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 의성 두두랩 이현숙 대표

나의 가치를 더 잘 실현할 수 있는 지역

by 파도

로컬에서의 삶이 모두 대안적인 삶인 건 아니지만, 대안적인 삶을 살기에 로컬이 더욱 적합한 면들은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오늘의 인터뷰는 서울 밖에서 살아갈 수 있는 가치 지향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에요.


현숙님은 제가 지역 답사차 의성에 처음 방문했던 21년도 2월에 처음 만나 '의성에 오면 이렇게 멋진 분과 교류할 수 있겠구나!'하는 기대를 안겨준 분이었는데요. 마땅히 묵을 숙소가 없어서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저희를 흔쾌히 집으로 초대해 재워주기도 하셨었죠. 그 때부터 저희는 서로의 성장과 변화를 목격하고 응원하는 사이가 되었어요. 현숙님은 그 당시엔 여기공의 대표로 서울과 의성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었는데, 그러다 회사를 폐업하고 예술의성이라는 의성 회사에서 문화기획자로 일하기도 했고, 그러다 작년에는 두두랩을 창업해서 지금은 아주 활발하게 자기만의 일을 만들어나가고 있어요. 옆에서만 봐도 이렇게 역동적인 삶을 살아왔는데, 직접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인터뷰를 요청하게 되었죠.


대안적인 삶, 가치 지향적인 삶에 관심이 있다면, 지역 이주를 고민하고 있다면 오늘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막연한 고민이 좀 더 구체화될 수 있을 거에요.





Q.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저는 경북 의성에 살고 있고, 의성과 옥천, 서울 등을 오며 가며 일을 하고 있어요. 두두랩은 '삶을 나답게 하는 기술'을 주제로 생활 기술 교육을 주로 하는 회사고, 귀농·귀촌 교육, 도농 연결, 농촌에 필요한 문화기획, 음식 등을 가지고 콘텐츠를 만들고 있어요.


생활 기술은 적정 기술과 같은 개념이에요. 기술이라고 했을 때 우린 보통 대단한 거, 예를 들어 핸드폰을 만들거나, 농사를 짓더라도 큰 규모로 효율을 극대화하는 기술 등을 생각하게 되는데, 물론 그런 기술도 있지만 제가 생각하는 기술은 내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기술이에요. 예를 들어 내 방의 전구를 고친다거나, 내 물건이 고장 났을 때 고치는 것, 아니면 집에서 요리를 해 먹는 것 등의 일상적 기술이죠.


기술은 주로 대기업 등의 거대한 자본이 소유하고 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해서, 자기 삶이나 공동체 안에서 착취하지 않는 방식으로, 누구에게 부탁하지 않고 내가 필요한 것들을 해나갈 수 있는 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해요. 그 중에서도 제가 '삶을 나답게 하는 기술'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는, 집수리나 요리 등의 활동은 나의 신체와 내가 존재하고 있는 물리적 공간이 접속하는 경험이거든요. 나의 공간에 내가 변화를 만드는 행위죠. 제가 교육을 해보면서 느낀 게, 그런 경험이 자기의 삶을 좀 더 주체적으로 살게끔 해 준다는 거였어요. 내 집에 뭔가가 고장이 났을 때 그 전까지는 누군가를 불러야만 이걸 해결할 수 있었는데, 이제 내가 스스로 해결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라는 게 주는 만족감이 있더라고요. 기술자를 부르게 되더라도, 이전에는 그냥 그 방법밖에 없어서 불러야만 했다면, 지금은 선택지가 늘어난 상황이니까요. 드릴 등의 공구를 다루고 메커니즘을 배우게 되면 성취감이나 용기가 생기고, 그게 주체성을 키워주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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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교육을 진행하는 모습



Q. 서울에서 십여년간 사시다가 고향인 의성으로 다시 돌아온 유턴 청년이신데요. 고향으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엄청 특정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여러 흐름들이 좀 맞물렸던 것 같아요. 저에게는 주체성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였고, '내가 이 사회의 구조를 이해한 채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20대 초반에는 서울에서 멋진 이론가들과 함께 사회운동, 대안 문화를 공부하면 그런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대학도 여러 차례 자퇴하고, 국가폭력 현장에 직접 가서 연대해 보는 경험도 하고, 그런 걸 부지런히 했죠. 그러다가 20대 후반부터 '이걸 가지고 오히려 내 삶터로 돌아가서 그곳에서 공동체의 변화를 만들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내가 실제로 그렇게 살아내지는 않으면서 머리만 비대해지는 것 같다는 불편감을 스스로 계속 느꼈었고, 내가 열심히 배워온 것들을 이제는 내 몸으로 더 살아내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내가 말해온 것들이 실제로 내가 살아냈을 때 내 삶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서울이 아닌 의성이 제가 생각하는 것들을 실제로 실천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었어요.




Q. 두두랩은 다양한 대상들을 생활기술과 엮어내는 것 같은데요. 현숙님이 관심을 갖고 계신 대상은 누구인지 궁금해요.


제가 되게 듣고 싶었던 질문인 것 같아요. 기술이라는 영역을 전문성을 가지게 되는 영역으로 보게 되면 되게 그걸 배워야 되는 사람들이 적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아무래도 '삶을 나답게 하는 기술'이다 보니, 관심 있는 대상이라고 하면 '지구별을 살아가는 모두'인 것 같아요. 제 마음같아서는 많은 사람들이 배우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저는 컨택이 와줘야 교육을 진행할 수 있다보니, 가족센터, 자원봉사센터 등 저에게 연락을 주신 곳들에서 요청해주시는 이들을 위한 교육을 만들고 있어요.


그 중에서도 특히 이주 여성 같은 경우에는 이 공동체에서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데, 공공의 영역이 등장하지 못하거나 그들이 살아감에 있어서 주체성이 확보되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관심을 갖게 됐어요. 기존의 이주 여성들이 받는 교육을 보니까 단편적인 교육들이 많더라고요. 감사하게도 의성군 가족 센터에서 연락을 주셔서 직조 교육과 함께 정착교육을 진행했어요. 직조를 하면서 워크시트에 정착에 필요한 것들을 같이 적어보고, 대화 카드를 통해서 서로의 삶을 나누고. 그런 방식이었죠. 어린이들 같은 경우에는 어린이들이 기술을 배워보면 자기의 공간이나 자기가 살아가는 의성을 좀 다르게 인식하게 될 텐데 하는 연결점들이 보여서 교육을 만들어보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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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조 교육 모습
KakaoTalk_20250628_134904239_04.jpg 이주여성분들과 함께 한 전시


의성 자원봉사센터 센터장님께서는 제가 집수리라는 영역을 테크니컬하게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소양교육처럼 접근할 수 있겠다는 표현도 해주셨는데, 그래서 작년에는 의성 행복기동대분들께 집수리 교육을 하기도 했어요. 정말 재밌는 경험이었죠. 지역별로 '돌봄'의 역할을 수행하는 주민 조직들이 있더라고요. 행복기동대는 민간에서 돌봄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분들을 면 단위로 팀을 꾸려 만들어진 주민 조직으로, 긴급돌봄이 필요하거나, 복지 체계 안에서 민간의 참여가 필요할 때 활동한다고 하더라고요. 특히 마을 상황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갖고 계시는 그 지역의 키 플레이어분들이 많으셨어요. 주로 60대 아버님들이 많으셨는데, 처음에는 젊은 여성이 집수리 교육을 한다고 하니 되게 의심의 눈초리로 많이 보셨어요. 저에게도 되게 도전이었지만, 잘 해낸다면 정말 성취감이 크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기술에 대해서는 저보다 더 많은 현장 경험이 있으실 것 같아서 안전 교육, 좀 더 정확한 구조에 대한 이해, 성인지 감수성 교육 등을 위주로 했어요. 그러자 교육을 마치고 나가실 때 엄지를 탁 올려주시거나, 별 5개라고, 중요한 교육을 해주고 있어서 고맙다는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그 때 정말 큰 보람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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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군 행복기동대 집수리 교육


그 외에도 옥천의 고래실과 함께 농촌 문화기획을 같이 하고 있고, 지리산에 있는 지리산이음과도 함께 활동하고 있죠. 도농 연결이라는 미션이 있기 때문에 서울의 파트너들과도 꾸준히 연결되고 있고요.



Q. 다른 지역들을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각 지역에서 어떤 활동들을 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먼저 옥천에서는 '월간 옥이네'를 발행하고 있는 주식회사 고래실과 함께 일하고 있어요. '농촌 문화기획'이라는 키워드를 정확하게 갖고 오래 활동해온 곳이라서, 제가 배우는 마음으로 같이 오래 일하고 있어요. 의성에 돌아오기 전부터 일해서, 이제 거의 7년이 다 되었는데, 시골언니 프로젝트나 농촌에서 살아보기 같은 귀농·귀촌 교육을 함께 기획, 운영하는 일을 함께 해왔고, 작년에는 생활 근육 강화기라는 교육도 진행했어요. 14회차의 긴 호흡으로 진행되는 교육이었는데, 지역 청년들과 함께 기술교육, 지역정책, 요리 등을 진행했죠. 어떻게 하면 지역을 대상화하지 않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면서 청년들이 지역 주민들을 많이 만날 수 있도록 구성하고 있어요.


지리산 이음의 경우, 지리산 살롱에 가서 발표도 해봤고, 지역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로컬 기술 캠프도 준비하고 있어요. 워낙 지리산이음이 가진 네트워크가 탄탄하다보니, 그 네트워크를 활용해 저의 문제의식을 더 디벨롭해보는 경험이 됐죠. 그 외에도, 서울에서는 프란치스코 교육화관의 산다미아노라는 카페에서 생태 전환을 위한 집수리 교육을 하고 있어요.


처음부터 여러 지역을 다녀야지 했던 건 아닌데, 여러 우연들을 통해 다양한 지역에서의 기회가 열렸어요. 한 지역에서 다 충족되지 않는 것들이 분명 있거든요. 그런 것들이 지역을 다양화 함으로써 해결되더라고요. 예를 들어 저는 생태적인 움직임에 관심이 많은데 옥천에는 의성보다 그런 움직임들이 조금 더 활발한 거예요. 그럼 옥천에 가면 제가 그런 고민들을 더 구체화할 수 있고, 좋은 선배들이 있다 보니 일을 하며 역량을 강화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나는 이런 거에 관심이 있는데 왜 우리 지역에는 이게 없지라고 회의적인 사고에 빠지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나와 공명하는 키워드들을 가진 지역들을 찾아가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지역의 경계를 넘나들다 보니 다양한 지역의 상황들을 이해하게 되면서 지역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게 되고, 덕분에 지역을 너무 우울하거나 너무 희망적으로 보지도 않게 되는 것 같아요. 게다가 연결되었을 때 오는 엄청난 시너지도 있고요. 그리고 비즈니스적으로도 아직까지는 한 지역 안에서 충분한 수요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경계를 넘나들기도 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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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역을 대상화한다는 게 무엇인가요?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저는 지금 '로컬'이라는 키워드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많은 교육, 지원사업들이 마치 지역을 변화를 일으켜야하는, 문제를 해결해줘야 하는 곳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 시선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 그 지역이라는 고유성을 보지 않고 굉장히 납작하게 보는 태도라고 생각해요. 그곳에서 분명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이어져 오는 이야기들과 역사가 있는데, 그런 것들은 수면 아래로 두고 문제점들만 부각해서 이곳은 되게 문제가 있는 곳처럼 보이게 하는 거죠. 그건 오히려 지역을 더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시선에 대해서 되게 비판적으로 보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더욱더 실제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를 더 듣게 하고, 지역이라는 곳이 꼭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 곳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터이고 히스토리가 있는 곳이라는 걸 조금 더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죠.



Q. 정착 교육은 어떤 식으로 진행하시나요?


저도 기획 중이고 아직 완성된 건 아니라서 '이런 시도를 하고 있구나' 정도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정착교육에서 첫 번째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나에 대한 이해에요. 삶터를 이주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를 들어 나는 공원이 중요하다, 나는 이동거리가 짧은 게 중요하다 하는 식으로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파악하는 게 필요하죠.


그 다음으로는 지역의 행정과 관련된 교육을 해요. 지역은 인구 수가 적고 행정과의 거리감이 굉장히 가깝기 때문에, 내가 사는 곳의 행정기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거든요. 그래야만 정보를 얻고, 지원을 받고, 또는 나도 공동체에 기여를 할 수 있어요. 이 부분이 서울과의 큰 차이점인데요. 서울에서는 우리가 행정기관에 서류를 떼거나 뭔가 신고할 때 가는거지 정보를 얻으러 가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지역에서는 실제 정보를 얻기 위해서 행정기관의 사이트, 이를테면 군청 홈페이지의 '삽니다 팝니다' 게시판에서 집을 구한다던가, 고시 공고에서 지원사업을 확인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행정을 활용해야 하죠. 그리고 지역의 행정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돕고 있어요. 이를테면 도청, 군청, 읍사무소, 면사무소, 농협의 역할이 각각 뭔지 알아보는 거죠.


그 다음에는 지역 주민들을 많이 만나게 하고 있어요. 각 지역의 고유성을 만들어가는 지역 주민들을 다양한 세대, 젠더를 아우르며 만나게 하고, 그러한 만남을 통해서 '지역의 삶이 이렇게 다양하구나', '이 지역에서는 이런 것들을 오래 해오고 있구나' 하는 것들을 직접 이해하게 하는거죠. 제가 이런 구성으로 옥천에서 이주여성들을 위한 정착교육을 진행했는데요. 보통 이주여성 하면 납작한 사회적 시선이 있잖아요. 하지만 그들은 실제로 주체성을 가지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한 분들이 대다수거든요. 그래서 그들이 자신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을 진행하면서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Q. 의성에 돌아온 후 바로 창업하지 않고, 탐색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셨는데요. 그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직감적으로 바로 정착하면 안 된다라는 생각이 분명하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 역시 제가 진행하던 정착교육의 틀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리 여기가 내 고향이고, 지역을 잘 이해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지역에 내가 직접 정착하는 것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완전 다른 문제라고 생각했거든요. 몸으로 직접 살아내야만 이 지역에 실제 어떤 기회들이 있는지,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는지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바로 창업을 하지 않았어요.


다행히 문화기획 일을 하는 회사가 있어서 좋은 기회로 일을 하게 되었고, 거기서 일을 하면서 제가 잘 하는 일, 잘 못하는 일을 더 확실히 알 수 있었어요. 그 시간들을 거치며 기술이라는 키워드는 놓지 말아야겠다, 지역성을 조금 더 강화해서 로컬 푸드와 농촌 문화기획 영역을 더 추가해야겠다, 이런 설계를 해서 창업까지 하게 됐죠. 그래서 저는 최소 1년 정도는 이런 시간을 가지는 걸 추천해요.


아무리 고향이었다 하더라도 지역을 10년간 떠나있다가 다시 돌아와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았는데요. 내가 가진 애정과, 내가 할 수 있는 역할, 나에게 부여되는 기회는 모두 다른 거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죠. 저는 마음이 앞서는 편이라서, 내가 개입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에 마음이 쓰여서 개입했다가 서로 당황한 경험들도 있고, 토론 자리에서 제가 익숙하게 써왔던 서울의 언어들을 쓰니까 분위기가 싸해지고, 그런 일들이 있었어요. 저는 스스로 소통을 잘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자괴감이 밀려오는 거예요.


물리적으로는 일에 대한 탐색기를 가졌다면, 정서적으로는 지역과 저 사이의 핏을 맞춰가는 과정, 스스로 성찰하고 변화하는 과정이었어요. 저는 상담이 이런 시기에 굉장히 필요한 안전장치라고 생각하는데, 저도 상담을 받은 덕분에 너무 우울이나 자괴감으로 빠지지 않을 수 있었어요. 처음에는 공무원들, 지역 주민들과 소통이 잘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는데, 한 3년이 지나니까 부딪힘도 줄어들고 갈등을 지혜롭게 풀 수 있는 방법들을 찾게 되더라고요. 이전에는 막 비판하던 사람도, 그 사람의 삶의 맥락을 이해하게 되니 그분이 하는 말도 이해되기도 하고요.


그 과정에서 자생적인 청년 조직들도 같이 만들어보고, 지역의 조직들에도 들어가게 됐어요. 유턴청년이라는 강점을 살려서 이 지역의 원래 조직에 들어가서 지역을 이해하는 데 좀 더 마음을 쓰고 정보를 획득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주로 5060 여성들이 많은 여성 유권자 연맹에도 들어갔고, 남성들로 이루어진 서의성JCI에 49년 최초의 여성 회원으로 입단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 과정들이 정말 재미있었는데요, 기존에 제가 가졌던 JCI에 대한 이미지는 나와 결이 다른 사람들이었는데, 실제 들어가보니 '참된 가부장'이 있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정말 내 가족, 내 마을, 내가 살아가는 의성, 대한민국의 안녕을 고민하는 분들이 모여있었고, 그래서 이분들하고 나하고 겉보기엔 다른 듯하지만 어쩌면 고민이 같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 공명의 지점을 찾으면 저도 배울 점이 너무 많은 것 같고, 그분들도 저에게 기대하는 점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서로를 되게 궁금해하는 긍정적인 시너지가 만들어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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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성 JCI 입단 사진



Q. 현숙님은 어떤 가치관을 바탕으로 활동하고 계신가요?


예전에는 가치관이 단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저의 가치관들이 부서지고 재정립되는 과정을 여러 차례 거치면서 뭐라고 딱 정의하긴 어려운 상태에요. 제가 70세가 되면 그제서야 나의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극성처럼 두고 있는 키워드는 '함께 간다'는 거에요.


의성에 돌아오면서 오히려 저의 가치관을 더 많이 내려놓게 됐는데요. 가치관이 뾰족했던 시기에는 자꾸 스스로 벽을 만들고, 나는 조금 달라, 나는 이런 사람들이랑만 함께할 거야라고 정해둔 게 컸었는데, 지금 저의 이웃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거든요. 이들과 매일 일상적인 교류를 하고 서로의 안녕을 나누는 사이가 되어야 하는데, 제가 가치관에만 갇혀 있으면 이분들을 그런 시선으로만 보게 되더라고요. '이분은 나랑 입장이 같을까? 이분은 생태적으로 살고 있을까?' 이런 시선이요. 그건 좋지 않은 것 같았어요. 물론 제 주변에 저랑 가치관이 같고, 멋있는 분들도 분명히 있지만, 내 이웃이라는 바운더리 안에 들어 있는 모든 사람들과 같이 갈 수 있는 삶의 태도를 가지려 노력 중이에요.


제가 기존에 갖고 있던 생태주의나 페미니즘이라는 가치관은 '조금이라도 더 노력하는' 영역으로 남겨두고 있고요. 내가 어떻게하면 한 번이라도 일회용품을 덜 쓸 수 있을까, 누군가 차별받고 있다면 내가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을 하고, 내 삶에 조금씩 적용하려 노력하는 중이에요.



Q. 대안적인 삶을 추구하기에 지역이 더 좋다고 느껴지는 지점은 무엇인가요?


사실 서울은 시스템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는다면 지역에서보다 훨씬 더 생태적으로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제로웨이스트샵도 많고, 좋은 강의나 교육, 공동체도 많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느낀 지역에서의 강점은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이 만들어지는 곳이라는 점이에요. 먹거리를 예로 들자면, 농부들이 음식을 생산해내는 사람들이잖아요. 유기농을 먹어서 대안적 삶을 사는 것도 좋지만, 정말 이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농민들이 내 이웃이 되었을 때 오는 느낌은 다른 것 같아요. 목격하는 삶을 살게 되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머리만 비대해지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서울에서는 소비를 계속 반복해서 정체성을 만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 제가 사회문제에 대한 공부를 하고 집회를 나갔는데, 돌아오면서 편의점에 들러 유기농 음료를 하나 사먹어야만 내 정체성이 완성되는 느낌이었고, 거기에 소름이 돋더라고요. 소비를 해야만 내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는건, 결국 돈이 없으면 내 정체성이 사라지는 거예요. 그게 되게 위험한 방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지역에서는 내가 소비하지 않아도 내 이웃이 그런 일을 하고 있거나, 조금 더 가치와 관련된 요소들을 목격하게 되는 기회가 많기 때문에 질문을 계속 던지게 되고, 그러다보면 고민이 풍성해지고 다양해지더라고요. 대안적인 삶이라는 건 좋은 것'만' 추구하는 게 아니라 좋은 것을 '함께' 추구하는 거잖아요. 그 함께의 영역이 뭐지? 혹은 좋은 것이 뭐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질 수 있는 깨어 있는 상태가 더 잘 만들어질 수 있는 곳이 지역인 것 같아요.



Q. 서울 밖에서의 삶을 고민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너무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나에게 맞는 속도를 찾을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참여해보시면 좋을 것 같고, 스스로를 이해하는 과정과 지역살이와 내가 얼만큼 맞을지를 충분히 탐색해보는 시간을 가지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지금 내가 탐색이 필요한 시기인지, 역량 강화가 필요한 시기인지 등을 좀 더 날카롭게 고민해보시는 걸 추천해요. 지역은 다정하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냉정한 곳이고, 내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급하게 왔을 때 아무도 그걸 책임져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개인이 스스로를 조금 더 보호해야 되는 영역도 분명히 있어요.


우리가 서울에 가는 이유는 지역에 무언가가 부족하기 때문이잖아요. 현실적으로 지역은 역량 강화를 하기에는 자원이 부족해요. 내가 가진 역량을 발휘하고 살아내는 데에는 너무나 좋은 곳이지만요. 그래서 탐색을 위해 로컬을 경험해보는 건 매우 좋지만, 이주를 결정하려면 충분히 나의 역량을 강화하고 와도 늦지 않다고 생각해요. 저도 의성에 돌아오기 전에 제 나름대로 교육을 할 수 있는 전문성이 있었고, 기존에 연결된 파트너 회사들이 있었거든요. 경제적인 부분, 커리어적인 부분, 저의 삶의 방식을 다 확립하고 온 거였어요. 그래서 만약 이주를 고민하신다면, 자기의 역량을 충분히 알고, 자기 자신을 조금 더 이해한 상황에서 천천히 와도 늦지 않다고 생각해요.


저는 힘들 때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5개 이상, 갈등이 생기거나 위기를 마주했을 때 나를 지킬 수 있는 무기가 3개 이상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내 일에 대한 전문성, 나를 지킬 수 있는 갑옷,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무기를 충분히 갖추고 온다면 더욱 지속 가능한 삶을 살 수 있을 거에요.



Q. 앞으로의 방향성이 궁금해요.


저의 전문성을 귀농귀촌 교육, 정착 교육쪽으로 더 강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서 공부도 더 하고 있고, 비즈니스화가 가능한 부분이 있어 보여서 정착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키트를 개발하는 중이에요. 그리고 비영리적 활동으로는, 이주 여성이라는 키워드가 저에게 많이 와닿아서, 이주 여성 정착과 관련된 활동들을 좀 더 많이 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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