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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Mar 07. 2019

나를 잊지 않는 행복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돌을 생각한다.
초목이 우거진 기름진 땅에 자리한 돌. 지대가 높아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어느 날 돌은 시선을 멀리 던졌다. 비로소 아득하게 펼쳐진 황무지가 보였다. 장벽처럼 휘감은 강을, 그 너머 미지의 세계를 보았다. 돌은 제 몸을 뿌리째 뽑았고 그 바람에 몸의 일부가 떨어져나갔다. 기세등등 날선 모서리는 위협적이나 그건 돌의 개성이었다. 돌은 황무지로 가기 위해 물을 건너고자 했다. 하지만 세찬 물살 한가운데 갇혀버렸다. 쉼없이 격렬하게 부딪쳐오는 물과 힘을 겨루다가 그만 귀퉁이는 부서지고 원래의 형태를 잃어버렸다. 도달할 수도 있었던 세계를 저만치 위에 둔 채, 돌은 나날이 납작해졌다. 경쾌한 발짓으로 물을 건너는 이들의 무게를 견뎌내며 돌은 여전히 거기 있다.



나혜석의 글을 읽으며 징검돌의 숙명을 생각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자립과 존엄을 획득하지 못한 여성이 작가로서 갖게 되는 결함을 이야기한다.


“그 (작품) 안의 경련과 분노를 주목한다면, 그녀가 결코 자신의 재능을 흠 없이 온전하게 표현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녀는 고요히 써야 할 곳에서 분노에 싸여 쓸 것이고, … 등장인물에 대해 써야 할 곳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쓸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과 격투를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비틀리고 꺾인 그녀가 젊은 나이에 죽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p122)”



오직 제인 오스틴과 에밀리 브론테만이 가부장제 사회의 비판에 굴하지 않고서 “자신이 본 그대로의 사물을 고집”하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고 울프는 덧붙인다. 하지만, 울프 자신도 언급했듯이, ‘선두주자’들의 목소리가 있었기에 오스틴과 브론테가 문학사에 남겨질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걸작이란 혼자서 외톨이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것은 오랜 세월에 걸쳐서 일단의 사람들이 공동으로 생각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다수의 경험이 하나의 목소리 이면에 존재하는 것이지요.(p115)”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예술가로서의 나혜석이 잘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희’ 같은 단편소설보다 ‘이혼고백장’이 더 눈에 들어왔고, 그녀의 예술성은 여전히 그녀의 삶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물론 남성 중심의 전근대적 사회가 그 배경에 있음을 염두에 두고 읽었으며, 예술세계가 아니라 현실세계에서 고군분투하리라는 걸 읽기 전부터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못내 서운했다.
오랫동안 그녀는 팔자 사나운 똑똑한 신여성의 대명사, 가정에 충실하지 않아 비참한 말로를 맞이한 이혼녀의 이미지로 소비되지 않았나. 나는 그녀의 굴곡진 인생을 다른 각도에서 보고 싶었다. 말하자면 내가 알지 못했던, 소설가와 서양화가로서의 삶.

그러나 시대의 예속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녀가 사회적으로 존립하고자 쓰인 에너지들을 온전히 예술의 영역에 쏟아 부었다면 얼마나 큰 성취를 이룰 수 있었을까. 그녀를 한 개인으로만 보면 그 손실이 몹시 안타깝다.


작업실에서의 나혜석
자화상


허나 마지막 수록작 <나를 잊지 않는 행복>에 도달하니 그녀를 ‘1인의 여자’로만 더는 볼 수 없었다. 그녀를 시대의 전복을 꿈꿨던 여성들이라는 복수로, 앞서 목소리를 냈던 선두주자로 생각한다면, 예술가로서도 여성으로서도 패배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없다. 시대적으로 불가능해 뵈는 일을 격정적이고도 대범하게 해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그녀가 언제나 생의 목적으로 삼았던,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일.

아이돌이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성적으로’ 드러내는 건 환영받는 일이고, ‘정치적으로’ 드러내는 건 생명까지 위협받는 이 시대를 생각해 보면, 까마득한 그 시절에 고립무원의 상태에서도 침묵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발화하는 건 얼마나 담대한 행위인지.


나혜석 자신도 알았을 것이다.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려 한 일이 결과적으로 얼마나 많은 독자적 개인들의 출현을 가져오게 될지, 자신을 증언하듯 변호하듯 끈질기게 냈던 목소리가 얼마나 많은 겹의 목소리들로 퍼져나갈지 말이다.


“행복으로 빛날 때든 치명을 받을 때든 안정하든 번민하든
냉혹하든 정열 있든 기쁘든 울든 어떤 환경에 있든
나는 다수의 여자인 동시에 1인의 여자일 것이다.(p217)
- 마지막 수록작 <나를 잊지 않는 행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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