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한 순간들
사람을 대하지 않는 직업은 없다.
사람에 지쳐서 오랜 시간 사람과 마주치지 않는 직업을 생각해 봤는데,
외딴섬 등대지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결국 우리는 사람을 만나고, 사람에게 평가받고, 사람과 함께하는 일을 하게 된다.
내가 원래 가려고 했던 법조인의 길도, 지금 하고 있는 리테일 매장의 일도
결국 사람을 대한다는 면에선 같았다.
다만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방식이었다.
법조인을 대할 땐 ‘전문가’에 대한 존중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지만, 그냥 점원을 대할 땐 그런 게 없다.
그저 나를 응대해 주는 사람, 나에게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무례한 사람에게 나는 그저 매장에 존재하는 NPC이고, 어떤 이에게는 쉽게 대할 수 있는 ‘을’이었다.
‘법조인이 될 사람’이라는 보호막이 사라진 채 마주한 사람들은 생각보다 차갑고, 때로는 무례했다.
‘아가씨,’ ‘언니’ 등 전혀 전문성이 인정받지 못한 호칭으로 불릴 때도 있고,
처음 보는 내가 친구라도 된마냥 반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소리를 마구 지르고, 제공해 줄 수 없는 옵션을 달라고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존재로 보이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사람들은 ‘나’라는 사람을 대하기보다,
내가 맡고 있는 ‘역할’을 보고 나를 대하고 있었다는 것을.
고객과 대화를 하다 보면 어쩌다가 내가 고학력자라거나, 로스쿨을 다닌 적이 있다는 이력을 말하게 될 때도 있다. 그러면 고객은 정말 놀란다.
“아니 근데 왜 여기서 일해요?”
나는 그 질문을 들을 때마다 조금 웃음이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지금의 나도 충분히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넘겼다.
왜 우리는
타인의 선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왜 사람을 보기보다
그 사람이 가진 타이틀로 먼저 판단하게 되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인류애를 조금씩 잃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어떤 날은
나의 작은 행동이
누군가의 하루를 바꾸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건넨 설명과 조언이 도움이 되어 좋은 선물을 했다고 말하는 사람,
문제를 해결하고 안도의 표정을 짓는 사람.
그런 사람들의 표정은
그대로 나의 미소로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결국 우리는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나는 누군가에게 쉽게 판단되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따뜻함을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매일매일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은 더 나아지게 만드는 사람.
이 세상이 완전히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하루만큼은
조금은 더 따뜻해지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