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에 서울을 떠나 공주에 식당을 연 이유
저는 '눈이 반짝반짝한 사람과 대화하는 게 좋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이야기를 나눠보면 하나같이 다 눈이 반짝거리더라고요. 그런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저도 덩달아 에너지가 생기고, 뭔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하죠.
승희님도 그런 사람이었어요. 몇 마디 나누지 않았는데도 '이 사람 나랑 잘 맞을 게 분명해!'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번 인터뷰를 하면서 그 생각이 정확했다는 걸 느꼈어요. 승희님은 정말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 하고 싶은 일들을 열정을 다해서 해나가는 사람이었거든요. 이야기를 나누면서 얼마나 많은 인사이트를 얻었는지 몰라요.
서울 밖에서의 삶을 고민하다 보면 창업을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꼭 한 번씩은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지역별로 청년 창업 지원 사업도 워낙 많다 보니 원래 창업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잘 활용하면 정말 좋은 기회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승희님은 스물다섯이라는 어린 나이에 창업해 벌써 블루리본도 받고, 가게 규모를 확장해서 2호점까지 낼 만큼 많은 호응을 받고 있는데요. 승희님과 이야기를 나눠보면서, 이런 사람이 하는 가게라면 잘 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다운 삶, 나만의 길을 개척하는 것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오늘의 인터뷰를 추천드려요. 많은 용기와 인사이트를 얻으실 수 있을 거에요.
저는 충남 공주의 원도심 제민천 라인에서 사계반상이라는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강승희라고 해요.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서 수원에서 자랐고, 대학에 진학하며 다시 서울로 가서 살았어요. 경희대학교 조리과를 나왔고, 학교를 다니며 F&B 관련해서 정말 다양한 활동들을 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저는 장래희망을 요리사라고 적었었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쭉 F&B가 아닌 일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어죠.
학교 앞에 있는 사회적 협동조합 녹원이라는 곳에서 팽주(*차를 우려서 대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활동했던 경험이 저에게 정말 큰데요, 학생들끼리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형태라서, F&B 활동과 사회공헌 활동을 모두 하는 찻집이에요. 회기 쪽에 있는 경희대, 외대, 시립대 친구들이 주로 활동했고, 조리과뿐만 아니라 다양한 학과 학생들이 많이 모였었어요. 보수를 받지 않고, 벌어들이는 수익금은 온전히 그 공간 운영비와 공헌 활동을 위한 비용으로 쓰이는 형태에요. 제가 굉장히 좋아하던 곳이었고, 그러다 보니 남들도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지원을 했었죠. 처음에는 메뉴를 개발하거나, 농가에 찾아가면서 농산물을 가공한 레시피를 개발하는 활동들을 주로 했었는데, 나중에는 사회공헌 활동 쪽으로도 완전 매력을 느껴서 빠지게 됐어요.
월드 푸드 페스티벌(WFF)도 재미있게 했었는데요, 조리과에서 1년에 한번씩 진행되는 행사에요. 베이커리 팀, 케이터링 팀, 비어팀, 키친 팀 등이 있고, 저는 그 중 키친팀에서 일을 했어요. 졸업하기 직전에는 키친 팀 헤드 셰프까지 하게 됐죠.
WFF를 할 당시 외식경영학과 김태희 교수님께서 저에게 한식과 관련된 좋은 프로그램을 많이 추천해 주셨어요. 그 때도 '한식 퀴진을 바탕으로 레스토랑을 운영하게 됐으니, 장이나 발효음식에 대해 배워보는 게 어떻겠냐'면서 내일의 식탁이라는 곳에서 만든 미식 투어 프로그램을 추천해주셨죠. 논산에서 하는 발효 미식 투어 상품이었고, 거기에 갔더니 곡물집 직원이 있었어요. 그때 처음 곡물집을 알게 됐는데, 그 직원분이 곡물집과 공주를 굉장히 사랑하시는 공주 토박이셨거든요. 그게 너무 매력적인 거예요. 본인이 보통 평생 살아온 지역에는 '여기 정말 대단하고 좋은 곳이야'라는 마음을 갖기 어려울 것 같은데, 그렇게 애정하시는 걸 보니 어떤 곳이지 궁금했고, WFF가 끝난 뒤 공주로 여행을 가게 됐어요. 마침 그 때가 공주에서 1년 중에 제일 큰 축제를 하는 기간이었는데, 가보니까 공주가 좋아졌고, 공주에 살고 싶은데 어떡하지? 하다가 곡물집에 취직을 하게 됐어요.
대학 생활을 하는 5년 정도 동안 서울에서 너무 많은 걸 해본 거예요. 서울에 되게 많은 커뮤니티도 있고, 놀거리도 있고, 제 친구들도 다 거기 있고, 가족들도 다 근방에 있거든요. 학교 생활하는 동안 코로나가 터져서 휴학을 하고 취직을 하게 되면서 학교 밖을 경험할 기회도 되게 많았어요. F&B와 관련된 활동으로는 교육도 들어보고, 커뮤니티도 들어가 보고, 취직도 해보고, 찻집도 운영해 봤죠. 학교 안에서 할 수 있는 동아리, 학회, 행사, 활동 다 해보니까, 졸업할 때 쯤에는 내가 만약 대기업이나 스타트업에 들어갈 게 아니면 서울에서 하고 싶은 게 없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전 세계가 이렇게 큰데 한국은 그 중에서 되게 작고, 서울은 그중에서도 더 작잖아요. 그러면 적어도 해외는 아니더라도, 서울이 아닌 데서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 삶이 유한한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 그 무렵에 마침 공주에 빠지고 있었고, 서울이랑 거리상으로도 가깝다 보니 여기로 오게 됐어요.
공주는 걷기가 되게 좋아요. 서울은 걷기가 힘들잖아요. 걸어도 걸어도 계속 비슷한 풍경들만 나오고요. 아스팔트, 건물들, 주기적으로 있는 버스 정류장, 그 정도? 교통이 너무 잘 돼 있으니까 걸을 일도 없고요. 그런데 공주는 어디를 가든 다 산책하는 길 같고, 실제로 되게 바람도 잘 불고, 해도 잘 들어오고, 뷰가 너무 좋아요. 한옥이 많은데, 상업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느낌이라 좋고요. 그러다보니 피로감이 덜한 것 같아요. 자연물이 가까이 있고, 계속해서 풍경이 바뀌니까요. 게다가 배산임수 지형이에요. 그래서 정서적으로도 살기 좋은 느낌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만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작은 가게들이 되게 많아요. 그러다 보니 즐길거리가 되게 많고, 그 사람들의 스토리나 캐릭터 같은 게 그 자체가 매력이다 보니까 소비하러 간다기보다는 이야기를 들으러 간다는 느낌이 좋았던 것 같아요. 같이 이야기 나누고 싶은 사람이 많은 공간이었죠.
저도 제가 이렇게 빨리 창업을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저는 제가 어디 소속돼서 일하는것보단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큰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라, 언젠가 창업을 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는데, 현실적으로 직장을 다니다가 30대쯤 하지 않을까 이 정도로 생각했었죠. 그런데 되게 자연스럽게 일찍 창업을 하게 됐어요.
제가 곡물집에서 메뉴 개발자로 일을 했었거든요. 일을 하다 보면 더 공부하고 싶은 그런 생각이 계속 드는데, 소속이 되어 있다 보니까 공부를 위해서 자유롭게 휴가를 낼 수 없잖아요. 그런 게 좀 아쉬웠고, 무엇보다 제가 거기에서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 더 큰 임팩트를 더 이상 못 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공간이나 비즈니스의 특성상 계속해서 메뉴를 찍어낼 수가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제가 아닌 멤버들도 그 메뉴를 만들 수 있어야 되고, 정해진 원가나 판매가의 선이 있고, 메뉴를 한번 만들어 놓으면 그 이상으로 디벨롭하거나 새로운 메뉴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좀 목마름이 있었어요. 대표님께 이런 마음을 말씀드렸더니, '그러면 이제 우리 굿바이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해주셔서, 굉장히 응원 받으면서 나왔어요. 여전히 많이 응원해주시고요.
마침 제가 퇴사하던 시기에 주식회사 퍼즐랩에서 청년 창업가에게 공간을 주고, 랩실처럼 쓸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사업이 있었어요. 거기에 선정이 돼서, 1층에 F&B를 채우는 팀으로 들어가게 됐죠. 사실 처음엔 정말 가볍게 시작했어요. '창업을 해서 내 가게를 만들어야지'라는 생각보단, 내가 하고 싶은 걸로 한 공간을 채웠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있을가 하는 가능성만 좀 보고 싶었죠. 그런데 정말 많은 분들이 찾아와 주셔서, '이 공간에서(*언덕, 주택가에 있어 상업적으로 위치가 좋진 않았다) 이렇게 미숙한 때에도 많이 찾아주신다면, 이 아이템이 공주에서 사랑받을 수 있겠다' 이런 가능성을 보게 됐어요. 그리고 계약이 끝나던 시점에 다시 서울로 가야 되나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주변 분들이 가지 말고 계속 있어 달라는 말을 많이 해주셨고요. 그 때 감동이 정말 진했던 것 같아요. 클로징 파티를 열었는데, 오프닝 파티 급으로 정말 많이 와주셨고, 그래서 서울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여기서 계속 해야겠다 싶어서 새 공간을 알아보게 됐어요.
처음에는 혼자서도 운영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하고 싶어서 일부러 작은 곳을 골랐고, 집에서 먹는 음식이지만 대접받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어서 일부러 제민천 라인에서 좀 떨어진 고요한 곳에 자리를 잡았어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와주셨고, 그러다보니 더 큰 공간이 필요하게 돼서, 제민천 라인에 좀 더 큰 규모로 2호점까지 열게 됐죠. 제가 워낙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다 보니, 식당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면서도 프로젝트성으로 굴릴 수 있는 공간이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로컬의 장점은 우선 임대료가 낮다는 거죠. 그리고 그 창업가들의 스토리나 개개인의 캐릭터를 되게 존중하는 문화가 있는 것 같아요. 서울에서 가게를 열면, 비슷한 컨셉을 가진 식당이 많으면 묻힐 수도 있잖아요. 근데 여기는 각 가게의 개성이 좀 더 부각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꼭 염두하셔야 할 게, 임대료가 계속 올라요. 내가 잘 할수록 이 동네가 살아나게 되잖아요. 그러면 임대료는 당연히 오르게 되는 것 같고, 그걸 염두하고 계약을 하는 게 좋아요. 물론, 아무리 오른다고 해도 서울에 비하면 굉장히 낮은 수준이긴 하죠.
지역이다 보니 서로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 강해서, 그냥 서울에서 바로 내려와서 창업하시기보다 여기에서 살거나 자주 방문해서 얼굴을 익숙하게 만들고, 유대관계를 잘 쌓아놓는 게 좋아요. 그래야 정보를 잘 받을 수 있어요. 저는 곡물집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좀 더 쉽게 시장 조사를 할 수 있었고, 그렇게 알게 된 분들을 통해서 사업이 좀 더 쉽게 확장될 수 있었어요.
아무래도 로컬이 시장의 파이 자체가 작다 보니, 정말 돈을 벌기 위해서 창업하는 사람이라면 추천하지 않고, 나의 잠재력을 테스트해보고 싶다거나, 내 아이템을 시장에 선보이고 싶다 하는 사람들에게는 추천해요. 서울에서는 들어가는 고정비가 너무 많잖아요. 그러다 보면 내가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거를 더 쫓게 된다고 보거든요. 근데 로컬은 아무래도 각자가 하고 싶은 걸 존중해 주는 문화도 있고, 임대료가 낮아서 상대적으로 좀 부담이 덜하니까, 꿈을 좇는 사람이 오면 좋겠어요.
녹원에서 활동했을 때, 최소 1년에 한 번씩 지역으로 워크숍을 다녔어요. 한 번은 홍천으로 오미자 농가 워크숍을 갔었는데, 저희가 무노리 리버마켓이라는 곳에서 만나게 된 농부님이고, 그분께 계속 오미자 청을 받아서 메뉴를 만들었었거든요. 그래서 그랬는지, 평소에는 워크숍을 가도 별로 감흥이 없었는데, 그 때는 혼자 막 눈물을 글썽일 만큼 어떤 감정이 들었어요. 농가를 둘러보고 농부님의 이야기를 듣는데, '이렇게 살면 평생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그때 '내가 농부와 가까이 살아야겠다. 그리고 생산자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그걸 녹이는 음식을 하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어요.
제철 음식에 관심을 갖게 된 거는 공주에 와서예요. 곡물집에서 일을 하다 보니 원재료에 관심이 많아진 거예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마르쉐 시장을 자주 가게 됐고, 거기에 나오시는 농부님들은 시기에 맞춰서 가지고 나오시는 게 달라지잖아요. 그걸 보다 보니 '이걸 가지고 음식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2023년도 여름에 제철음식을 활용한 요리를 하는 '공주에게 맡김 차림'이라는 오마카세 형태의 파티를 열었어요. 제 친구들이 제가 공주에 왔을 때부터 저를 공주라고 불렀거든요.
여름에만 먹을 수 있는 초당 옥수수 같은 걸로 스프 끓이고, 감자도 빨간 감자, 보라 감자 이런 식으로 감자 종류도 되게 되게 다양하게 하고, 이런 것들을 준비했는데 저도 너무 재밌고, 오신 분들도 너무 좋아해 주셨어요. '감자가 이렇게 다양해? 복숭아가 이렇게 다양해? 이렇게 종이 많다고?' 이런 반응들이었죠. 사실 이런게 아무리 궁금해도, 혼자서 먹기엔 부담스럽고 어렵잖아요. 근데 제가 행사를 하니 식재료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던 분들이 많이 와주셨어요. 공주의 매력이 또 '이런 거 해요'하고 올리면 사람들이 많이 와주거든요. 그런 경험을 하다 보니 '사람들이 이런 거 되게 좋아하는구나', '나도 이런 거 좋아하는구나'를 알게 됐던 것 같아요. 프로토타입을 많이 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일부러 '프로토타입 해야지'라고 했다기보단 제가 하고 싶은 거, 재밌을 것 같은 거를 해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반응이 생기고 영감을 얻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곡물집에서 받았던 미션 중에 시그니처 디저트를 만들어 달라는 게 있었어요. 대표님께서는 원래 남들은 안 하는 걸 했으면 좋겠다 하셔서 밤을 빼자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제가 진짜 그때 왜 그랬는지 당돌하게 '남들이 다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하면서 대표님을 설득했고, 마침 대표님이 알고 지내시던 농부님 중 밤을 하시는 분이 계셨어요. 그런데 그분이 나이가 굉장히 많으시고 완전 충청남도 남자 그 자체이셔서 소통이 너무 힘든 거예요. 그래서 라포를 쌓으려고 마르쉐 시장 쫓아가서 같이 밤 팔고, 농부님 밤 받아가지고 홍보하고, 농가 찾아가서 밤 같이 줍고 이러는 걸 되게 많이 했어요. 그렇게 하니까 농부님의 마음이 열리더라고요. 마음을 여신 뒤로는 더 잘 해주고 싶어 하셔서 메뉴 개발에도 굉장히 도움을 많이 주셨고, 그래서 지금 판매하고 있는 곡물집 시그니처 디저트인 밤 와플이 완성됐죠.
되게 단순할 수 있는데, 농부님들도, 시장 상인분들도, 제 부모님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부모님은 내 마음같이 말씀하지 않으셔도 이해할 수 있고 어떻게든 소통이 되잖아요. 그런 것처럼, 맛있는 거나 잘 된 반찬이 있으면 챙겨 드리고, 바쁘신 것 같으면 도와드리고 그랬을 때 되게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많이 사서 매출을 올려드리는 것보다도 그걸 더 좋아하세요. 일손이 부족한데 요즘 사람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 하시면 그냥 쉬는 날 친구들 다 모아가지고 농활 가듯이 가서 놀면서 일손 돕고, 시장 갔을 때 너무 덥다 싶으면 커피 그냥 싼 거라도 사서 드리고. 내 부모님이 힘들다고 생각하면 도와주고 싶잖아요. 그렇게 하니까 '내 아들 딸보다 너를 더 많이 보고 너랑 더 많이 얘기한다'는 말을 많이 하시거든요. 그렇게 되면 뭐든 더 도와주시고, 좋은 거를 내어주시더라고요.
저도 처음 시작은 나한테 필요한 사람이니까, 내가 필요한 만큼 나를 도와주실 때까지 내가 먼저 노력을, 애정을 다해보자 하고 시작한거였거든요. 근데 그러다가 정들어 버린 거죠. 이제 나한테 필요한 사람이 아니어도 내 삶에 들어와 버려서 사람 자체로 좋아져 버렸어요.
저희 가게가 좀 설명이 많이 필요한 가게잖아요. 그냥 단순히 음식을 만들어서 저렴한 가격에 팔고 이런 게 아니다 보니 브랜드 가치와 지향점에 공감하는 사람이 필요했고, 그래서 더 구하기가 어려웠어요. 단순 업무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들을 해내야 되다 보니까요. 그래서 지역 내에서는 사실 잘 안 구해졌고, 서울에서 동료를 구하고 싶었는데, 그러다 보니 그들도 저처럼 연고 없는 곳에 내려와서 집을 구하고 외로움을 견디는 과정을 거쳐야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더 어려웠어요. 여러 친구들에게 노크를 했었는데, '나는 언젠가 대기업에 들어가 보고 싶은데 지금 준비하지 않고 나이 들어서 준비하면 잘 안 될 것 같다.' 이런 이유로 거절한 친구들도 많았죠. 너무 공감이 되면서도, '우리 가게가 그만큼 인지도 있는 가게가 아니라 그런가' 이런 서글픔도 들었어요.
로컬도 참 좋은데, 우리 브랜드도 참 괜찮은데 이런 생각이 들면서도, 그 친구들이 바라는 삶도 존중할 수 있으니까요. 사계반상 초기에 공주에서 6개월 살면서 일하다가 기업에 취직해보고 싶어서 다시 돌아간 친구도 있었고요. 그런 과정을 거치다 최근에 직원을 구했거든요. 그런데 이 친구는 역으로 지역에서 일해보고 싶다면서 저에게 먼저 문을 두드려준 친구예요. 서울이 아닌 곳에서 일 해보고 싶은데, 리스크가 있다 보니 자기 가치관과 부합하는 브랜드에서 해보고 싶었고, 그게 마침 사계반상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진짜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주변 분들 덕분에 많이 해봤어요. 사실 제가 아주 어릴 때부터 가져온 목표는 '한국 사람들이 좀 한국 문화를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거였는데요, 평가 절하되지 않는 한식, 자국민들이 오히려 더 올려치기 해 주는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원래 저는 그 방법이 퀄리티 높은 한식을 만들어서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이 너무 많더라고요. 공주에 내려와서 지역 예술가들과 함께 제주도의 '해녀의 부엌'처럼 F&B와 공연을 접목한 것도 해봤고, 컬리너리 투어에도 관심이 생겨 미식 큐레이팅 자격증도 땄죠.
컬리너리 투어는 한국말로 하면 '미식 관광'이에요. 역사, 문화, 지리적으로 그 지역의 스토리를 담은 투어 코스를 만드는데, 투어의 거점이 F&B인 거죠. 그 지역에 과거에서부터 내려오던 스토리를 잘 담고 있는 음식점이 있거나, 굉장히 오랫동안 운영되고 있어서 그 지역에서 거점의 역할을 하는 곳이 있으면 스팟으로 잡고, 시장 투어 같은 걸 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코스를 다니면서 지역의 지리도 같이 지형도 느끼고 자연스럽게 스토리를 듣는 그런 투어예요.
저도 몇 번 진행을 해봤는데, 산성시장에서 사계반상이 구매하는 구매처들을 같이 돌면서 상인분들과 직접 대화하며 제철 식재료를 구매하는 거예요. 그리고 사계반상으로 와서 구매한 식재료로 도시락을 만들죠. 나물 무치는 법이나, 우리 세대가 알았으면 좋겠는 기본적인 한식의 방향을 소개드리고, 장, 기름, 곡물, 쌀 같은 것들을 농가의 스토리랑 엮어서 소개해 드리는 코스를 하고 있어요.
요즘 직원분께 저녁에 외롭지 않은지 계속 물어보는데, 왜냐하면 제가 그랬었거든요. 일-집-일-집을 반복하다 휴일마다 항상 서울 올라가거나 친구들이 내려오고 그랬었어요. 그런데 어떤 곳을 가든, 초반에 외로운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한 거죠. 저는 초반에 혼술도 많이 하고, 동네에 있는 모든 곳을 다 혼자 다녔거든요. 그러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거를 알게 되더라고요. 일기도 쓰고, 책도 읽고 하면서요.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인연이 하나둘씩 늘어나게 됐어요. 동료들이 추천해주는 커뮤니티에 참여한 게 도움이 됐죠. 제민천 일대를 달리는 제민 러너스도 있었고, 저희 동네에 책방이 많아서 북토크나 독서모임도 많았어요. 그리고 자주 가는 가게의 사장님들이랑 친해져서 휴일에는 사적으로도 만나서 놀기도 했죠. 이 동네에 창업가들도 많고, 제 또래 청년들도 많아서 어렵진 않았어요. 그리고 제가 사계반상을 시작한 뒤로부터는 불특정 다수가 언제든 찾아와서 말을 걸 수 있는 사람이 됐잖아요. 그러니까 더 많이 친해지게 되더라고요. 저는 손님들이 말 거는 거 엄청 좋아해서, 가게 벽에다가 '현지인이 추천하는 공주 스팟' 알고 싶으면 말 걸어달라고 써놓기도 했어요.
저희 집에 해가 엄청 잘 들어오거든요. 그러다 보니 일찍 일어나게 되고, 일찍 일어나서 열심히 살다 보니까 밤에 조금 일찍 자요. 저희 동네가 되게 조용해서, 차분한 분위기에서 저녁을 보낼 수 있거든요. 서울에 살 때는 맨날 새벽 4시에 자고 11시에 일어나고 그랬어요. 집 앞이 바로 술집이고, 주변에 친구도 많아서 주 6일 술 먹고 그랬는데, 지금은 이제 가게를 하니까 조금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시장 보죠. 아침 7시에서 8시 사이에 장이 서거든요. 시간 맞춰 장 보고 와서 점심 장사 준비하고, 직원이랑 재밌게 하다 보면 저녁 되고, 퇴근하면 필라테스 하거나 제가 좋아하는 술집이나 카페 가서 시간 보내고 해요.
서울의 최고 장점은 제 친구들이 있다는 거예요. 저랑 같이 녹원에서 활동했던 친구들과의 인연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데, 그 친구들이 다 저처럼 살거든요. 만나기만 해도 인사이트가 되고, 서로의 삶을 되게 의문점 없이 응원해 주는 관계라서, 그 친구들을 만나기만 해도 힐링이 되거든요. 그런데 그거 말고는 서울의 장점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지하철도 이제 너무 힘들고, 길을 걷기만 해도 막 기가 빨리더라고요. 그리고 스마트폰 없이 어디를 못 가겠어요. 서울에서 살 때는 그게 너무 당연했는데, 지금은 못하겠어요. 집값도 너무 비싸고요.
도파민의 도시라고 하잖아요. 내가 정말 필요하지 않은 소비도 하게 되는 그런 도시인 것 같아서, 저는 딱 지금이 좋은 것 같아요. 여기서 이렇게 건강하게, 스스로를 잘 돌보고 내가 하고 싶은 비즈니스 하면서 인정도 받고 살다가, 가끔씩 서울을 가는 거죠. 거리가 멀지 않으니까 제가 가고 싶으면 언제든 갈 수 있고, 제 친구들도 저를 보고 싶으면 언제든 올 수 있는 정도의 거리. 그래서 공주가 그래서 딱 좋은 것 같아요. 그거 말고 공주의 단점이라고 하면, 타코 맛집이 없다는 거 빼곤 잘 모르겠어요.(웃음)
저희 집도 가게도 월세가 정말 말도 안 되게 저렴해요. 제가 잘 구한 거라서 공주의 모든 집이 이런건 아닌데, 저는 월세 20만원으로 단독주택의 2층과 마당까지 전부 제가 사용하고 있어요. 요즘 공주도 집값이 많이 올라서 아주 드라마틱하게 저렴하지는 않은데, 그래도 같은 돈이면 서울보다 훨씬 쾌적한 집을 구할 수 있죠. 서울에서 10평 정도 되는 집에 살 돈이면 아파트에서 살 수 있어요.
집에 들어가면 쉬는 느낌이 들어야 되는데, 서울 살 때는 정말 잠자고 씻고 이 정도였던 것 같거든요. 주방도 작고 냄새도 심하다 보니 밥을 해먹기도 조금 힘들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훨씬 쾌적해요. 집에서 계속 머물고 싶고, 넓으니까 누구 초대하기도 좋고요.
집이나 가게를 잘 구하는 팁은 당근마켓, 교차로(신문)을 열심히 보는 거에요. 지역이다 보니 신뢰 관계가 좀 두터운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부동산을 끼지 않고 직접 계약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저도 집이랑 가게 1,2호점 다 건물주분과 직접 계약했거든요. 아니면 지역 정보를 다 꿰고 있는 가게 사장님들을 통해서 '어디가 곧 나온다더라'하는 소식을 듣는 것도 좋아요. 2호점 같은 경우에는 제가 계속 찜해 놓은 공간이었어서, 건물주분의 번호를 알아내서 '거기 빠지면 저한테 먼저 연락 주세요' 이렇게 연락을 드려놨어요. 그래서 원래 있던 가게가 폐업하기 몇 달 전에 제가 이미 연락을 받았었죠. 건물주분도 제가 1호점을 잘 하고 있는 걸 아시니까 저한테 그 건물로 들어와 줬으면 좋겠다고 역으로 제안해 주시기도 했고요.
완전 100%예요. 이 동네에 살면 이 동네에서 아이를 키우는 가족을 보게 되잖아요. 되게 평화로워 보여요. 물론 육아가 평화로운건 아니겠지만, 동네에서 아이를 보는 시선이 따뜻하다 보니 육아 외적인 힘듦이 좀 덜하신 것 같더라고요. 아이가 마스크 없이 마음 편하게 숨 쉴 수 있는 공기, 안전하게 걸어다닐 수 있는 길, 아이를 예뻐해주는 주변 사람들... 시끄럽게 우는 애가 민폐가 될까 봐 식당에 가기가 꺼려진다던가 그런 분위기가 없어요. 그리고 서울은 어디 카페를 가든 음식점을 가든 아이를 보기가 어려웠던 것 같은데, 여기는 어딜 가든 아이가 있고, 저희 가게도 아이 동반해서 많이 오시거든요. 그런 걸 보다 보니 아이 키우기 되게 좋은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고, 예쁜 아이들을 많이 보다보니 아이가 낳고 싶어졌어요. 그러니까 젊은 나이에 출산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혼을 빨리 하고싶어졌고요.
그리고 지금 저의 짝꿍이 저랑 마찬가지로 비즈니스를 하다 보니, 서로의 마음을 잘 알다 보니까 대화하면서 인사이트도 많이 되고, 인생의 동반자 같은 느낌이 들어요. 남녀간의 사랑 말고도 다른 것들이 우리 사이에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서로가 되게 친구 같고 연인 같고 뭔가 보호자 같기도 하고 그래서 결혼은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물론 행복해요. 사실 저는 어디에 살든 행복할 수 있어서, '공주에 살기 때문에 행복해요'는 아니에요. 서울에서의 삶도 분명 행복했거든요. 그런데 좀 결이 다른 행복인 것 같아요. 그리고 나다운 삶을 사는 것도, 저는 어디서든 나답게 살 수 있지만, 이 곳에서는 그러한 저의 삶을 많은 사람들이 응원해 주고 인정해 주니까, 그게 좋아요. 일단 주변 사람들이 호응해 줘야 이게 돈이 되는구나를 알 수 있잖아요. 업에서 중요한 게 '내가 먹고 살 만큼의 수입이 나오느냐'이니까요. 그게 충족되어야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데, 저는 여기서 하고 싶은 게 너무 많고, 그게 호응을 받고 있고, 그러니까 안 할 이유가 없는 것 같아요.
그냥 다른 곳에서도 한번 살아보라고 하고 싶어요. 인생은 너무 길고, 나는 아직 젊고, 재미있는 도시가 너무 많잖아요. 한국은 너무 넓고요. 그래서 그냥 한번 해봐라, 생각보다 지역은 당신을 반기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지금이 제일 젊을 때잖아요. 한 6개월 정도 살다가 그냥 다시 돌아가도 인생에 아무 문제가 없고, 오히려 내가 서울에서 살아갈 때 필요한 스킬이나 스펙들이 더 쌓일 수도 있어요. 사계반상 초기에 같이 브랜딩 했던 친구도 지금 들어간 회사 면접 때 되게 어필을 많이 했대요. 그걸로 되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서 다니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한 번쯤 그냥 경험해봤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