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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Mar 15. 2019

매일, 고뇌하게 만드는 단어들

2018. 12. 18. 불의 날.

Word by Word: The Secret Life of Dictionaries by Kory Stamper


1. 유머


이틀 내내 린다 티라도의 <핸드 투 마우스: 부자 나라 미국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빈민 여성 생존기>를 읽다가 마음이 좀 지쳐서 성격이 전혀 다른 책을 꺼내들었다.

코리 스템퍼의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영어사전 편찬자인 저자가 고백하길, “몸을 웅크리고 관자놀이를 양손으로 누르면서 고뇌하게 만든 단어”는 ‘but, like, as’ 같은 녀석들인데, 이들이야말로 “교활하게 변신하며 품사와 품사 사이에서 살아”가고, 편찬자들이 “커리어 내내 분석하고 또 분석”하여 “수없는 용례를 들여다보다가 결국 ‘지옥에나 가라’고 외치면서 부사로 분류하게 되는 단어들”이란다.


읽다가 여러 번 웃음이 터져나왔다.


가령, 저자가 “What can they do but try?”의 but이 접속사인지 전치사인지 혼란스러워하거나, good이 형용사인지 부사인지 결정하기 위해 “I’m doing well”과 “I’m doing good” 사이에서 망연자실해져 있을 때.


그때마다 큭큭거리며 눈물을 닦았는데, 이런 게 웃기다고 웃는 내가 조금 변태스럽기도 하고, 이 큭큭거림이 오늘의 첫 웃음임을 인식하자 이상하게 울적해지기도 하고, 그간 영어를 욕하며 공부해온 세월을 떠올리며 이 괴로워하는 편찬자에게서 묘한 위로를 받기도 하고, 뭐 그렇다. 어쨌든, 큭큭.


이 지독하게 건조하고 탁한 계절에는 이런 유머가, 이렇게 재치 넘치는 작가의 책이 필요하다.

2. 영문법


아이랑 영문법을 공부하고 있다. 문법공부를 왜 하느냐 독서를 하면 되지, 이런 생각으로 버텨왔으나, 사실상 한국어책도 자주 읽지 못하는 마당에 영어책은 무슨, 자유학기제가 끝나 본격적으로 내신을 준비해야 하는 마당에 더는 아이의 현실을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했다:::

뭐 커피값이라도 굳히겠다는 마음으로 그 어렵다는 자기 자식 가르치기를 시도하고는 있으나, 말 그대로 커피값만 굳히는 실정이랄까, 아이도 나도 이런 공부는 진짜 귀찮기만 하여, 영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툭하면 모녀가 딴짓할 궁리에 빠져 있다. 어제만 하더라도,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문법 진도 나가자고 아침에 결심해놓곤 저녁에는 서로 딴말을 했다. (아이는 헝거게임을 넘나 읽고 싶어 하고, 나는 핸드 투 마우스를 노려보고 있고.)

결국 뭔가를-영어공부에 가까운 뭐라도- 하긴 해야겠으니 팝송을 외우자고 했다.

3. <Bellyache> by Billie Eilish


여러분, 이 충격적인 노래를 아십니까!


멜로디와 가수의 음색이 좋아 멋모르고 들리는 단어만 흥얼거리던 아이가 가사를 본격적으로 맞닥뜨리고는 충격에 빠졌다. 친구들을 죽여 자동차 뒷좌석에 놓고 애인을 죽여 배수로에 버린 싸이코패쓰 이야기다. 16세 소녀가 이런 노래를 만들어 이토록 달콤한 음색으로 노래하다니,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졌달까. 격세지감이 이런 감정일 거다. 두 순진한 모녀가 뮤직비디오(https://youtu.be/gBRi6aZJGj4)를 넋 놓고 구경했다.

단어 암기를 극혐하는 아이가 순식간에 가사를 암기했다. 문장이 쉽다. 곳곳에 문법요소가 포진해 있어서 중학생에게 소개하기 좋다. 게다가 그 아이의 독서취향이 본격미스터리스릴러라면. 아이가 큭큭거리며 I’m too young to go to jail을 외친다 하더라도, 너무 심각하게 반응하지 않도록 자제할 수만 있다면.

오늘 아침에는 설거지를 하는 내 등 뒤에서 아이가 등교 준비를 하며 흥얼거렸다. I lost my mind~ I don’t mind~ Where’s my mind~ Maybe it’s in the gutter Where I left my lover~
심란했다.

흠.... 그냥 퀸의 노래를 외우게 할 걸 그랬나.

We Are The Champions, 이런 것.

파이팅 넘치고 좋잖아.    


오늘 처음으로,
십대 싸이코패쓰가 주인공인 노래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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