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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Sep 27. 2018

빈틈이 없는 세계의 어떤 절정

프롬 토니오, 정용준

환상적인 이야기. 촘촘하게 서사를 받치는 디테일. 사랑과 죽음과 삶,  삶 너머의 또 다른 삶에 대한 진지한 탐험.


1. 이승우 작가의 표사에 이끌려 정용준 작가의 <프롬 토니오>를 펼쳐 들었다. “눈에 보이도록 잘 그려냄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엄연한 있음을 사유하게” 한다는 문장 때문이었다.


2.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성경 구절을 깊이 애정한다. 나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무엇에 대한 믿음이 이 현실을 넘어서게 하는가, 그런 생각을 하며 책의 페이지를 넘겼다. 

도입부, 고래의 음성과 언어를 시각적으로 그려낸 장면의 아름다움에 굴복, 완독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인물들이 나를 데리고 갈 세계가 더할나위없이 이상한, 매혹적으로 이상한 곳이기를, 보이지 않아도 그 엄연한 존재를 믿고만 싶은, 그런 세계이기를 바라면서. 


3.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죽음 너머의 삶을 보게 될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눈앞에 펼쳐진 건 삶 너머의 삶이었다. 그 기이하고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토니오의 이야기만 모아서 그림책으로 만들어져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 창세기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창조신화와 궁창의 생물로 신비롭게 묘사되는 고래. 한때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도시였으나 지구의 가장 뜨겁고 깊은 곳에서 재탄생한 '유토'.

이 신비로운 도시는 일만년 전, 단지 하룻밤 새 바다 속으로 침몰했다는 전설의 도시 아틀란티스와 겹쳐지며, 유토 시민들의 독특한 일화는 <어린 왕자> 속 인물들을 묘하게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유토의 “푸른 그림자”가 드리워진 또 다른 세계,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허무와 고독의 땅, '우토'.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무의미하게 남겨”지는 데서 오는 극단적인 허무는, 현실세계의 것처럼 익숙하다. “죽음을 모방한 삶”을 살아가며 좀비처럼 허우적거리고, “무의미의 풍경” 속에서 소금기둥으로 굳어가는 게 비단 우토에서만 벌어지는 일일까.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지만 빈틈이 없는 세계의 어떤 절정,”
“혼란스럽지만 매료되는 이상한 곳.”


이 소설에서 그런 근사한 환상을 보았다.


눈꺼풀 안쪽의 좁은 어둠이 넓게 펼쳐지는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바람은 멎고 파도는 그쳤다. 진공처럼 고요한 압력이 물살을 따라 사방으로 흩어졌다. 고래의 분기공 주위로 일렁이던 희미한 광채를 닮은 무엇인가가 어둠 속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희미한 안개 같은 것이 되어 수면 위를 휘돌더니 허공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해변에서 목격한 고래의 언어와 비슷했으나 느낌이 달랐다. 오로라처럼 다채롭고 신비로운 색깔 대신 얇고 투명한 얼음 같은 흰빛이 감돌았다. 유토를 묘사한 문장은 이미지로 변해 건물이 되고 길이 되고 풍경이 되었다. 마치 물고기의 가는 뼈로 만들어진 것 같은 가늘고 하얀, 그러나 단단하고 섬세한 그림. 그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작은 도시 유토가 되었다. 유토는 한동안 허공에 떠 있더니 서서히 물속으로 들어갔다. 토니오가 앨런을 만나기 위해 물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처럼 파도에도 흔들리지 않고, 물에도 젖지 않고, 안정된 모습으로, 완벽한 형상으로, 바다로 빨려들어갔다. 누군가가 부드러운 힘을 이용해 잡아끌고 품에 꼭 안는 것처럼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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