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아침부터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중심이 흔들리는 것 같아 울적한 나날이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가로수 이파리들이 바람에 떠밀려 가기라도 할 듯 허옇게 뒤집힌 채 흔들거렸다. 내가 바로 저런 꼴이겠구나 싶었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그녀는 오늘 좀 늦는 모양이다. 나무들이 하나같이 봉두난발한 채 몸을 떠는 풍경이 감각적으로 와닿지 않을 만큼 카페 안은 쾌적하고 고요했다.
"말하자면,"
누군가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려 앞을 봤다. 야구캡을 눌러쓴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 채 볼펜으로 모자 챙을 툭툭툭 건드렸다. 마주앉은 여자가 허리를 쭉 펴고 그를 쳐다봤다.
"말하자면, 원자는 텅 빈 잠실 주경기장 같은 거야. 거기 푸른 잔디밭 한가운데 새빨간 사과가 놓여있다고 치자. 그게 원자핵이야. 거대한 원자 안에 아주 작은 원자핵이 있는 거지. 그런데 바깥 트랙에 웬 이상한 녀석이 방향을 바꿔가며 정신사납게 뛰고 있어. 그게 바로 전자야. 원자의 가장 바깥 궤도에 있는 전자를 최외각 전자라고 하는데, 이 숫자가 8개일 때 안정적인 상태가 돼. 이런 걸 옥탯이라고 하는데,"
"옥탯이요?"
여자가 말꼬리를 물었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어린 여자애였다. 남자가 모자를 벗어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고는 다시 썼다.
"너, 옥타브 알지? 옥타가 8이란 뜻이거든. 옥탯, 옥타브, 8! 이렇게 기억해. 자, 다시 잠실경기장으로 돌아오자, 우리. 바깥트랙에 '최외각전자'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은 육상 선수들이 뛰고 있어. 몇 명? 그렇지! 여덟명이 이렇게 뛰는 한, 안정적이야, 불안정적이야? 그래, 안정적이야. 잠실 경기장이 오페라극장이나 전국노래자랑 무대로 바뀌는 일은 없는 거야. 이 말을 교과서적으로 한다면, "다른 물질에 화학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는 거지."
남자는 좋은 선생이었다. 원자의 구조에 대한 설명이 귀에 착착 감겼다. 고등학교 때 이런 화학선생을 만났다면 좋았겠다. 그는 대기중에 존재하는 비활성기체들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갔고, 순간 나는 저요, 저요, 하고 외치고 싶어졌다. 비활성기체라고 하면, 나도 좀 아는 게 있었다.
가령, 공기의 0.93%를 차지하는 아르곤(Ar)은 무색, 무미, 무취의 기체로 어떤 물질과도 결합하는 일 없이, 이 젊은 선생의 말을 인용하자면, 8명의 정예대원- 그렇다, 최외각전자!-가 바깥 트랙에서 뛰고 있는 터라 다른 원자에 반응하는 일 없이 대기 중에 홀로 고고하게 떠돈다. 그래서인지 이런 류의 기체를 일컫는 또 다른 이름이 있으니, 바로 '노블 기체 Noble gas.' 이른바 독고다이를 주장하는, 남들 보기엔 '니 잘났다' 부류로 묶일만한 녀석들인 것이다. 내가 존경해마지 않는 원소들이랄까.
그때였다. 기억 속에 오래 잠겨 있었던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꼭 같이 행동해야 해요?
1993년의 봄은 쌀 수입 개방을 반대하는 시위로 거리가 시끄러웠다. 난생 처음 최루탄 가스에 상가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울며 토하던 봄이었다. 동아리 선배가 치약을 손가락에 짜서 다가오길래 그걸 어떻게 바르냐고, 웃으며 설레발 친 걸 후회하며, 아니 애초부터 동아리 선배를 왜 따라 왔던고, 후회하며 울고 토하던, 그런 봄.
평소 도서관에만 다니던 친구까지 다소간 어정쩡한 자세로 시위에 참가했으니 동기들 대부분이 함께 그 거리에 있었고, 그건 드문 일이었다. (훗날 생각해보니 그렇게 '쪽수'가 많은 시위는 그게 마지막이었던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동아리 혹은 과 선배들에게 이끌려 어느새 차도를 점거했다. 이슈가 이슈인 만큼 거리는 시민과 학생으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나는 수줍게 구호를 따라 외치고 어색하게 주먹을 휘두르면서 사람들에게 떠밀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 그녀가 보였다. 대열 안이 아닌 대열 바깥에서. 아니 시위대와 구경인파의 경계선에서.
그녀는 시위대에서 비껴 선 채 앞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경계석에 올라 서더니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며칠 전, 과 전체로 움직이자는 과대표의 말에 내심 불만이 있건 없건 침묵을 지켰던 우리와는 다르게 분명하게 자기 의견을 밝힌 건 그애뿐이었다.
"왜 꼭 같이 행동해야 해요?"
어쩌면 그런 그녀의 포즈는 90년대를 본격적으로 알리는 것이었을까.
그 뒤로 그녀와 동류로 묶일 만한 사람을 여럿 보았다. 그들은 정치적 성향도 삶의 가치관도 종교도 제각각이었다. 그런 그들을 한데 묶는 건 '나 홀로 고'를 외치며 끝까지 가는 멘탈이랄까.
어떤 여학생은 엄마에게 등짝을, 선생에게 손바닥을 맞아가며 6년간 교복치마를 한땀한땀 줄이기도 하고(내 동생이다), 어떤 선생은 애국조회 시간에 국기에 대한 맹세를 거부하며 앉아 있다가 총장에게 찍혀 학교를 떠나기도 한다(내 선생이다). 스물 네살의 어떤 캘리포니아 처자는 제지회사로부터 2000년 먹은 삼나무를 지키려고 2년간 나무에서 먹고 자며 1인 시위를 한다. 눈부신 꽃시절을 맞이한 청년들이 다양한 이유로 입영 대신 감옥행을 선택하며, 어떤 십대들은 수능 시험날 우리의 꿈이 대학은 아니라며 대학 거부를 선언하기도 한다.
김금희 작가가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그려낸 소설 속 조중균 씨도 이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이름만 적어서 내면 점수를 받는 시험에 의문을 품는다(이름 대신 시를 적는다). 그 탓에 유급당해 군대로 끌려갔고 피할 수 있었던 사고를 당한다. 고집스레 오류를 잡아내느라 당당하게 교정 기한을 넘긴다. 직무 유기와 태만이라는 명목으로 해고된다. 그가 사라진 뒤에서야 그에게 관심 없어 보이던 모두가 그를 열렬하게 기억해낸다. 각자의 조중균에 대해. 주인공의 인생에서도 그는 영영 사라졌다. 하지만 그의 세계는 내내 남겨질 것이다. 소설 말미에 술에 취한 채 그녀는 생각한다. "한번 가볼까" "그 지나간 세계로. 그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그녀는 애써 기억을 더듬어본다.
"문장과 시와 드라마는 있지만 이름은 없는 세계, 내가 간신히 기억하는 한, 그것이 바로 조중균 씨의 세계였다.
조중균과 같은 사람들. 그들은 지키는 사람이다. '지나간 세계(p223)'의 가치를 고단하게 지키거나 다가올 세계의 새로운 가치를 은연중에 지킨다. '자기'라는 세계의 가치를 지키고자, 혹은 '타자'라는 세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자신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기꺼이 내놓는다.
때로는 경외심에 찬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때때로 사람이 저렇게 유두리가 없어서야, 살다 살다 저런 똥고집은 또 첨일쎄, 노친네처럼 혀를 차기도 한다. 가끔은 그들의 운명이 고단해지지 않을까 염려스럽기도 하다.
부인할 수 없는 건 그런 사람들 앞에서는 뭐랄까, 한없이 에고가 작아지는 느낌이랄까. 부끄럽지만, 그런 연유로 방어기제를 높히기도 했다. 귀 닫고 눈 감은 채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기도 했다. 게다가 강고한 사람보다 어떤 '여지'가 많은 사람에게 더 끌리는 건 내 성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 세계가 이렇게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날에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특공대 여덟이 원자핵 주변을 철통같이 지켜서 화학적 안정을 이룬 이들.
다행이도 내게는 그런 친구들이 몇 있는데, 그 가운데 독보적인 존재가 있다. 이제 곧 그녀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올 것이다. 내 앞에 앉아서는 예의 심상한 표정으로 심드렁하게 안부를 묻겠지. 저 멀리서 풍문으로 맴돌 것 같았던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는 걸 변함없이 신기해하며, 나는 무탈하게 지낸다고 대답할 것이다.
젊은 화학선생이 몇년 전 양자 현미경으로 촬영된 수소 원자의 내부를 노트북으로 찾아 여자애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건 우주의 기원이라고, 남자의 다소간 흥분된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두 사람의 관계를 궁금해하며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다 익숙한 얼굴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