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로컬생활자 소피

서울로 나를 완성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by 파도
'서울 밖으로 나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 생각을 가장 먼저 꺾어버리는 질문은 '어느 지역으로 가야 하지?'인 것 같아요. 막막한 게 당연해요.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에게 지역은 연고 하나 없는 미지의 세계니까요.


그래서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로컬생활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10개 넘는 지역에서 주민처럼 살아본 경험을 갖고 있는 소피님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려고 해요.


제가 소피님을 처음으로 만났던 건 2023년 1월, 나만의성과 로컬초년생이 함께 기획했던 '안녕, 나의 로컬'이라는 행사에서였는데요. 아무것도 몰랐던 채로 우당탕탕 청년마을 1년을 보낸 뒤, 같이 고민을 나눌 로컬 기획자 동료가 필요하다는 극심한 갈증에서 시작된 행사였죠. 그 때 같이 나누었던 이야기가 참 인상깊었어서 서로의 인스타를 보며 마음 속으로 조용히 응원하기를 2년 동안 하다가, 서밖사를 기획하며 인터뷰 요청을 하게 됐어요. 인터뷰를 하는 내내 '너무 재밌어요!!!'를 연발하다가, 인터뷰 끝나고 밥도, 커피도 같이 마시며 대화를 한참동안 더 나눴죠.


지역이 궁금한데 어떤 지역을 선택해야 할 지 모르겠다면 다양한 지역의 특성,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했던 경험들에 대한 농축된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Q.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저는 집이 없는 게 취미인 로컬 생활자 소피라고 해요. 로컬 생활자와 비슷한 단어로는 유목민 노마드 이런 것이 될 수 있고요. 여기저기 지역을 떠돌아다니면서 제가 추구하는 지향점에 따라서 지역을 다녀보고 있어요.



Q. 서울 밖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 사람이 무언가를 선택할 때에는 단 한 가지만의 이유가 작용하진 않잖아요. 저도 그때 시기에 저와 또 여러 가지 이유 계기 이런 것들이 맞물렸던 것 같은데요. 처음엔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아예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큰 원천이었어요. 그 마음을 가지고 처음으로 서울 밖을 떠나게 되면서, 제주 한달살이와 헝가리, 체코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했어요.


거기서 깨달은 게 있었는데, 내가 매일 보고 느끼고 또 만나는 사람 나와 상호작용하는 것들이 나를 완성시킨다는 거였어요. 내가 어디에 머무느냐에 따라 나라는 사람이 바뀌면서, 어떨 때는 더 만족스러운 내가 되고, 어떨 때는 불만족스러운 내가 되더라고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하는 데에 환경이 제 생각보다 더 크게 작용한다는 걸 알게 된 계기였죠.


그 이후로 다른 지역들을 더 경험해 보니 내가 보고 느끼는 환경이 나를 만든다는 가설에 확신을 갖게 됐고, 그렇다면 나는 서울로 나를 완성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확실해지면서 서울 밖을 더 지향하게 됐어요. 주체적인 나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었죠.


두 번째 이유는, 다양한 삶을 경험해 보고 싶다는 거였어요. 저는 서울 토박이인데, 서울에서는 성공한 삶의 기준이 굉장히 명확하다고 느꼈어요. 획일화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늘 마음 한켠에 불편감을 갖고 있었죠. 저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느낌이었지만, '이 삶이 아니면 무엇을 선택할 수 있지?'를 모르겠어서 그냥 학교에, 회사에 다녔어요.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100가지의 삶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망은 점점 커졌고, 그에 반해 저부터도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계속 저를 찌르더라고요. '그럼 이 움직임과 반대되는 것을 해보자.'라고 결심을 하게 되면서, 각 지역만의 고유한 삶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서울 밖의 다양한 지역을 다녀보게 됐죠.


KakaoTalk_20250504_103221406_17.jpg 제주 살이 (2022)



Q. 지역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보통 옷을 갖고 싶다, 가방을 갖고 싶다고 하잖아요. 저는 경험이 제일 중요한 사람이라 '어떤 경험을 갖고 싶은지'를 기준으로 지역을 고민해요. 그런데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건 '누구를 만나느냐'인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 사람과 어떤 대화를 나눌 것인가'를 상상하면서 살고 싶은 지역을 정했어요. 인스타 팔로워를 타고 타고 가면서 지역에서 활동하는 플레이어들을 열심히 찾았고, 인터뷰 등을 정말 많이 찾아보면서 그 지역의 사람들을 파악했죠. 로컬 매거진, 지원사업 주관사에서 진행하는 인터뷰, 인스타, 블로그, 성과 자료집 등을 섭렵했어요. 그리고 아무것도 모를 때부터 네트워킹 행사에 열심히 가면서 정보들을 많이 주워 들었고요. 마냥 일자리를 찾는다, 숙소를 찾는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그 숙소를 운영하는 사람, 그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 공동체에 누가 있는지 등을 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각 지역에서의 경험들이 궁금해요.


제일 첫 번째는 제주 한달살이였는데, 제주도 같은 경우에는 '느리게 살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그때 당시 좀 많았어요. 그분들도 저처럼 획일화된 사회에 대한 어떤 간지러움을 느끼셨던 거겠죠. 그런 분들의 곁에서 같이 생활하면서 '내가 항상 뭔가를 해야만 한다라는 속박 속에 자랐고, 압박이 주변에 없어도 내가 스스로 만들면서 살았는데 그것이 마냥 건강한 삶은 아니구나'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또, 자신만의 공간을 운영하면서 자기만의 기술로 사람들에게 기쁨, 행복을 전해주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한달살이를 할 때, 가치관이 맞는 숙소를 결정하는 팁은 숙소 소개를 꼼꼼히 읽어보는 거에요. 자기 가치관이 되게 확실하신 분들은 '꼭 이런 분이 왔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며 원고 10페이지도 넘는 숙소 소개를 적어두시더라고요. 저는 그런 곳을 찾은 뒤에 '제가 왜 이곳에 가야 하는지, 여기에 어떤 감명을 받았는지'에 대한 편지를 써서 보내는 편이에요.


더 많은 지역을 나가봐야겠다고 결심하고 처음 가본 곳은 전주의 완산동이었어요. 그 때 커다란 문화 충격을 받았는데요. 자신의 지역을 사랑하고, 지역에서 뭔가를 하고 싶어서 계속 열심히 발버둥치고 기획하는 전주 친구들을 보게 됐어요. 서울 사람인 저에게는 '내 지역을 떠나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한다'는 개념이 아예 없었으니까요. 저는 그냥 길 가다가 뭐 하나 선택해서 들어가면 되고, 사이트에서 하나 선택해서 가서 모임 즐기다 나오면 그만인데, 여기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삶을 놓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내서 살아가는 거예요. '서울 말고 다른 지역들은 사람들이 지금 떠나가고 있구나' 이걸 느끼게 되면서 충격을 받았었죠. 저는 다 서울처럼 도시화되어 있고, 다 높은 빌딩이 다 세워져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 이후로 전주에서 한 번 더 갔어요. 서서학동이라는 예술마을에서 살았는데, 이 때는 지역이 곧 목적지였어요.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공방들이 마을에 많았는데, 서울의 서촌과 닮았다고 느꼈어요. 저는 서촌을 원래 좋아했거든요. 여기서 살아본다면 서촌과는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을지 궁금했어요. 서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꼭 서촌만 갈 필요는 없잖아요. 다른 지역에 비슷한 취향의 지역이 또 있다면 이동해 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서서학동 옆에 전주천과 남부시장이 있거든요. 전주천을 지나가면서 남부시장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그 삶을 갖고 싶었어요.


KakaoTalk_20250504_103221406_01.jpg 전주 포토 굿즈 (2020)


거제의 경우, 제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아웃도어의 삶에 대한 두려움을 깨고 싶어서 아웃도어 아일랜드(*거제 청년마을)에 갔어요. 내가 평생 두려워하던 것들을 깨보면 더 넓은 세상이 열릴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갔고,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통해 일일 사진관 부스를 운영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봤어요.


인천 같은 경우에는 로컬 기획자들이 많고, 로컬 기획자를 양성하는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고 느껴서 갔어요. 제가 항상 로컬 기획자로 일하고 싶다라는 욕망은 있었는데, 내가 취직을 해서 지원사업을 운영하게 된다면 잘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보니 자신이 없더라고요. 잘 모르는 상태로 했다가 괜히 피해만 주면 그것만큼 예산 남용이 없으니까, '배우러 가보자' 생각하고 갔어요. 거기서는 지역을 아카이빙하는 활동들을 많이 했는데, 워낙 재개발이 활발하다 보니 다들 '사라지기 전에 지금이라도 해야 돼!'라는 불꽃이 있어요. 제가 다른 지역에서 살 때는 '내가 감히 지역을 기록해도 될까?'라는 생각에 지역에 대한 기록을 주저하곤 했었거든요. 그런데 인천은 철거를 앞두고 있다 보니, 오히려 다양한 콘텐츠 작업을 많이 하게 됐어요. 재개발로 인해서 떠난 주민분들을 인터뷰하거나, 우리 동네에 대한 달력을 만든다거나 하는 일들요.


부여의 경우, 제가 되게 꿈꾸던 이상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기에 갔어요. 스스로 서울을 벗어나 부여를 선택해서 온 사람들이 각자 자기만의 공간을 운영하면서, 동시에 어떠한 지원사업 없이 자발적으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거든요. 저도 이런 움직임을 지역에서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어서, 그걸 직접 경험해보고 싶어 갔어요. 그곳에서 살면서 저도 그 공동체 안에 들어가서 지역살이 캠프를 함께 기획하기도 했는데요. 툴킷을 개발해 워크샵을 진행해보는 등의 일을 해봤어요.


함양의 경우, 이 공동체의 1세대 버전이 있어요. 이런 활동을 지금 막 활발히 하고 있는 청년들이 지역을 보는 시선과 선배들이 보는 지역을 보는 시선은 어떻게 다를지 궁금했고, 그걸 배우고 싶었어요. 그래서 가게 됐죠.


KakaoTalk_20250504_103221406_08.jpg 부여 굿즈 전시 및 판매 (2022)
KakaoTalk_20250504_103221406_04.jpg 인천 스냅 투어(2024)



Q. 한 지역에 정착하지 않고 계속 다른 지역을 오가며 사는 삶에는 어떤 매력이 있나요?

새로운 지역에 '나 여기서 살기로 했어' 하고 가는 순간, 삶이 리셋되며 새로운 스테이지가 열리는 느낌이에요. 1회차, 2회차, 3회차의 삶이 계속 펼쳐지는 것 같달까요. 만나는 사람, 가는 공간, 하게 되는 일들이 다 달라지니까요. 이 새로움이 저에게는 '내가 지금 인생 2회차로 왔다. 나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다. 내가 이전에 뭔가를 실패하고 좌절했어도 여기에서는 또 다를 수 있다'라는 어떤 긍정적인 가능성으로 느껴져요.



Q. 이러한 이동은 정착지를 찾을 때까지의 과정인가요? 앞으로도 계속 이런 삶을 지향하는지 궁금해요.

원래는 지역사회에 대한 이상이 있었어요. 나중에 나만의 공동체를 꾸려서 한 지역에서 뿌리내리면서 하나의 마을 안에서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럴 만한 정착지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이 삶을 시작했죠. 그런데 지금은 정착지가 목적지가 아니고 지역이 곧 목적지가 됐어요. 새로운 지역에서 살아보고, 새로운 내가 되어 가면서 변화해가는 나를 보는 과정이 너무 좋더라고요. 정착보다 변화가 저에게 더 중요한 가치라는 걸 알게 됐어요.

저는 엄청 겁이 많은 사람이에요. 뭔가를 할 때 조금이라도 실수하거나 실패하면 그만두고, 인간관계에서도 조금이라도 안 맞으면 '이 사람을 더 이상 안 봐야지'라고 하거나, '나는 잘못된 사람이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한 적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 나라는 사람을 단련시키려면 계속 새로운 환경에 나를 빠뜨려 놔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기에 최고의 방법은 이동이었죠. 지역을 이동하면 삶이 송두리째 바뀌니까요. 다른 사람의 삶이 제 안으로 들어오면서 제 삶의 폭이 조금씩 조금씩 넓혀지고 변화되는 게 좋아요. 그래서 로컬 생활자로 살겠다고 결심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다양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서 이 여정을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Q. 차 없이 로컬 생활을 잘 하는 팁이 있을까요?

이것도 사실 사람이에요. 제가 네트워킹 행사에 자주 참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행사에 가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누가 어디에 갈 거다라는 소문만 들리면 '나도 데려가라, 짐꾼이 되겠다' 이러면서 정말 많이 따라다녔어요.


확실히 지역은 차 없으면 경험할 수 있는 범위가 1/10로 줄어드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제가 뚜벅이를 고수하는 이유는, 같은 뚜벅이들을 위해서에요. 차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역에 대한 장벽을 만들잖아요. 그래서 차 없이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는지를 콘텐츠로 만들어두고 싶었어요. 우리가 해외 여행 갈 때 '버스로 어디에서 어디 가는 법' 이런 거 검색 많이 하잖아요. 그런 것들이 늘 저를 구원해줬거든요. 그래서 내가 뚜벅이로 경험하는 것들을 기록하려고 해요.



Q. 그 지역에 주민처럼 스며드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사실 태도가 전부인 것 같아요. 일단 기대를 버려야 해요. 사람에게 내가 바라는 어떤 모습을 기대하지 않고 그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하는 태도가 필요한 것처럼, 지역도 마찬가지에요. 지역은 결국 지역의 구성원들의 총합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지역을 처음 갈 때 늘 '너무 기대하지 말 것, 그대로 그냥 받아들일 것, 궁금해할 것' 그냥 이것만 생각하면서 내려가요.


지역 살이를 하다 보면 환대를 많이 받거든요. 새로 왔다는 이유로 집도, 밥도 내어주고, 이동도 도와주고… 이런저런 도움을 많이 받는데, 그럴 때 자기도 모르게 감사하기보다 그냥 즐기기만 할 수도 있거든요. '내가 서울을 내려놓고 여기 왔으니까 더 좋은 것들이 있어야지'라고 그 호의를 당연하게 여기면서요. 저도 그럴 때가 있었는데, 그걸 깨달을 때마다 저 자신에게 많이 부끄러웠어요. 서울에서 왔다는 건 전혀 대단한 게 아니라는 거, 그리고 이들이 나를 환대해주는 건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거. '아 이 사람들이 일하느라 매일매일 바쁜 와중에도 나를 위해 애써주네.' 하는 생각이 들면서, 새로 지역살이를 하는 우리에게도 그 지역 사람들을 환대하는 태도가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또 하나는 좋은 연결 기획자를 만나면 돼요. 저는 지역에 '연결 기획자'라는 존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처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전주에서 만났던 레오라는 친구를 보면서였어요. 그 친구는 제가 전주에 살던 6개월 남짓의 시간 동안 저에게 2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을 소개해줬던 것 같아요. 물론 제가 호기심도 많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기도 했지만, 그 친구는 저에게 필요한 사람이 누구고 뭘 해줘야 되는가를 끊임없이 생각해줬어요. 그러기 쉽지 않잖아요. 그런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지역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나도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됐죠.



Q. 지역살이를 늘 공동 주거의 형태로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에게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다준 영화가 하나가 있는데요. '타인의 삶'이라는 독일 영화예요. 주인공이 요원인데, 어떤 사람을 매일 도청하는 일을 하게 돼요. '타인의 삶'을 계속 보는 거죠. 그러다가 점점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고민을 하게 되고, 결국 나의 삶을 찾아가게 되는 그런 영화인데요. 이 영화를 보면서 '나도 타인의 삶을 보면서 영향을 받고 상호작용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때 마침 제주 한달살이와 워킹홀리데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공동 주거를 하게 됐고, 같이 살아가면서 타인의 삶을 보게 됐어요. 그러면서 나의 단점, 장점을 발견하게 되고, 다른 사람이 가진 좋은 모습을 닮아가려고 조금 더 건강하게 노력하게 되고, 내가 더 좋은 방향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거예요. 저는 고집이 센 편이라 생각이 잘 굳어지는데, 그걸 깨게 해주기도 하고요. 앞에 이야기했던 대로 저는 겁이 많아서 혼자가 되기 쉬운 사람인데, 그러다 보면 내가 완전히 망가질 수도 있을 것 같으니 공동 주거를 하면서 나를 단련시켜보자고 생각하게 됐어요. 사실 커뮤니티를 추구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에요.



Q. 로컬 생활자로서의 삶을 유지하면서 돈을 버는 방식이 궁금해요.

저는 이 라이프 스타일을 지키고 저만의 콘텐츠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 '이동'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회사에 들어가지 않았고, 기획자이자 기록자라는 두 가지 정체성으로 돈을 벌고 있어요.


기록자로 하는 일은, 행사 사진 촬영, 행사/프로그램 아카이빙, 원고 청탁, 인터뷰 등의 일을 해요. 지역 기자단이나 홍보단 중에 원고비가 센 게 있으면 해보기도 하고요. 기록자로서는 제가 만드는 커뮤니티에서 워크숍을 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강사 또는 PM 일이 좀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지원사업을 종종 받기도 했고요. 처음부터 돈이 벌리지는 않았고, 초반에는 모아둔 돈으로 움직이는 게 컸어요.


KakaoTalk_20250504_103221406_02.jpg 스페이스 클라우드 '로컬 에디터' 활동 (2024)
KakaoTalk_20250504_103221406_05.jpg PM으로 활동한 '문화도시 부평 시민 크리에이터 사업' (2024)



Q.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첫 번째는 인터뷰 콘텐츠 워크샵을 기획해 본 거였어요. 제가 PM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주요한 워크숍이었는데, 만들게 된 계기는 세상에 인터뷰 하는 법을 알려주는 곳이 잘 없어서 였어요. 저는 인터뷰를 평생 업으로 하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인터뷰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중학생 때부터 인터뷰를 해왔다 보니 인터뷰가 저는 주는 유익을 너무나도 잘 알거든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인터뷰를 더 많이 시도해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 그리고 로컬 공간 인터뷰 콘텐츠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지역에서 공간을 운영하는 사장님들의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싶은 사람들을 모아서 워크숍을 진행했었어요. 6주 정도 진행하면서 온라인 웹진 매거진으로 발행했는데, 진심으로 임하는 참가자분들을 보며 저도 많이 배웠고, 이 일을 평생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두 번째는 최근에 출간한 '복닥맨션'이라는 책이에요. 제가 로컬 생활자로서 아웃풋을 명확하게 하나 만들어 놓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저의 그런 존재인 것 같아요.



Q. 책 '복닥맨션'을 기획한 이유와 과정이 궁금해요.

로컬에는 '말'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로컬이란 무엇인가', '왜 우리는 로컬이란 단어를 사용하는가' 이런 이야기들부터, '내가 지역으로 가도 될까?' 하는 작은 의구심들까지. 이런 작은 말들이 모여서 우리가 전달하고 싶은 지역의 실제 모습과 자꾸 멀어지게 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제발 대화를 하자.'는 취지로 이 책을 만들게 됐어요. '혼자 생각하지 말고, 혼자 평가하지 말고 계속 대화의 자리를 만들자. 우리가 그 안에서 싸우더라도 이념의 갈등이 있더라도 그 또한 배움이 되고 가치가 될 테니' 같은 의미가 있었고요.


이 책은 동명의 로컬 기록 모임에서 시작됐어요. 사람들이 로컬 기록을 좀 더 가볍게 여기고 사소한 것들이라도 기록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작년 1월에 시작해 1년 동안 운영한 모임인데요, 모임 구성원 중 출판사를 운영하는 분이 계셔서 같이 출간을 결심하게 됐어요. 총 14명의 저자가 각자 자기가 살아가고 있는 지역 아니면 좋아하는 지역에 대해서 쓴 책이고, 경기, 충청, 강원, 전라, 경상 지역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KakaoTalk_20250504_103221406_14.jpg '복닥맨션' 춘천 북토크(2025)
KakaoTalk_20250504_103221406_16.jpg 대구 복닥맨션 전시(2025)



Q. 커뮤니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어떤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나요?

사람마다 '이게 정답이야'라고 생각하는 것들 하나씩은 꼭 있잖아요. 자기만의 신념일 수도, 고정관념일 수도 있는데, 저는 커뮤니티를 통해 그게 많이 깨지는 경험을 어릴 적부터 했어요. 어렸을 때 우연히 독서 모임을 하게 됐는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편견이 깨지고, 전혀 관심 없었던 주제에 대해서 접하게 되면서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더라고요. 그게 좋아서 그때부터 나는 평생 커뮤니티와 함께 하며 살아야겠다고 느꼈어요.


그러다 보니 로컬이라는 주제와 관련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하게 됐죠. 저는 서울 사람이다 보니, '서울 사람들에게 필요한 로컬 커뮤니티는 뭘까'를 고민하게 됐고, 그들이 다른 지역으로 진입, 도전하려고 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지역 경계에 상관없이 이야기가 오갈 수 있는 커뮤니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작년부터 그런 로컬 커뮤니티를 시작하게 됐죠.


'누구나 로컬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서 콘텐츠 워크숍, 스터디 모임, 지역에서 직접 만나는 프로그램을 메인으로 하는 로컬데이즈라는 커뮤니티와, '서울 밖에 있는 사수들을 모신다'는 취지로 인터뷰와 워크숍, 모임을 진행하는 '서사수'라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운영했어요. 마지막으로는 '복닥맨션'이라는 로컬 기록 모임도 운영했죠.



Q. 블로그에 고뇌의 시간이 그대로 담겨있더라고요. 막막함을 헤쳐내고 '나는 이렇게 살아갈거야'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던 그 여정이 궁금해요.

제 인생의 필수품은 커뮤니티와 기록이에요. 저는 기록 없이는 살 수가 없는 존재인 것 같은데요, 제가 블로그에 처음에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내가 누구인가를 기억하기 위함이었어요. 저는 감정에 되게 잘 지배되는 사람이라, 특히 부정적인 감정에 되게 약하거든요. 부정적인 경험들이 곧 나로 동일시되면서 '나는 실패한 사람이야' 이렇게 생각하게 돼요. 그런데 그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 뭔가를 시도할 수가 없잖아요. 그럴 때 내 상태를 되돌아보고, 감정을 스캔할 수 있는 도구가 기록이었죠. 다른 분들의 기록을 보면서 힘을 많이 받기도 했고요.

그래서 과정을 늘 기록하려 노력해요. 과거와 현재를 기록하며 '지금 내가 그래서 결정적으로 뭐가 힘든 건지', '지금 내가 뭘 원하는 건지' 이런 본질적인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졌어요. 그러다 보니 고민이 생겼을 때 늘 기록을 통해 해결점을 찾게 되더라고요. 기록은 곧 자기와의 대화거든요.


저는 늘 블로그에 올리다 보니, 응원을 해주는 사람들의 댓글이 동력이 되기도 해요. 그래서 일부러 취준을 할 때도 연재형 콘텐츠로 기록을 했어요. '다음 편은요'라고 예고편을 만들어 스스로에게 기한을 부여하면서 취준이라는 막연한 시기를 견뎠죠. 역설적으로 그 기록을 한 덕분에 '아 나는 지금 취준이 아니라 프리랜서를 해야겠다'는 결론도 더 확실하게 내릴 수 있었어요.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회사가 매칭되지 않더라고요. 그러면 그냥 나는 내 일을 창조할 수밖에 없겠구나. 그래서 취직을 내려놓고 다른 일들을 하기 시작했죠.



Q.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텐데, 그럼에도 나는 취직하지 않고 프리워커로 살아가겠다는 마음을 지켜낸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선배들'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어떤 사회의 규격에 자신을 맞추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자기만의 방식대로 표현하고 해내는 사람들, 이슬아 작가, 양다솔 작가, 요조 같은 분들이요.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는 그들을 보면서 힘을 얻었던 것 같아요. '이들이 존재하는 한 나의 도전의 가능성도 꺾이지 않는다' 같은 생각을 하면서요.


그래서 저도 누군가의 레퍼런스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기록을 계속해나가고 있어요. 저처럼 자기 길을 헤매고 지역을 헤매는 사람들이 저를 보고 힌트를 발견할 수도 있잖아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하는 레퍼런스가 될 수도 있으니 실패도 기록을 해요.


Q. 기록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팁이 있을까요?

기록은 감춰져 있는 무언가를 발견해 나가는 여정이에요.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나 감정도 사실 진짜가 아닐 수도 있거든요. 기록을 통해 안에 감춰진 진짜 내 욕구를 찾을 수 있어요. 기록을 하다보면 과거를 끊임없이 재해석하게 되고, 실패했던 경험마저도 인사이트로 바꿔낼 수 있죠. 기록을 두려워하고 있다면 그냥 '나의 숨겨진 보물을 만나러 간다'고 생각하고 나 자신과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세요. 쓰다 보면 말도 안 되게 새롭고 좋은 인사이트들을 자기 자신에게서 얻을 수 있는데, 그것만큼 뿌듯한 일이 없거든요.


KakaoTalk_20250504_103221406_09.jpg 도고 3박4일 프로그램 (2023)



Q. 탈서울을 알리는 데 이토록 진심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역에 유효기간이 있다라는 걸 너무나 생생히 목격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서울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로 흘러넘치는데, 지역은 매년 뭔가 사라져 있더라고요. 어떤 건물이 사라진다라는 건 사실 체감이 잘 되지 않는데, 내가 사랑하고 응원하던 친구가 더 이상 그 지역에서 버틸 수 없어 떠나가는 모습들을 봤을 때 확 체감이 돼요. 누군가가 떠나면 그 지역은 한 명의 삶을 잃어버리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었던 수십 명의 삶을 잃어버리는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그래서 계속 서울 밖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하고 제 삶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Q. 소피님의 미래가 궁금해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더 도전하고 싶어요. 아직 제가 도전해야 할 일은 너무너무 많이 남았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할 수 있는 동료들을 늘리고 싶어요. 점점 하고 싶은 일들이 늘어나다 보니 혼자서는 한계가 있거든요. 임팩트를 더 키우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그래서 '동참하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 그만큼의 역량을 가지는 것이 지금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아요.


제가 지향하는 삶을 저와 뜻이 맞는 사람들과 계속 같이 만들어 나가는 거, 이게 앞으로의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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