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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Mar 06. 2019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열두개의 달 시화집 2월편, 윤동주 외, 에곤실레

“Every man has his secret sorrows which the world knows not; and often times we call a man cold when he is only sad.” ― Longfellow



막 나가려던 참이었다. 도어락이 해제되는 소리에 가방을 도로 내려놓았다. 아이가 분통을 터뜨리며 거실로 들어섰다. 열한명이나 되는 친구 무리 중에서 아이 혼자 다른 반으로 배정됐다는 거다. 올해도 어김없이 단짝하고도 떨어졌다. 매해 반복되는 불운이라서 간밤에는 아이가 여리디여린 목소리로 "엄마, 기도해줘," 모처럼 품에 안기길래 이게 웬 횡재냐 덥썩 껴안고 기도해준 터였다. 아이는 오는 내내 열을 냈는지 하얗게 언 얼굴에 볼만 상기돼 있었다. 입술도 진하(게 발랐)고, 단아한 눈썹(은 언제 또 손질했나), 그리고 선명하고 또렷하게 빛나는 눈... 


아이의 분노는 이 눈빛을 닮았다. 맑게 빛나는 분노. 지저분하게 얼룩진 어른의 것과는 다르다. 이런 아이의 분노는 피하고 싶지 않고 껴안고 싶어진다. 넌 어쩜 이렇게 화가 나 있어도 예쁘니, 감탄하며 휴지를 건넸다. 아이는 한숨을 삼키며 입술을 문질러 닦았다. 그러곤 패딩을 벗어던지고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헤치더니 의자에 널브러졌다.

무슨 말을 해도 위로가 안됐다. 허둥거리며 애써보지만 불길이 번지는 걸 속절없이 바라보는 기분이랄까. 그래도 이런 불운의 경우에는, 슬픔보다는 분노가 낫다. 더 다룰만 한데다가 대상도 딱히 없으니 곧 수그러들 것이고.

내 위로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아이가 악, 소리를 내지른 뒤 폰을 꺼내들곤 범접할 수 없는 속도로 카톡 메시지들을 전송하기 시작했다. 곁에 있는 엄마의 백마디보다 보이지 않는 친구의 이모티콘 하나가 도움이 되고 있음을 실시간으로 목도하자니 나란 존재에 대해 겸허해진다. 앞으로는 내 탓이오, 이 부족한 엄마 탓이오, 하며 스스로를 탓하지 말아야지. 내 영향력에 대해 과신하지 말아야지.




아이 곁을 서성이다가 책장에서 시집을 펼쳐들었다. 연휴 전에 사고는 한번도 펼쳐보지 못했다. 하루에 한편. 이게 이렇게 어렵다니. 2월 14일. 오늘 날짜를 찾아보니 하이쿠가 있다.


"홀로인 것은 나의 별이겠지 은하수 속에. -잇사"


아무 생각없이 홀로, 하고 소리내었다가 얼른 입을 다물었다. 

와, 진짜 아무 생각없는 엄마가 될 뻔했어.


 
이번 시화집은 몇개월째 기다려온 시화집이다. 윤동주의 팔복과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 실려 있다.


八福
                            - 윤동주

슬퍼 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 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 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 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 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 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 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 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저히가 永遠히 슬플것이오。
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 박시봉방(朴時逢方)
                                                                   -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위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시화집 제목이 백석 시의 싯구절이기도 하다.  2월 편의 그림은 에곤 실레.


2월 10일자에 실린 료칸의 하이쿠도 읽었다.


"오늘 오지 않으면 내일은 져버리겠지 매화꽃"



나란히 실린 에곤 실레의 1912년작 little tree 를 오래 들여다봤다.




아이가 폰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엄마, 우리 샌드백 살까? 피식 웃고 말았다. 아이의 표정을 보고 얼른 얼굴을 바꿨다. 시집을 내려놓고는 아이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베개 들고 있어 줄게, 좀 때려볼래? 발끈하며 됐다는 아이. 고개를 비틀고 시선을 저 멀리 둔 채 앉아 있는 걸 보니, 자식이 뭔지 엄마가 뭔지, 아니 친구가 뭔지, 참 나 그 반 배정이 뭐라고, 나도 마음이 어둑해지고 만다. 한낮의 거실은 이토록 환하고 고요하고..... 너, 우니? 아이는 뭐 이런 것 갖고 우냐고, 다시 버럭. 그때까지 어깨에 놓여 있던 내 팔을 뿌리치며 몸을 일으킨다.


엉거주춤 따라 일어선 나를 보고 아이가 한숨을 쉬었다. 괜찮으니까 엄마 할 일 해. 못이기는 척 나는 가방을 집어들었다. 차라리 혼자 있는 게 낫다면서 아이가 나를 현관쪽으로 떠밀고는 벅스에서 빠른 비트의 팝을 재생시킨 뒤 그제야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벽시계를 흘끔 봤다. 곧 학원에 갈 시간이긴 했다.

미세먼지앱을 확인했다. 오늘의 대기는 쾌청. 가방을 맨 채 집안의 창문을 열어젖혔다. 현관을 나서면서 학원 가기 전에 문을 닫아달라고 집안을 향해 소리쳤다. 기분 풀리면 양말만 좀 개서 넣어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문 너머로 거칠게 포효하는 소리가 들린 듯도 했지만;;

슬픔보다는 분노가 나으니까.

주차장에서 문자를 보냈다. 이윽고 도착한 아이의 답문. "ㅇㅇ"
그래, 첫 한달만 지나가면 괜찮아질 거야.
언제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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