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 공유를 위한 창조 박은진 대표

내가 살고 싶은 동네를 직접 만드는 일을 합니다

by 파도

내가 살고싶은 환경이 어떤지 고민해보신 적 있나요? 지역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보며 느낀건, 환경이 사람에게 주는 영향이 정말 크다는건데요. 오늘은 내가 살고 싶은 동네를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동네를 더 좋게 만드는 걸 일로 해오신 분의 인터뷰를 들고왔어요.


'대표님이야말로 나다운 삶의 끝판왕인 것 같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들었던 생각이에요. 나다운 일을 한다, 나다운 삶을 산다는 말은 많이 들었어도 내가 살고 싶은 동네를 직접 만들기 위한 일을 한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거든요. 게다가 실제로 도시재생에 관심을 가진 후 일을 배운 방식도, 그 이후 거제, 밀양으로 터전을 옮기며 일을 확장해낸 여정도 정말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삶이라 느꼈죠.


나다운 삶, 도시재생, 주체적인 삶에 관심 있다면 이번 인터뷰를 읽어보세요! 많은 인사이트가 될 거에요.






Q.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저는 공유를 위한 창조의 박은진입니다.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들을 하고 있고, 지금은 경남 밀양에서 밀양소통협력센터를 운영하고 있어요. 공유를 위한 창조는 지역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일, 유휴 공간들을 이제 개발해서 운영하는 일, 지역에 숨겨져 있는 자원이나 가치를 발굴해서 새로운 콘텐츠로 만드는 작업 등을 하는 회사에요.



Q. 20대에 시작해 벌써 10년 넘게 일을 지속하고 계시는데요. 이 일을 시작하신 계기가 궁금해요.


대학교 때 도시 계획을 전공을 했고 이 학문이 저에게 되게 잘 맞아서 공부를 재미있게 했어요. 특히 인상 깊고 궁금했던 지점이 재개발과 관련된 지점이었는데, 저는 도시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삶의 그릇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재개발이 될 때, 그 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변화해갈지, 그들의 목소리가 개발 과정에 담기고있는지 이런 게 궁금했어요. 제가 배우기로는 도시가 개발되어가는 과정에서 공동 공청회 등의 여러 가지 과정이 있었는데, 실제로 제 주변에서는 그런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의문이 생겼고, 실제로 주민들의 의견이 정말 반영되는 계획을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어요. 다만, 도시는 너무 크니까, 조금 더 작은 단위에서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러면서 진로고민을 했어요. 제가 휴학을 3년 하면서 대학을 7년을 다녔거든요. 그동안 여자 동기들 같은 경우에는 빠르게 취직을 해서 도시계획 관련한 업무들을 시작했는데, 근데 하나같이 1년 이상을 버티지 못하고 다 퇴사를 하는 거예요. 너무 격무인데다 환경이 좋지 않기도 했고, 생각과 다른 것도 많았다고 했어요. 그런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다 보니, '나는 저 일을 하고 싶었는데 왜 다들 버티지 못하고 힘들어서 나오지? 저 길은 내 길이 아닌가?' 이런 의문을 품게 됐죠.


그래서 아일랜드로 1년 동안 봉사활동을 다녀왔어요.캠프힐이라는 곳이었는데, 장애인들이 살아가는 자립 마을 같은 구조의 커뮤니티에요. 다만 거기서 그들끼리 살기가 힘드니까 저와 같은 비장애인이 같이 들어가서 살면서 공동체 생활을 하는 거죠. 그래서 마을 일도 하고 장애인 케어도 하면서 살았는데, 일이 고되긴 했지만 저는 그 삶이 참 만족스러웠어요. 이렇게 평생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그래서 한국에서도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꿈을 가지고 돌아왔어요.


일단 자연 환경이 너무 좋았고, '이런 게 진짜 공동체구나'라는 거를 처음 느껴봤거든요. 저는 아파트 키즈로 태어나서 쭉 살았거든요. 그런데 그곳에서는 '이웃'이라는 개념이 있고, 함께 우리 동네를 좀 잘 살게 만들어가는 과정들도 있고, 마을 축제, 크리스마스 파티 같은것도 같이 진행했고. 그런 게 되게 좋았어요.




Q. 대표님이 처음 일을 시작하셨을 때는 도시재생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알고 시작하게 되셨나요?


그 당시에는 도시재생이라는 단어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던 시기는 아니었고, 마을 만들기라는 말을 많이 썼었어요. 학교에서 마을 만들기라는 개념을 먼저 접했었고, 캠프힐을 다녀오면서 '이런 방식으로 지역의 공동체를 조직하고 동네를 함께 잘 가꾸어 갈 수 있겠구나'를 좀 어렴풋이 알게 됐던 거죠. 그래서 마을 활동가 일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해서 부산에서 마을 활동가 일을 하시는 선생님을 쫄래쫄래 따라다녔어요. 선생님이 동네 주민분들 만나실 때도 따라가고, 강의 하시면 옆에서 들으면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될지 배우고. 그런 시기를 보냈어요.


무급으로 일을 도왔었는데, 사실 저는 일을 한다는 생각을 안 했어요. 그 일은 어디서도 가르쳐 주지 않는 것들이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선생님이 저한테 수업료를 받지 않고 가르쳐 주신다 라고 가르쳐 주신다고 생각하고, 배운다는 마음으로 따라다녔죠. 그렇게 하면서 다니다 보니 부산의 마을 활동가 선생님들을 많이 알게 됐고, 선생님들이 저를 되게 기특해하셨죠. 20대 중반 정도 되는 친구가 이런 일에 관심이 있다니, 이러면서 많은 분들이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도 주시고 이런저런 프로젝트에 불러주시면서 여러모로 도움을 주셨어요. 되게 운이 좋았죠.



Q. 대표님이 서울 밖을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고향이 경남 창원이고, 학교는 부산에서 다녔어요. 그러다 보니까 서울을 가야겠다라고 생각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친구들이 다 올라갈 때도 굳이 애써서 가야 하나 싶었고, 저는 그냥 제가 발 붙이고 있는 지역에서 제 삶이 충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제 동생은 이제 상경을 했거든요. 서울에서 회사도 다니고 결혼도 하고 살고 있는데, 제가 동생의 집에서 조금 머물면서 동생의 삶을 봤거든요. 너무 불쌍한거에요. 아침마다 그 지옥철을 뚫어야 되고, 물론 돈은 저보다 훨씬 많이 벌긴 하지만 생활 유지비로 쓰이는 거를 봤을 때 남는 건 저보다 없는 것 같고. '이렇게 사는 게 괜찮니?' 이런 얘기를 했던 것 같아요.



Q. 대표님이 살고 싶은 동네는 어떤 모습이고, 그 동네를 만들기 위해서 어떤 일들을 해오셨는지 궁금해요.

캠프힐을 다녀온 직후에는 공동체, 커뮤니티가 살아 있는 동네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던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좀 더 구체화된 거는, 제가 하고 있는 종류의 일에 관심이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네인 것 같아요. 재미난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함께 미래를 같이 상상해볼 수 있는 동네요.


그걸 위해서는 우리가 하는 일이 재미있고, 충분히 이걸로도 먹고 살 수 있다는 거를 증명해내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었어요. 다들 수도권, 서울에서 살려고 하는 이유가 다양한 경험들을 해보고 성장을 위한 좋은 자극을 받고 싶어서이기도 하잖아요. 지역에서는 그걸 충족할 수 없기 때문에 서울에 간다, 또는 일자리가 없어서 서울에 간다는 얘기들이 많이 나오고요. 그러다보니 우리 동네, 우리 지역에서도 충분히 그런 삶을 살아낼 수 있어 살 수 있다는 거를 우리 스스로 증명을 해내자는 마음이 컸어요. 그래야 이게 하나의 메시지가 돼서, 뭔가 다른걸 꿈꾸는 사람들이 그래도 지역에서 시도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을 해왔던거죠.



Q. 나다운 삶을 살고 싶지만, 남들의 시선이나 현실적인 조건 앞에서 고민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실까요?


저희 부모님도 당연히 제가 지금 하는 일을 응원하지 않으셨죠. 너무 싫어하셔서, 네가 하고싶은거 할거면 경제적으로 자립을 하라고 말씀하셨고, 저는 오기로 그러겠다며 고집을 피웠었어요. 스물대여섯살 때였는데, 당시에 제 마음은 '이왕 늦은 거 천천히 제대로 가자'는 생각이었어요. 이미 제 동기들은 23, 24살에 다 취직해서 일을 열심히 하고 있고, 아니면 이직 경험까지 있는데, 저는 아직 학생이었으니까요.


그 때 되게 처절하게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이게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맞나? 하고 싶은 게 맞나? 이런 생각들을 정말 많이 했었어요. 당시의 일기장을 보면 아니야 현실로 적응을 하자, 아니 다시 생각해보자 이런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이 써져있는데요.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시점에 계신 분들께 드리고 싶은 얘기는, 결국 모든 답은 자기 안에 있다는 거에요. 그 답을 좀 현명하게 잘 찾아가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Q. 내가 원하는 삶이 뭔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사용하면 좋을까요?


각자만의 방식이 있겠지만, 저의 경우에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려고 하는 편이에요. 어떤 게 나와 잘 맞는지, 내가 어떤 거를 했을 때 기분이 좋은지 이런 저의 감정을 좀 많이 들여다보려고 해요. 그리고 생각을 정말 많이 하는데, 근데 그러다보면 머리만 무거워지는 시기가 있잖아요. 그럴 때는 생각을 멈추고 일단 합니다. 일단 해보고 맞는지 아닌지를 이제 체득하는 거죠. 그러면서 계속 내가 좋아하는 일의 범위를 좁혀가는 편이에요. 그런데 여기에서 제일 중요한 거는 이게 언제든 변할 수 있다라는 마음이라 생각해요. 내가 지금은 이런 삶이 좋지만 나중에 이 삶이 안 맞아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Q. 막내 직원으로 들어가서 초고속 승진을 해서 대표가 되셨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요?


지금도 저랑 같이 일을 계속하고 계시는 박정일 이사님이 저희 회사를 원래 시작하셨고, 제가 그분 밑에서 일을 시작했었어요. 한 3년 정도 됐을 때 저한테 대표를 하라고 하셨는데, 사실 그 때는 너무 싫었어요. 제가 원해서 됐다라기보다는 약간 등 떠밀려서 된 케이스였죠.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그게 그 때 이사님의 꿈이었던 것 같아요. 지역에 좋은 변화를 일으키는 사회의 리더들을 계속 발굴하고 키우는 게 소명이셨고, 제가 그 첫 번째 테스트였던 거죠. 시켜보니 곧잘 하네 이러면서 제가 가지고 있던 잠재적인 가능성들을 크게 봐주셨었고, 그런 기회로 이제 자리를 잡게 됐어요. 지금도 여전히 저의 옆에서 든든하게 응원과 지지를 해 주시고, 어떨 때는 선생님으로 어떨 때는 사업을 같이 하는 파트너로 역할을 해주고 계시고요.


그리고 사실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그 때는 회사라고도 할 수 없었어요. 그냥 '동아리인가?' 이런 느낌. 시작이 원체 너무 미미했었고, 체계도 없었다 보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것들을 잘 잡아가려고 되게 노력을 많이 하고 있죠. 입사 초기에도 정말 고생을 많이 했어요. 세금계산서 발행을 처음 해보는데, 이사님이 알아서 해보라고 하고 안 가르쳐 주시는 거에요. 그리고 대표가 되고 나서 만난 첫 번째 난관은 대출을 하는 거였어요. 제가 운이 좋게 학자금 빚 없이 사회에 나오게 됐는데,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 생겼고, 처음으로 빚이라는 걸 가지게 되는 순간이 온 거죠. 그래서 '이게 맞나?' 하는 고민들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Q.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가 '늘 받은 돈보다 더 많이 일해서 퀄리티를 높이는' 자세 덕분이었다라고 하신 걸 봤어요. 구성원들이 그 생각에 동의해서 한마음으로 같이 나아갈 수 있었던 비결이 뭔가요?


밖에서 보면 다 좋아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그래도 그렇게 소개를 하는 거는 '그 마음을 잊지 않겠다'는 게 더 큰 것 같아요. 저희의 어떻게 보면 이정표 같은 개념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제 입장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동료는 우리가 가려고 하는 방향을 100% 이해하고 있는 동료에요. 일의 퀄리티나 기술, 그러니까 역량의 차이는 사실 시간이 지나면서 쌓일 수도 있고 노력을 하면 획득할 수도 있는데 반해, 방향에 동의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는 굉장히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저희가 입사 지원서가 쓰기 좀 까다로운 편인데, 팀원을 모집할 때부터 저희들이 원하는 방향, 가려고 하는 방향들을 계속 명확히 얘기하려고 해요. 그거에 동의를 하는 분들이 지원할 수 있도록요.


그리고 저희도 마이너스를 보면서 사업을 할 수는 없으니 당연히 이윤을 생각하죠. 다만 어떤 일을 맡았을 때 그 값어치는 분명히 해야 된다는 생각이 있고, 가능하면 거기서 조금 더 하자고 얘기하는 편이에요. 그 과정이 힘들 수는 있지만, 우리가 좀 더 전문적인 영역으로 계속 넘어갈 수 있도록 내부에 경험이 쌓이는 과정이잖아요. 우리의 역량을 키우는 경험을 돈을 받고 한다는 생각인거죠. 그리고 일에 후회가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큰 것 같아요. 다 끝나고 나서 '그때 우리가 이게 조금 부족해서 좀 아쉽다' 이런 얘기가 안 나왔으면 좋겠어요.




Q. 부산, 거제, 밀양에서 일을 하셨어요. 각 지역들에서 어떤 일들을 해오셨나요?


부산에서는 도시재생 사업들을 좀 적극적으로 했었어요. 부산 초량에 있는 '도시민박촌 이바구캠프'라는 프로젝트에 실행팀으로 참여해서, 동네 주민분들이랑 같이 회사도 만들고, 공간 운영도 마을 게스트하우스 운영도 해봤죠. 도시재생 선도 사업으로 시작이 됐던 사업이라, 우리나라의 첫번째 도시재생 사례였어요. 거제에서는 조금 더 우리 색깔을 담은 일을 하자고 생각하고제 맨 땅에 헤딩을 했어요. 공간 매입, 리모델링 등을 하면서 운영을 시작했었고, 밀양으로 넘어온 지금은 소통협력센터라는 중간지원조직을 운영하고 있어요. 경남의 광역 거점 역할을 맡고 있죠.



Q. 지역을 옮기신 이유가 궁금해요.


그때그때 터닝 포인트가 있었는데, 부산에서 거제로 가게 된 거는 조금 더 성장을 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부산에서는 시작하는 단계부터 많은 분들의 서포트를 받으며 일을 시작했고, 정말 좋은 기회를 많이 만나면서 경험치도 많이 쌓일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한 단계 레벨업을 하려면 자체적인 경험치를 가지고 있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새롭게 시작해보자는 생각으로 거제를 가게 됐죠.


어디로 갈지 물색하는 기간이 있었는데, 그 때 저희가 5가지 기준을 설정했었어요. 가장 큰 기준은 부산이랑 가까워야 된다는 거, 두 번째 기준은 바다가 있어야 된다라는 거였어요. 고기를 먹지 않는 팀원도 있었고, 늘 부산에서 바다와 가까이 살았다보니, 지역을 옮기더라도 계속 바다와 가까운 곳에서 살고 싶었거든요. 거기에 평지였으면 좋겠고, 편의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준도 있었어요. 그 기준에서 거제, 통영, 남해 정도의 후보가 나왔고, 마지막 기준이 '우리의 역할이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거였는데, 거기서 거제, 그중에서도 장승포라는 원도심으로 결정하게 됐어요.


우리의 역할이라는 건 곧 일거리거든요. 남해는 그 당시에 이미 수도권이나 다른 지역에서 이주하는 청년들이 많았어서 이미 친구들이 많이 있으니 거기까지는 안가도 되겠다 싶었고, 통영은 원체 문화예술의 도시이다 보니 저희랑 잘 맞을지 모르겠더라고요. 장승포는 한때 부흥했지만 지금은 조금 침체된 지역이었고, 그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일을 우리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결정하게 됐어요.


밀양까지 오게 된 이유는 밀양에서 소통협력공간 조성사업 수탁기관을 모집한다는 공고 때문이었어요. 그 공고가 올라오고 나서 여기저기서 '이거 공유를위한창조가 해보면 잘할 것 같은데 어떠냐'며 전화를 주시는 거예요. 처음에는 지역도 옮겨야 되고, 중간 지원 조직이라는 롤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크게 고려하지 않았었거든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까 행정과 좀 더 밀접하게 일하는 경험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가 거제에서 청년마을 사업을 했었는데, 그 사업을 통해 거제에 정착하려는 친구들이 나왔을 때 행정에서는 시점이 맞지 않다, 특혜 시비가 걸릴 수 있다 등의 이유들로 그 친구들의 정착을 지원하는 게 어렵다고 했었거든요. 저희는 행정의 프로세스들을 잘 모르다보니, 그걸 도와주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웠어요. 그래서 행정을 조금 더 이해하는 경험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동료를 더 많이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컸어요. 지역에서는 비슷한 지향점을 가진 친구들이 많이 없다는 게 어려운 점이었는데, 전국을 놓고 보면 많더라고요. 특히 청년마을을 하면서 많은 동료들을 알게 됐죠. 그런데 그들을 만나려면 최소 두세시간은 이동해서 만나야 하다보니, 이런 친구들이 경남 안에 많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그런 친구들을 찾아서 그들이 경남 안에서 조금 더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돕는 일을 하고 싶은데, 이 사업이라면 그걸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동기도 있었죠. 밀양에서는 경남 동부권의 큰 도시인 창원, 김해, 양산 이런곳들을 다 30분에서 1시간이면 오갈 수 있거든요.



Q. 지역을 옮길 때마다 그 지역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아이템을 발굴해야 하잖아요. 활용 가능한 지역 자원을 어떻게 찾아내시나요?


저희는 현장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편이에요. 장승포로 결정하고 나서 자원을 찾기 위해 했던 건 그냥 거제에서 노는 거였어요. 거제 곳곳을 다니면서 저희가 좋아하는 캠핑도 하고, 바다 가서 놀기도 하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기도 하면서 사람들이 뭘 하는지 지켜봤죠. 그러면서 아웃도어라는 콘텐츠를 발견했어요.


지역이 가진 자원과 우리가 흥미를 느끼는 걸 결합하는 게 중요해요. 지역의 자원은 굉장히 많지만, 우리가 재미있어하는 게 아니라면 별로 소용이 없거든요. 저희 팀은 부산에서도 백패킹을 다닐 만큼 캠핑을 좋아했었기 때문에, 거제의 자연을 보고,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아웃도어 활동을 하는 걸 보면서 너무 좋다고 느꼈던 거라고 생각해요. 집순이가 바다를 본다고 해서 감흥이 오진 않으니까요.



Q. 동네를 옮겨서 새로운 일로 창업을 하는 걸 두 번이나 하셨는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거제는 부산에서 같이 일을 하던 동료들과 함께 넘어간 거였고, 부산과 가까워서 언제든 갈 수 있었기 때문에 적응이 어렵다는 생각은 별로 안했어요. 그냥 도시의 인프라보다는 확실히 부족한 게 있으니까 생활적인 면에서 내가 좀 더 찾아봐야 한다는 수고스러움 정도만 있었죠. 한편 밀양은 적응할 새도 없이 바로 일에 투입돼야 했어서 그냥 닥치는대로 일을 했어요. 그래서 밀양에 와서 성향이 되게 많이 바뀌었어요. 옛날에는 그 사람들을 만나면서 좀 에너지를 충전하는 스타일이었는데, 지금은 완전 집순이가 돼서 집 밖으로 나가질 않거든요. 여기서는 에너지를 쓰는 게 너무 많아서 계속 스스로 채워야 하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아 나한테 이런 면도 있었구나'를 깨닫고 있어요.



Q. 주민분들과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게 '알면서도 천천히 둘러 갈 수 있는 용기를 내는 것이다'라고 말슴해주셨는데, 그 용기를 낼 수 있는, 그 시간을 버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었나요?


지역에 사업들이 들어가면서 공간, 시설들이 많이 만들어지잖아요. 대부분 지역 어르신들 중심의 주민분들이 받아서 운영을 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이권으로도 해석이 된단 말이죠. 시설을 잘 운영하기 위해서는 공부도 계속 해야 하고, 트렌드도 계속 봐야 하고, 실제 현장에서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신경써야 하고, 되게 복합적인 노력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60대 이상의 어르신들이 그 역할을 계속 해 나가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데, 이권 때문에 욕심으로 그 운영권을 계속 쥐고 계시는 경우들이 많아요. 그러면 지역에는 공간이 많다고 하는데, 누군가는 공간이 없어서 못 쓴다는 얘기를 하는 미스 매치가 계속 일어나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그런 공간들이 젊은이들에게 가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새로운 일을 하면 좋겠는데, 그거를 그냥 뺏어서 청년들에게 연결을 시켜주는 건 저희가 자폭하는 거죠. 그래서 어르신들이 스스로 내려놓으실 때까지 버티는 게 중요했어요. '우리가 이제는 못하겠어. 그냥 다른 사람이 하는 게 맞겠어'라는 생각을 하시게 되는 시점까지 버티다가 그 때 운영권을 받으러 들어가는 거죠.


제가 이바구캠프에서도 총괄을 맡았는데, 그 당시 저희 동네 어머니들이 '은진이가 하면 좋지'라고 얘기를 하셨어요. 감투를 쓰고 싶으셨을 수도 있는데, 일이 실제로 잘 되게 하려면 열심히 할 의지가 있고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게 맞겠다고 생각하신 거죠. 그걸 스스로 인정하시는 데까지 시간이 되게 오래 걸렸는데, 막상 그렇게 해서 저에게 자리를 내어주니 일이 잘 돌아가잖아요. 그러니까 동네도 좋아지고 우리도 좋다고 하셨어요. 신뢰를 드리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장승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요. 저희가 계약만료로 도시재생 시설들에서 다 나오게 됐어요. 사무실 하나랑 메이커 스페이스 공간 하나를 쓰고 있었는데, 계약기간이 종료가 됐으니까 저희는 철수를 했죠. 그랬더니 동네에서 난리가 난 거예요. 그 지역 도시재생 사업에 참여하셨던 이사장님이 '너네가 안 쓰면 누가 쓰노. 조금만 기다려 봐라. 내가 시청에 들어가서 얘기할게' 이러시는 거예요.그래서 '이사장님, 저희가 쫓겨난 게 아니라 계약 기간이 종료가 돼서 나온 거고, 계약을 더 할 수가 없는 현실이라서 나오게 된 거에요.' 그랬더니 '그건 중요하지 않다. 너네가 써야지. 조금만 기다려 봐라.' 이러셨어요. 그 상황이 너무 웃기면서도, 정말 감사했어요. 6년 전에 저희를 제일 경계하셨던 게 그분이셨거든요. '쟤네들 이거(공간) 다 먹으려고 온 애들이야'라고 하면서 제일 경계하셨는데 지금은 '너네가 쓰는 게 맞지. 너네가 안 쓰면 누가 쓰니' 이렇게 하시니까, 이럴 때 마음의 힘을 얻게 되는 거죠.


되게 많은 사람들이 지역, 특히 마을 안에서 일을 하고 살아간다는 걸 그냥 사업으로 접근을 하세요. 실제로도 행정에서도 사업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저희는 그 사업이 담는 거는 삶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일상적인 생활들, 그러니까 그 토대가 얼마큼 잘 되어 있느냐가 사업이 들어왔을 때 임팩트가 나는지를 결정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에서 저희는 그냥 소소하게 우리 골목에 사는 이웃들이랑은 지나가면서 인사도 하고, 맛있는 거 생기면 갖다 드리기도 하고 받기도 하고 했어요. 그냥 그게 일상적인 생활이고, 그렇게 사는 게 맞지 않나 싶어요.


부산에서는 어머니들이랑 술을 자주 마셨어요. 우리 동네 어머니들이 술을 좋아하셔서요. 그분들 입장에서는 원래 조용하고 젊은 사람 만나기 힘든 동네였는데 저희 팀이 들어오고 나서 그래도 뭔가 복작복작해진 분위기가 돼서 동네가 살아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으셨던 것 같아요. 이바구캠프 사례를 주변에서 잘한다 잘한다 이야기 해주니까 거기에 자부심도 많이 느끼셨던 것 같고요. 지금도 한 번씩 언제 올거냐고 연락 주시거든요. 그런데 거제에서는 이바구 캠프 부산에 있을 때처럼 엄청 결속력 있는 그런 관계는 아니다 보니, 적정한 거리, 선 넘지 않는 관계를 만들었던 것 같아요.


동네에서 처음에는 경계도 되게 많이 하셨죠. 실제로 되게 밀어내시기도 했고, 소문이 이상하게 나기도 하고 그런 것도 있었는데 거기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려 했어요. 그렇게 6~7년차가 되어가니까 이제는 저희가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동네 가게 사장님들도 저희가 무슨 일을 하는 애들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저희 얼굴은 이제 아시거든요. 그게 시간이 만들어 주는 힘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저희 골목에 수선집 하시는 어르신이 계시는데 한 5년 정도 됐을 때까지도 저희랑 데면데면하셨거든요. 근데 저희가 그 수선집에 맨날 옷 맡기고 하면서 말 트고 하니까 최근에는 저희 공간에 술을 들고 오셨어요. 그래서 또 한 잔 같이 하고, 그러면서 이제 관계가 쌓이고 그러는 것 같아요.



Q. 굉장히 다양한 범주의 일을 해오셨는데, 이 일들이 하나로 엮이면서 시너지를 내는 부분이 있었나요?



제일 임팩트가 있었던 시절은 청년 마을이었던 것 같아요. 공간도, 지역에서 무언가를 하겠다는 마음도 늘 있었는데, 같이 할 동료들을 찾는 게 가장 힘들었었거든요. 그런데 청년마을 덕분에 많은 친구들이 우리 동네에 와서 살아보면서, 여러가지를 함께 도전해봤고, 처절한 실패도 경험해봤고... 한 장의 사진처럼 그 시절이 남아있어요.





Q. 성공적인 주민 주도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요?

저희도 늘 고민이 많은 부분이에요. 이야기를 하면 끝도 없기는 한데요. 저희는 우선 '주민의 기준을 어떻게 볼 것이냐'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요. 통상적으로 주민이라고 하면 그 동네에 오래 살아온 토박이 분들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제가 장승포에 가서 깜짝 놀랐던 게 장승포에 이주해서 30년 이상 가게를 해오신 분이 자기는 이 동네 주민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자기는 주민이라고 생각해도 지역 안에서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얘기를 듣고 저희는 '아 우리는 평생 이 지역에서 주민일 수는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거제에서는 그 지역 사회 안에 깊숙히 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덜 했던 것 같아요. 주변 환경들의 영향을 받지 않고도 우리가 계속 여기에 있을 이유를 찾는 일, 그리고 계속 여기서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일에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췄어요.



Q. 늘 아카이빙을 철저히 하시는 것 같은데, 그 이유와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일단 저희 이사님이 기록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을 하셔서 닦달을 많이 하세요. 또 같이 일을 하는 동료 중에 유진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가 그런 걸 참 잘해요. 책을 출판하는 것도 유진이 거의 다 책임지고 진행했어서, 이런 동료가 있는 덕분에 기록을 잘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기록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는 이유는, 모든 순간들이 다 찰나잖아요. 지역에서의 변화가 생기는 게 밖에서는 정말 작은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내부에서는 터닝포인트라고 느끼는 시점들이 있거든요. 그거를 우리만 알면 안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과정 자체를 잘 기록하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누군가가 해주지 않으니까 저희가 하는 것도 있기도 하고요. 그냥 저희들의 족적을 남기는 과정이라고 생각을 해요. 매번 우리는 진화하고 있으니, 그 과정들을 잘 기록해두자고 생각해요.



Q. 지역에도 취업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나요?


현실적으로 절대적인 양이 많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그래서 오히려 지역에 있는 팀들이 잘 성장해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게 돕는 것도 되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고, 동시에 그런 회사를 만들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잘 도전할 수 있게 돕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역에 인구가 계속 감소하고 있다, 청년들이 가장 빠르게 유출이 된다, 이런 얘기를 정말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그걸 해결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좋은 회사가 거기에 있으면 되거든요. 그런데 보고 있으면 수요와 공급의 파이가 좀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균형을 잘 맞춘 좋은 정책들이 많이 나오길 바라요.



Q. 닉네임인 '빌리'가 '빌리어네어'에서 따온 거라고 들었어요. 지역에서도 충분한 돈을 벌 수 있나요?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죠. 그런데 그 '많다'라는 건 사실 굉장히 주관적인 기준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역에서 살려면 '나에게 충분한 수입의 기준이 얼마일까'라는 고민을 해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생활비는 어느정도 지출이 되는지 계산해보고, 저축을 할 수 있는지, 내가 하고 싶은 거에 돈을 얼만큼 쓸 수 있는지 등의 현실적인 금액들을 한번 고민해보는거죠.


회사의 경우는, 저희 같은 경우에는 매출 부분에서는 계속 성장을 해 가고 있어요. 가끔 떨어질 때도 있지만, 계속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올라가는 편이에요.



Q. 지칠 때도 분명히 있으실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해낼 수 있는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나요?


저는 사실 제가 살아가려고 하는 방향이나 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지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여전히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재미있고, 계속 이런 일을 하고 싶고 그래요. 올해는 좀 더 브랜딩에 관심을 가졌는데 다음 해에는 커뮤니티가 될 수도 있고, 이런 차이정도는 있을 수 있지만, 큰 방향은 늘 흔들리지 않고 온 것 같아요. 그 방향들을 잃지 않으려고 고민도 많이 하고, 여러 경험도 해보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고요. 그렇게 하면서 스스로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를 찾아가고, 일을 추진해 가는 힘을 그 안에서 찾는 것 같아요.




Q. 앞으로 나아가고 싶으신 방향이 궁금해요.


지금 하는 일들을 계속 꾸준히 해나가고 싶어요. 그리고 개인적인 목표로는, 제 자리를 물려줄 수 있는 다음 친구를 찾고 싶어요. 제가 27살에 대표가 됐는데, 그 당시에 저에게 자리를 주셨던 박정일 이사님이 40대 초반이셨거든요. 제가 그즈음이 되는 시점이 이제 5-6년 정도 남았어요. 그래서 저도 그 정도 됐을 때 다른 친구에게 제 자리를 주고 저는 한 발짝 물러서서 그 친구가 우리 회사를 잘 끌어갈 수 있게 서포트하고 싶어요. 동시에 제 영역에서 일을 또 만들어가면서요.



Q. 서울 밖을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저는 인프라보다 내가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살고 싶은 삶, 하고 싶은 일, 앞으로 살아갈 미래 이런 것들이 서울에 있다면 서울에서 사는 게 맞겠죠. 그런데 그런 게 서울에 없는 사람이라면 굳이 서울에서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게 지역에 있을 수도 있잖아요. 자기가 꿈꾸는 삶과 맞는 지역을 찾아보기를 추천하고 싶어요. 스스로의 삶에 대해서 좀 많이 고민을 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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