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 밭멍 김지현 대표

농사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삶을 짓습니다

by 파도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이 눈 앞에 닥치면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느껴요. 나의 삶이 지속가능한가 하는 실존적 고민 앞에 서면, 자급자족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은데요. 특히 지역에서 살다 보면 농부님들을 익숙하게 보게 되고 자연과 가까이 살게 되기 때문에, 농사에 관심을 갖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실제로 반 년 정도는 다섯 명 정도가 모여 텃밭을 가꿔본 적도 있었어요. 퍼머컬처 방식으로 밭을 만들고 싶었지만, 당시에는 지식이 별로 없어 일단 시작부터 해보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돌을 고르고 풀을 뽑았죠.


그러다 최근 퍼머컬처 기초과정 수업을 듣게 됐는데, 농사 하면 무조건 육체노동이고 힘든 일이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알면 알수록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은 영월에서 나뭇잎 모양의 밭을 가꾸며, 전국에 퍼머컬처를 알리고 계시는 밭멍의 김지현대표님의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해요.


환경, 지속가능성, 자급자족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있다면, 이번 이야기 놓치지 말고 들어보세요. 퍼머컬처 자체에 대한 매력 뿐 아니라, 농사를 사내벤처로 시작했다는 것, 농사를 짓지만 교육으로 비즈니스모델을 갖추고 있다는 것 등, 다양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해요.






Q. 밭멍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밭멍은 영월에서 청년들과 함께 퍼머컬처로 여러 가지 실험을 하면서 전국에 퍼머컬처를 알리는 일을 하고 있어요.



Q. 밭멍을 시작하기 전에는 어떤 삶을 살아오셨나요?


이 곳 영월군 상동읍이라는 곳에서 나고 자랐고, 부산으로 대학을 가서 관광을 전공했어요. 전라도, 충청도를 거쳐 강원도에 있는 호텔에서 근무를 하게 됐고요. 그러나 어느날 이곳에서 절임배추 공장을 운영하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면서, 폐업을 하러 왔다가 일을 도와주게 되었고, 도와주다 보니 엄마가 하시는 일이 조금 더 잘 됐으면 좋겠어서 여러 가지를 찾아봤어요. 기존 농사라는 게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 되지는 않더라고요. 날씨나 여러 조건들의 변화로 작황 문제가 계속 생기면서 매년 똑같은 생산량이 나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관광을 했으니 관광 농원으로 전환해 봐야 되겠다는 생각에 관광과에 편입해 학교를 다시 갔어요. 근데 거기에서 퍼머컬처라는 개념을 알게 됐고, '해가 거듭될수록 손이 덜 가는 농사법'이라는 그 딱 한 문장에 매료되어서 지금까지 오게 되었어요.



Q. 다른 지역에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지역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이 엄청 쉽진 않았을 것 같은데, 지역에 어떻게 다시 적응하셨나요?


정말 쉽지 않았어요. 여기는 읍인데 천 명밖에 살지 않는 작은 마을이거든요. 전국 읍 단위 중 최소 인구죠. 저는 ‘김지현’이 아니라 누구의 딸, 누구의 손녀 이런 타이틀로 인식되던 곳이었죠. 다니기만 해도 ‘어 쟤 회사 잘 다닌다고 했는데 왜 왔대? 짤린 거 아니야?’ 이런 질문이 많았어요. 그래도 다행이었던 건, 상동읍이 영월읍과 많이 떨어져 있는 작은 곳이었기 때문에 현지 청년들과 관련된 이슈는 적었죠. 저희는 여기에 터를 잡고 1년 반 후에 바로 행안부 청년마을에 선정됐기 때문에, 모르던 사람이 갑자기 툭 튀어나와 사업을 받은 게 된 거라서요.


처음에는 서울 출신이 내려와서 지원사업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알고보니 상동에서 상동고등학교까지 다 다닌 애였죠. 처음에는 저도 그런 것 때문에 지역 청년 활동을 안하고 누가 뭐라 하건 그냥 내가 하는 일을 열심히 해야지 했는데, 2년 정도 지나니까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저랑 같이 하는 친구들이 생기잖아요. 그 친구들까지 사실이 아닌 걸로 오해받는 게 아예 적극적으로 지역에 있는 청년 단체 활동을 나가기 시작을 했어요.


그러다보니 알게된 건, ‘아 이 사람들이 몰라서 그랬구나’ 싶더라고요. 지금은 아주 잘 적응했고, 이제 마을분들 경로 잔치나 축제 같은 행사에도 저희가 항상 가서 같이 뭘 돕고 하니까 관계가 잘 만들어졌어요.



Q. 퍼머컬처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Permanent와 Agriculture, Culture의 합성어로 '지속가능한 농업과 문화'를 뜻하는 표현이에요. 아무래도 농업이 가장 대표적이다 보니 퍼머컬처를 '농부들의 문화'라고 오해하고 파머 컬처라고 읽으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퍼머컬처는 농업에만 국한된 개념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지속가능하게 살아가기 위해 디자인하는 방법이에요. 의식주가 다 포함된 개념이죠.


그러다 보니 유통 과정에 대한 것도 고민을 많이 하고, 내가 사는 집은 얼마나 지속가능한가, 나아가서 우리 마을에서 얼마나 지속 가능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 등등, 삶의 전반적인 지속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서 디자인을 해주는 디자인 전략법이에요. 디자인을 하기 위한 윤리와 12가지 원칙이 있고, 이걸 기반으로 삶의 방식을 디자인해요. 그게 농장에 적용될 경우, 농장을 디자인하고 설계하는 거죠.


매년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진다는 걸 체감해요.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하죠.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많아진다는 건 현 시대가 불안정하다는 거니까요. 그래서 더 사명감을 가지고 알리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Q. 농사는 힘들다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저도 농사가 힘들다고 생각을 했었었는데, 힘들었던 이유는 생산량과 매출이 어느 정도 나와야 되니까 억지로 끌려가는 느낌이 들어서였어요. 그래서 농사를 왜 짓는지 그 이유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농업이 나의 생계를 100% 책임지기 때문에 생산적인 농업으로 해야 하는건지, 아니면 농사라는 활동이 나의 자급자족을 위해서나, 나의 심신의 건강을 위해서 보조적인 활동으로 하는 건지 등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하게 되니까요. 또는 내 삶에 꼭 하나의 일부가 되어야 된다.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를 먼저 선택하고 남들을 따라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Q. 퍼머컬처만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다양성인 것 같아요. 단일 작물을 대량으로 심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 활용할 수 있는 것을 다양하게 심을 수 있거든요. 그리고 다양성이 한 번 잘 갖춰지면 저절로 투입되는 에너지가 줄어들더라고요. 그럼 즐겁게 가드닝 하듯이 농사를 지을 수 있어요.



Q. 밭을 나뭇잎 모양으로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요?


퍼머컬처는 밭을 디자인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퍼머컬처 지침에 12가지 디자인 원칙이 정해져 있는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물의 흐름이에요.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하늘이 주신 물이잖아요. 그 물을 내 밭에서 계속 계속 순환시키며 생태적 에너지를 폭발시키도록 설계하는 게 중요하죠. 기후위기를 겪으며 먹거리 불안정성이 커졌잖아요. 그런 위기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도록, 내부에서 에너지를 순환하는 체계를 갖추고, 흙을 건강하게 만들어 농장의 자립도를 높이는 게 중요하죠.


그리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 땅을 잘 관찰해서 내 땅의 문제점을 찾는 거에요. 우리 밭의 문제점은 비가 많이 오면은 밭의 골이 터져 나가는 거였어요. 배추 농사를 지었을 때, 물이 한 곳에 고였다가 중간쯤에서 팍 내려가면서 배추가 싹 떠내려간 적이 많았거든요. 제가 여태까지 그런 모습을 항상 봐 왔으니까, 비가 왔을 때 물이 모이는 게 아니라 고루고루 분산시킬 수 있도록 설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앞으로 비는 계속 많이 올 테니까요. 스콜처럼 단시간에 확 쏟아지는 형태로요. 그걸 염두에 두고, 땅의 경사나 땅을 쓸 수 있는 범위 등을 고려했을 때, 이 나뭇잎 패턴에 너무 잘 맞았어요.


디자인을 하고 싶어하는 분들께는 처음에 어느 정도의 이론 기반을 갖출 수 있도록 퍼머컬처 디자이너 72시간 과정을 운영하고 있어요. 그걸 통해 기본적인 퍼머컬처에 대한 지식을 습득한 후 본인의 땅을 가지고 본인의 디자인을 하는 거죠. 퍼머컬처적인 접근 방식으로 나의 땅을 분석해보면 다른 게 보일 거에요. 그리고 농사를 지으면서 내 땅의 성질을 반영하면서 계속해서 수정을 거치는 게 좋아요. 가능하면 현 시점의 트렌드도 반영해주면 좋고요. 커뮤니티 공간으로서의 역할도 할 수 있게 되니까요. 굉장히 재미있고, 그래서 저도 늘 ‘뭘 할까’ 계속해서 고민해요.



Q. 퍼머컬처는 농약, 제초제 없이 식물의 공생관계를 이용해 농사를 짓는다고 들었어요. 어떤 예시가 있나요?

농장마다 흙의 성질이 다 다르기 때문에, 처음에는 농약을 치지 않고 농사를 짓는 게 어려울 수도 있어요. 무조건적으로 방법을 따라가기보다 내 땅의 상태를 먼저 고려해서 흙을 좋게 만드는 작업을 적극적으로 하시는 게 좋아요.


공생관계는 ‘동반 식물’이라고 하는데요, 대표적인 예시는 토마토와 바질이에요. 두 개를 같이 심으면 80% 이상은 성공해요. 물을 싫어하는 토마토와 물을 좋아하는 바질을 같이 심으면 서로 도움을 주고받게 되거든요. 수확하는 시기도 둘 다 여름이라 잘 맞고, 같이 요리했을 때도 잘 어울리죠. 좀 더 성공확률을 높이려면, 두둑에 심는 걸 추천드려요. 두둑에는 높고 낮음이 있고, 그 말은 곧 더 건조한 곳과 좀 덜 건조한 곳이 있다는 말이거든요. 가장 건조하고 햇볕을 잘 받는 곳에는 토마토를 심어주고 그 뒤편, 즉 좀 더 축축하고 그늘진 곳에 바질을 심어주면 더욱 잘 자랄 수 있죠.



Q. 일과 삶이 모두 퍼머컬처라고 하신 걸 봤어요. 일과 삶이 하나인 삶은 어떤가요?


다들 노잼이라 그러는데, 저는 제 일이 정말 좋아요. 퍼머컬처는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 자체이기 때문에, 분리가 될 수 없기도 하고요. 동력 중 하나는 ‘사람들’이에요. 처음에는 아무도 없이 스승님과 단 둘이서 시작을 했었는데, 지금은 완벽하진 않더라도 저도 누군가의 그래도 멘토가 되어 있고, 교육을 수료하신 분들이 전국에 계시다보니, 어디를 갈 때마다 늘 누군가를 만날 수 있어요. 최근에도 수료생분들을 만났는데, 내가 누군가에게 변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다는 게 동력이 되더라고요. 퍼머컬처를 재미있어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서 그것도 힘이 되고요.


또 하나는, 퍼머컬처스러운 라이프를 평생 살기 위해서 지금 젊었을 때 경제적 자립을 충분하게 이루어놓아야 하겠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해요.



Q. 처음에 밭멍 프렌즈를 운영했을 때, 외부 지원 없이 사비로 운영했다고 들었어요. 그만큼의 열정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궁금해요.


제가 처음 퍼머컬처를 알게 됐을 때, 어디 배울 데가 없을까 싶어서 전국을 수소문해서 다녔었어요. 그런데 제가 원하는 걸 배울 수 있는 곳이 없더라고요. 제가 처음 밭을 완성한 후 밭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청년들에게 혹시 가서 봐도 되냐는 연락이 오기 시작했어요. 예전 제 모습이 생각나더라고요. 얼마나 이걸 알아보고 싶어서 매일 검색하고 찾아봤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우리 밭은 차가 없으면 당일로 왔다갔다 하기가 쉽지 않고,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시간도 사실 하루만에 끝나지 않거든요. 그래서 '오면 같이 일을 하자, 먹고 자는 건 우리가 준비를 할 테니' 이런 식으로 시작했었어요. 당시엔 그게 지역살이라는 것도 몰랐죠. 저는 청년에 대해서 관심이 있던 건 아니었거든요. 저는 그냥 저의 실험 농장을 만들었고, 그걸 공유했던 건데, 그 당시 왔던 친구들이 이런 게 지역살이고 지원사업이 있다, 청년마을 사업에 지원해봐라, 이런 이야기를 해줘서 알게 됐어요.


청년마을을 지원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하나였어요. 내가 겪었던 어려움을 이 친구들이 겪지 않게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거. 처음에는 반대가 많았거든요. 누가 올지도 모르지 않냐 하면서. 그런데 꽤나 성공적이었어요. 정말 좋은 친구들이 와줬고, 하면서 우리도 많이 성장했고, 무엇보다 좋은 동료를 얻게 됐으니까요. 실제로 초기에 왔던 친구들이 다시 또 오기도 하고 운영진이 되기도 하고... 그렇게 계속 인연을 맺고 있어요.



Q. 직접 가꾼 걸로 직접 해 먹는 즐거움을 하루라도 어릴 때 누려야한다고 하셨어요. 그 즐거움은 어떤가요?


처음에는 저희도 시간이 아까우니까 밖에서 식사를 거의 했어요. 그러다 작년 겨울을 기점으로 교육생들 아침 점심도 제가 다 하거든요. 그게 좋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따서 먹기 때문에 제철과 지역의 맛을 제일 빨리 경험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식사를 하면서 나누는 이야기의 깊이가 달라지는 것이에요.


다 같이 해먹으면 요리를 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잖아요. 만든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고, 만든이는 같이 즐겁게 먹을 수 있어 기쁘기도 하고. 게다가 직접 기르고 수확한 제철 식재료라면 이걸 기른 시간도 함께 공유하고 있죠. 그러면 그냥 샐러드 하나, 비빔밥 하나를 먹어도 그 마음이 통하는 깊이가 정말 달라지더라고요. 요새 다 혼자서 많이 밥을 먹는데, 같이 먹는 거에 익숙해졌으면 좋겠어요. 예절이나 문화같은 것도 더 잘 배울 수 있고요.



Q. 최근 호주를 다녀오며 가치관의 변화가 있었다고 들었어요. 어떤 변화였나요?


호주를 세 번 다녀왔는데, 첫 번째 갔을 때는 '공부해야겠다'는 마음가짐밖에 없었어요. '이들이 퍼머컬처를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하나' 이런 것만 보이더라고요. 그들이 말해주는 방식 대로 저도 한국에 돌아와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달해주고 싶어서 거기에만 집중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다음에 갔을 때는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저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서 이런 걸 준비하는구나, 교육생들을 위해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구나, 그런 걸 하나하나 들여다 보면 커뮤니티가 이루어지기 위한 삶의 루틴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글로 전달하는 게 아니라 진짜 뭔가 깨달을 수 있는 울림을 줘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호텔에서 일했을 때의 내가 떠올랐어요. 그때 제철 되면 항상 사람들이랑 모여서 음식을 해 먹고 파티를 하고 이게 너무 재밌었었는데 나에게 그런 모습이 없어졌다는 걸 인지하게 됐죠.

너무 딱딱해진 내 모습이 인지되면서 그 때는 마치는데 눈물이 너무 나더라고요. 내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다음부터 교육 과정이 많이 바뀌었죠.




Q. 강원랜드 사내벤처 대회에서 1등을 하고 실제로 본사의 투자를 받아 사내벤처로 시작됐다고 들었어요. 농업을 창업으로 시작했다는 점이 독특하게 느껴졌는데, 강원랜드에서 사내벤처로 투자할 만큼의 수익성이 나왔던 포인트가 무엇이었나요?


애플 체인 키친 가든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는데요, 퍼머컬처 방식으로 사과를 중심으로 해서 새로운 밸류체인을 만들겠다는 거였어요. 기후위기가 심각한 문제였으니까요. 제게 퍼머컬처를 알려주신 학교 교수님과 함께 2년 동안 진행했는데, 저희는 매출이 바로 났었어요.


수요는 도시 쪽에서 훨씬 컸었는데, 먹거리에 대한 중요성을 느끼는 사람들, 정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정원에 먹을 거를 같이 심을 수 있는 것에 대해 되게 매력적으로 느끼더라고요. 정원에 먹거리가 들어감으로써 사람들이 모일 수 있고, 그게 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아하셨고요.


그런 일들을 기반으로 매출을 냈었어요. 사실 내부보다는 외부 심사위원들의 점수를 높게 받아 1등이 됐는데, 공공의 영역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점, 은퇴하는 세대들 사이에서 이런 모델이 이슈가 될 만 하다는 점, 파급력이 있다는 점에서 높은 가치를 주셨었죠.


당시 매출이 있었다 보니 분사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주셔서, 저는 밭멍을 만들고, 함께 했던 교수님은 맛있는 정원을 만들어서 각자 운영을 시작하게 됐죠. 사내벤처의 형태가 사내 사업화와 분사 두 가지 종류로 나뉘게 되는데, 저희의 경우 강원랜드 내에서가 아니라 외부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다는 걸 알고 계셨기 때문에 분사를 제안하셨던 거였죠.


사실 저희가 분사를 할 때 코로나 시기였어요. 그 때는 사람들이 하던 사업도 접고 회사로 들어왔잖아요. 저도 너무 부담스러웠고, 그래서 처음에는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 당시에 우리가 분사를 선택하지 않으면 이전 팀으로 다 복귀를 해야됐거든요. 그 전에는 강원랜드 소속이면서도 '사내 벤처팀'으로 해서 우리 밭으로 출근을 했었는데, 이제 사내 벤처가 없어지면 저는 다시 호텔로 출근을 해야 되는 거였죠. 엄두가 안나더라고요. 그래서 분사를 선택했는데, 회사에서도 상황을 감안해 안전장치로 3년간 휴직 처리를 해주셨어요. 그 안에 밭멍을 만들었고, 3년이 지난 후 '정말 나갈 거냐'를 선택할 때, 완벽하게 회사를 나오게 됐죠.



Q. 밭멍의 비즈니스모델은 무엇인가요?


지금은 가장 큰 수익은 교육이에요. 농산물을 팔까 생각도 해봤지만, 우리 밭의 위치에서 절대 불가능하다는 걸 지난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죠. 처음에 이 나뭇잎 밭을 만들었을 때도 사람들이 나의 실험을 보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고, 그러다보니 교육이 우리의 가장 큰 강점이었어요. 처음에는 밭 디자인도, 공사도 했었는데, '운영할 사람이 이거에 대해서 알지 못하면 이 밭은 한 달도 못 간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나서는 밭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을 교육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어요.


다른 한편으로는, 퍼머컬처 하는 사람들을 조직화시키는 걸 비즈니스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저는 사람을 연결하는 걸 잘 한다는 강점이 있거든요. 사람들이 계속 연결돼서 나중에는 꼭 제가 뭔가를 다 하지 않아도 각자가 협업하고 여러 비즈니스를 만들어나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해서 대한민국 사람들 중 "퍼머컬처가 뭐예요?"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없어지는 게 우리의 목표예요.



Q. 지금까지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해오셨는데, 인상 깊었던 활동 몇 가지를 소개해 주세요.


일단, 학교를 다시 갔던 게 어떻게 보면 저에게 가장 큰 터닝 포인트였죠. 퍼머컬처를 배웠으니까요. 사내 벤처를 하면서도 많은 걸 배웠어요. 저는 사실 파워포인트랑 한글을 사내벤처를 하면서 처음 배웠거든요. 문서 만들고 발표하는 걸 전혀 해본 적이 없던 사람이었는데, 그걸 하면서 창업을 하는 방법, 비즈니스를 확장해나가는 방법을 배웠어요. 그리고 청년 마을을 하면서는 커뮤니티에 대한 거를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저 자신의 정체성을 많이 확립하게 되기도 했고요. 이걸 기반으로 작년에 퍼머컬처 협회를 만들면서 폭발적인 시너지가 났다고 생각해요. 조직화의 시발점이 됐죠. 마지막으로는 러쉬 스프링페스타에 지원하고 선정 과정을 거치면서도 많이 배웠어요. 이러한 계기들로 저도 많이 성장했고, 앞으로 나아갈 미래도 그릴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Q. 얼마 전 러쉬 스프링 프라이즈에 한국에서 유일하게 최종 후보로 선정이 되셨다고 들었어요. 그건 어떤 행사인가요?


전세계적으로 재생, 회복 등에 관련해 활동하는 단체나 개인들에게 시상하는 프라이즈에요. 다양한 부문이 있어요. 영 어워즈부터 시작해서, 이번에는 퍼머컬처 매거진 상이 또 생겼죠. 2~3년 전 쯤 제가 아는 분이 최종 후보로 선정되신 적이 한번 있었어요. 그렇게 이 행사를 알게 됐고, 러쉬 코리아와 인연이 닿게 되면서 2년에 한번씩 열리는 행사니까 지원해보라는 이야기를 해주셨죠. 이번에 또 모집을 한다길래 신청하려고 들어갔는데, 사실 역대 수상자들을 보니까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 많았어요.


어떤 유명세 때문에 대단하다는 게 아니라, 정말 열악한 지역에서도 식량에 대한 자급률을 높이고, 물이 없는 곳에서 사람들이 물을 먹을 수 있도록 방법을 고민하고, 아이들의 교육이 없는 곳에서 교육을 하기 위해 애쓰는 분들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안 쓰면 또 2년을 기다려야 하니까 일단 써보자 하고 쓰게 됐어요.


선정 과정이 우리나라의 지원 사업과는 완전 다르더라고요. 신청 링크를 들어가면 한 48개정도 되는 질문들이 쭉 나오는데, ‘재생’이라는 키워드로 모든 질문을 해요. 당신에게 경제적 관점에서 재생은 어떤 의미입니까? 팀 내에서는 재생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같은 질문들이었고, 관련해서 했던 활동을 천자 이내로 적으라고 되어 있었어요. 매출이나 연혁을 물어보는 게 아니라, 정말 심도 있는 질문을 던지더라고요. 게다가 이거를 다 영어로 적어야 해요.


그걸 적는 과정에서 지난 활동을 정말 많이 돌아보고, 많은 생각이 정리됐어요. ‘재생’이라는 키워드를 저희는 ‘우리가 여기서 활동하는 것들이 전부 마을의 재생이다’는 맥락으로 적었는데, 특히 팀 내에서 재생은 어떤 의미인지를 적었을 때는 그냥 우리가 지내왔던 날들을 최대한 잘 담아내려 했어요. 공동의 취미를 가지고, 함께 놀러가고, 서로를 이해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들이요.


제출한 후에는 추가적으로 필요한 게 있으면 메일이 계속 와요. 추천인들에게도 ‘이 사람을 추천한 이유에 대해 다시 보내달라’고 정말 꼼꼼하게 요청이 오고, 심사위원분들도 엄청 많으시더라고요. 직접 현장을 찾아오지 않는 대신, 온라인으로 정말 많은 정보를 찾아보는 것 같았어요.


저희가 받았던 것 중 가장 무서웠던 메일이, ‘당신이 닭을 키운다는 걸 찾았다. 이게 먹기 위한 사육인가?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를 서술해라.’라는 메일이었어요. 러쉬는 비건이거든요. 그래서 닭은 우리 포레스트 가든을 가꾸기 위한 파트너다. 그들은 해충 제거와 경운 작업을 해준다. 물론 우리도 종종 닭을 먹을 때가 있긴 하지만, 개체수 조절이 필요할 경우에 동네 이웃분께 드리는 것이지 직접 죽이지는 않는다. 달걀의 경우 이웃과 나눠 먹는다. 이런 답변을 보냈어요. 이렇게 이야기를 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가치관의 결이 안 맞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비우고 보냈는데, 다행히 잘 받아들여졌어요. 좋은 경험이었죠. 만약 안되더라도 2년 뒤에 또 쓰려고요.(웃음)



Q. 닭이 농장의 파트너라는 게 흥미로운데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과실수가 심겨져 있는 포레스트 가든 안에 닭장이 있어요. 과실수는 해충이 많이 생기는 게 문제인데, 아침에 일어나서 닭장의 문을 열어주면 닭들이 그 과실수 정원을 자유롭게 다니면서 벌레들을 먹어줘요. 게다가 적절히 땅을 긁어내주기도 해서 땅의 물리성이 좋아지기도 하고, 다니면서 배설을 하니까 그게 저절로 퇴비가 되면서 비옥한 토양이 만들어지죠. 닭의 입장에서는 넓은 공간을 자유롭게 다니면서 좋은 풀과 벌레를 먹을 수 있고, 과실수의 경우 자라면서 그늘을 만들어주니까, 한여름에도 닭들이 시원한 환경에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에요. 서로 서로 보완을 많이 해주죠.


처음에는 과연 될까?했는데, 정말로 나무들이 잎에 벌레가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사람이 못해주는 역할도 동물과 곤충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게 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느꼈어요. 인간이 빠지는 게 균형적으로 더 좋은 생태계를 만들어준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Q. 밭멍이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방향성이 궁금해요.


고민을 해도 해도 끝이 없죠 맞아요. 매일 바뀌지만, 최근에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시간을 단축하고 싶다’는 거예요. 사실 정말 많이 바쁘거든요. 여기 밭에 있는 시간보다 전국을 다니면서 교육을 하는 시간이 더 많다 보니 처음에는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었어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제가 열심히 다니고 알려야 누군가 또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제가 지금 열심히 다녀야 경제적 자립을 빨리 이뤄내서 내가 원하는 삶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나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저도, 저와 함께 하는 청년들도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을 찾고, 3년 안에 빠르게 실행하는 게 앞으로의 방향성이에요.


그 방법으로는 ‘마을’밖에 없겠다는 걸 깨달았어요. 삶의 자립과 자급자족은 혼자서 할 수 없잖아요. 하나의 공동체로서 자립할 수 있도록,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체제를 갖춘 경제 공동체를 빨리 꾸려 3년 안에 꼭 이 실체가 나오도록 하고 싶어요. 그 이후에 아침에 눈 떠서 내 정원을 돌보고, 그걸로 식사를 하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걸 꿈꿔요.




Q. 서울 밖에서의 삶을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정말 모 아니면 도 같은데요.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실망하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 키는 결국 본인이 쥐고 있다고 생각해요. 결코 로컬이 서울보다 쉬운 곳은 아니지만, 다양한 ‘열쇠’ 꾸러미를 잘 갖고 내려온다면 그 기회가 무궁무진하고 어떤 곳보다 좋은 곳은 로컬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많은 고민을 가지고, 경험도, 여행도 많이 하고, 나의 강점이 뭔지를 잘 파악해서 여기에 와서 귀하고 좋은 사람으로 쭉 함께 같이 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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