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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Oct 31. 2019

예술과 정치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

이진경, 문화정치학의 영토들

작품은 관객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영적인 힘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
- Asger Jorn


그날은 간만에 언니들과 현대미술관에서 만나기로 했다. 날이 뜨거웠다. 자외선지수가 매우 높으니 화상을 입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예보가 있었다. 그것이 그날 내가 들은 첫번째 문장이었다. 그날은 남편이 거실에 틀어놓은 jtbc 뉴스가, 전날은 욕실이 떠나가라 틀어놓은 빌리 아일리쉬의 Bad Guy가 나를 깨웠는데, I'm the bad guy, duh 라는 말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과 햇빛화상을 조심하라는 경고로 시작하는 것 중에 무엇이 덜 상쾌한 일인지 모르겠다. 독립문 근처에서 버스가 택시의 옆구리를 박고 서 있는 걸 보았다. 택시기사로 보이는 이가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땡볕 아래서 땀으로 번들거리는 하얀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진 채로 택시와 버스를 번갈아 향했고 짧은 팔이 허공을 성마르게 휘저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더웠다.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차창을 닫고 성능이 영 시원찮은 에어컨을 켰다. 미술관에 들어서자 로비에 앉아서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드는 언니들이 보였다. 내 벌건 얼굴을 보더니 바닥의 환풍구 앞에 서 있으라 했다. 거기서 찬바람 나온다, 어디 마릴린 먼로처럼 서 있어 봐.



박서보의 중기묘법시기의 한 그림 앞에서 P언니가 걸음을 멈췄다. 색조와 질감이 우아하게 말린 꽃잎 같다며 서로 맞장구쳤으나, 나는 화사하다 했고 언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건조하고 삭막한 아름다움이라 했다. 아마도 우리의 마음 상태가 달라서일 거라고 언니가 차분한 어조로 덧붙였다. 슬쩍 얼굴을 보니 웃고 있었다. 언니는 거의 언제나 웃고 있다. 웃음의 항상성이 신기하고 부러워서 웃는 얼굴을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아스거 욘의 <대안적 언어 전시>는, 이진경의 <문화정치학의 영토들>이 감상의 절반을 채워줬다.



그간 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완전한 탈근대성을 뜻한다고 생각해왔다. 또한 건축, 철학, 문학, 예술 등 각 분야마다 이 새로운 사조의 스탠스가 동일하지 않은데도, 이제껏 같은 양상으로 드러난다고 착각해왔다. 이 책을 읽고서야 내가 무엇을 왜 어떻게 혼동해왔는지 알게 되었다.


가령, 철학적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철학/근대사회/사물을 표상,재현하는 근대적 방식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문학적 모더니즘과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또한 모더니즘의 스타일과 특징을 비판하는 것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을 설명하려 한다면, 그 시도는 문학과 건축, 예술분야에서만 유의미하다. 게다가 근대와 모던과 포스트모던과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 근대와의 진정한 단절이 20세기초의 모던인지, 20세기 중반의 포스트모던인지 어떤 분야에서 논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이진경 작가의 첫번째 글은, 분야별로 포스트모더니즘이 무엇을 일컫는지 밑그림을 그려보인다. 그런 뒤에 우리가 포스트모던하다 일컫는 문화현상을 '소비와 복제의 문화'로 나눠 설명하고 예술과 정치 분야에서 더 깊이 있게 그 세부를 보여준다.




사회운동가 아스거 욘의 작업은 이진경의 ‘예술과 정치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생생한 예시처럼 느껴졌다.



사물과 세계를 재현하여 '진리와 숭고'를 보여주려 한 모더니즘과는 다르게 '재현불가능성'을 보여주려 한 시도. 저자의 작품세계 안에서 작품을 해석하는 걸 거부하고, 작품과 독자의 주체적이고 자발적 해석을 강조하는 것. 노동운동 중심의 전통적 사회운동의 배치에서 벗어나 개별적 구성체들의 등가적 접합과 새로운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며, 총체성과 권력, 예술의 상품화, 소비자본주의를 거부하는 것.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런 특징들을 아스거 욘의 전시, 특히 추상표현주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나아가는 그의 다양한 행보를 통해 살필 수 있어 흥미로웠다.




길상사로 향하는 길. 관계를 끌고 가는 힘이 한심하게 약한데 언니들을 만난 지는 10년이 다 되어간다고, 고백하듯 말하자 K언니가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그냥 우리가 좋다고 해. 터널을 벗어나자 좁게 구불거리는 도로 양편으로 짙은 녹음이 펼쳐졌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탄성을 질렀다. 숲그늘을 가로지르는 그 짧은 길이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것들을 저 멀리 밀쳐놓았다. '이 순도 높은 청량한 순간을 디딤돌 삼아 우리 모두 이 계절을 무사히 건너가길', 나는 간절하게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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