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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Nov 01. 2019

멈추고, 바라보고, 귀 기울이라

프레드릭 비크너, <주목할 만한 일상>


1. 제목과 표지가 근사하다. 아무 정보 없이 표지만 보고 대출하는 건 드문 일인데, 잘했어, 잘했어! 폭풍칭찬 중.


2. 저자 프레드릭 비크너는 글쓰기 목회를 하는, 작가 (오헨리 상을 받은 소설가)이자 목사라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렇게 또 좋은 작가를 알게 되어 기쁘다.


3. 영성과 예술을 이다지도 품위있고 우아하게 접목시키다니. 여러 번 가슴이 뜨거워졌다. 책 한 권에 담겼으니, 다소 긴 강연이라 할 수 있고, 손바닥만한 얇은 책에 담겼으니, 짧은 에세이집이라 할 수도 있겠다. 이런 설교라면, 한주도 빠짐없이 앞자리에 앉아 메모하며 들을 텐데...


(결석과 지각을 밥 먹듯이 하는 날라리 신자의 구차한 변명입니다;;;)


4. 그는 신앙의 언어를 오래된 동전에 빗대어 말한다. 무구한 세월 동안 너무 많은 사람의 손을 타서 매끈하게 닳아버린 동전. 이제는 그 가치를 정확히 따지기 어려우며 과거 지녔던 위력을 잃었고 예전처럼 통용되지 않는 동전.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언어, 예전과는 다르게 말하는 방식이다. 어쩌면 비언어적 방식도 오래 전 교리와 성경이 범주화한 언어들이 해냈던 경건한 일들을 훌륭하게 해낼지도 모른다.


여기서 그가 주목한 것이 바로 예술이다. 진정한 예술은 진정한 신앙이 성취하는 일을 해내므로.


 "우리 각 사람으로 자신의 거룩한 부분, 예술과 사랑이 생겨나오는 근원, 모든 선하고 지혜로운 일들이 생겨나오는 근원과 접촉하게 하고, 그래서 이 그림과 이 시와 이 발레와 이 음악과 이 성경 덕분에 우리가 마침내 참다운 인간이 되게 해주는 것."


그러니까,


모네의 그림에서 '건초더미와 각자 다른 여러 종류의 빛과 어둑함과 비가 어떤 식으로든 전달하는 은혜',

무대 위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맞춰 '젊고 유연하고 아름다운 몸들'이 전하는 신비,

시간의 '장엄함'과 '위엄'에 귀기울이라고 명하는 바흐의 음악과 '시간의 깊은 곳을, 시간의 신비를 들여다보라고' 권하는 듯한 강江의 깊고 묵직한 유속流速,

렘브란트가 주목하여 그려낸 어느 평범한 노파의 초상화와 단순한 낱말들로 이뤄진 바쇼의 하이쿠가 가르치는 '멈추고 바라보고 귀 기울이는' 일의 소중함...


등을 느끼게 하는 것.


예술은 한 순간을 포착하여 테를 두르고, 우리는 '테가 둘린 순간을 보고 경험'한다. 우리가 무덤덤하게 일상을 살아내느라 주목하지 못했던 경이와 경건과 신비의 순간들을.


진정한 예술, 진정한 신앙은 말한다.


'멈추고 보고 귀 기울이라'고. "그대 삶에 실제 존재하는 것을 보라고, 그대 자신을 보고, 서로를 보라고" 이야기한다.


5. 기독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영성과 예술'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보시라 권한다.




"알다시피, 내가 한번도 범하지 않은 계명은 하나뿐입니다. 그 계명은 바로 '들의 백합화를 생각해 보라'는 계명입니다." - 에밀리 디킨슨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아니 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마6: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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