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 다른파도 권경민, 구황유니버스 이강희 대표

개발자, 디자이너의 시골 창업 생존기

by 파도

의성 청년마을 대표로 활동하던 시절, 저에게 가장 큰 자극을 주던 팀이 있었습니다. 바로 하동 청년마을 '오히려하동'이었는데요. 모든 청년마을 대표님들이 다 멋있었지만, 하동 팀은 대표님이 96년생, 공동창업자분은 저랑 동갑인 98년생으로 완전 또래였거든요. 타이틀로는 제가 청년마을 최연소 대표이긴 했지만 저는 제가 창업을 해서 회사를 운영하던게 아니라 월급을 받는 직원이었고, 저희 대표님에게 어느정도 늘 기대는 부분이 있었던 것에 반해 오히려하동의 운영사 다른파도는 96, 98년생(당시 27, 25세)이 창업해서 본인들의 회사를 직접 꾸려나가던 팀이었죠. 그래서 제일 많이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늘 대단하다고 생각하던 팀이었어요.


그렇게 첫 인연이 맺어진 지 벌써 4년째, 그동안 다른파도의 비즈니스모델은 계속해서 변화해갔고, 최근에는 '하동꿀배주'라는 제품까지 출시했더라고요.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지역에서 기술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는데, 계속해서 비즈니스를 발전시켜나가고 변화를 거듭해나가는 것도 대단해보였죠. 그래서 그동안 어떤 변화를 겪어왔는지, 하동꿀배주는 갑자기 왜 만들게 된건지 그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 인터뷰를 하고 왔습니다.


로컬크리에이터라는 단어가 생기고, 지원사업이 생겨나면서 '로컬 비즈니스'라는 말이 꽤 대중적이어진 것 같아요. 그리고 지자체 창업지원사업들이 많아지면서 지역에서 창업을 하는 허들이 낮아지기도 했고요. 굉장한 기회가 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충분한 준비 없이 무작정 시작했다가 청년 본인도, 지원한 지자체도 모두 시간과 자원을 날리게 되는 사례들도 생겼죠. 그런 면에서, 철저하게 시장의 반응과 고객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빠르게 변화를 거듭하여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낸 이번 인터뷰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게 여러모로 참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로컬 창업, 로컬 비즈니스에 관심 있다면, 그리고 청년 창업, 또는 디지털 노마드에 관심 있다면 이번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분명 좋은 인사이트가 될 거에요.






Q. 각자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강희: 저는 하동에 살고 있는 이강희입니다. 경민님이랑 같이 '다른파도'를 창업했고, 현재는 '구황 유니버스'라는 농식품 제조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경민: 저는 하동 중에서도 아주 산골 마을인 '악양 마을'에 살고 있는 디자이너 권경민입니다.



Q. 다른 파도는 어떤 일을 하는 회사인가요?


경민: 다른파도는 지역에도 디자인과 IT기술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창업을 한 회사에요. 지역에서 디자인이 필요한 일은 다 해 봤던 거 같아요. 강희님은 옛날에 게임회사 다닐 때 마케팅을 했던 가닥이 남아있어서 마케팅 부분을 잘 했고, 저는 디자이너라서 사람들에게 이게 어떻게 보일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지 등, 브랜드 디자인 부분을 도맡아 했어요.



Q. 두분 다 하동이 고향인 걸로 알고 있는데, 하동에 돌아오기 전 서울과 부산에선 각자 어떤 삶을 사셨는지 궁금해요.


강희: 우선 저는 서울에서 게임 개발자로 일했어요. 열아홉살에 취업을 해서 스물 네다섯살까지 한 6-7년 일을 했죠. 주변에 모든 사람이 '서울로 가야 한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저도 꿈을 찾아 상경하게 됐었는데, 저는 인디게임을 너무 좋아해서 게임회사에 들어갔었죠. 야근이 워낙 많아서 매일 막차 타고, 때로는 첫차를 타고 퇴근하기도 했었어요.


되게 큰 회사에서 일을 했었는데, 그러다 보니까 '게임을 만드는 것과 게임 비즈니스가 돌아가는 산업의 한 일원으로 사는 것'은 되게 다른거라는 걸 느꼈어요. 계속 돈을 좇아야 되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우리 게임에 더 많이 빠지게 할지 고민해야 하고... 이런 부분에서 회의감이 많이 들었죠. 게임의 재미보다는 마케팅 지표를 더 많이 생각해야 하니까요. 물론 그 때의 배움이 지금은 도움이 됐지만요.


그래서 치앙마이 같은 해외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해외 나갈 준비를 했어요. 그러던 중 코로나가 터져서 대피하듯 하동으로 돌아오게 됐죠. 서울 친구들에게 다 '나 이제 서울에 안 살거다' 이렇게 소문냈는데 또 다시 취업하면 모양이 빠지기도 하고, 열아홉 살 때 취업을 했다 보니까 한 번도 쉰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한 번 좀 쉬러 그냥 집에 한 번 가 봐야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 있다보니 너무 괜찮은거에요. 그래서 좀 더 있어봐야겠다 싶었어요.


먹고 살려면 일이 필요하잖아요. 외주는 하기 싫었고, 제일 가까운 게임회사가 어디 있는지 찾아보니까 부산에 하나, 창원에 하나 이렇게밖에 없더라고요. 취업할 곳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뭐 하지' 하다가, 원래 제가 커피랑 빵을 좀 좋아했었는데 마침 그 당시에 노티드 도넛이 유행했어서, 달달하동이라는 카페를 열게 됐어요. 그 도넛에 하동의 여러 농산물을 접목시켜 카페 하면 재밌겠다 하는 생각이었죠. 당시엔 그 도넛이 여수, 광양, 순천, 광주까지도 없었거든요. 우리 동네에는 왜 그 도넛 없어?하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고, 그럼 내가 해봐야겠다 했던거죠. 제가 게임회사에서 배웠던 마케팅적인 부분들을 총동원해서 열심히 인기카페로 만들었어요.


경민: 저는 대학을 진학하러 부산에 갔고, 거기서 디자인을 열심히 배웠죠. 디자인 배우는건 너무 좋고 행복했는데, 여기서 내가 계속 살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가끔 들었어요. 부산은 청년취업이 되게 어렵거든요. '내가 이렇게 학교에서 많이 배웠고, 디자인 일을 하면서 세상에 뭘 보여주고 싶은데, 이 도시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서울로 취업을 하려고 했었죠.


그래서 처음엔 취준을 하려고 고향인 하동에 돌아온거였어요. 디자이너는 당연히 서울에 가야된다는 공식이 머릿속에 당연하게 잡혀있었어서, '내가 하동에 한 달 이상 있으면 난 아무것도 못 하는 애다' 라고 스스로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포트폴리오 정리를 하려고 카페에 갔는데, 강희님을 만난 거예요. 당시 강희님이 운영하던 카페가 일하기 좋은 환경이었거든요. 저는 하동에서는 청년들이 살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강희님이 하는 일이 재미있어보였고, 심지어 잘 되는 카페였거든요. 그러다가 지역 내에서 디자인 외주들을 하나둘씩 맡게 됐고, 디자이너로 사업자를 내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하동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강희님이랑 같이 사이드프로젝트들을 이것저것 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다른파도를 창업하게 됐죠.



Q. 디자이너로, 개발자로 지역에서 일하는 게 어렵진 않았나요?


경민: 대학 친구들에게 '나는 하동에서 하기로 했다'고 이야기하니까 친구들이 다 '네가 왜?' 이러는 거예요. 디자이너가 시골에 있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특히 문화생활 때문에요. '디자이너는 계속 감각적인 거를 채워야 되고, 좋은 걸 많이 봐야 되는데 그런 거는 다 서울과 수도권에 있지 않냐. 영화관도 없는 데서 어떻게 그런 걸 채워 나가냐'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저도 걱정은 됐었는데, 그 때 강희님이 이런 이야기를 해줬어요. 자기는 서울에 있으면서 일만 해가지고 영화관, 전시회 등을 아예 안 갔대요. 자기는 문화생활에 돈도 안 쓰는데 서울에서 같은 돈을 내고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하동에 있는 게 경제적이라는 거죠.


그 얘기를 들으니까 '아 이게 서울에 있다고 무조건 다 보는 게 아니고 노력하는 사람, 보고 싶은 사람이 보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하동에서 돈을 좀 더 벌고, 덜 쓰고 돈을 모아서 한번씩 서울에 가면 문화생활을 그 때 다 충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실제로 살아 보니까 하동에선 정말 돈 쓸 데가 없거든요. 올리브영 세일? 관심이 없어요. 올리브영이 없잖아요. 그래서 돈을 모아서 한번씩 서울에 가잖아요?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마른 스폰지가 물을 쫙 빨아들이듯이 서울의 모든 게 재밌고 다 영감이에요. 서울에 있는 친구들이 자기는 서울에 너무 사람 많은 거 싫고, 각박하고 힘들어 이러는데 저는 "왜? 서울 너무 재밌잖아~" 이러면서 서울을 너무 사랑하게 되는거죠 오히려. 저한테 서울은 관광지에요.


물론 어려운 점도 있어요. 농업 쪽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많이 일을 하다 보니, 거의 다 '인쇄'가 포함되는 작업이거든요. 저는 인쇄 퀄리티에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인데, 이 근방에 거래할 인쇄소가 하나도 없어서 경기도쪽으로 인쇄를 맡겨요. 부산에서 대학 다닐 때도 선배들이 다 서울 가서 인쇄하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감리를 보러 가는 게 쉽지 않아요.


제가 웬만하면 보러 가려고 하는데, 피치 못 하게 안 될 때가 있잖아요. 그럼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더라고요. 최저가로 할 때도 그냥 인터넷에 나와 있는 데서 하면 실수도 많이 생겨서 시간 낭비, 돈 낭비를 많이 하기도 했고요. 그런 건 좀 힘들어요.


강희: 저는 하동에 처음 내려왔을 때 이런 느낌이었어요. 21세기를 사는 개발자였는데, 만약에 타임머신을 타고 갑자기 원시시대로 떨어졌어요. 그러면 거기 힘 세고 몽둥이질 잘하고 삽질 잘하는 게 최고지, 컴퓨터도 없는데 거기서 코딩을 잘해봤자 그게 무슨 소용이겠어요. 그런 느낌처럼, 제가 서울에서는 똑똑한 사람이었을지 모르겠지만 하동 오니까 여기는 야생인 거예요. '이 컴퓨터질 하는 거는 시골사회에 도움이 하나도 되지 않는 일이구나' 그렇게 느꼈어요. 그래서 '내가 되게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한 직업만 가지고 다양한 경험 없이 살았다는 생각도 문득 들더라고요. 저는 알바도 안해봤었거든요.


그래서 너무 두려웠어요.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취업할 곳은 없고, 그러다 그나마 탈출구로 생각했던 게 자영업이었던 거죠. 제가 카페 알바를 하다가 실수하면 욕먹잖아요. 근데 내 가게면 실수해도

내가 내 욕하면 되니까 괜찮지 하는 마인드로 시작했던거죠. 개발자라는 제 커리어를 여기서 이어볼 생각은 아예 못했었어요.


그리고 이유가 하나 더 있었는데, 싼 월세 때문이었어요. 제가 서울 살 때 부동산에 붙어 있는 가격들 보고 '미쳤네' 하는 게 제 일과였거든요. '상가 월세 2천만원? 미쳤네' '강남 나이키 매장 월세 2억? 미쳤네!' 이랬는데, 여기도 미쳤네에요. 월세 25만원. '미쳤네!' 한거죠.


누가 가게 대박나는 방법이라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었어요. 월세를 3일 안에 벌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거에요. 그러면 저는 '25만원을 3일만에 벌려면, 하루에 8만 원만 팔면 되잖아? 야 이거 장사 쉽구만!' 이러면서 시작을 했던 거죠.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요 그땐.


그래도 제가 원래 코드를 다루던 사람이고 이과적으로 사고하는 편이다 보니 디저트랑 잘 맞았어요. 디저트는 과학이거든요. 감 없고, 레시피가 정말 중요해요. 온도, 날씨 등의 여러 가지 변수들을 잘 통제하는 거, 이를테면 빵 만드는 곳에 에어컨을 늘 18 도로 맞추는 거, 이런 게 균일한 제품을 만드는데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들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단가표 같은 것도 코드 짜가지고 원가 비교분석해보고, 막 이런 식으로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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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님의 카페 '달달하동'



Q. 다른파도 창업 계기가 궁금해요.


강희: 그렇게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경민님이 저희 카페에 온 거에요. 사실 지역 청년 모임에서 한두번 봐서 안면은 텄지만 데면데면한 사이였거든요. 그런데 제가 IT 출신이고, 저도 카페에서 일하는걸 좋아하다 보니 작은 카페였는데도 불구하고 콘센트 책상도 해두고, 와이파이도 잘 터지게 해뒀다 보니, 경민님이 일을 하러 자주 왔다갔다 했어요. 그게 신기했죠. 저는 전공으로 돈 버는 게 힘들다고 생각해서 아예 직군을 바꿔서 일을 했는데, 경민님은 디자인 일을 계속 하고 있는거에요. 그걸 보면서 '아 내가 적극적이지 않았나?' 이런 반성도 했어요.


그래도 '해봤자 얼마나 벌겠어' 했는데, 물어보니까 잘 벌더라고요. '오? 그럼 내가 여기다 좀 숟가락을 얹으면, 디자이너랑 개발자니까 뭐라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게 됐죠. 저는 원래 창업에도 관심이 많았어서 창업 대회들도 많이 나갔었거든요.


경민: 저희가 안 친했을 때부터 둘이 대화를 진짜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이런저런 사이드프로젝트를 같이 하게 됐죠. 교통이 너무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버스 시간표를 볼 수 있는 앱을 만들고, 하동 청소년들이 하동에서 뭔가를 하고 있는 청년들이 있다는걸 알면 밖으로 안나갈 수도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하동 보물찾기'라는 전시도 했고요. 그러다보니까 자연스럽게 같이 창업을 하게 됐어요.



Q. 사이드프로젝트 했던 것들을 좀 더 소개해주세요.


강희: 하동 보물 찾기는 하동 청소년들에게 하동에 있는 청년분들을 소개하는 프로젝트였어요. 하동에 은근 저같은 청년 소상공인들이 많았는데, 교통이 불편하니까 청소년들이 먹으러 가지를 못하는거에요. 그래서 저희가 학교 앞 공간을 빌려서 청년 사장님들의 제품을 싹 가져와 팝업스토어처럼 운영했죠. 그 사장님들 인터뷰를 한 뒤에 책으로 만들어서 나눠주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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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보물찾기 프로젝트


버스 어플같은 경우엔 이렇게 시작했어요. 카페를 운영할 때, 손님들이 가장 많이 물어보는 게 '거기 버스 타고 어떻게 가요?'였거든요. 제가 관광과에 연락해보라고 하면, 관광과는 교통과에 연결해보라고 하고, 교통과는 또 영화여객(버스회사)에 연락해보라고 하고. 이런 문제가 많았어요. 그래서 심심한데 내가 만들어보자 해서 얼개는 다 만들었는데, 데이터가 중요한 거잖아요. 그래서 데이터를 구하러 군청에 갔는데, 한글 문서 하나 뽑아주는 거예요. 그 때는 너무 충격적이었는데, 지금은 이해해요. 보조금으로 받는 농어촌버스와 시내버스는 운영주체가 다르거든요. 그래서 하동군은 농어촌버스에 대한 표만 있는 거고, 민영에서 운영하는 시내버스는 위탁 맡긴 부분만 관리하는거고, 구조가 엄청 복잡하더라고요. 그래서 애초에 정확한 데이터도 없고, 관리도 잘 안되고 있었죠.


그리고 버스를 타는 타겟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보니, 그분들은 정류장에 한시간 두시간 앉아 있는 걸 괜찮아하세요. 어르신들께 중요한 건 버스가 하루에 몇 대 있다는 정보지, 정확한 시간 정보는 안중요하거든요. 근데 관광객들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제가 버스 어플을 만들어서 데이터를 잘 정리하고 편리하게 알려주면, 버스를 증편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잘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서버비였어요. 한달에 5만원이 나가면 1년에 60만 원이잖아요. 만약 제가 내면 거기에서 돈을 벌어야하는데, 트래픽이 아무리 많아봐야 하루에 한두 명 이용할 건데, 그들에게 천원씩 내놓으라 할 수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현실과의 괴리를 그 때 많이 느꼈어요.


그리고 심지어 하동군에서 버스 정보 시스템 앱을 만드는 용역사업이 있었어요. 사업비가 5억이에요. 그런데 스타트업은 거기 들어갈 수가 없더라고요. 업력 5년 이상, 조직원 중에 개발자가 어떤 연구원 이상... 뭐 이런 조건들이 붙어서, 저는 그냥 공짜로 만든 거 하동군에서는 5억으로 만드는 거죠. 근데 동작도 제대로 안 돼요.


그런 걸 경험하면서 '아, 시골에서 스타트업이 서울에 있는 방식으로 접근을 하면 안 되구나' 라는 걸 되게 많이 느꼈던 거 같아요. 트래픽 기반으로 공짜로 서비스 제공한 다음에 광고 붙이는 시스템은 절대 안 되고, 아니면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야 되는데 그것도 쉽지 않고. 그런 고민을 하면서 '이런 문제를 풀면 돈을 벌 수 있겠다'라는 얘기를 둘이서 진짜 많이 했고, 그게 다른 파도를 만들었던 계기가 됐던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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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했던 버스 어플



Q. 지역에서 기술로 변화를 만들겠다는 게 초기의 다른파도 미션이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했는지 궁금해요.


강희: 앞서 말한 문제를 겪다 보니, 하동에서 대체 누가 돈을 잘 버는지를 조사했어요. GDP가 뭐가 제일 높은지 보니까 하동은 1등이 화력발전소, 2등이 농업, 3등이 관광업, 4등이 공무원이나 교사같은 직업군이었어요. 그걸 보고 '답은 농업이다' 이렇게 생각했죠. 그리고 하동에 있는 회사들을 찾아봤더니, 이유식 만드는 기업, 냉동 김밥 만드는 기업... 이런 식품 기업들이 되게 많은데 매출이 50억, 100억 이러는 거예요. 그럼 이분들의 문제를 기술로 해결하는 것이 그나마 우리가 돈을 벌 수 있는 길이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냉동김밥 만드는 업체랑 연이 닿아서 그 회사를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거든요. 그 때 알게된 게, 식품 만드는 회사는 식품 제조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나라가 식품 위생에 관련된 까다로운 규제들이 많잖아요. 그걸 잘 관리하는 게 핵심 경쟁력이더라고요. HACCP인증 등의 인증을 얼만큼 많이 받는가, 안전상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관리를 철저하게 잘 하는가 이런거요.


그러면 그건 결국 페이퍼 싸움이거든요. 그런데 그 관리를 다 엑셀이나 한글로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럼 어떤 문제가 발생하냐면, 하동에는 젊은 사람이 없기 때문에 엑셀 다루는 직원 한 분이 아프거나, 휴가를 쓰게 되면 회사가 올스톱이 돼요.


거래명세서 쓰고, 세금계산서 떼고, 해썹 인증 문서 서명하고 관리하는 직원분이 만약 퇴사를 하게 되면, 기업에 엄청난 타격이 오는 거죠. 서울에서는 그냥 알바천국에다가 '엑셀 다룰 수 있는 경리 직원 구합니다' 하면 하루 만에 딱 구해져서 바로 정상화가 되는데, 하동에는 그런 사람이 없거든요. 그러다 보니 그분들이 저에게 그런 것들을 자동화하고, 체계화시켜서 디지털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을 많이 물어보셨어요. 그래서 저는 그분들이 일을 쉽게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서류들을 자동화하는 소프트웨어, 식품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등을 만들어서 납품하는 일을 주력으로 했어요. 디지털로 고객을 관리할 수 있는 방법도 개발하고, 컨설팅해드렸고요. 저희는 하동에 있지만 고객들은 다 서울에 있잖아요. 그러다보니 오프라인으로 고객접점을 만들기가 힘들어 디지털로 고객들을 관리할 수밖에 없거든요. 고객들의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하고, 정리하고, 분석하는지를 등을 알려드렸죠.


그런데 요즘 AI 시대가 열리면서 특이점이 왔어요. 디지털 전환을 해야지만 AI가 그걸 활용해 학습을 하고 자동화를 할 수 있잖아요. 예를 들어 아까 말씀드린 냉동김밥 회사만 해도 김밥 종류가 130종이고, 김밥 한 개에 들어가는 재료가 20~30개거든요. 그럼 경우의 수를 따졌을 때 이미 5천개가 넘어요. 저희는 그걸 데이터 베이스화 해드렸고, 이제 그걸 AI에게 학습시키면 뭔가 일이 되기 시작하죠. AI를 사용하려면 디지털 전환이 필수이기 때문에, 저는 이런 일들이 되게 유망하고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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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IT 기술, 디자인 기술에서 밀리지 않는 체계를 가진 기업이 되고 싶어요. 저희도 하동의 여느 기업들과 똑같은 문제인데, 사람 구하기가 너무너무 힘들어요. 그럼 프리랜서를 써야 하고, 그러다보니 시공간과 분리돼서 일하는 환경이 정말 중요하죠. 그리고 고객관리도 마찬가지에요. 하동꿀배주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면서, 온라인에서 플랫폼 운영하시는 분들이 쓰는 세일즈 기법, 영업 기법 같은 것들을 저희는 하동의 이 작은 매장에 적용을 시키고 있거든요.


제품을 구매하시는 고객분들께 '저희가 술 한 병 더 드릴 테니까 만족도 조사 해주세요' 부터 시작이에요. QR을 찍고 최대한 빠르게 접속할 수 있도록 세팅해두었고, 그걸 통해 간단한 정보를 얻는 순간부터 세팅된 자동화 로직으로 문자도 보내고 고객관리를 하죠. 그런 자료들을 모아서 AI를 활용해 리포트를 만들고, 자동으로 공유할 수 있게 슬렉에다 세팅해 놓고, 질문할 수 있게 AI랑 연동하고... 이런 환경들을 만들어두고 있어요. 그래야 우리가 어디에 있더라도, 누가 오더라도 같이 일할 수 있으니까요.


여담이지만, 페이스북은 사내 툴이 엄청 잘 돼 있대요. 외부에 절대 공개 안하는 페이스북 전용 메신저, 엑셀, 워드 같은거죠. 본인들의 핵심 경쟁력이니까 바깥에 절대 공개 안해요. 저는 좀 과할 수도 있지만, 우리도 그런 걸 지향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미국에 있는 페이스북도 이렇게 하는데, 하물며 인구 없는 하동은 더 그래야 된다는 생각이에요.



Q. 서울에서 일할 때와 비교했을 때, 들어오는 일감이나 돈의 차이는 없나요?


경민: 제가 하동에 와서 사업자를 냈던 초기에는, 저에게 하동이 야생처럼 보였어요. 누굴 만나도 '저 디자이너인데, 이런 것들을 할 수 있어요' 이렇게 PR을 하면서 살았죠. 그러다보니 '하동에 디자이너 있대, 너 뭐 간판 필요하다며? 쟤한테 맡겨봐' 이렇게 된거죠. 적극적으로 저를 알리다보니, 일감이 끊기지 않았어요.


강희: 아무래도 돈의 기본 원리는 수요와 공급이잖아요. 서울은 물론 수요가 많지만, 공급도 많아요. 반면에 여기는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없죠. 저희가 다른 파도를 창업한 이유 중 하나가 지역을 살리려고 만들어진 사업비가 다시 서울로 간다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졌기 때문이거든요. 농부님들 다 창업해서 제품 만들어야 하고, 로컬 관련 지원사업 계속 생기잖아요. 지역을 살리려고 그런 사업들이 생기는데, 문제는 디자인이나 마케팅을 하시는 분들은 다 도시에 있잖아요. 그럼 여기는 공급은 부족한데 수요는 많다 보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대도시로 다시 돈이 가는 거죠. 크몽 같은 곳을 통해서요. 그게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저희가 여기에 둥지를 틀어서 그 수요를 다 가져올 수 있다면, 돈에 있어서는 확실히 메리트가 있다고 봤죠. 그래서 실제로 일이 정말 많이 들어왔고, 재미있는 일 위주로 골라서 할 수 있었어요.



Q. 개발자, 디자이너의 역량을 가지고 지역으로 오는 청년들에게 줄 수 있는 팁이 있을까요?


강희: 일단 첫 번째는 '이 지역에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야 되는 것 같아요. 저는 하동에서 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거든요. 돈이 안나가서 가성비도 좋고, 자연이 좋아서요. 이 라이프스타일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러다보니 목구멍이 포도청이니까 내 지식을 뭐라도 최대한 활용해서 솟아날 구멍을 찾으려고 노력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마음 없이 '그냥 한번 해 볼까?' 이런 마음으로 오면, 내가 무슨 전공을 가지고 있더라도 지역 탓을 할 것 같아요. '아 이 지역에서는 프로그래머로 못 살아. 나 다시 서울 가야지. 어쩔 수 없네.'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그 마음을 가지고 지역에서 뭔가를 하기 시작하면, 확실히 메리트가 있는 것 같아요. 젊은 사람들이 없고 새로운 거 잘 안 하는 동네이다 보니까, 상대적으로 디자인이든 개발이든 이 지역에서는 엄청 새로운 거란 말이에요. 아마 하동에서 제가 AI 제일 잘 쓸 거예요, 쓰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디자이너가 없으니까 경민님이 하동에서 디자인 제일 잘 할 거고요. 저는 퍼스트 펭귄이 분명 용기는 필요하지만, 그만큼 누리는 자유도가 있다고 생각해요. 여기서는 저희가 마음대로 업을 정의할 수 있거든요.


경민: 저는 담력을 준비해 오시라고 할 것 같아요. 저는 제가 막 먼저 '일 주세요' 하고 다녔던 터라,

여기서는 디자인의 스탠다드가 나와 같지 않다는 거를 피부로 배웠던 것 같아요. 이런 시골에는 디자이너랑 일해 본 경험이 없다 보니, 담력이 없으면 이분들이 몰라서 하는 이야기에 상처를 받거나, 일의 크기를 조절하지 못해 과로에 시달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공무원분들이랑 일을 했을 때, 포스터 가격을 말씀드렸어요. '비싸네' 이러시는 거에요.

그걸 공격적으로 받아들이면 상처받을 수 있는데, 기죽지 않고 '왜 비싸요? 이런이런 작업들이 필요해서 이정도 금액은 당연한 거에요.'라고 하면, '아 그렇구나'하고 받아들이세요. 몰라서 그러셨던 거거든요. 그럴 때 '아니요, 내가 맞아요' 라는 확신과 담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Q. 다양한 브랜드들의 브랜딩 작업을 하신 걸 봤어요. 사례가 궁금해요.


화면 캡처 2025-05-30 210614.jpg 보이스틱 제품 사진


이 제품은 하동에서 처음으로 녹차의 식품등록을 한 가문의 증손자가 창업한 회사의 제품이에요. 젊은 분이 창업을 하다 보니 '차'라는 걸 좀 새롭게 풀고 싶었던 거죠. 이게 박하로 만든, 레몬 맛이 나는 차인데, 마시면 목이 시원해져요. 처음에 맛도 안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를 찾아와서 디자인을 해달라고 했거든요. '어떤 상황에 먹으면 좋겠냐'고 물어보니, 노래방에서 먹으면 좋겠대요. 입냄새도 없어지고, 목이 시원하니까 고음도 더 잘 날 것 같다는 생각이었죠. 그래서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컬러로 정했고, 올리브영에 입점되면 딱일 것 같아서 어떤 매대에 올려놔도 제품의 특성이 잘 보일 수 있는 타공을 했어요. 그리고 마이크 사진을 넣어서 노래 부를 때나 강연을 해야할 때 필요한 제품이라는 걸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했죠.



Q. 회사의 방향성이 어떤 시점을 계기로 확 달라졌던 거 같아요. 피벗을 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강희: 앞에서 제가 하동에서 누가 제일 돈을 많이 버는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고 했잖아요. 그게 변화의 시작이었던 거 같아요. 하동에서 경민님이 디자인으로 정말 안 해본 업종이 없거든요. 관광, 요식업, 뭐 이것저것 다 해봤는데, 농업이라는 게 가장 크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농업이라는 업종에

특화되자는 생각으로 그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많이 했죠.


그런데 하다 보니 저희가 너무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클라이언트는 '이 정도면 괜찮아, 만족해'라고 하는데, 거기에 저희가 만족을 못 하는거에요. 좀 더 하면 매출 더 날 수 있는데...이런 답답함이 쌓이는 거죠. 그런데 그동안 했던 저희 업은 딱 약속된 기간과 돈만큼만 해주는 일이지, 더 잘 해준다고 해서 더 많은 보상을 받는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었거든요.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아웃소싱을 기반으로 하는 업의 한계를 느꼈어요. 그래서 우리 제품이 있어야겠다는 결론이 났죠.


이제 우리 하고 싶은 거를 해보자는 얘기를 둘이 엄청 많이 나눴고, 그 과정에서 회사를 분리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도 났어요. 저는 조금 더 파고드는 것들, 이를테면 제조, 최적화, 기술 이런 게 너무 재밌는 사람이고, 경민님은 디자인, 브랜딩, 사람들한테 어떻게 하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더 잘 하는 사람이라는걸 알게 된거죠. 그래서 제조에 좀 더 전문성을 가질 수 있도록 제가 구황유니버스라는 법인을 창업하게 됐고, 다른파도는 좀 더 유통에 전문성을 가질 수 있도록 고객 감수성이 높은 경민님이 대표를 하기로 했죠.


그래도 여전히 계속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요. 이 공간도 지금 이 사무실은 다른파도인데, 저 벽을 넘어가면 공장이 나와서 구황유니버스의 공간이거든요. 저는 제품을 만들고, 경민님이 메시지를 전달하고 시장 반응을 확인하면, 제가 또 거기에 대응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이런 구조에요. 제가 만드는 게 저만의 제품이 아니라 '우리 제품'인거죠. 이런 일들을 준비하다 보니, 이제 점점 용역의 비율을 줄여나가는 게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어요.



Q. 하동꿀배주를 만든 과정을 들려주세요.


강희: 창업에 크게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시장에서 원하는 걸 만드는 접근과, '우리 이런 거 잘하니까 한번 해 볼까? 그럼 사람들이 알아주겠지?' 하는 접근, 이렇게요. 다른파도를 만든 거는 후자였어요. 그래서 지난 3년 동안의 기간이 굉장히 긴 시간을 들여 시장 조사를 하는 기간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경민: 빅페리컴즈라는 저희 공간도 마찬가지였어요. '하동의 다양한 상품들 모아서 만들면 사람들이 좋아하겠지? 우리 디자인 잘하니까 진짜 예쁜 매장 만들어보자' 이렇게 시작했죠. 저희의 오프라인 쇼룸이 필요하기도 했고요. 제가 디자인한 게 고객분들에게 어떻게 다가가는지를 바로 볼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했어요. 돈을 벌어야 하니까 거기에 와인이랑 간식도 같이 팔 수 있게 그로서리 숍으로 열었죠. 실제로 '이거는 성수동이 있을 만한 매장인데 왜 여기서 하세요?'라고 이야기하시는 고객분들도 계셨을 만큼 디자인이 예쁜 걸로는 성공했는데, 문제는 돈을 못 벌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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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페리컴즈 매장 사진


강희: 빅페리컴즈에 와인을 들였던 것도 나름대로 시장조사를 하고 한 거였거든요. 저희 부모님이 에어비앤비를 운영하시는데, 항상 와인병이 두 개 나오더라고요. 그럼 하동에 숙소 20개면 와인병 40개니까 괜찮겠다 하고 시작한거였죠. 그 땐 이 근방에 편의점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많이 안팔리더라고요. 인건비를 제외해도 한 달에 100만원씩 적자가 났어요. 2년 동안 거의 2천만원 정도 날라갔죠. 거기에 편의점까지 생기다 보니 회생 불가였고요. 가게는 돌아가고 있는데, 저희조차 잘 안 가는 가게가 됐어요. 정리를 해야겠다 싶었는데, 들어간 돈들이 워낙 많으니 회수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무인 아이스크림가게를 하자, 밀키트 가게를 하자 이런 아이디어들을 논의하게 됐어요.


경민: 이야기를 듣다가, 제가 '하나만 잘 만들어서 팔아보자'는 제안을 했어요. 경주에 체리주라고 있는데, 그게 정말 잘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하동에는 배, 감, 매실 등이 유명하니까, 그런거 활용해서 술 하나 만들자는 제안을 했죠. 그 때 마침 힙토 대표님과 미팅이 있었는데, 대표님이 체리주 매장 DP를 본인이 해줬다는거에요. 그래서 저희가 이런저런 질문들을 많이 했어요. 엄청 친절하게 알려주셔서, 채 3개월도 안걸려서 제품을 만들게 됐죠.


강희: 술을 선택한 결정적인 계기는 빅페리컴즈에 오는 고객분들이 늘 하동 술을 찾았다는 거였어요. 저희 가게에서 제일 잘 팔리던 술이 하동에서 만든 악양 막걸리였고, 2등이 충주 사과로 만든 춘희였어요. 지역 술을 찾는 분들이 많았던거죠. 그런데 악양막걸리는 막걸리다보니 가격도 쌌고, 소비기한이 짧아 고객분들이 선물로 사가기도 어려웠죠. 30일 안에 소진하지 못하면 다 폐기해야 하니까 저희도 재고를 채워놓기가 어려웠었고요. 춘희의 경우, 하동에서 충주 사과로 만든 술을 팔아서 쓰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경민: 고객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한거죠. 저희가 최참판댁 앞에 있는데, 거기가 하동 유료 관광지 1위거든요. 제가 한번 관광객분들을 계속 따라다녀봤어요. 그분들이 어떻게 소비를 하시는지 봤더니, 결국 하동에서 나는 뭔가를 사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더라고요. 맛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하동 여행 왔으니까 기록하고 싶고,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하동이랑 관련된 제품을 만들고, 그걸로 여행하는 마음을 채워주자는 생각으로 기획이 시작됐어요.


강희: 후보가 여러 개 있었는데, 처음에는 매실이 제일 접근성이 좋으니까 매실로 가자고 생각했어요. 저희의 첫번째 목표는 하동에 관련된 무언가를 기분 좋게 사갈 수 있게 하자는 거였다 보니, 기본적으로 쉬워야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감으로 만든 술은 상상이 안되니까 탈락시켰고요.


그런데 문제가 있었어요. 매실은 이미 대중화가 되어있는 제품이라, 가격 저항이 있다는 거였죠. 초록 색깔 소주병에 딱 담겨 있고, 마트 기준 4~5천원, 매취순처럼 좀 더 고급 라인이어도 8천원 선의 제품이 이미 많아요. 소비자분들은 다 그 가격을 알죠. 이미 시장 가격이 형성되어 있는 제품은, '남들 다 4천원에 매실 만드는데 니네가 뭔데 이거를 2만 원에 팔아?' 이런 식으로 욕먹기 쉬워요.


그래서 매실을 탈락시켰어요. 다음 후보로 배를 봤는데, 배로 만든 술은 마트에 없거든요. 판매가를 추측하기가 어려워요. 전 이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낯설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되긴 했는데, 생각보다 우리가 배 맛에 엄청 익숙하더라고요. 탱크보이 때문에요. 그래서 한국 사람들에게 '배 맛 하면 바로 생각나는 뭔가가 있다'는 데에서, 괜찮은 아이템이겠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그게 통하더라고요. 매장에서 시음을 하는데, 처음에는 '배가 무슨 맛이지' 이렇게 다들 의심하세요. 그 때 제가 탱크보이맛 난다고 설명하면 시음을 해보시고, 먹어보면 바로 구매로 연결되죠. 이게 저희가 정말 원하던 거였어요. 그러다보니 이게 지금까지 제가 일했던 것중에 제일 재미있는 것 같아요. 매출적인 면에서도 그렇고요.


그리고 저희가 공장에서 만들다보니, '사람이 없다'는 로컬 창업의 문제점을 많이 해결할 수 있었어요. 제가 카페를 접은 이유도 결국 만드는 사람을 못 구해서였는데, 이건 대량으로 제조가 되고, 전국 단위로 판매가 가능하다보니 장점이 훨씬 많아요.


경민: 디자인에 관해서는 저희가 목표했던 게 '딱 봐도 무슨 맛인지 느껴지게 하자'였어요. 어렵게 하지 말고, 딱 봐도 어떤 느낌인지 이해가 돼야 구매할 거라는 가설이었죠. 그런데 블로그 리뷰 중에 그런 리뷰가 있는거에요. 최고의 칭찬이었죠.


저희가 술에 엄청 전문성이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초도 물량을 빨리 만들어서 고객 반응을 빨리 보자는 마음이었어요. 시음을 해보면 좋다, 싫다가 딱 보이거든요. 어떤 분은 달다고 하시고, 어떤 분은 안 달다고 하시는데, 이런 것들을 다 강희님이 수집하고 있어요. 이런 의견들을 반영해서 다음 생산 때 수정해서 만들 계획이 있죠. 이렇게 피드백이 바로바로 확실하게 느껴지는 게 정말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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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꿀배주 제품, 매장 사진


강희: 이 맛이 정말 배 맛, 배 향은 아닐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저희는 술을 잘 모르고, 대중성을 잡고 싶었다 보니 대기업이 만들어 놓은 배 향을 잘 구현하자는 생각이었죠. 처음부터 '하동 배의 소비를 늘려야 하고, 하동 배 농가의 수익을 늘려야한다'는 원대한 목표를 잡진 않았어요. 다만 그 속에 하동 배즙을 많이 넣는다면 그게 결국엔 하동 배가 많이 팔리는 거랑 똑같은 효과를 내는 거니까, 농민이 좀 더 잘 살 수 있게 되는 효과도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저희 오픈한지 이제 한 열흘 됐는데, 얼마 전에 일매출 백만원을 찍었어요. 아직 하동 관광 성수기가 안 왔는 데도요. 고객분들이 너무 좋아해주셔서, 그게 정말 느낌이 달라요. 빅페리컴즈 했을 때는 하루 매출 0원인 날도 있었거든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지만, 일단 첫 번째 반응은 저희가 목표해 놓은 수준까지 올라와서 그게 너무 좋아요.


그래도 빅페리컴즈를 했던 게,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그걸 했기 때문에 고객들의 요구를 들을 수 있었던 거잖아요. 비즈니스를 하려면 고객의 니즈, 시장의 반응을 더 직접적으로 잘 들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야 되는 것 같아요. 특히, 직접 발로 뛰는 게 중요해요. 시장이 인터넷 속에 있는 게 아니니까요. 지역 축제도 많이 나가고, 사람도 많이 만나봐야 하죠. 저도 냉동김밥 회사 대표님 만나서 실제 제조 현장을 보니까 자동화의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거거든요. 그 업에 대한 이해도를 충분히 가지고,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그들이 뭐가 불편한지를 많이 관찰하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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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파도 팀이 지역 축제에 참여한 사진



Q. 앞으로의 방향성이 궁금해요.


강희: 계속 좋은 제품들을 만들고 싶어요. 재밌는 제품, 먹어야 될 이유가 있는 제품, 돈이 되는 제품 이 중간의 최적화된 무언가를 찾는 게 제일 중요한 일인 것 같더라고요. 저희는 제조와 유통을 같이 할 수 있다 보니, 고객의 반응을 얻고, 그걸 기반으로 제품을 생산해서 테스트해보는 작업들을 훨씬 빠르게 할 수 있어요.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소비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어요. 제가 게임을 만들고 싶었던 이유도 사람들이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거든요. 하동꿀배주 외에도 밤, 고구마로 만든 제품들도 준비하고 있어요. 열심히 해서 '농업으로 뭐 해서 잘 되고 있대'하는 소문이 나고 싶어요.



Q. 두 분이 서울 밖에서의 삶을 선택하고, 계속 이어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경민: 저는 하동에서도 일의 기회를 발견해서, 서울에 갈까 하동에 있을까를 두고 고민을 했거든요. 근데 그 두개를 동일선상에 두고 고민하는 제가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서울에 갈 이유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 같아요.


강희: 저는 상황에 의해 하동으로 오게 됐지만, 성향에 잘 맞았어요. 저는 새로운 경험을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코로나로 인해 하동에 오게 됐던 게 오히려 저에게는 행운이었죠. 저는 게임개발자가 되는 게 중학교 3학년 때 꿈이었거든요.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에 이뤄버렸어요. 엄청 허탈하더라고요. 심지어 그 게임 회사라는 게 제 환상이랑 너무 달라서 계속 실망했고요. 만약 저처럼 변화가 필요한 상황에 놓여 계시다면, 한번쯤 서울 밖의 삶을 도전해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Q. 서울 밖을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경민: 서울에 살다 보면, 서울 빼고는 그냥 다 시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서울 밖이 다 똑같은 시골이 아니고, 각 지역마다 나름의 지역성들이 있으니까 자기랑 맞는 도시를 찾아가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강희: 고민을 많이 하는 것도 좋지만, 고민 끝에 선택도 꼭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사실 그런 용기를 저희가 어렸을 때 많이 못 배우는 것 같거든요.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무조건 서울로 가는 게 당연하니까요. 저도 그랬어요. 어렸을 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사람은 어쨌든 서울 가야지'였고, 그래서 당연히 서울 가야 된다고 생각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여기 다시 와서 알게 됐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그런 말들을 좀 안했으면 좋겠고, 고민을 하고 계시다면 너무 많은 사람들한테 물어보기보단 그냥 본인이 직접 가서 경험해 보시면 좋겠어요. 그런 거 경험하라고 청년마을같은 사업도 있는거니까요. 많이 경험해 보시고, 직접 결정하면 좋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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