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slander Mar 06. 2019

여기 있으면서 여기 없는 채로

용의자의 야간열차, 다와다 요코

"자는 동안에는 우린 모두 혼자잖아요. 꿈속에는 창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도, 출발지에 남겨진 사람도, 이미 목적지에 도착해버린 사람도 있어요. 우리는 애당초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아요. 보세요, 땅의 이름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침대 밑을 스쳐지나가는 소리가 들리잖아요? 한 사람 한 사람 다 달라요. 발밑에서 땅을 빼앗기는 속도가. 아무도 내릴 필요 없어요. 모두 여기 있으면서 여기 없는 채로 각자 뿔뿔이 흩어져 달려가는 거예요. (p140)" - 소설의 마지막



읽다보면 어느새 소설의 정서와 색채가 바뀌어 버린다. 열차를 타고 도시의 경계들을 넘다보면 돌연 창밖 풍경이질적으로 바뀌어 있듯이.


도시의 파업, 열차고장, 여권 분실, 원치않는 타인의 호의, 진심을 알 수 없는 선의,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사건, 정체불명의 동행자...

그리고 밤을 토막내고 옅은 잠과 깊은 꿈의 경계에서 미끄러져가는 야간열차.

여느 열차(혹은 이국의 도시)에서 일어날 법한, 하지만 비일상적이면서도 곱씹을수록 이상해지는 일들을 겪는 주인공, '당신.'


처음에는 주인공과 함께 범속한 세계의 익숙한 도시들을 오간다고 생각했다. 범상치 않은 여행의 영속성을 깨달은 순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한 세계로 넘어와버렸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환상을 다룬다고 생각되지 않는 이유는, 삶이라는 게 이렇지 않을까 싶어서다.




삶은 여행이라는 고루한 비유를 들먹이고 싶지 않으나, 살다보니 어느새 내가 예상치 못한 곳에 와 버린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분명 내가 목적지로 삼고 향하던 곳이 있었으나, 자의반 타의반 열차에서 내려 헤매이거나, 누군가의 도움으로 방향과 궤도를 틀어 어렵사리 도달했다 하더라도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다시 피곤한 몸을 열차에 실곤 했다. 게다가 여행지마다 겪게되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 예상과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는 일들, 우연히 함께하게 된 정체불명의 동반자들이 누구나의 삶에도 있지 않던가. 그들의 선의는 악의를 품었을까, 악의로 오해한 호의인가, 관심인가 호기심인가, 악인일까, 피해자일까, 아니면 난데없는 꽃일까. 이런 의문을 품고서 관계를 이어가거나 끝냈던 일도 있지 않았던가. 결정적으로, 내가 나와 너로 분리되는 순간들은 얼마나 많았는지.

과연 '당신'은 누구이고, '나'는 누구인가.

소설 말미에 맞닥뜨리는 이 질문은 독일에서 활동하는 일본인이라는 작가 정체성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타자로 존재하는 '당신'을 관찰하는 '나', 바로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가 싶기도.



매거진의 이전글 빈틈이 없는 세계의 어떤 절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