있는데요, 우선 그 그림에 맞는 땅을 위주로 찾고 있어요. 딱 봤을 때 그림이 그려지는지가 제일 중요하고요. 그 다음으로는 법적인 문제를 봐야 해요. 집이나 온실을 짓고 싶다면, 용적률이나 건폐율이 충분히 나오는지, 도로가 진입하는 데 문제는 없는지 그런 것들을 알아봐야하죠. 그동안 느낌이 오는 땅들은 몇 개 있었는데, 좀 더 제대로 법적으로 검토를 하다 보니까 걸리는 게 너무 많고 복잡해지더라고요.
일단 땅을 구하는 게 끝나면, 작은 규모에서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퍼머컬처도 적용시키고 제가 전에 배웠던 다른 친환경적 농법에서도 필요한 것들을 가져와서 종합적으로 친환경적으로 농사짓는 농장을 운영하고 싶어요. 꾸러미 같은 걸 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농장이 됐으면 좋겠다는 꿈을 저는 항상 가지고 있어요. 농장이라고 하면 대부분 그냥 생산을 위한 공간으로 보잖아요. 하지만 저는 밭도 충분히 멋져질 수 있고 사람들이 찾아오고 싶은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제가 동경하는 멋진 외국의 농부님들 밭을 보면 너무 놀러가고 싶거든요. 정원같이 아름다운 농장을 만들고, 사람들이 오고 싶은 콘텐츠 같은 것도 만들어서 계속 사람들이 오고 싶은 농장을 만드는 게 저희 목표에요. 거기에 필요한 수단으로 어떤 체험이나 교육을 할 수도 있고, 카페 같은 게 될 수도 있겠죠. 그거는 아직까지 조금 더 구체화해 나가는 과정이지만, 아무튼 그 목표는 뚜렷합니다.
그런 청년들이 생긴다는 거는 일단 너무 반가운 이야기인 것 같아요. 마음 같아서는 아무것도 필요없고 그냥 오라고 하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우선 자기만의 목적을 명확하게 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환경 문제에 어떤 식으로 기여를 하고 싶은지를요. 혼자 자급자족하며 무해한 삶을 살면 충분히 만족이 될 것인지, 아니면 단체를 만들거나 비즈니스를 해서 이 환경 문제 해결에 더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건지를 명확하게 정하기만 해도 꼬불꼬불 돌아가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저는 처음에 두 가지 마음이 다 공존했어서 많이 돌아왔거든요.
그리고 만약에 농사를 진짜 지어보고 싶다면, 우프를 꼭 해보세요. 내가 이상적으로 그리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호스트 중 한 명은 무조건 있을 거에요. 그 분을 찾아가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고, 어떻게 시작을 하셨는지, 지금의 삶은 얼마나 만족스러운지 그런 것들을 그냥 물어보세요. 그분들은 언제든지 그런 거에 대답해 줄 준비가 돼 있어요. 가서 직접 보고 들으면 생각이 변화할 수도 있으니 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는 것 같아요. 다만, 너무 바쁜 시기는 피해서 가는 게 좋아요.
더 궁금한 게 있다면 언제든 저한테 연락 주세요. 저는 빨리 누군가 와서 저보다 앞서 갔으면 좋겠어요. 진짜 잘 해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제 사업이 엄청 크게 번창해서 제가 막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그런 마음은 크게 없고, 저 같은 사람들이 더 많이 들어와서 같이 영향력을 더 많이 펼쳐주셨으면 하는 마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