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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Nov 19. 2022

세상을 위협하는 멍청함

장 프랑수아 마르미옹, <내 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


0. J가 빌려온 책이다. 막상 수행평가에 쫓겨 고스란히 반납할 지경에 이르자 내게 떠넘겼다. 세상을 위협하는 멍청함을 연구하자? 오, J 주위에 위협적인 멍청이라도? ...혹시? 어쩐지 떨떠름해져선 책을 받아들었다. 


현란한 표지와 표사들, 목차까지 훑어보니 내 주위의 멍청이들이 아니라 내 멍청함을 돌아보게 될 듯했다. 생각 없이 행하고, 알면서도 저지르고, 머리와 혀와 수족의 불일치로 벌어지며, 언어의 누실과 낡은 지식, 편협된 사고의 결과물인 이 모든 멍청함 말이다. 나를 위협하는 건 주위의 멍청이들이 아니다.


목 차
멍청한 인간에 관하여 •세르주 시코티           
멍청이에는 어떤 종류가 있을까 •장 프랑수아 도르티에
어떤 사람이 멍청이일까 •에런 제임스와의 만남    
인간, 크게 착각하다 •장 프랑수아 마르미옹
멍청함과 인지 오류 •에바 드로즈다 센코프스카  
생각은 두 가지 속도로 움직인다 •대니얼 카너먼과의 만남
바보 같은 짓에서 쓸데없는 짓까지 •파스칼 앙젤
뇌 속의 멍청함 •피에르 르마르키
알고도 하는 멍청한 짓 •이브 알렉상드르 탈만
왜 똑똑한 사람들이 이상한 것을 믿을까 •브리지트 악셀라드
왜 우리는 우연에서 의미를 찾을까 •니콜라 고브리와의 만남
멍청함은 논리적 착각일 뿐이다 •보리스 시륄니크
왜 우리는 멍청이처럼 소비하는가? •댄 애리얼리와의 만남
모든 것에 겁 없이 도전하는 동물, 인간 •로랑 베그
멍청함의 언어 •파트리크 모로
멍청함이 꼭 감정 때문일까 •안토니오 다마지오와의 만남
멍청함과 자기도취 •장 코트로
멍청함은 지혜의 배경음이다 •토비 나탕과의 만남
최악의 미디어 조종자는 누구인가 •라이언 홀리데이와의 만남
멍청하고 못된 SNS •프랑수아 조스트
우리는 인터넷 때문에 멍청해질까 •하워드 가드너와의 만남
멍청함과 탈진실 •세바스티앙 디게
국수주의라는 멍청함의 변신 •피에르 드 세나르클랑
집단의 멍청함을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 •클로디 베르
멍청한 놈들과 맞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에마뉘엘 피케
아이들의 눈으로 본 멍청함 •앨리슨 고프닉과의 만남
우리는 멍청함을 꿈꾸는가 •델핀 우디에트
내가 지적이라는 망상이야말로 가장 멍청하다 •장 클로드 카리에르
멍청함과 평화롭게 공존하기 •스타세 칼라앙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기분으로 골라 읽은 글이 하필 내 기질적인 행동양상에 직격탄을 날린다. 감정과 감성의 호소에 쉽게 흔들리고, 직관적으로 도출해낸 결론을 과신하고, 그 믿음을 뒤받쳐줄 자기방어논리를 찾다가 확증편향에 빠져버리고, 주관적 해석에 갇혀 내 ‘증언, 경험, 느낌만 중요시’하는 것.


자괴감에 가슴이 쓰라리지만 결국 첫장부터 각잡고 읽기 시작했다. 설렘지수 드높이는 책들이 책상에 쌓여 있는데 의무감으로 정독하는 건 '멍청함'에 관한 책이라니, J를 향한 애정이 아니고서야... 아이가 책을 권하는 건 드문 일이라 감히 거절할 수 없다. 대략 49%쯤은 내 멍청해짐에 대한 경각심 탓일 테고.


프롤로그를 읽어보니 이 책을 쓰게끔 저자를 몰고 간 게 혹시 트럼프가 아니었을까 의심했다. 저자는 멍청이들은 고쳐쓸 게 아니라 피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엮이는 순간 같이 침몰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인간’이 ‘어쩌다가’ ‘어떤 행동’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으며, 역사 깊은 인간의 이러한 속성을 왜 하필 ‘지금 이 시기’에 주목해야 하는가. 이를 주제로 저자가 심리학, 신경학, 철학, 경제학, 정보과학, 언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29인과 나눈 짧은 인터뷰와 글을 엮었다.



내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 


1. 우리에게 멍청함을 포착하는 레이더, 바로 부정편향negativity bias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부정적인 것에 주목하는 성향이 있고 부정적인 결과의 원인을 자신이 아닌 주위의 멍청이에게서 찾곤 한다. 인간의 본성과 동기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면서, 특정 행동의 원인을 그를 둘러싼 다양한 외부적 요인이 아니라 타고난 성향에서 찾으면서, 쟤 왜 저래, 멍청해서 그래, 그런 단순하고도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는 멍청함을 발휘한다.



2. 멍청함이란? “지능이 부족한 상태가 아니라 목적 때문에 지성을 포기한 상태”이다. ‘맹목적인 확신, 자아도취, 막무가내의 주장’이 멍청함을 부추긴다. “인간은 진실에 관심 없을 때 멍청해진다.” “진실을 알면서도 왜곡하거나 숨기려는 거짓말쟁이와 달리 멍청이는 진실 따위에 관심이 없다.” 그러니 진실을 왜곡하는 포퓰리즘 정치인들과 이들이 조장하는 가짜뉴스와 거짓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대중의 조합은 얼마나 위험한지.



3. “우리의 행동 대부분은 이성보다는 감정에 따라 일어난다.” 그렇다면 멍청한 행동을 감정의 결과물로만 봐야 하는가. 그렇진 않다. “모든 감정에는 양면성”이 있고 사람마다 감정적 반응과 표현방식이 다양하므로 그렇게 일반화시킬 수 없다. 또한 “공감능력과 감성, 배려심이 부족”하면 ‘자아도취형 멍청이’가 되기 쉽다. 


하지만 우리는 “팩트보다는 감성이 우선시”되며 대중의 감정에 호소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의 감정은 정치적· 상업적으로 이용당하기 쉽다. 자신의 “본능과 감정을 지식으로 착각”하여 판단의 근거로 삼지 말자.


그렇다면 이성은 우리를 멍청함에서 구해낼 수 있을까.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인간의 논리적 사고는 완전하지 않다. 인지오류가 너무 많다. 일반화의 오류, 기준점과 조정의 오류, 틀짜기 효과, 확증 편향, 사후 과잉 확신 편향, 이기적 편향, 잘못된 인과관계의 오류... 감정과 이성이 한목소리로 확신하는 순간에도 의심의 고삐를 늦추지 말고 신중할 필요가 있다.


신념과 사실이 맞서 싸우는 ‘탈진실’의 시대, 클릭 몇 번으로 지식과 정보, 통찰까지 손쉽게 거머쥘 수 있지만 가짜뉴스와 거짓정보, 헛소리 또한 난무하는 이 시대는 “멍청한 짓을 하기에 유리하기도 불리하기도 한 시대”이다.


© Alejandro Cartagena on Unsplsh


4. 잊을만하면 언급되는 트럼프. 이쯤 되면 전세계 석학들에게 심한 트라우마를 안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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