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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Nov 22. 2022

(         )와 (          )

말들의 흐름: 술과 농담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의 나를 표현하기 위해, 나는 두 괄호를 무엇으로 채워 넣을 수 있을까. 


<시와 산책>에 이어 두번째로 읽는 <말들의 흐름> 시리즈. 


두 키워드를 주제로 한 이전 책에서 두번째 낱말을 이어받아 새로운 낱말을 결합한 책으로 넘어가니, 끝단어 잇기 시리즈라 해야 할까. 총 열권의 산문집으로 구성된 시리즈는 "커피와 담배"에서 시작되어 "새벽과 음악"으로 끝난다. 색다른 컨셉에 대한 호기심과 동생의 추천으로 “시와 산책”을 읽었는데 오랜만에 시인의 섬세하고 다감한 시선을 만끽할 수 있어 기대 이상이었고, “술과 농담”을 읽어보니 시리즈 전체에 호감이 생긴다. 이 시리즈가 더 이어지지 않는다니 아쉬울 정도다. 다음 책으로는 "영화와 시"를 읽을 계획. 


출판 의도에 맞춰 이어 읽는다면 좋겠지만 손에 들어오는 대로 읽고 있다. "술과 농담"은 시리즈의 여타 책과는 달리 여러 작가의 글을 엮었는데, 편혜영 작가와 이주란 작가 편을 먼저 읽었다.




편혜영 소설은 내 서재에서 공포소설로 분류된다. 그로테스크하기 그지없던 데뷔 소설집의 강렬한 첫인상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인물과 사건을 향한 냉담하고 건조한 시선 때문이다. 읽다 보면 긴장하고 있다. 마지막 문장에 도달하면 공포영화를 보고 난 뒤 찾아오는 예의 얼얼함, 개운치 않은 뒤끝이 있다.


그런데 술과 농담을 주제로 한 산문이라니, 안 읽어볼 수 있나.


이야기는 술자리 해프닝으로 시작하여 술과 관련한 부모의 일화, 미드 보잭 홀스맨, 존 치버의 단편 “헤엄치는 사람”을 거쳐 중독자의 삶으로 흘러간다. 그런데 여기 어디에 농담이 있나, 생각해 보니 그녀가 꺼낸 장면 모두가 농담거리가 될 수 있다.


언젠가 아버지가 춤판이 벌어진 전세버스에서 얼굴이 새빨개져선 억지로 노래를 부른 뒤 민망함에 좋아하지도 않는 술을 냅다 들이켰다든가 어느 여름 귀갓길에 엄마가 조카를 업어 재우느라 진 빠진 얼굴로 캔맥주를 들이켜는 걸 목도했다든가, 미드 보잭 홀스맨도 존 치버의 단편 주인공도 삶을 농담처럼 사는 양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결코 웃을 수 없다.


“술 없이 부끄러움에 맞서기 싫을 때, 세계가 짐짝같은 무게로 업혀올 때, 오래된 관계를 내가 다 망쳤다 싶을 때, 아무리 달리 보려고 해도 내 마음이 하찮을 때, 가까운 사람에 대한 연민과 실망으로 마음이 그을릴 때,
한마디로 제정신인 걸 참을 수 없을 때”
“삶을 살아온 결과로 어쩌다 보니 술병 뒤에 숨은 처지가” 되고 만다.


농담처럼 가볍게 던져보지만 맞웃음으로 답할 수 없는 질문.


“하지만 술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으로 견딜까. 비중독자인데다가 간헐적 음주인으로서 이런 질문은 농담이 되기 십상이니 질문을 바꾼다면, 사람들은 삶이 주는 공허를 무엇으로 견딜까.

성실히 살아왔지만, 원만하고 무탈하고 무해한 사회적 존재로 지내왔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없단 걸 깨닫게’되는 순간, 무엇에 의지하고 어디에 숨을까.

중독자란 허약하고 우울한 심약자가 아니라 일찌감치 그 사실을 깨닫고 마음과 몸을 무엇에 의지할 것인지 간파해버린 사람을 일컫는 말이 아닐까." p33


이 질문에 그녀는 소설에서도 그렇지만 여전히 가차 없는 태도를 보여준다.


“결국 아무것도 아닐 게 자명한 삶을, 이미 망친 듯한 삶을” 누군가는 잠시간의 안식처 혹은 피난처가 되어주는 무언가에 서서히 중독된 채로, 누군가는 “지나치게 제정신으로 혹독하게 살아가게 될 것이다.”





편혜영의 산문이 캐럴라인 냅의 알콜중독 회고록인 <드링킹>을 되짚어보게 한다면, 이주란의 “서울의 저녁”을 읽다 보면 그녀의 단편집 <한사람을 위한 마음>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동일한 결의 정서가 공명하는 산문이다.


단편집 수록작들은 그날의 일과, 과거의 회상, 그리고 그 사이에 흐르는 감정들을 평이하게 서술하는 식으로 쓰여 마치 화자의 일기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산문의 서술방식도 동일한데, 단편집을 읽고 난 뒤였기에 역설적으로 소설처럼 읽힌다. 단편집에 수록되어도 무방할 만큼 책 전체를 관통하는 분위기와 주제에도 어울린다.


다만, 한가지 다른 점이 (허구성은 단연히 차치하고) 결정적 차이를 가져왔다 생각했다.


작품들 속에서는 도대체 주인공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드러나지 않는다. 읽는 내내 주인공이 내내 곱씹는 그 일을, 그게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나 또한 떨쳐낼 수 없다. 바로 그 때문에 사건과 거기 얽힌 인물을 독자인 내가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서 주인공의 감정에 더 깊이 몰두할 수 있었다.


이와 달리 산문의 중심에는 친구의 죽음이 들어앉았다. 작가는 별일 없는 하루를 그려내듯 그간의 일을 시종일관 가볍게 들려준다. 기일에 모인 그들은, 서로가 잃어버린 사람을 그리워하며 음복하듯 서로의 술잔을 비운다. 아픈 시절을 통과해낸 이들이 함께하는, “별것 아닌 얘기들이었는데 다 같이 웃는 순간들”의 장면에서 “한사람을 위한 마음”이 완결되는 것 같았다.


이주란 작가의 글을 아주 좋아하게 되었다.


자정 무렵 재희를 위한 음식이 차려졌다. 기도도 하고 절도 하고 아무튼 할 수 있는 건 다 할 생각이다. 뭘 하든, 각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모르는 분이지만 함께할게요. 
오, 고마워요.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 사람도 같이 생각해도 되죠?
그럼요.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는데 좀 좋았던 것 같다고, 마지막으로 눈을 뜬 정연이 말했다. 우리들은 건배 같은 것은 하지 않았지만 각자 자기식대로 술을 마시며 자기 이야기를 했다. 별것 아닌 얘기들이었는데 다 같이 웃는 순간들이 있었다.
 
- “서울의 저녁”의 끝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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